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아버지를 상담했다. 아이가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아이 말대로 내가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아버지에게 혼날 줄 알았는데, 안혼나니까 아침부터 아이 얼굴이 밝다.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을 들어줬다. 나도 아빠가 좋은 분이라고 부럽다고 얘기했다.
이 아이에게는 당분간 풍요로운 채움이 필요하다. 과학모둠시간에도
당분간 개인 실험도구를 챙겨줄 생각이다.
아이는 홀랜드검사로 따지면 현실형이다. 뭔가 사물을 만져보고 자기 뜻대로 해보는 것을
좋아한다. 어릴 적 떼쓰기할 때 부모님께서 과도하게 제한하고 혼내고 아이의 욕구를
받아주지 않은 것이 지금도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이는 다른 사람의 욕구에 관심이 없다. 오직 그 순간에는 자신의 욕구만 생각한다.
그게 좌절될 때 아이는 감정적으로 폭발한다.
큰소리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내뱉는다. 물건을 집어던지고 발로 찬다. 싸움은 계속 이어진다.
개구쟁이들은 이 아이와 계속 문제를 일으킨다. 교사도문제와 갈등의 수렁에 빠진다. 지치고 만다.
그렇다고 이 아이가 안달라진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의 친밀한 상담으로 마음이 쉽게 누그러진다.
사과도 금방한다. 후회를 한다. 자신도 문제를 저질러 놓고 나서 후회하는 자신의 모습이 싫다.
숨고 싶어진다.
물은 막을 수 없다. 물꼬를 터주는게 좋다. 물이 흐르는 방향을 약간 바꿀 순 있지만
큰 흐름을 막아서는 다시 홍수가 나기 십상이다.
아이를 대하면서 나를 발견한다. 나의 어릴 적 모습은 어땠을까? 나의 어떤 모습이
나에게 영향을 미칠까? 자기 탐색은 충분히 했다. 굳이 정신분석을 배우지 않아도
약간의 교양만 있으면 자기 탐색은 가능하다. 그러고 나서 이무석 교수의 정신분석입문 책이나
유튜브에서 김현옥 교수의 상담 강의를 들어봐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다시 돌아와서 아이 상담 중 학부모 상담을 피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때는 학부모 상담과
직면해야 한다.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때로는 아버지 상담도 필요하다. 중요한 부분은
처음 10초안에 교사가 학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이다. 부담스럽고 불편한데
학부모상담을 하러 어렵게 오신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다. 교사가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이 성장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부모님이 공감하실 수 있게 한다.
교사가 관찰하고 통찰한 아이의 모습을 중립적인 말로 담담히 말씀드린다.
말씀을 들은 부모님은 어떤 마음이실지 조심스레 여쭌다. 교사의 표현과 부모의 표현이 균형이
맞아야 상담이 제대로 진행된다. 부족한 정보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다. 그럴 때 교사는
아이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부모를 만나서 해결 될 일이면 부모를 만나지 않아도 해결된다는 교사들의 금언이 있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다. 아이의 문제는 부모의 문제인 경우가 많으니까.
그러나 노련한 교사는 산전수전 겪으면서 학부모 상담의 원리를 깨달은 교사는
부모를 꼭 만나야 할 때 피하지 않는다. 학부모의 저항과 교사에 대한 비난을 노련하게 수용하고,
학부모의 답답한, 힘든 속마음을 공감할 수 있다. 그럴 때 학부모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교사를 신뢰한다. 피해의식에 쌓인 학부모는 그만큼 피해를 많이 받은 사람이다.
피해를 받지 않았다고 부인하지 않고 그럴 수도 있음을 인정해줘야 대화가 가능하다.
어느 정도 신뢰를 쌓고 나서 대화의 방향을 틀 수 있다. 쉬운 일도 아니고 금방 되는 일도 아니나
교사는 할 수 있다. 그래도 아이와 부모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사람이 교사다.
교사가 상담사는 아니다. 그러나 아이와 오랜 기간 생활하면서 상담사도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다.
공교육을 잘 살펴보면 공의 영역도 사의 영역도 아닌 제 3의 영역이다. 지극히 공적인 목적을 갖고
있으면서도 신뢰의 관계가 정말 중요한 것이 교육이더라.
그 중심에 교사가 있다.
님의 진심 어린 상담일지가
저의 특수학급 학습도움반 학생들 모니터링에 꽤 도움이 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