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간은 잘생겼을까?
이 그림을 보고 위화감을 느껴야 한다. 딱 봐도 어색하지 않은가? 자빠질 것 같지 않은가? 그러나 이 그림을 보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으니 내 눈에 보이는 것이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유인원과 인류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목의 굵기다. 나무에 매달리려면 두 손을 써야 한다. 남는 손이 없으므로 입이 앞으로 돌출해야 한다. 그 경우 머리를 지탱하려면 목이 굵어야 한다. 침팬지든 고릴라든 오랑우탄이든 목이 굵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인간은 목이 가늘고 길다. 인간의 진화과정을 상상한 지금까지의 그림은 모두 잘못되었다. 그런 목으로는 흔들려서 잘 달릴 수 없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내려오는 순간 매우 달려야 하는 현실과 맞지 않다. 네다리로 달리는 초식동물은 큰 엉덩이가 무게를 잡아주므로 목이 흔들리지 않는다. 두 다리로 달리는 인간은 상체가 앞뒤로 흔들린다.
인류가 처음부터 직립했다는 사실은 근래에 밝혀졌다. 필자는 30년 전에 이를 예견했다. 인류의 조상은 침팬지와 갈라진 이후 곧장 두 발로 선 것이다. 화석발굴로 입증되고 있다. 그림은 인류가 400만년 전에 유인원과 분기했다고 되어 있지만 최근 화석발굴 성과로 보면 직립인류의 조상이 거의 1천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기세다. 과학자들은 두뇌용적의 크기에 집착하지만 인간의 두뇌가 커진 것은 잘 달릴 수 있도록 균형맞추기가 목적이었으므로 본질이 아니다.
유인원과 인류는 서식환경이 다르다. 물에 사는 고래와 들에 사는 사슴의 차이는 크다. 물과 들판이라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환경이 다르면 이후 가는 길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필자는 학생시절 진화를 나타내는 이 유명한 그림을 보고 곧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그림이 어색했기 때문이다. 구부정한 자세로는 달릴 수 없다. 목이 굵으면 앞뒤로 몸이 흔들려서 달릴 수 없다. 달리지 못하는 원숭이는 생존할 수 없다. 달리려면 직립해야 한다. 인간의 걷는 동작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 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인간의 달리기는 껑충껑충 뛰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연속적으로 미끄러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체가 흔들리면 안 된다. 인간은 비교적 이른시기부터 직립했으며 나무에서 내려오자마자 빠르게 달렸고 인류의 진화는 잘 달릴 수 있도록 신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발달했으며 그러므로 직립과 원숭이 사이에 반직립은 없다. 점진적 진화는 없다. 우리는 진화를 비스듬한 사선으로 여긴다. 그런 것은 없다. 진화는 비약적으로 일어난다. 역사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가 생존경쟁에 의해 점진적으로 발전한다는 생각은 틀렸다. 역사는 환경에 맞는 의사결정구조를 세팅하는 것이며 환경의 종류가 많지 않으므로 인간의 진보는 환경변화에 따라 비약적으로 일어난다. 사람의 두개골 속에는 동공이라는 것이 있다. 텅 비어 있다. 공간의 낭비다. 인간의 얼굴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균형을 잡기 위해서다. 균형이 무너지면 잘 달릴 수 없다. 인류의 턱이 들어간 것은 뒤통수가 튀어나온 것과 대칭을 이룬다. 즉 인류의 뇌용적이 커진 것은 턱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머리를 뒤로 젖혀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현생인류의 얼굴모양이 된 것이다. 백인과 흑인의 두개골 모양은 비슷하다. 뒤통수와 턱이 같은 비례로 돌출해 있다. 한국인의 머리가 옆으로 퍼져서 중두인 것은 턱이 작은 것과 관련이 있다. 머리의 무게중심을 맞추는 여러 가지 디자인 중의 하나다. 인류의 코가 커진 것도 관계가 있다. 턱이 뒤로 후퇴해 들어가면서 공간확보를 위해 코가 앞으로 나온 것이다. 인간의 머리카락이 길게 자라는 이유는 털이 없어진데 따른 보상원리다. 백인은 털이 많으므로 대신 대머리가 많다. 코가 앞으로 나온 것은 보상원리라 할 수 있다. 모든 것은 밸런스 원리, 곧 대칭을 따라가는 보상원리에 의해 인체가 무게중심을 잡는데 있어서 의사결정이 쉬운 방향으로 진화해온 것이다. 즉 생물은 생존경쟁이 아니라 밸런스 경쟁에 의해 진화한 것이다. 그 밸런스는 환경과의 밸런스다. 인간형 로봇은 한 다리로 서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인간형 로봇의 핵심은 골반이다. 골반은 인간이 한 다리로 설 수 있게 하는 장치다. 유인원과 인류는 골반의 각도가 다르다. 침팬지의 골반으로는 오래 서 있을 수 없다. 로봇의 키가 커야 한다고도 말한 바 있다. 그래야 정확히 골반 위에 무게를 올려놓을 수 있다. 인간은 왜 잘생겼을까? 역시 보상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인류는 털을 잃고 대신 피부를 얻었다. 백인은 털이 길므로 피부가 좋지 않다. 피부에 보상이 집중되자 피부에 지방층이 두터워져 원숭이와 달리 탄력있는 피부를 얻은 것이며 그것이 인간이 잘생긴 원인이 되었다. 원숭이와 달리 인간은 얼굴에 피하근육과 지방이 많다는 말이다. 가슴과 엉덩이에도 피하지방이 축적되어 탄력있고 균형잡힌 모습이 되었다. 이러한 밸런스의 보상원리야 말로 진화의 핵심이다. 마찬가지로 역사의 진보도 생존경쟁보다는 변화된 환경과 맞는 밸런스와 그에 따른 보상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인간은 무엇을 잃은 만큼 보상받는다. 그것이 진보의 근원적인 추동력을 이룬다.
생물의 진화와 문명의 진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근본적으로 틀려있습니다. 경쟁이라는 개념은 인간사회를 빗댄 자의적인 해석입니다. 자연에는 경쟁이 없습니다. 오직 의사결정하기 좋은 쪽으로 결정할 뿐입니다. 그것은 밸런스의 원리이며 또한가지는 그에 따른 보상원리입니다. |
본문 내용 중 "백인은 털이 많으므로 대머리가 적다"는 오타인 듯.
많다로 수정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