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중국은 공산당의 나아갈 길을 찾는다며 ‘백화제방, 백가쟁명’을 표방하고 자유로운 토론을 장려하는 ‘쌍백운동’을 전개하였다. 무제한으로 주어진 언론의 자유에 고무되어 공산당의 실정을 비판한 사람은 모두 체포되었다. 모택동이 기습적으로 ‘반우파운동’을 벌여 수십 만명을 잡아들인 것이다. 이후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의 잇다른 실패에도 불구하고 농촌의 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하는 공무원은 없었다. ‘말하면 죽는다.’는 규칙이 만들어진 거다. 각종 병법에 통달한 모택동이 ‘숲을 건드려 뱀을 찾는다.’는 타초경사打草驚蛇의 계를 실행한 것이라고도 한다. '타초경사'는 병법서인 '36계' 중의 13계다. 36계는 손자병법을 비롯한 각종 병법을 토대로 비열한 술책만을 골라모았다. 쌍백운동이 과연 우파를 치기 위한 모택동의 음모였는지, 아니면 당시 중국경제가 잘나가자 자신감을 얻은 모택동이 폭주했다가 상황이 통제불능으로 흘러가자 ‘아뜨거라.’ 싶어서 박근혜식 변덕을 저지른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문화혁명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고, 등소평도 ‘백가쟁명, 백화제방’을 헌법에 넣어 문혁파 잔당을 끌어내는데 써먹었다. 모택동 어록에도 이 말이 등장한다고 한다. 모택동의 본심과 상관없이 모든 중국인이 ‘타초경사’를 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와 같은 패턴은 중국사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조조가 업군으로 거처를 옮기며 일부러 허점을 보여 반대파를 끌어낸 후 하후돈을 시켜 처단한 것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모택동의 쌍백운동에 크게 데인 중국 관료들이 이후로는 막대기로 수풀을 건드려도 고개를 내밀지 않고 뱀굴 깊숙히 숨어버렸다는 점이다. 그러한 공무원의 복지부동이 20년간 중국을 끝없는 혼란 속으로 밀어넣었음은 물론이다. 수 천 만명이 이유를 모르고 죽어갔다. 손자병법의 폐해이자 손자병법의 기본이념인 도교사상의 폐해다. 노자가 잘못했다. 종교가 중요하다. 종교는 '만인 대 만인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헌법과 같은 것이며 헌법 위의 헌법이다. 미국인들이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며 성경 위에 손바닥을 올려놓는 것과 같다. 중국인의 종교는 도교다. 생활습관 깊숙히 침투해 있다. 인도인의 힌두교와 유사하다. 인도인은 기독교나 이슬람교를 신앙하면서도 힌두교의 생활습관을 따른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중국인은 불교를 믿어도 뿌리깊은 도교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국의 기독교도가 ‘손 없는 날’을 골라 이사하는 것과 같다. 중국에서 유교는 지배집단의 통치이념이자 관료들의 시험과목이었을 뿐 민간에 뿌리내리지는 못했다. 유럽은 기독교의 영향아래 있기에 하느님에게 벌받을까 두려워하므로 중국인처럼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 시진핑이 얼굴빛 하나 안 바꾸고 당연하다는듯이 박근혜를 속여먹는 것과 다르다. 일본의 아베만 해도 대놓고 속인다고 공표해놓고 속여먹기에, 당한 박근혜만 바보되는데 말이다. 모든 것이 노자 한 사람 때문에 생겨났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모든 중국적인 것의 배후에 노자가 있다.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는 ‘중국적 전통’이 먼저 생겨나고 이후에 노자가 그것을 명확히 했다고도 볼 수 있다. ‘발주나 사람들’로 불리는 징기스칸의 부하 19명은 9개의 서로 다른 부족 출신으로 동생 카사르와 벨구테이를 제외하고는 몽골족도 아니었는데 그 중에 누구도 징기스칸을 배신하지 않았다. 종교도 징기스칸의 무속신앙에서부터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로 서로 달랐다. 출신성분도 상인에다 노예까지 다양했다. 이런 경우는 역사적으로 드물다. 나폴레옹만 해도 가까운 사촌들부터 나폴레옹을 배신했다. 나폴레옹 자신도 부하인 불패의 명장 ‘모로’를 배신했다. 알렉산더는 부하들이 항명을 일으켜 인도정복을 포기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카이사르 역시 부하들의 항명 때문에 곤란해진 적이 있었다. 유목민이 언제나 잘 뭉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그들에게도 배신의 시대가 있다. 징기스칸이 막 등장하던 무렵이 그렇다. 배신하지 않는 유목민의 전통을 처음 만든 사람은 한나라의 고조 유방을 박살낸 흉노 선우 ‘묵특’이다. 몽골족은 스스로를 흉노의 후예라고 주장한다. ‘용사’를 뜻하는 몽골어 ‘바토르’는 묵특의 몽고식 발음이라고 한다. 몽골의 모든 정신은 묵특으로부터 시작된다. 묵특은 대장이 신호용 화살 명적을 쏘면 부하들이 일제히 그 방향을 쏘게 하는 수법을 썼다. 이는 몰이로 산짐승을 사냥할 때 사냥감의 위치를 무리에게 알려주는 방법이다. 묵특이 아끼는 말을 향해 명적을 쏘자 머뭇거리는 부하가 있었다. 죽였다. 묵특이 사랑하는 여인을 향해 명적을 쏘았는데 역시 머뭇거리는 부하가 있었다. 베었다. 다음은 자신을 배신한 아버지를 향해 명적을 쏘았다.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음은 물론이다. 