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찌할까? 어찌할까? 하고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사회의 모순을 몸으로 느끼는 센스가 있어야 한다. 부조리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감각이 마비된 사람은 방법이 없다. 깨달음은 사람을 전율하게 한다. 전광석화같은 전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과는 대화하지 않는다. 좋은 그림을 보고도 반응하지 않는 사람은 포기한다. 좋은 음악을 듣고도 반응하지 않는 사람은 공연에 초대하지 않는다. 깨달음은 논리 이전에 타고나는 감각이다. 길치에게 길을 알려주기 어렵고 음치에게 노래를 가르치기 어렵고, 깨달음치는 아웃이다. ### “종일토록 무리지어 말해도 의義에 미치지 못하고 잔꾀 부리기만 좋아하니 어찌할 수가 없구나.” 애초에 생각이 쌓여있지 않은 사람은 방법이 없다. 뇌가 반응하지 않는다. ### “군자는 해내지 못하는 것을 병으로 여길 뿐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죽은 후에 이름이 일컬어지지 않을 것을 걱정한다.” 처음 와서 일을 벌이는 자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다. 단지 천하에 큰 불을 일으킬 뿐이다. 그 불은 군자가 죽은 후에 크게 타오르는 법이다. ### “군자는 자기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 일은 복제, 조합, 연출된다. 처음 복제 단계는 일의 전체과정을 혼자 해내야 한다. 워즈니악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퍼스널 컴퓨터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컴퓨터를 판매할 때는 스티브 잡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세종대왕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한글을 만들었다. 그 한글을 반포할 때는 집현전 학사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일의 시작은 노무현처럼 혼자 외롭게 하지만 일의 진행은 함께 하는 것이며 소인은 그때 가서 밥숟가락 올려놓고 가담한다. 구조론은 ‘언어의 탐구’에서 시작되었다. 진리를 멀리서 구할 이유가 없다. 언어는 소통되고 소통되면 그것이 진리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 말을 똑바로 하면 그게 구조론이다. 깨달음은 당신 안에 있다. 한국말을 할줄 아는 누구나 약간씩은 깨달아 있다. 소나 돼지는 결코 넘보지 못하는 대단한 경지에 이르러 있다. 누구라도 말이다. 사람이 말을 똑바로 하지 않는 이유는 누군가 자기 앞에서 그 말을 받아주기 때문이다. 자기 말을 받아주는 누군가가 면전에 있다고 전제하는 데서 잘못되고 만다. 그것이 숨은 전제다. 자기 앞에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말할 수 없다. 어쩔 것인가? 진짜 언어는 거기서 시작된다. ###
자공이 묻기를, 서는 상대방의 말할 수 없는 속사정을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다. 상대방 마음도 나와 같음을 알게 된다. 내가 창피하다고 느꼈을 때 상대방도 창피하다고 느꼈다. 내가 부담을 느꼈을 때 상대방도 부담을 느꼈다. 내가 먼저 사과하지 못했을 때 상대방도 내게 먼저 사과하지 못했다. 이런 것이 쌓여서 일은 틀어지고 만다. 서恕는 상대방의 이러한 속사정을 감안하여 미리 배려하는 마음이다. 밸런스 개념이다. 세상을 밸런스로 보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다. ### "여러 사람이 미워할지라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하며 여러사람이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 보통사람의 보통판단은 보통 틀린다. 대중은 집단무의식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사람이 크게 무리를 이루면 좋은 사람은 흔들어서 떨어뜨리고 나쁜 사람은 부추겨서 극단으로 몰고가려는 심리가 있다. 집단을 결속시켜 의사결정이 가능한 구조로 만들려는 본성 때문이다. 피아간에 대칭구조를 만들려고 한다. 여러 사람이 공화당의 트럼프를 좋아하지만 진심으로 좋아해서가 아니라 명료한 판단을 위해서 분명하게 대립각을 만들어주기 원하는 것이다. ### “내가 일찍이 온종일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생각하였으나 유익한 것이 없으니 배우는 것만 같지 못하다.” 막연하게 머리에 힘 주고 앉아있는 명상파를 경계하고 있다. 성철스님은 ‘책 읽지 마라’고 말했지만 정작 본인은 많은 책을 읽었다. 젊어서는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다 한 번씩 훑어보고 와야 어른들의 대화에 낄 자격이 있다. 정독은 하지 않더라도 뒷면의 해설이라도 읽어서 큰 흐름을 짚어낼 수 있어야 한다.