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으면 진도나간다. 어깨동무 하는 것이다. 신난다.
다르면? 어색하다.고민한다.번뇌하고..연구한다. 언제까지?
같을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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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고아로 태어난다.
부모가 있는데 무슨 고아?
딴나라같은 소리하지 마라..얘들은 가라.
제법 사람이라면 어느 순간 고아임을 느낀다.
고아란 무엇인가..이질감이다.
충격이다.
"다르구나..너무나 다르구나.."
거기서 적응하면 딴나라다.
좋은게 좋은 게 아니냐..이래되면 인간 안된다.
고통 받아야 한다.
그 고통을 즐즐히 느껴야 한다.
"다름"에 몸부림 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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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역과 귀납이 있다.
귀납은 고아다.
연역은 아버지가 있고 아들이 있다.
인간은..미안하지만 귀납에서 시작한다.
고아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인간은 "나"에서 시작한다. 그게 고아다.
"나"에서 시작하면 반드시 "너"가 보인다.
"너"가 보이면 반드시 "그"가 보인다.
"그"가 보이면 "그들"이 보이고
그들이 보이면 그들의 세상. 즉 가이사의 세상이 보이는 것이다.
점점 커지고 점점 복잡해 지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점점 작아지고 점점 소외되는 것이다.
아뿔사..
이번엔 고아가 아니라 완전 미아가 된다.
귀납의 말로다.
귀납은 그렇게 진행된다.
"부분"에서 시작한 귀납의 인식은 미아에서 그 종말을 맞는다.
그럴까?
그렇지는 않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비약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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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역과 귀납.
귀납은 경험한 것을 이용하여 원리를 예측하는 것이다.
경험이란 조각난 정보다.
그 조각난 정보를 꿰어서 전체, 더 큰 것을 예측하는 것이다.
그 조각난 개별 사실을 어떻게 꿰느냐?
패턴을 이용한다.
어제도 이랬고 그제고 이랬고 100년 전에도 이랬으니깐?
철수도 이랬고..영희도 이랬고..아버지도 이랬고..한나라당도 이랬으니깐?
당근 내일도 이럴 것이고 원리도 이럴 것이다. 이게 진리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귀납이다.
제법 맞아 떨어진다.
연역은 먼저 원리를 파악한다.
가장 중요한 것..가장 힘 쎈 놈부터 찾는다.
거기서 분화된..또는 파생된 구조를 파악한다.
연역은 먹물들의 가장 큰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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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흙만 퍼먹고 살던 농투성이 아비는
논팔고 소팔아 아들을 대학에 보낸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한다.
"사람은 정구지를 팔아서라도 배아야 디야~"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닙니다..묵묵히 뒷바라지하신 아버지가 더 훌륭하십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연역을 원하고 있고..
아들은 아버지의 경험과 그 귀납을 존경한다.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마는..
도시물 먹은 아들은 아버지의 비합리가 못마땅하고 불편하다.
세포 하나하나 경험의 화신은 아버지는 아들의 탁상공론이 미덥지가 않다.
여기서 귀납의 약점과 연역의 약점이 드러난다.
농부는 왜 먹물들을 못 믿는가?
또 먹물들은 왜 농부를 무지하다 하는가?
그것은 귀납은 왜 연역을 불신하는가..이며
연역은 왜 귀납을 엉터리라 하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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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납이 왜 엉터리인가 하면..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희도 그랬고 철수도 그랬고..우간다에서도 그랬고..미국에서도 그랬고..
그래서?
그래가꼬 만든 진리는 확률이지 진짜일 수가 없다.
그랬고그랬고그랬는데 티벳에서는 안그랬다..이러면 티벳을 변소 뒤에 끌고가 패버린다.
그래놓고는 서부전선 이상없다..이래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역은 이런 문제가 없다.
큰게 옳으면 작은 것이 사고쳐봐야 그 큰 것 안에 있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 난 이 방에서 자는 것이 처음이라 형광등을 어떻게 꺼야 하는 지 모르겠네..대략난감?"
연역은 난감할 것 없다.
뚜꺼비집을 내려버리는 것이다.
아니면 집 앞 전봇대를 부수든..아니면 아예 변전소를 폭파하면 형광등은 꺼진다.왜?
