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밥 먹자!
함께 일하고 생활하는 미쉘과 아노마가 그래도 많이 익숙해져서 한국인의 생활패턴이라거나, 성격에 어느 정도 적응은 할 수 있어도, 한국어를 능숙하게 알아들을 수는 없는 일이다.
(김밥을 만드는 미쉘과 아노마)
하지만 이들이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한국어가 있었으니, 바로 “밥먹자!” 였다. 점심 때가 다 되어서 아노마에게 “밥 먹자~!” 라고 하면, 그때부터 주방 테이블 세팅에 들어간다. 누군가 “밥먹자~!” 라고 말하면, 미쉘과 아노마가 “밥 먹자~!”, “밥 먹자~!” 연속적으로 복창한다.
먹고, 자고 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라서 그런지, 이들에게 “밥 먹자”는 한국어라기보다는 밥 때가 되면 나오는 소리라고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 김밥을 만들자
어느 날, 형수님(과장님의 아내)께서 아침부터 김을 참기름에 재놓으시고, 굽고, 밥과 단무지, 햄 등과 함께 말아서 김밥을 만들었다. 딱히 특별한 날은 아니었다.
이것을 본 미쉘이 내게 조심스럽게 저게 뭐냐고 물어본다. 나는 이게 ‘김’이고, 한국어로 ‘Rice’가 ‘밥’ 이라고 해서, 김 + 밥 = 김밥 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매일 식사 때마다 외치는 “밥먹자” 에서의 그 ‘밥’이 이 ‘밥’ 이라고 얘기하니까, 모두들 “아~” 하며 탄성을 질렀다. 이해가 간다는 표현일 것이다.
(미쉘이 김을 굽는다.)
(아노마가 김을 재고 있다.)
그날 이후로 한동안 매일 미쉘과 아노마는 김을 굽고, 김밥을 만들었다. 이들의 입에도 김밥이 잘 맞는 모양인지, 참 맛있게도 먹었다. 미쉘이 김을 굽고, 아노마가 김밥을 말았다.
(쟤네 머 만들고 있는거야?)
한국에서라면 그저 평범한 풍경인데, 이곳에서 미쉘과 아노마가 김밥을 만드는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했다. 나뿐만 아니라, 키티와 키티의 친구에게도 흥미로워 보였나 보다.
3. 하무르
쿠웨이트에서는 한국인이 먹을만한 식자재를 구하기가 그리 쉽지가 않은 편이다. 그 중에서도 생선과 같은 종류는 한국식 요리를 할 만한 것이 없다. 그나마 요리 할 수 있는 것은 낙지, 갈치, 새우, 병어, 하무르… 정도라고 한다.
내게 생소한 생선인 하무르는 사실 한국에는 없는 생선이다. 우럭도 아니고, 제주에서만 잡히는 다금바리의 먼 사촌 정도 된다고 하는데, 이곳에서도 하무르는 무척 비싼 생선에 속한다고 한다.
(다금바리의 사촌 '하무르' 회)
나는 회는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광어회는 조금 먹다가 금방 질려서 젓가락을 놓곤 했는데, 이곳에서 맛본 하무르 회는 왠지 모르게 자꾸만 손이 갔다. 나는 회 맛은 잘 모르지만, 적어도 광어회보다 맛있다는 정도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4. 양갈비
한국에서 우연한 기회에 양곱창을 먹으러 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 생각했던 것이 ‘양곱창’ 이면 ‘양’의 창자인데, 우리나라에서 키우지 않는 ‘양’의 곱창이라면 무척 비싸겠구나 싶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양곱창’은 ‘양’이 아닌 ‘소’의 곱창 이랜다.
중동지역에서 먹을 수 없는 것이 ‘돼지고기’ 라면, 한국에서는 쉽게 먹을 수 없지만, 중동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양고기’였다.
