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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584 vote 0 2016.03.03 (23:19:12)

     

    답은 만남에 있다


    ‘일’이 있다. 일은 해치워야 하는 적일까? 아니면 즐겨야 할 연주일까? 일에 대한 태도가 그 사람의 인격을 결정한다. 예술가는 일을 즐거운 연주로 여긴다. 공사판 막노동자는 일을 해치워야 하는 적으로 여긴다.


    예술가는 락樂으로 새로 일을 벌이고, 막노동자는 고苦로 벌어진 일을 해치운다. 공자에게 일은 락樂이고 석가에게 일은 고苦였다. 공자에게 배움은 ‘즐겁지 아니한가’였고, 학생에게 배움은 ‘고롭지 아니한가’다.


    기승전결의 기에 서면 즐겁고 결에 서면 고롭다. 기에 서는 예술가는 의사결정하여 승과 전과 결을 지배하므로 즐겁고, 결에 서는 노동자는 기와 승과 전이라는 시어머니가 미리 정해준대로 맞춰해야 하므로 고롭다. 


    예술가는 아이디어라는 기에 서서 작품의 기획이라는 승과 작품의 완성이라는 전과 관객의 반응이라는 결을 취하므로 즐겁다. 노동자는 감독이라는 기와 업무라는 승과 퇴근시간이라는 승의 지배를 받으므로 괴롭다.


    일을 하되 어떤 목적이나 의도가 앞서면 실패다. 그 의도와 목표에 지배당하기 때문이다. 기에 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는 작가라 치자. 유비와 관우와 장비를 한 자리에 모아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앞으로 어떤 일을 벌이겠다고 말하면 그게 스포일러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자연히 되어가는 일의 흐름에 맡긴다. 일단 캐릭터가 다른 유비와 관우와 장비를 한 자리에 모아놓아야 한다. 그게 진짜다. 


    셋의 캐릭터간 밸런스를 잘 맞춰놓으면 도원결의 장면의 압도적인 기운이 이후 소설을 이끌고 가는 힘이 된다. 조운과 방통과 제갈량이 가세하니 더욱 좋다. 뒷패가 붙어주는 느낌이다. 그래서 과연 유비가 천하를 통일했느냐 못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후 중국사에 무수한 도원결의가 복제되는 것이 중요하다.


    지구상에서 제일 공을 잘 차는 사람을 한 자리에 모아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월드컵이다. 지구상에서 제일 머리 좋은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노벨상이다. 관우, 장비, 유비를 한 자리에 모아놓으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저그, 테란, 프로토스를 한 모니터에 모아놓으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기승전결로 가는 일의 기 단계에 서서 요소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게 중요하다. 서로 만나게 하는게 중요하다. 


    류현진, 강정호, 박병호, 오승환, 김현수를 한 메이저리그에 모아놓으니 또한 기대가 된다. 만나야 한다. 이것이 정답이다. 대등하게 만나는 것이 존엄이다. 소외되지 않고 밀려나지 않고 말이다. 만나서 뜻대로 편먹는 것이 자유다. 사랑은 그 다음이다. 성취가 따르고 행복이 따르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과 만난다면 고롭다. 군대가 괴로운 것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억지로 매일 만나게 하기 때문이다. 범죄자와 만나게 되는 교도소는 더하다.


    만나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다. 장벽을 쌓고 멕시코와 만나지 않겠다는 트럼프처럼. 왜 어떤 사람은 만나기를 원하고 어떤 사람은 만나기를 싫어할까? 예술가는 만나고 싶어한다. 노예는 만나기 싫어한다. 만나면 일 시키기 때문이다.


    그때 그시절은 그랬다. 되도록 만나지 말자는 주의였다. 이웃마을과도 왕래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만 해도 1천개의 소부족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외부인은 반드시 죽인다. 식인관습은 외부의 침입자에 대한 경고다.


    중국 윈난성의 소수민족은 50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을 죽여서 머리를 마을 입구에 걸어놓았다. 한족은 당연히 죽여서 머리를 거는데 대장정때 모택동 일행은 부족민에게 많은 무기를 양도하고서야 겨우 마을통과를 허락받았다고 한다.


    왕들은 만나기를 좋아한다. 전국사군자라 불리는 맹상군과 평원군, 신릉군, 춘신군은 각자 식객 3천 씩을 모아서 위세를 떨쳤다. 물론 중국사람이 말하는 3천은 대개 운을 맞추기 위한 것으로 꼭 숫자를 헤아릴 이유는 없다.


    춘신군은 재상이었고 나머지 셋은 왕자 출신이다. 이들의 3천식객은 사실이지 위세부리기 목적의 패거리에 불과하다. 공자의 제자들과 달리 학문은 하지 않고 면접만 계속 본다.


    유럽의 군주들도 명망가를 초빙하여 궁궐에 머물게 하며 면접으로 벼슬을 내리곤 했는데 일종의 식객놀이라 할 수 있다. 궁궐에서 잘 대접받은 식객들은 각지로 흩어져서 군주의 평판을 높인다. 일종의 언론플레이라 할 수 있다.


    공자는 명성을 떨친 제자만 70여명이 된다고 하니 70명의 천재를 한 자리에 모은 셈이다. 공문의 식구가 3천이라고도 하니 3천명의 인재를 모은 셈이다.


    왕도 아니고 재상도 아닌 평민 출신의 공자가 3천 명의 인재를 끌어모았다면 대단한 거다. 요즘은 트위터에서 팔로워를 쉽게 모으지만 말이다. 전국사군자는 자기 돈으로 먹이고 재우면서 식객을 불러모았지만 공자는 반대로 육포 10장씩을 수업료로 받았는데도 말이다.