연역은 대전제가 아래 소전제를 완벽히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방에 훅~ 가는 것이 연역이다.
연역은 직렬이므로 앞에 것을 막아 버리면 뒤에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연역을 믿지 않지?
왜 농부는 먹물의 논리를 믿지 않지?
왜 국민은 정치가를 믿지 않지?
사실 믿으면서도 믿지 않는다.
연역의 위험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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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역은 대전제 소전제 그리고 팩트..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대전제가 옳으면 소전제는 당연히 옳고 팩트도 볼 것 없다.
그게 연역이다.
위에서 오케이 싸인이 떨어지면 일사천리다.
자동차가 잘 달리고 있으면 엔진도 오케이고 바퀴도 오케이고 기어도 오케이고 도로도 오케이다.
그 하부구조를 일일히 걱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죽는다....이게 오케이면
철수도 죽는다..는 보나 마나 오케이다.
아닌디요..철수는 죽을랑말랑..나도몰랑..인디요..
연역에선 안 쳐준다..인간은 죽는다..에서 쫑났다.
왜? 철수는 인간 안에 포함되기 때문이다..이게 연역이다. 연역은 틀림없다. 정확하다.
귀납이란
철수도 죽고 영희도 죽고 심지어 진시황도 죽네?
그렇다면 모든 인간은 죽는다..인데..이건 꼭 그렇다고 확신하지 못한다.
지리산 도사는 혹시 모르자나..천왕성은 확인하지 못했자나..
"인생은 알 수 엄써..9회말 투아웃에..투쓰리라도..또 모르지 확 뒤집힐란지.."
우리가 진정 진리를 구하고자 한다면..
귀납으론 절대로 안된다..귀납으로 <원리>를 세우지는 못한다. 자체 모순이다.
그건 딴나라가 대한민국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만큼 모순되는 일이다.
딴나라가 어떻게 우리나라가 되나? 말도 안된다. 헌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렇다..
진리는 연역으로만 성립한다. 귀납은 아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연역을 안 믿을까?
왜 연역에 경끼를 일으키는 것일까?
이유가 있다.
연역은 잘못하면 크게 속기 때문이다.
연역의 일사천리..이 자체가 크나큰 위험요소가 되는 것이다.
연역은 완전하다..그런데 왜?
이유가 있다.
<대전제>가 틀린 대전제이면 이거 완전 줄줄이 부도가 되는 것이다.
다 죽는다..연역은 그런 것이다..대가리를 틀리면 그 뒤는 자동사다.
연역은 맨 처음의 대가리..그게 전부다..알파이자 오메가다.
대가리가 진짜이면 그 밑에 따라오는 것은 줄줄이 대박이다..난리난다.
그러나 대가리가 가짜라면? 줄초상이다.소위 원천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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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느 시점에서 고아가 된다.
그 시점이 줄초상이냐 대박이냐 판가름난다.
그러나 기뻐하라..그 시점이 귀납에서 연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기 때문이다.
귀납은 아예 기회도 없다.
딴나라는 기회없다.
여기서 잠깐 귀납의 비참함을 이야기하자.
귀납의 닭 이야기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닭에게 모이가 던져진다.
처음에 의심하던 닭은 그 일정함에 뭔가를 안다.
아하~ 이거 패턴이 있구먼..
오전 7시, 그리고 오후 5시...에 뭔가 좋은 일이 항상 생기누만..
그렇다면 뭔지는 모르지만 모이를 주는 저 사람은 우리 편이구만..
이게 귀납의 닭대가리다.
귀납의 닭대가리는 뭘 알았다고 기고만장해서리..
다른 닭에게도 그 패턴을 가르친다.
그리고 의기양양.. 모이주는 그 손에 제일 먼저 다가간다..친일파같은 놈..
근데 어느 날,
닭모이를 먹으려는 찰나..평소 모이를 주던 그 손이 자기 목을 비틀어 버린다.
그 날 그 집 사위가 처갓집에 온 것이다..
귀납의 말로다.
지금 대한민국도 그런 상황에 처해있다.
닭대가리 같은 짓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저 죽을 줄 모르고..
각설하고..
