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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048 vote 0 2016.01.09 (19:03:25)

     

    깨달음은 돈오인가 증득인가?


    깨달음은 돈오다. ‘증득’이면 깨달음이라는 표현을 쓰지 말아야 한다. 엄밀히 말하면 돈오도 아니다. 깨달음은 언어감각이다. 원래 깨달아서 태어난다는 말이다. 간화선 백날 해도 깨닫지 못한다. 간화선으로 깨달았다는 사람 본 적이 없다.


    어린이는 5살까지 말을 배워야 한다. 부모에게 언어장애가 있거나 혹은 어떤 이유로 격리되었거나 해서 다섯살까지 말을 배울 기회를 가지지 못하면 이후에는 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 개는 늦어도 생후 7개월 안에 길을 들여야 한다.


    뒤늦게 훈련을 시작해도 되는 개가 있다면 천재 개라고 봐야 할 것이다. 석가나 혜능은 깨달아서 태어난 사람이다. 감각있는 사람은 그냥 안다. 무엇이 문제인가?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추상적인 사고를 못한다. 그거 원래 안 되는 거다.


    나는 사람들이 추상적인 개념을 접수못한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이해 못했다. 나도 못하는 분야가 있으므로 납득한다. 쉬운게 구조론인데 어렵다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추상적인 사유가 원래 안 되는 거다. 대화해보면 5분 안에 안다.


    19세기 프랑스로 돌아가보자. 고흐의 그림을 보고 가치를 알아채는 사람은 100명에 한 명도 안 된다. 만 명에 한 명일 수도 있다. 20세기 사람에게 보여주면? 대개 이해를 못하지만 이해한 척 한다. 뭔가 살짝 느낌이 오기는 오는 거다.


    구조론도 마찬가지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주면 느낌이 와준다. 그러니 이 사이트에 하루 3천명 방문자가 있는 거다. 그러나 그냥 느낌이 살짝 와주는 걸로는 부족하다. 머리 속에 모형을 새기고 자기자신이 납득을 해야 진짜다.


    어차피 사람들은 깨닫지 못한다. 그런데 왜 깨달음을 논하는가? 굳이 깨달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운전자는 한 명이다. 다수는 좋은 승객이 되는 걸로 충분하다. 약간이라도 깨달음의 맛을 본 사람이 구조론의 좋은 승객이 될 수 있다.


    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85892


    며칠전 시사리트윗에서 언급된 이야기다. 이런 논쟁이 끝나지 않는 이유는 간화선으로 깨달은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미 깨달은 사람이 간화선을 하는 것이다. 원래 안 되는 사람은 절대로 안 된다. 당신은 고흐가 될 수 없다.


    한국불교가 선종일변도로 가는 이유는 교종으로 가면 유교에 지기 때문이다. 유교는 군자를 가르친다. 군자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이다. 예컨대 이런 거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가는 길에 풍랑이 크게 일어 선원들이 울었다.


    “나으리. 얼른 적삼을 벗어 바다에 던져 용왕의 노여움을 푸소서.” 선원들이 이구동성으로 탄원하는 차에 통신사 정사 영감은 “닥쳐! 30분이 지나면 조용해진다.” 과연 30분이 지나자 파도는 가라앉았다. 모든 선원들이 감동하여 칭송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100명의 선원들이 몰려와서 울고불고 난리치는데 그들이 원하는대로 적삼을 벗어 바다에 던지겠는가? 그랬다면 역시 30분 후에 파도는 잔잔해졌을 것이다. 그러다가 선원이 선장되는 수 있다. 하극상이다.


    “정승판서 별거 아니네. 역시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가 알지. 글자만 읽은 벼슬아치가 뭘 알겠냐고.” 보통 나라는 이렇게 망하는 것이다. 그런데 스님이라면? 스님이라면 왠지 적삼을 벗어서 던졌을 것 같지 않은가? 당근 망하는 거다.


