글읽기
read 12049 vote 0 2008.08.27 (23:28:46)


구조론과 깨달음


인생의 답은 행복 뿐이다.

행복의 길은 사랑 뿐이다.

사랑의 길은 소통 뿐이다.

소통의 길은 자유 뿐이다.

자유의 문은 깨달음 뿐이다.


그러나 진짜이기 위해서는 일관되게 우위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물질의 소유가 진정한 행복이 아니듯이,

남녀의 애정이 사랑의 전부가 아니듯이,

의미없는 수다가 참된 소통은 아니며,

그저 나대기만 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며,

자기문제 해결에 집착한다면 깨달음일 수 없다.


행복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한다.

사랑에 끌려다녀서 안 된다.

소통의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라 그 길을 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아니라 사슬을 끊고 해방으로 인도하는

자유의 개척자가 되어야 한다.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깨달음의 편에 서는 사람이어야 한다.

깨달음의 편에서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는 일체의 적들과 싸워야 한다.

그러므로 참된 깨달음은

세계 안에서 자기 포지션을 정립하여 아는 것이어야 한다.


깨달음이 나의 완성이라면

그 완성의 가능성은 세계의 완전성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세계 앞에서의 인간해방이 이 순간 너와 나의 자유로 복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가 깨어날 때라야 너는 진실로 깨닫는다.


깨달음은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자기 문제를 해결하기 쉬우나 타인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문제해결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에게 다가가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너의 문제가 해결될 때 나의 문제가 해결된다.

너와 내가 소통의 언어를 공유할 때라야 진정한 사랑은 가능하다.

그럴 때 내 안에 감추어진 백 퍼센트로

네 안에 감추어진 백 퍼센트를 끌어낼 수 있다.


꽃은 피어나고 향은 전파된다. 모두 깨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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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은 모든 철학의 출발점이다. 그리스 철학의 비조 탈레스가 물 1원론을 주창했을 때 그 안에 이미 구조론적인 사고가 반영되어 있었다. 그것은 세계와 나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려는 태도이다.


그러나 이후 인간은 세계를 이용하는데 관심을 둘 뿐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건축하려는 자는 있어도 터를 닦으려는 사람은 없었다. 과학은 발전했으나 종교와의 기이한 동거를 끝내 청산하지는 못했다.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내 존재의 주소지를 탐색한다는 것이다. 북극성을 보고 항로를 잡듯이 세계의 완전성과 나의 완전성이라는 두 극 사이에 항해하여야 할 구조의 바다는 펼쳐져 있다.


거기에 절대경로와 상대경로가 있다. 절대경로가 존재론이면 상대경로는 인식론이다. 절대경로는 원본이고 상대경로는 복제본이다. 절대경로는 우주 안에서 나의 위치고 상대경로는 온전한 너에 의한 온전한 나의 드러남이다.


자기문제 해결은 상대경로에 불과하다. 온전한 종이 소리를 내듯 온전한 나는 온전한 세계와 마주쳐 거룩한 울림의 소리를 일으켜야 한다. 그러므로 깨달음은 정치적이다. 그러므로 깨달음은 일대 사건이다.


진정한 것은 낳음이다. 낳음은 사랑에 의해 가능하고 사랑은 만남에 의해 가능하고 만나기 위해서는 서로 자유로와져야 한다. 서로 대등해져야 한다. 소통의 언어를 공유함에 의해서 서로는 대등해진다.


그 언어의 획득이 진정한 깨달음이다. 그 언어는 세상 전부와의 온전한 만남에 의해 얻어진다. 온전한 나와 온전한 세상이라는 두 극점 사이에 구조의 바다가 펼쳐져 있다. 그 바다에 풍덩 뛰어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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