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구태여 책에서 배우지 않더라도 자연의 모든 것에서 배워야 한다. 여행이나 관찰도 훌륭한 배움이 된다. 밑바닥 생활 경험도 중요하다. 공자 당시에는 도서관도 없었을 테고 목간으로 엮여진 책 자체가 귀했다. 워낙 배우는 사람이 없는 시대였음을 감안하고 들어야 한다. 공자는 거듭 배움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학습을 많이 한 사람이 아니다. 일이관지 하였으니까. ### “군자는 곧고 바르지만 자기 뜻만 고집하지 않는다.” 군자의 본업은 외교관이다. 외교관은 자기 의지를 관철하는 사람이 아니다. 외교관은 좋은 관례를 만들어 두는 것이 중요하다. 축적된 외교관례를 이용하여 상대방 나라의 사정을 살피고 미리 대응할 수 있다. ### "도道가 같지 않으면 함께 도모하지 않는다.“ 수구꼴통이나 일베충은 상대하지 않는다. 깨달음을 가볍게 보는 자도 상대하지 않는다. 지로 무지를 차별하는 것만이 무지를 일깨우는 유일한 방법이다. ### “천하에 도가 있으면 예악과 정벌이 천자로부터 나오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예악과 정벌이 제후로부터 나온다. 명령이 제후로부터 나오면 십대를 못가서 나라가 망하고, 대부로부터 나오면 오대를 못 가서 나라가 망하고, 하급관리로부터 나오면 삼대를 못 가서 망한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정치가는 필요 없고, 천하에 도가 있으면 대중의 투쟁도 없을 것이다.” 상부구조 우선의 구조론적 관점이다. 일의 순서는 질, 입자, 힘, 운동, 량이다. 엔트로피의 비가역성이 성립하므로 모든 명령은 자연의 진리로부터 도출되어야 한다. 그것이 기본인권 개념이다. 일은 항상 전체를 고려하고 부분에서 시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말단부는 전체를 고려하지 않고 눈에 띄는 부분만을 살피므로 하극상을 일으켜 패망하게 된다. ### "유익한 벗이 셋 있고 해로운 벗이 셋 있으니, 곧은 사람과 실한 사람과 똑똑한 사람을 사귀면 이롭다. 비뚤어진 사람과, 우유부단한 사람과, 말을 꾸미는 사람을 벗으로 삼으면 해롭다.“ 곧은 사람은 진보활동가나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실한 사람은 능력있는 경영자나 전문직 종사자다. 똑똑한 사람은 지식인이나 언론인이다. 이런 사람을 사귀어야 한다. 비뚤어진 사람은 열등의식이 있는 꼴보수다. 그들은 트럼프처럼 화가 나 있다. 우유부단한 사람은 안철수와 같이 중심 못잡고 중간에서 헤매는 부류다. 말을 꾸미는 사람은 사기꾼이거나 혹은 조중동에서 밥벌이하는 부류다. 처세술이나 자기계발서 쓰는 사람이다. 류시화나 법륜, 강신주들도 위험하다. ###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가장 낫다. 배워서 아는 사람은 그 다음이다. 곤란함을 당해서 뒤늦게 배우는 사람이 또 그다음이다. 곤란함을 당해도 배우지 않는 사람이 가장 못한 사람이다.” 깨달음은 나면서부터 아는 것이다. 공자는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다. 안회도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다. 석가도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다. 혜능도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다. 깨달음의 깊은 경지는 타고난 언어감각에 달려 있으므로 책 읽고 배워서 알 수 있는게 아니다. 평범한 사람은 아는 사람이 길잡이가 되어주면 따라갈 수 있을 뿐이다. 공자가 자신은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라 부지런히 배워서 안다고 말하는 이유는 원래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배우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무엇을 배워야 할지 알고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이 열심히 배우지 않는 이유는 갈피를 종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중요한지 요점을 찍어주고 일의 우선순위를 알려주면 평범한 사람도 배워서 근접할 수 있다.
나면서 아는 이유는, 말을 똑바로 하면 그 안에 깨달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실점은 눈으로 보면 보이는데 눈으로 보고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많듯이, 화음은 귀로 들으면 들리는데 귀로 듣고도 듣지 못하는 사람이 많듯이, 말은 하면 뜻이 통하는데 말을 하고도 뜻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많듯이, 반대로 아는 사람은 눈으로 보고 소실점을 깨닫고, 귀로 듣고 화음을 깨닫고, 말이 통할때 깨닫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