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 교과서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두 가지 태도가 있다. 관계로 보는 방법과 알갱이로 보는 방법이다. 구조론은 관계로 보는 방법이니 관측대상 그 자체의 내재한 질서로 본다. 알갱이로 보는 방법은 인간의 눈코귀입몸으로 대상을 건드려서 되돌아오는 반응을 본다. 관계로 보는 방법이 옳고 알갱이로 보는 방법은 틀렸다. 세상은 관계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 만물은 서로 붙잡고 의지하여 일어난다. 만물이 일어나는 데는 반드시 원인과 결과의 시간적 순서가 있고, 또 작용과 반작용의 공간적 방향이 있다. 홀로 있는 것은 절대로 없으며 반드시 파트너가 있으니 파트너와의 상호작용을 본다. 파트너와 대칭을 이루어 계를 형성하고 에너지를 태워 축을 움직이는 방법으로 상호작용하니 그 상호작용의 접점을 보는 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바른 방법이다. 이것이 추상이다. 추상은 계 안에서 에너지가 작동하는 사건의 메커니즘을 추적한다. 사건은 반복된다. 반복되는 데는 일정한 패턴이 있으니 곧 구조다. 관계로 보는 방법의 반대편에 입자로 보는 관점이 있다. 세상을 알갱이로 보는 태도가 있다. 그들은 세상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알갱이의 집합으로 인식한다. 이는 추상이 아니라 구상具象이니 구상은 인간의 관찰에 의지하며 관찰한다는 것은 대상과 상호작용하는 것이니 인간이 개입하여 상을 왜곡하게 된다. 관찰의 방법도 보조적으로 쓸 수 있으나 반드시 인간에 의한 왜곡을 제거하는 추상화단계를 거쳐야만 한다. 관측의 왜곡을 제거한 추상이 오히려 구체적이며 인간의 감각이 개입한 구상은 불순물이 끼어들어 흐릿하다. 그 흐릿함을 제거할 필요 때문에 쪼갤 수 없는 단계까지 밀어붙여야 한다는 생각이 끼어든다. 쪼갤 수 없다는 말은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고 정확히 말하면 쪼개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세상은 서로 붙들고 의지하여 일어나므로 이브와 아담은 서로를 붙들어야 한다. 아담과 이브를 떼어놓으면 100년이 못 가서 지구에 사람은 하나도 없게 된다. 쪼개지면 곧 구멍난 배와 같아 계에 에너지를 태울 수 없다. 쪼갤 수도 있으나 쪼개지면 불완전하다. 세상은 완전한 것과 불완전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 완전한 것을 추적해야 한다. 불완전한 부스러기는 에너지를 태우지 못하므로 일의 방향과 순서가 포착되지 않아 원리를 알 수 없다. 즉 그 대상을 통제할 수 없다. 만약 그 대상을 통제할 수 없다면 그것은 모르는 것이다. 안다는 것은 대상을 통제한다는 것이며, 통제하려면 에너지를 작용시켜야 하고 그러려면 에너지가 작동하는 결을 알아야 한다. 에너지는 상호작용의 원리를 따라 일어난다. 눈코귀입몸으로 대상에 직접 작용하여 그 되돌아오는 반응을 보는 귀납의 방법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분별하는데 쓰는 보조적인 방법이다.
근본적으로 구조론적인 세계관, 관점, 태도를 획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방향에 맞추어 자신을 길들여야 합니다. 구조론을 배우면서 입자로 보는 태도를 유지한다면 곤란한 거죠. 관계로 보겠다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
구조라는 말 자체에 관계가 전제되어 있으니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지요.
구조론은 관계론이니 그 관계를 잘 규명하면 구조가 보이는 거겠지요.
관계를 잘한다.
관계의 소중함을 안다.
관계가 나쁘다.
관계할 줄 모른다.
이 말은 구조로 대치해도 다 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