귀납으로 진리를 찾을 순 없다.
무조건 연역이다..왜?..진리가 무조건이다..일사불란은 냉정하다.
그런데 아까 이야기했듯이 연역의 문제는 있다.
<대전제>가 잘못되면 전부 죽는다는 것.
그래도 연역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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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고아로 태어난다.
애재라~
연역이 아니고 귀납한다는 뜻이다.
고아란.."나"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나의 이익, 나의 존심, 나의 재산, 나의 여자, 나의 가족..나의 사상, 나의 정당, 당..당..당..등등등..
귀납이다.
그러다가 한방 맞는다.
패턴을 추구하다가 닭 모가지가 꺽이는 것이다.
비참이다.
다르다..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것이다..
산 속에 올라가도 마찬가지..나무와 다르고 구름과 다르고 폭설과 다르고..추위와 배고픔에..뭔가 다르다..
미아가 된다. 귀납의 미아..
아흐~ 다롱더리..
그러게 왜 <나>에서 시작했냐는 거다.
왜 귀납에서 시작하여 그리 헤매냐는 거다.
뒤늦게 연역해보려 하지만..느졌써~.
연역해보려 하는 것..그것도 귀납이야.
그런 식으로 연역하면 아니함만 못하나니..왜?
아까 연역의 폐해를 말했을 것이다.
<대전제>를 실패하면 전부다 고랑에 빠진다고..
그러니..
연역하지 말라.
차라리 귀납의 끝을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니,
연역과 귀납이 만나는 그 지점에 딱~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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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다와 다르다.
같으면 진도나간다. 어깨동무 하는 것이다. 신난다.
다르면? 어색하다.고민한다.번뇌하고..연구한다. 언제까지?
같을 때 까지..
.
노무현을 정확히 보지못하는 귀납적인 인식의 한계..
귀납의 끝과 연역의 시작.. 둘의합일.. 그것은 사랑..
그것이 유서에서 말한 운명..
연역은 진리의 파악이고
귀납은 암것도 아니오.
혹은 낮은 단계의 연역이오.
귀납적 인식도 부분적으로 연역의 방법을 쓰는 것이오.
인간이 연역을 못하는건 다른 이유가 없소.
뇌가 연역을 못하도록 세팅되어 있기 때문이오.
뇌의 활동은 패턴을 감지하는 것인데
귀납적 패턴은 잘 수집하오.
그러나 연역적 패턴은 뇌가 패턴인식을 거부할 뿐 아니라
이름이 붙여져 있지 않아 수집이 불가능하오.
왜 뇌는 연역적 사고를 거부하는가?
그것이 인간의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그렇게 진화를 한 것이오.
예컨대 타자가 투수의 공을 칠 때 처음 한번은 관련된 뇌세포 전체가 작동하여 연역적으로 공을 치는 것이오.
아주 낮은 단계의 연역을 한다는 것.
그러나 연습할수록 거기에 관계하는 뇌세포의 수가 감소하게 되어 있소.
그래야 홈런이 나오는 것이오.
물고기를 잡되 처음엔 그물로 몰아서 잡고(이건 연역적 방법)
연습을 거듭 하면 할수록 작살로 한놈만 찔러 잡는데 이게 귀납이오.
즉 인간은 연역을 해서 상황파악을 한 다음
귀납을 해서 적응을 하는 것이오.
문제는 맨 처음 한번 연역해서 상황파악하고 끝이라는 것.
즉 처음에 파악한 상황의 수준 이상으로 높아지지 않는 것이오.
아기 오리가 맨 처음 보는 것을 엄마로 믿는데 그건 연역.
그때부터 그 하나만 따라다니는건 귀납.
두번 다시 상황파악을 하지 않소.
연역적인 뇌의 활동을 사용하지 않는것이오.
왜냐하면 그게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아마존 정글에서 원숭이 고기라도 맛보려면 귀납을 해야 하오.
연역은 최초의 한번, 첫 수업, 첫 등장 때 한번 하는 거고
귀납하는게 훨 유리하기 때문에 귀납하는 거고 그 때문에 집단적인 오판을 저지르는 것이오.
군대를 가면 아침저녁으로 점호를 하는데 이게 일종의 연역이오.