정설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전에 조리실장님으로부터 들은 바로는 무슬림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는 이슬람교가 시작된 사막의 중동지역에서 돼지를 키우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이고, 돼지가 물을 엄청나게 많이 먹는 가축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이 부족한 지역에서 물을 많이 먹는 가축을 키우는 것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지 않을까?
하지만 얼마 전에 보았던 몽골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는, 몽골의 쌍봉낙타 역시 하루에도 물을 상당히 많이 먹는다고 하는데, 낙타는 괜찮고, 돼지는 안되었던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유목민족’ 하면 쉽게 떠올리는 가축이 ‘양’ 이니까, 양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가축인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자주 가는 술탄센터에서는 닭의 심장, 양의 뇌… 와 같은 부위를 랩에 쌓아서 팔기도 한다.
하지만 보통의 양고기는 한국인이 먹기가 수월치가 않다. 일단 누린내가 심하고, 고기가 질긴 편이라서 한국인 입맛에 맞지가 않는다. 게다가 칼로리도 높은 편 인가보다. 중동사람들은 양고기를 많이 먹은 탓인지, 다들 배가 산만했다.
한국인이 맛있게 먹을만한 양고기는 어린양의 갈비부위였다. 냄새가 심하지도 않고, 고기가 질기지도 않았다. 고기를 굽는 광경은 내게 무척 생소했다. 고체연료와 석탄을 함께 태우고, 불이 잦아들면 그제서야 고기를 올려놓는다.
(양갈비)
돼지갈비처럼 비계라거나 기름기가 많지 않아서, 처음 먹었을 때 다소 퍽퍽한 느낌이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만 손이 갔다. 하지만 그 후 어린 양의 갈비가 아닌, 성체의 양의 갈비를 먹었을 땐, 누리고 질기고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손이 가질 못했다.
사실인지 확인된 바는 아니지만, 양고기가 몸에 엄청나게 좋은 음식이라고 한다. 한국으로 따지자면 보신탕과 같은 보양식이라는 설이 있다. 어떤 이는 양고기를 굽지 않고, 백숙처럼 끓여내어 살점을 뜯어먹고 잠이 들면, 그 다음날 이불이 젖을 만큼 땀을 흘리고 몸이 개운해진다는 소문이 있다. 그런 소문이 있다고 한다...
5. 술 이야기 (1) – 싸대기 주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돼지고기와 함께 술이 금지되어있다. 그네들은 스스로의 율법을 지키며 살아가겠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은 때로는 술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물론 불법이겠지만…(이쪽 동네에서는 술을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체포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몰래 술을 제조하여 판매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밀주’ 인데, 이곳 사람들은 그것을 ‘싸대기 주’ 라고 보통 부른다. 한국인이 이름을 붙였는지는 모르지만, 다른 외국인 노동자에게 물어보아도 ‘싸대기 주’는 거의 일반명사처럼 되어있었다.
원래 아랍어로 “싸대기”와 비슷한 발음의 어떤 뜻이 있었는데, 그 말이 한국인에게 전해져서 “한번 취하면 싸대기를 날릴 정도로 인사불성이 되는 술” 머 그런 의미로 와전이 되어버렸다.
이 “싸대기 주”는 종류도 정말 많다고 한다. 중국인, 조선족, 태국인 등 각각의 나라출신의 사람들이 빚는 술마다 다 맛이 다르다고 한다. 출처가 정확하지 않으니 이것에 관해서는 이런저런 소문이 무성했다. 심지어는 공업용 알코올로 제조한다는 얘기도 돌았다.
나도 먹어봤지만, ‘싸대기 주’ 는 알코올 도수도 높은 편이라서, 얼음이나 맥주, 음료 등과 섞어 마셔야 한다. 아마도 족히 40도는 될 듯 하다.
