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의 원점 구조론은 쉽다. ‘工’자 처럼 생겼다. 지극히 단순하다. 구조론은 필자가 초딩 3학년 때 착상한 것이므로 초딩 정도의 분별력만 있으면 알 수 있다. 단 그 나이에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뿐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전부터 알았는데, 사람들이 구조론을 모른다는 사실을 입증할 증거를 그때 찾아낸 것이다. 국어사전의 기술체계가 엉터리인 것을 보고 내가 맞고 인류가 틀렸다는 확신을 가졌다. 내가 주목한 것은 사람들이 왜 말을 저 따위로 하는가였다. 언어에는 문법이 있고 논문에도 서론, 본론, 결론의 순서로 들어가는 형식이 있다. 두서없이 말하면 이상한 거다. 뽀대나게 말해줘야 한다. ‘1+1=2’라고 써놓고 왜 촌스럽게 1이나 2에 대해 말하는가다. 당연히 ‘□+□=□’라고 써놓고 왜 기호를 두 개 쓰는지, 왜 +가 앞에 오고 =가 뒤에 오는지를 짚어주고 넘어가야 있어보이지 않는가? 맞는 말은 대칭과 호응의 구조가 있어서 딱 봐도 있어보인다. 사람이 만나도 인사부터 해야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초딩 교과서는 너무 없어 보인다. 체면이 안 선다. 쪽팔려서 자살해야할 지경이다. 대책없이 문제를 떡 써놓고 ‘답을 풀어라’고 말할 뿐 문제와 답이 어떤 관계인지 문제와 답의 관계가 대칭인지 호응인지 그런건 왜 말하지 않느냐다. ‘풀어라’고 말하기 전에 ‘엮었다’고 말해야 한다. 물체가 뭔지 물질이 뭔지 물리가 뭔지 물성이 뭔지 물상이 뭔지 그때는 탐구생활이 아니고 자연과목인데 어느 페이지에도 안 나왔다. 도무지 체계가 없으니 당나라 군대가 아닌가? 이따위로 할거야? 수학을 숫자로 하면 곤란하다. 왜 거기에 숫자가 나와? 일의성이든 소실점이든 거기에 주목한다면 내 바깥의 타자에 대한 관심이다. 주체인 자기 자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말 그따위로 할거냐고. 내 입장에서는 다섯 살 때 내가 가졌던 의문을 시원하게 해명해주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다. 낯선 사람에게 갑자기 말을 걸려면 어색하다. 자연스럽게 말을 붙이려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 보통은 출신지를 묻고 고향타령을 한다. 닮은 구석 찾기 기술 들어가준다. 왜 닮은 것을 찾으려 할까? 어쨌든 형제간이면 그런 절차를 생략해도 된다. 그래서 편하다. 왜? 내가 느낀걸 상대도 느낀다. 형제는 공유하는 것이 있다. 그래서 절차를 생략해도 된다. 공유하는 것이 있어야 프로토콜이 잡힌다. 모든 학문에 공통되는 프로토콜이 있는 것이다. 근데 아무도 그것을 말해주지 않더라는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