젤 짜증나는 것.. 이걸 왜 하지? 안해도 되는디.
군대는 전쟁에 이기려고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며
대부분 연역을 하지 않소.
그래서 망가지는 것.
매번 연역한다면 수시로 점호를 하는 것과 같아서 귀찮을 뿐이오.
대충 밥먹고 사는데는 연역이 필요없소.
그래서 인류 모두가 연역을 하지 않으면 인류는 그만 붕괴되고 마는 것.
적이 나타났소.
부대 전체에 비상이 걸리는게 연역.
10만 대군이 적군 병사 하나 때문에 생 난리를 치는 것이오.
아군끼리 오발해서 죽고 다치고.. 연역은 최악의 낭비적 뇌사용이오.
똑같은 적이 계속 나타나면?
비상은 걸리지 않소.
베테랑이 혼자 총들고 나가서 조용히 적을 사살하고 오는 것이오.
이 상황이 계속되면?
10만대군이 쳐들어오는데도 베테랑이 혼자 싸우러가서 부대가 전멸하는 것.
타자가 야구공을 치는 것도 이와 같소.
처음에는 10만 뇌세포들이 총출동하여 호들갑을 떠는데 공은 맞히지도 못하오.
뇌세포가 많이 참견해서 공을 맞히지 못한다는 사실이 중요하오.
그러므로 나중에는 베테랑 뇌세포 하나가 전담해서 홈런을 양산하오.
다른 뇌세포들은 신경도 쓰지 않소.
이게 귀납.
즉 인간은 훈련하여 귀납으로 치닫는 것이오.
그러나 아기 때는 누구나 연역을 하오.
그래서 아기들은 머리가 좋은 것이오.
아기는 누구나 천재 공룡이름 30가지는 기본으로 외고 있소.
나이가 들면 보수꼴통으로 변하는 것은 뇌사용 기피 현상이오.
인간은 원래 연역을 기피하도록 세팅되어 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연역하는 훈련을 해야 하오.
의도적으로 연역하는게 깨달음이오.
그럴 때 뇌에서 많은 엔돌핀이 분비되어
똥꼬가 뻑적지근하게 쾌감을 맛보는 것이오.
그냥 지나가다 바퀴벌레 한 마리를 보았대도
맨 위의 하느님부터 맨 바닥의 바퀴벌레까지 점호를 한번 불러보는 것이오.
만리장성 팔달령 구간에 올라 천하를 굽어보듯이
신으로부터 시작하여 우주를 찾고 지구를 찾고 지구역사 50억년 안에서 그 바퀴벌레의 위치를 파악해 보는 것이오.
바퀴벌레는 내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시공간적 한 지점에 있는 것이오.
그런 연습을 해야 쥐박이가 쥐벼룩으로 보이게 되오.
연역 달리다.
귀납은 매달아야 한다. 귀납은 '지금', '여기' 있는 것의 수집.
여기로 싸고, 지금으로 꿰어 매달아야 한다. 매달아도 시들지 않아야 진짜다.
매달아 두고 그때, 거기로 다시 봐도 매달려 있어야 진짜다.
연역은 내 달린다. 달려야 한다
첨부터 끝까지, 영원부터 순간까지, 신부터 나까지, 모두에서 하나까지 내 달려야 한다.
내 달려서 어색함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진짜.
귀납으로 내 달리면, 반드시 자빠진다.
귀납은 연역이 뿜어낸 그림자, 연역의 결과라야 진짜.
귀납은 반드시 연역에 엮여야 한다.
연역을 만나야 한다.
귀납의 웅덩이가 연역의 강줄기를 만나면 바다로 내 달린다. 단번에 바다에 이른다.
귀납의 뇌, 귀납을 지각하는 뇌에게도 희망은 있다. 연역의 번개를 만나는 순간이 온다. 돈오.
깨달음은 시공, 노소, 남여, 귀천, 고하 가리지 않는다. 연역의 불줄기에 감전된다.
뇌가 온통 빛의 환희로 일렁인다. 귀납의 불씨들이 연역의 불줄기를 만나 폭발하는 것.
인간사유가 만유창생과 일치를 경험한다.
드물지만 지성인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