    만나야 한다. 만난 다음에는 저절로 굴러가는 법이니 간섭할 이유가 없다. 처음에는 작가가 공들여서 캐릭터를 만들지만 다음에는 캐릭터가 스스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작가는 뒤를 슬슬 따라가기만 해도 단행본 한 권 뚝닥 나와준다. 좋은 캐릭터만 만들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다. 이는 작가의 깨달음이다.


    천하의 인물을 한 자리에 모아놓으면 장차 재미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거기서 거대한 에너지가 유도되는 것이다. 가르치고 배우는 수업내용은 부차적이고 어떻게 인재를 모으느냐가 중요하다.


    마구잡이로 모으지 말고 체계적으로 모아야 한다. 학문은 체계를 부여하는 방편에 불과하다. 그냥 모이면 패거리다. 대학의 논문도 인류의 지식체계에 들었다는 증거를 보이는 수단이다.


    공자의 의미는 천하개념, 중앙개념, 우선순위 개념이 있다는 거다. 변방사람들은 이런 고려를 하지 않는다. 일단 저질러놓고 상대방의 반응을 봐가며 자신의 계책을 수정한다.


    그러나 중국은 땅이 커서 피드백이 느리다. 특히 후흑학의 대가인 후베이성 우한 사람들은 좀체 본심을 드러내지 않으므로 반응을 알 수 없다. 반응이 없으므로 잘못된 조치가 계속 전파된다. 재앙이 일어난다.


    변방에 이민족이 침략했다고 하자. 빠르게 파발을 띄워 중앙에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이면 파발이 한 고을을 지날때마다 소문이 눈덩이처럼 커져서 보고가 중앙에 도착할 때 쯤이면 피난가는 군중들이 서로 밟혀 죽는 소동이 일어난다.


    파발이 피난민에 떠밀려 도성에 못 들어갈 지경이 된다. 위급할 때는 파발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뜨는데 이런 식이면 괴롭게 된다. 군대를 출동시키기도 전에 정부가 먼저 무너진다. 그러므로 중국에서는 항상 신중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스인 다신교를 믿은 이유는 스스로를 변방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로마가 일신교로 갈아탄 것은 자기네가 의사결정의 중심이 되자 생각을 바꾼 것이다. 이집트의 도량형을 빌려쓰다가 자기네의 도량형을 정할 필요를 느끼는 시점이 온다. 아케나톤이 일신교를 만든 것은 이집트가 천하의 중심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변방의식을 가지면 방어하려고 한다. 세력전략과 생존전략 중에서 생존전략을 선택한다. 공자는 세력전략이고 노자는 생존전략이다. 일신교는 세력전략이고 다신교는 생존전략이다. 세력전략은 일을 벌이고 생존전략을 일을 막는다. 세력전략은 불을 붙이고 생존전략은 불을 끈다. 근본적으로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변방의식을 가진 사람은 문제를 퇴치되어야 할 적으로 여긴다. 나를 괴롭히는 문제라는 녀석을 쫓아내려고 한다. 천하관을 얻은 사람은 문제를 만들어낸다. 일을 벌인다. 수레는 물건을 운반한다. 변방인은 빨리 운반을 끝내고 휴식하려고 한다. 천하인은 꾸준한 운반을 통해 수레를 발전시키려고 한다. 기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입장이 다르다. 격이 다르고 수준이 다르다.


    ◎ 천하인 – 자기 캐릭터를 끝까지 밀고 간다.

    ◎ 변방인 – 상대방의 반응을 보고 자기 행동을 결정한다.


    공자가 천하인이라면 노자는 변방인이다. 캐릭터를 미는 작가는 천하인이고 작업반장의 눈치를 보는 막노동자는 변방인이다. 일신교의 아케나톤은 천하인이고 다신교의 그리스인은 변방인이다. 천하인은 만남의 장을 꾸려서 손님을 초대하고 변방인은 해꼬지 하는 사람을 피한다.


    천하관을 얻어야 천하인이 된다. 천하인은 장을 만들어 서로 만나게 하고 그 다음은 일의 순리를 따른다. 목적과 의도를 버린다. 그러므로 패거리로 퇴행하지 않고, 군중심리에 편승하지 않고, 괴력난신에 휘둘리지 않고, 혼란에 빠지지 않고, 모임의 의미를 살려갈 수 있게 된다.


    반면 변방인은 일의 순리를 파괴하는데서 재미를 느낀다. 규정대로 하지 않고 꼼수를 부려서 목표를 달성했을 때 뿌듯해 한다. 천하인에게 목표달성은 일을 이어가는 수단일 뿐 일의 흐름을 살려가는게 중요하다. 일의 흐름이 끊길 것 같으면 일부러라도 일거리를 만들어 긴장을 유지한다.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긴장을 풀지 않으려고 한다.


   aDSC01523.JPG


    깨달음은 변방인에서 천하인으로 갈아타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반응을 보고 자기 행동을 결정하는 안철수 전략을 버리고 일관되게 자기 캐릭터를 밀어붙이는 전략으로 가는 겁니다. 이런 부분은 유권자에게 다 들킵니다. 안철수 지지율이 떨어진 이유는 캐릭터가 망해서입니다. 나름 일관성을 유지하는 트럼프보다도 못하죠. 


[레벨:8]dharma

2016.03.04 (05:47:52)

항상 새롭지만, 변함 없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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