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왜 공자에 노자를 논하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그게 구조론과 무슨 상관이냐고? 나는 원래 철학에 관심이 있었다. 왠지 철학가의 단어들이 입에 착착 감겼다. 그러나 곧 실망하게 되었는데 도서관을 구석구석 다 뒤져봐도 그럴듯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들 되도 않은 개소리나 하고 있더라. 초딩도 아니고 참. 노자는 눈이 번쩍 돌아가는 단어도 더러 투척하고 있으나 기본 세상을 보는 관점이 썩어 있다. 500방을 맞아야 한다. 니체도 비슷하다. 패죽여야 한다. 온고이지신타령이나 하고 자빠져 있는 공자는 구체적인 자기 생각이 없다. 혼자 궁시렁대더라. 이번에 공자 이야기를 하는 것은 구조론을 완성하고 보니 다른 것이 보이더라는 거다. 남의 생각 가지고 장사하는 놈은 패죽여야 한다. '니 생각은 뭔데?' 하고 추궁할 참이었다. 알고보니 공자에게도 자기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공자의 제자들이 헤아려보지 못했으니 공자는 가장 크게 오해된 인물이다. 서양철학은 이렇다 할 것이 없다. 깨달음이라는 개념이 없으니 일단 출발점에 가 있지 않다. 철학은 한 마디로 '의사결정능력'이다. 이러한 본질에 대한 탐색이 없이 세상이 어떻고 남탓하며 궁시렁대는 마르크스 따위는 불쌍한 새끼들이다. 뭐하는 짓이냐 그게. 쪽팔린 줄 알아야지지! 뭔가 핀트가 안 맞다. 철학은 나를 죽이고, 세상을 죽이고, 신을 죽인 다음의 게임이다. 차도 없고 운전도 할줄 모르는 주제에 신호등이 어떻고 도로가 어떻고 그런 소리 하면 피곤하다. 첫 출발점을 잘 찍어줘야 한다. 세상의 모순이 어떻고 논하기 하기 전에 인간 존재가 무엇이냐를 탐색해야 한다. 프로이드가 있어서 다행이다. 프로이드가 모든 철학자를 한 방에 보내버렸다. 자기 자신의 마음 속도 모르면서 무슨 철학이람? 그 프로이드도 우연히 왕건이를 건져 문제를 제기한 결과로 되었을 뿐 아는 것은 초딩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프로이드가 게임판을 리셋시킨 것이다. 원점에서 다시. 그러나 철학의 진도를 빼준 것은 아니다. 철학자들이 프로이드에 의해 무지를 들킨 거다.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렇다. 철학의 출발점은 인간의 생존본능이다. 타고난 데서 철학은 시작되어야 하니 철학의 첫 단추가 거기에 있겠다. 철학은 의사결정능력이며 의사결정의 방해자는 첫째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고, 다음은 인간의 사회성이다. 생존본능을 지적한 사람은 프로이드이고 사회적 본능을 지정한 사람은 융이다. 물론 단초를 제공했을 뿐 제대로 지적한 것은 아니다. 융도 두 살 때의 기억을 내세우는 것을 보면 뭔가 통하는 녀석이다. 이 이야기 듣고 프로이드나 융을 읽어줄 필요는 없다. 다 개소리다.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어떤 주장을 할만큼 사유를 축적한 인간들이 아니다. 그냥 세 살 꼬맹이처럼 뒤뚱대며 걸음마나 하다가 무릎 까져가지고 엄마에게 자랑하는 수준이다. 인간에게 있어 의사결정의 방해자는 첫째 생존본능이니 식욕, 성욕, 죽음 따위다. 본능을 긍정하자는 마광수 부류는 쪽 팔리는 새끼다. 뭔 짓이냐 그게! 건너 뛰지 마라. 단계를 밟아야 한다. 본능을 긍정하더라도 짚을 것을 짚어주고 난 다음이다. 초딩은 일단 자기 자리에 가만이 앉는 훈련을 해야 한다. 긍정할걸 긍정한 다음에 의심하는 훈련에 들어가는 거다. 기본이 안 되는 새끼는 조낸 쳐맞아야 한다. 시킨대로 하라는 말이다. 말 좀 들어라. 화상들아. 의사결정의 두 번째 방해자는 사회로부터의 보이지 않는 압박 곧 인간을 조종하는 무의식이다. 당신이 좋아하는 그 모든 것은 가짜다. ‘나는 이게 좋다?’ <- 그거 가짜다. 그것은 너의 게임이지만 이미 타인의 게임에 말려들어 있다. 너는 낚여 있다. 먼저 자기를 극복하고 난 다음에 사회를 극복해야 한다. ‘자유롭게 너 하고 싶은 것을 해라.’ <- 이런거 위험하다. 자유롭게 하려는 그것이 사실은 자유롭지 않게 타자에 의해 마음이 조종된 것이다. 첫째 나의 본능을 극복하고 다음 타인의 시선을 극복하고 다음 에너지의 결을 따라가야 한다. 인간의 의사결정을 지배하는 세 번째는 자연의 진리이니 곧 진보다.
