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은 피아노와 같다.
누구나 칠 수 있지만 누구도 제대로 못 친다.
피아노는 강약을 조절하여 음을 직접 조각하여 만들어야 한다.
입으로 세게 불어도 소리가 안 나와준다.
피아노는 우선 소리내기가 쉽다.
그러나 제대로 해보려고 하면 가장 진입장벽이 높다.
일단 소리를 낼 수는 있지만 그 소리가 피아노소리는 아니다.
한 두 번 쳐보고 곡을 외우는 수준에 이르렀다면
구조론도 같다.
이중의 역설을 알면 완벽하다.
전략과 전술의 차이만 알아도 계를 장악하고 통제할 수 있다.
피아노는 너무 쉬운데
알파고도 이 곡은 못 칠 거야 하는 기세로 난해한 곡을 쓰는 넘들이 있다.
처음부터 어려운 곡에 도전하면 안 된다.
말하자면 깨달음이다.
대부분 한국어가 안 되어 동문서답하고 있다.
주어 목적어 동사만 알아도 대략 해결이 된다.
어떤 사람이 빵을 먹었다고 치자.
1) 그 사람은 빵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빵을 먹었다.
1)번을 답으로 찍은 사람은 구조론을 모르는 사람이다.
무엇이 다른가?
과연 빵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직접 물어봐야 한다. 그 사람이 다섯시간 동안 암것도 안먹었다는 사실을 안다. 예측이 가능하므로 다음 단계로 진도를 나갈 수 있다. 빵을 좋아한다는 것은 답이 그 사람 내부에 있다는 말이고 배가 고프다는 것은 답이 그 사람 바깥에 있다는 거다. 본능적으로 바깥을 보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악기는 악기 안에서 소리가 난다. 어떻게 부드럽게 마사지를 하느냐가 중요하다. 바깥에서 소리가 빚어지기 때문에 자세만 봐도 예측이 가능하다.
안의 마음을 보겠는가, 바깥의 사정을 보겠는가?
1) 안의 마음 - 저 사람은 화장실 가는게 취미다.
본능적으로 2)번을 찾는 훈련이 되어있어야 한다.
의사결정은 마음 안에서 일어난다.
이건 비구조론적 해석이다.
의사결정은 마음 밖에서 일어난다.
마음밭이 결정하는게 아니라 농부의 파종이 결정하는 것이다.
간단하다. 일단 누가 뭐라든 뒤통수 칠 자세가 되어있어야 한다.
“아랫배가 아파요. 화장실에 갔다오겠습니다.”
목적을 대변에서 흡연으로 바꾸기만 하면 점수를 딴다.
상대가 이쪽에 두면 아 저쪽을 노리고 있구나.
그러나 이 수법으로는 잠시 반짝할 뿐이다.
이중의 역설은 주어를 바꾼다.
다른 걸로 교체하는게 아니라 그대로 두고 확장시킨다.
그럴 때 처음과 같아지지만 그러나 처음과 같지 않다.
역설은 상대가 오른쪽을 치는게 훼이크고 사실은 왼쪽을 노리고 있는 거다.
이중의 역설은 이미 왼쪽에도 군대를 배치해놨다. 나의 수비범위가 커져 있다. 내 담당영역이 확대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어만 되면 나머지는 따로 논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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