6. 술 이야기 (2) – 포도주
사무실에서 요즘 새로 포도주를 담그고 있다. 포도를 잘 씻고, 말린 후 통에 담가서 발효시키는 방식이다. 잘 될는지, 그래서 언제 맛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겐 무척 흥미로운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이곳에서 본 포도는 한국의 포도와 생김새부터 달랐다. 한국 포도는 포도 알이 동글동글 하고, 껍질을 벗겨먹고, 씨는 뱉는 것이 정상이지만, 이곳의 포도는 포도 알이 다소 길쭉하게 생겼고, 껍질은 잘 벗겨지지 않아서, 껍질 채고 먹어야 하고, 씨는 없었다. 게다가 무척 달콤했다.
7. 술 이야기 (3) – 막걸리
술을 구하기가 그리 수월치 않으니 한국인 조리실장님들 사이에는 한동안 유행처럼 막걸리를 만들었던 때가 있었다. 막걸리를 만들 때에는 누룩이 필요한데, 이곳에서는 누룩을 구할 수가 없으므로, 누룩 대신 이스트를 사용하여 막걸리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부족한 식자재는 요령껏 다른 것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있다. 고추장이 없을 때에는 ‘인디언 칠리 파우더’로 매운맛을 만들기도 하는 것처럼, 꿩이 없으면 닭으로라도 그 맛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막걸리는 달콤했고, 한국의 어느 막걸리보다도 맛이 좋았다. 하지만 야메(?)로 만든 만큼 문제가 있다면, 알코올 도수를 조절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매번 만들 때마다 맛도 다르고, 알코올의 농도도 다르기 때문이었다.
알코올 농도가 높은 이유는 원래 막걸리를 담그면, 맑게 뜨는 술은 청주인 정종을 만들고, 중간으로는 동동주를 만들고, 밑에 남은 탁주가 바로 막걸리인데, 이곳의 막걸리는 청주와 탁주가 뒤섞여버린 술이기 때문에 알코올 도수가 높다고 한다.
(전날 막걸리를 마시고 뻗어버린 다음날, 숙취로 얼굴이 말이 아닌듯...)
처음 이곳에서 막걸리를 마신 다음날 무척 고생한 기억이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이곳에서 거의 어떤 술도 입에 잘 대질 않게 되었다. 원래 술을 잘 못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이건 정말 신기한 일이다. 술이 없는 곳에서도 술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고, 유통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술은 기원전 이집트 인들부터 먹기 시작했다고 하던데,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술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인간에게 꼭 필요로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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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과 악수하는 사진이 양을 쫓는 모험님이세요?
캬오~!!! 인증사진만 보다가 전신 사진을 보니 새롭습니다.
매번 생경한 듯 그러나 우리의 이면세계를 들추는 자료를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기억의 단편.
게다가 술 이야기, 술술 읽어지오.
근데 미쉘은 순산했을까 하는 생각을 사진을 보며 하다가, 양고기 이야기를 보니 고기밴가 싶기도 했소.
여하간 거기나 여기나 종교가 진도를 좀 나가 줘야 하겠소.
미쉘의 배를 보아하니 쌍둥이 인듯 싶소. 그게 벌써 1년 전의 일이니까, 지금즈음 순산했을 게요.
양고기는 꼭 한 번 먹고 싶은 음식이오. 나도 기회가 생기면 양갈비쪽을 골라야 겠군.
전에 대형마트 홈플러스를 둘러보니 냉동된 양갈비가 한국에도 유통되더이다. 다만 어린 양갈비를 먹는 쪽이 좋을듯 싶소. 어른 양은 맛이 없소. 쿠웨이트에서 운전하고 가다가 사막의 벌판에 목동이 양떼를 몰고 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양들을 보니까 내가 먹은 양이 맞나 싶었소. 양을 없어도 양을 쫓는 모험을 계속 되오.
글쎄요... 다 자란 양의 고기는 누린내가 나고 육질이 질겨서 그다지 권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누린내를 없애는 방법은 모르겠고, 어린 양갈비를 드시는 편이 나을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