이후 고원에는 묵특의 엄격한 군율이 전통이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냥터에서의 행동을 보고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거다. 예컨대 이런 거다. 징기스칸과 라이벌 자무카가 보기좋게 회합을 하고 흩어질 때, 서로 상대방의 뒤를 칠까봐 전전긍긍하여 며칠이 지나도 흩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내가 100미터를 후퇴하면 상대방도 100미터를 후퇴하는 식으로 다시 규칙에 합의하고서야 겨우 흩어지기에 성공했다고 한다. 유목민들은 이런 쪽으로 매우 발달되어 있다. 그들은 배신에 능하지만 동시에 배신을 막는 기술을 발달시켜 놓았다. 농경민은 그런거 없다. 어차피 상대방이 배신할 것이므로 먼저 배신한다. 배신이 당연한 규칙이다. 중국사의 모든 페이지는 배신으로 시작하여 배신으로 끝난다. '배신의 중국사' 라는 책도 나와있을 정도이다. 공자는 유목민과 사냥꾼의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공자의 계승을 표방한 유비는 관우, 장비와의 도원결의부터 징기스칸의 발주나 맹약과 유사하다. '배신의 리더십'을 표방하는 조조와 대립하여 '신뢰의 리더십'을 주장했고 유비의 이 수법은 먹혔다. 유비는 특히 언론플레이에 능해서 이를 선전하고 다녔다. 그러나 세세히 살펴보면 유비 역시 배신의 달인이다. 그래도 유비는 명분있는 배신을 했다는 점이 각별하다. 단지 자신의 생각을 알아챘다는 이유로 양수를 죽인 조조와는 배신의 격이 다른 것이다. 신뢰를 만드는 자가 역사를 만드는 법이다. 공자는 괴력난신을 반대하여 신뢰의 틀을 만들었다. 노자는 반대로 자기 몸을 돌보는 극단적 이기주의를 주장하여 불신의 틀을 만들었다. 로마는 임기응변을 지양하고 시스템에 의존하는 로마교범식 전투로 신뢰를 만들었다. 거기에 원로원과 민회를 중심으로 한 민주적 토론이 기능했음은 물론이다. 유목민은 봄에 목초지를 나누어 흩어지기 전에 겨울내내 토론을 한다. 신라의 화백회의처럼 토론으로 결정하는 전통이 있다. 특히 몰이로 사냥할 때는 고도의 타협기술이 사용된다. 이는 늑대무리의 사냥솜씨만 봐도 알 수 있다. 용감하게 앞장서지 않고 뒤에서 쭈볏거리다가 분배할 때 슬그머니 나타나는 얌체늑대는 대장늑대에게 물려죽는다. 늑대무리에서 쫓겨나는 것이다. 개들이 주인에게 충성하는 것도 늑대의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무리의 룰에 충성하지 않고는 초원에서 늑대도 개도 유목민도 사냥꾼도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농민은 쫓겨나도 화전을 일구거나 황무지를 개간하여 살아갈 수가 있지만 유목민은 바로 죽는다. 징기스칸도 아버지가 죽자 부족에서 쫓겨났지만 산딸기와 물고기로 연명하며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배신의 궁극을 맛보고는 절대로 배신하지 못하게 강제하는 규칙을 만들었다. 묵특이 아버지에게 배신당하고 충격을 받아 절대신뢰의 시스템을 만든 것과 같다. 사냥은 곧 일이다. 일의 원리를 적용하면 신뢰를 극대화 할 수 있다. 일의 기승전결 흐름 안에 올라타면 누구도 규칙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축구선수라면 자신에게 온 공을 동료에게 패스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연속되는 패스의 흐름 안에서 신뢰는 만들어진다. 계속되는 축구경기 안에서 배신은 불가능하다. 전투가 계속되었다면 한신도 토사구팽을 면했을 것이다. 움직이는 일의 흐름이 끊기면 바야흐로 배신의 계절이 열리는 것이다. 유목민과 사냥꾼은 계속 이어지는 일의 흐름 가운데 태워 배신을 막는 기술을 발달시켰다. 농민은 봄에 파종하고 가을에 수확할때까지 할 일이 없으므로 배신밖에 할 일이 없다. 당시만 해도 농사기술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유비는 가진 것 하나 없이 오직 신뢰 하나만으로 몸을 일으켰고, 조조는 의심과 배신을 규칙으로 정했기 때문에 중국사는 끝없는 혼란으로 빠져들었으니 이후 2천년 역사 중에서 1천 500년간 중국은 유목민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중국 화북지방의 유전자는 징기스칸과 누르하치의 후손으로 채워졌다. 중국땅에 오리지널 중국인이 없어지다시피 되었다.
소인배의 어설픈 잔꾀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보수꼴통의 임기응변이 아니라 제도와 시스템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이겨도 실력으로 이겨야 합니다. 뮌헨에서 공산당 하수인 노릇을 하며 배운 공산당의 방법을 그대로 베껴서 써먹은 히틀러의 꼼수만 해도 그렇습니다. 트럼프 역시 오바마케어를 지지하는게 아니냐는 공화당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빈자를 돕는 진보의 방법을 태연하게 차용하며, 외부에 대해서는 극우의 방법으로 나가는 등 히틀러의 수법을 쓰고 있습니다. 모택동이 아무 생각없이 저지른 꼼수 하나가 중국을 30년 뒤로 후퇴시켰고, 히틀러가 아무 생각없이 저지른 편법이 독일을 파멸시켰습니다. 좋은 것일수록 더욱 더 실용주의를 배격하고 합리주의 방법을 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자폭탄을 어린애 손에 쥐어주는 결과로 됩니다. |
감사히 읽었습니다.
신뢰가 핵심이군요.
-신통방통한 손자병법에서 눈을 돌려 오자의 가치를 알게 된 것이 구조론을 만난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