◎ 생존본능이 의사결정을 방해한다. - 식욕, 성욕, 죽음을 극복하라. 첫 번째 생존본능은 소승의 문제다. 석가는 요 정도를 이야기 했다. 두 번째 사회성은 대승의 문제다. 세상을 구원하려면 세상을 극복해야 한다. 세 번째가 구조론이 소용되는 단계다. 이 단계에 오른 다음에 혁명을 하든 개혁을 하든 하는 거다. 진리라는 자동차를 얻은 다음 세상의 운전기술을 연마한다. 문제는 그 진리가 활동하는 진리라는 점이다. 수학공식 외듯 암기만 하면 다되는게 아니다. 게임이다. 이겨보여야 한다. 상대가 있다. 내가 답을 맞춰도 상대가 하나 더 맞추면 진다. 그 다음에 배워야 하는 것이 게임의 법칙이니 타자성과 주체성 사이에서의 갈등이다. 이는 구체적인 자동차 운전기술이다. 문명이 발달하고 사회가 발전하고 역사가 진보하고 회사가 번영하고 도시가 팽창하고 인구가 늘어나니 언제나 새로운 문제가 제기된다. 이거 알아야 한다. 대응하기 벅차다. 모범답안 암기한 놈은 여기서 다 깨진다. 밑바닥 경험도 필요하고 전체과정을 꿰뚫어보는 훈련도 해야 한다. 완전성의 미학이다.
◎ 나를 알고 본능을 넘어라. 이 다섯을 터득한 다음에 혁명도 하고 개혁도 하는 거다. 마광수처럼 해피하게 놀아주는 것도 좋지만 이게 되는 사람에게나 자격이 있다. 미학이 없는 자가 해피하게 놀자고 하면 추하다. 추태를 부린다. 모르면 치인다. 가만 있는데도 본능이 치고, 역할이 치고, 진보가 친다. 그래서 보수는 진보가 싫다. 왜? 가만있는 사람을 패니까. 세상이 원래 그렇다. 오냐오냐는 세 살까지 다섯 살 만 되어도 상처 입는다. 어느날 엄마가 동생만 이뻐하는 것을 알아채고 항의해 봤다. ‘너는 큰 아 아니가?’ 이 한 마디에 나는 항복했다. 아기는 이뻐해주고 큰 애는 세상과 맞서 싸워야 한다. 불안한 저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다섯 살 때다. 성장하는게 무섭다. 철학은 의사결정능력의 계발이다. 그런데 서구 철학자들은 의사결정내용에 집착한다. 이 길로 갈 것이냐 저 길로 갈 것이냐를 논하기 앞서 네 몸통에 두 다리가 붙어있는지나 확인해라. 발도 없는 넘이 가려고 하니 꼴이 우습다. 인간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존재인가? 융이 폭로했듯이 의사결정은 집단이 하지 개인이 하는게 아니다. 프로이드가 폭로했듯이 의사결정은 본능이 하지 이성이 하는게 아니다. 이러한 인간본질의 뒷받침이 없이 서둘러 전진하려 하므로 잘 나가던 서구가 한중일에 밀리는 거다. 세계에 나라가 많지만 제조업 되는 나라는 오직 다섯나라 뿐이다. 한중일에 미독이니 미국도 IT와 금융으로 삥 뜯어 먹고 사는 거지 제조업은 잘 안 된다. 원래 인간들 중에 그거 되는 넘이 별로 없다. 되는 나라는 복제능력이 있다. 한 넘이 길을 개척하면 따라가주는 넘이 있어야 한다. 되는 나라는 한중일 유교문화권 뿐이다. 노동자와 사용자로 계급이 갈리면 망한다. 공자와 노자를 논하는 뜻은 종교 수준의 구체적인 생활지침을 일러주려는 거다. 거짓말은 쉽고 참말은 어려우니 종교는 거짓말을 술술 잘 하고 철학은 참말을 못해서 제 입을 봉했다. ‘어떻게 해야 하죠?’ ‘이제부터 우리가 그것을 한 번 고민해 봅시다. 성찰해 보자고.’ 이런 개소리 하는게 서구철학이다. 정답을 찍어 떠먹여줘야 한다. 정답은 일의 족보다. 사건에 뛰어들게 하는 것은 완전성이다. 진리를 똑바로 보고 인류에게 주어진 일을 찾아서 사건에 뛰어들되 아무데나 가서 서 있으면 버스가 서지 않느니 완전성이 작동하는 지점을 노려야 한다. 결과보다 원인에 가서 서면 거기가 곧 버스 정거장이다. 끝보다 시작에 서라. 행복보다 존엄에 서라. 성공보다 에너지에 서라. 불을 끄기보다 불을 지르는 편에 서라. 비교판단하는 남 눈치 보지 마라. 본능을 버리고 죽음을 버리고 어색함을 버려라. 어색함을 회피하면 평생 당신을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쪽팔려도 정면돌파를 해야 진정한 자연스러움에 이른다. 세상은 네 편이 아니다. 세상은 타자성에 의해 작동하니 곧 전쟁이다. 종교도 전쟁, 이념도 전쟁, 정치도 전쟁, 경제도 전쟁, 문화도 전쟁이다. 지는 게임을 피하고 이기는 게임을 해야 한다. 계속 판을 흔들고 사람을 갈구고, 긴밀하게 대응해야 한다. 치되 큰 곳을 골라서 쳐야 한다. 찌질한 게임은 버려라. 사소한 것, 지엽말단적인 것에 화내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라. 노숙자에게 화내지 말고, 똥 싸는 아기에게 화내지 말고, 메갈리아에게 성질부리지 말고, 강자에게 도전하고 센놈을 찾아 붙어라. 절하지 마라. 유니폼 입지 마라. 군종 속에 숨으려 들지 마라. 탐미주의자가 되라. 썩은 음식도 먹는 자가 미식가다.
이래라 저래라 소리지르며 눈에 쌍심지 켜는 것은 제 체질이 아닙니다. 그런데 인류에게 스승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는 할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원리만 알려주고 답은 스스로 찾아가게 해야 맞는데 워낙 기초가 안 되는 사람이 많아서 이번에는 이래라 저래라 정답을 찍어주기로 합니다. 이게 또 도그마로 굳어지면 곤란하지만 그런 배부른 걱정은 뒷사람에게 넘기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