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에서 가장 빼어난 장군은 흉노족을 단숨에 격파하고 바이칼호까지 쳐들어간 곽거병이다. 항우나 악비에 버금가는 불패의 명장이다. 게다가 이민족과 싸워 이겼다는 점이 각별하다. 고조 유방이 묵특에게 깨진 이후 60년간 착취당하던 흉노를 처음으로 이겼으니 내전을 벌인 항우와는 격이 다른 것이다. 곽거병은 한무제의 처조카였으므로 마음껏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주변에 질투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무제가 정예병을 뽑아 적극 밀어주니 배후를 걱정하지 않고 전투에 올인할 수 있었다. 아깝게도 6년 만에 병으로 급사했다. 반면 곽거병과 함께 양날개를 이루어 흉노를 무찌른 위청은 어릴 때 노예로 자랐기 때문에 지나치게 신중하여 조카인 곽거병 만큼은 공을 이루지 못했다. 처음으로 흉노를 격파하는 등 상당한 공이 있는데도 여론이 좋지 않았다. 위청은 노예출신에 양치기로 자랐다. 궁궐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황후가 된 누나 덕에 벼락출세해서 갑자기 장군이 되었지만 신분의 한계를 온전히 극복하지는 못했다. 큰 공을 이루었는데도 주변의 눈치를 보며 소심하게 행동하여 이미지가 깎였다. 위청의 조카인 곽거병은 2살 때부터 궁궐에서 살았기에 알렉산더의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었다. 알렉산더 역시 왕자로 태어났으니 거칠 것이 없었다. 이후 중국의 그 많은 장수들이 곽거병만큼의 지원을 받았다면 이민족에게 줄기차게 당한 중국의 굴욕은 없었을 것이다. 물질적 지원 뿐 아니라 심리적 지원이 따라야 한다. 배후를 걱정하지 않으면 누구든 잘 싸울 수 있다. 공자를 배워 군자의 마음을 가지면 이기고 노자를 배워 소인의 마음을 가지면 진다. 곽거병은 철부지 소년 장수였다. 한무제가 병법을 가르쳤으나 귀찮다며 배우지 않았다. 전장에서 임기응변을 발휘하여 닥치는대로 이겼다. 깨달음도 이와 같다. 만남이 중요하다. 곽거병이 한무제를 만나지 못했다면, 알렉산더가 좋은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면 명장이 될 수 없다. 이후 중국사에 위청만 있고 곽거병은 없었다. 중국인은 신중하지만 그게 다 주변의 질투심 때문이다. 중국인은 특히 체면을 중시하여 직속부하라 해도 면전에서 나무랄 수 없다고 한다.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부하를 꾸짖으면 복수한다며 밤에 칼 들고 쫓아온다고. ‘체면’이라고 표현하지만 역시 소인배의 질투심이다. 공자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아야 군자라고 했다. 남이 챙겨주지 않는다고 성내는 사람이 소인배다. 곽거병은 워낙 황제의 처조카라서 누가 뭐래도 성낼 이유가 없다. 공자는 학문을 익혀 그런 경지에 이르렀지만 곽거병은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물론 재벌 3세처럼 능력이라곤 없는 주제에 오만하기만 하면 재앙이 된다. 그러나 능력자가 오만하다면 재능은 따블이 된다. 스티브 잡스라면 오만할수록 좋다.
곽거병이 공자라면 위청은 노자입니다. 공자에게 인생은 락樂이었고 석가에게 인생은 고苦였습니다. 이후 중국사에 곽거병은 출현하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리더십의 문제가 아니라 팔로워십의 문제입니다. 리더가 신중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소인배가 질투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정치 역시 같습니다.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팔로워십이 문제입니다. 소인배의 심술로 지도자를 엿먹이는 풍조가 있습니다. 안철수와 김한길이 그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