    스님은 위엄이 없다. 의사결정을 못한다. 불교든 기독교든 카톨릭이든 종교는 대중이 원하는대로 말해주는 시스템이다. 스님은 난리치는 군중을 제압하지 못한다. 그쪽으로 훈련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가 망하고 있는 거다.


    그러므로 글자나 익히는 교종으로는 유교에 밀려 희망이 없고 스님은 차라리 신통력을 부려야 한다. 깨달음이 이해를 통해 이뤄진다면 과학을 배워야 한다. 이해로 경쟁하면 더 잘하는게 과학이다. 불교는 결코 이해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종교가 종교인 것이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종교는 월등한 초인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시스템이다. 개나 소나 논리로 다 이해하면 의미없다. 종교는 선원들이 적삼을 벗어 바다에 던지라고 요구하기 전에 먼저 지팡이를 던져야 살아남는다.


    깨달음은 언어감각이므로 되는 사람은 원래 되고, 안 되는 사람은 안 된다. 다만 감각을 키워 깨달음의 세계를 받아들이고 깨달음의 버스를 타면 된다. 고흐의 그림을 처음에는 이해못해도 남들이 설명해주면 상당히 감이 와주는 거다.


    그러나 다른 좋은 그림을 새로 발굴하지는 못한다. 고흐의 그림에 감탄하는 사람에게 어떤 새로운 그림을 보여주고 어떻냐고 물어보면 다시 100년 전의 프랑스인으로 되돌아간다. 고흐의 그림에는 확실히 에너지가 있다. 기운이 있다.


    그러나 그 역시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에너지만 있으면 좋은 그림이 되는게 아니다. 좋은 그림을 보고 쉽게 이해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전혀 이해못했을 가능성이 많다. 간화선은 깨달음의 길이 아니고 깨달은 사람에게만 좋은 것이다.


    논리적 사유로 깨달을 수 없고, 엉덩이가 장판에 눌러붙도록 간화선을 해도 깨달을 수 없고, 육조 혜능처럼 되는 사람은 그냥 되는 거다. 3초 안에 된다. 그게 되는 사람이 간화선을 좋아한다. 간화선은 스승숭배를 강조하는 병폐가 있다.


    뇌가 반응하는지가 중요하다. 구조론은 구조로 설명한다. 구조는 의사결정구조다. 의사결정원리에 인간의 뇌가 반응한다. 그게 흥행하는 영화에서는 주로 주인공이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치려다가 다시 와서 동료를 구하는 구조로 묘사된다.


    뇌가 반응하지 않는 사람은 뭐 어쩔 수 없다. 주윤발이 혼자 튀다가 다시 보트를 되돌려 돌아오는 장면에서 ‘저 자슥 왜 왔지?’ 하는 사람은 별 수 없다. 구조론사이트에 오는 사람들은 이유가 있을 거다. 구조론은 원래 재미없는 글이다.


    딱딱한게 구조다. 누구나 싫어하는 수학을 잼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뭔가 뇌구조가 다른 거다. 처음에는 허풍이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수학문제를 다 풀어버리겠다는 사람이 실제로 있더라. 너무나 즐거워서 잠이 안온다더라.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괴롭기 때문에 사흘 철야를 하더라도 해결해버리겠다는 사람 있다. 그 사람은 뇌구조가 특별한 거다. 여기에 온 사람은 일단 구조론에 뇌가 반응하는 사람이다. 내 계획은 더 쉽게 설명하는 방법을 찾는 거다.


    간단하다. YES 아니면 NO다. YES를 따라가면 된다. 세상은 대칭으로 되어 있다. 대칭이나 구조나 같다. 구조는 대칭구조다. 단 대칭축도 있고 공간이 아닌 시간적 대칭도 있으므로 조금 복잡하다. 주윤발이 보트돌리듯 틀어주는 맛이 있다.


    구조론은 조금 틀어준다. 뒤통수를 친다. 대칭을 찾고 YES를 찾으면 되지만 어떤 대칭을 찾았다면 보나마나 하부구조에서의 선악대칭이다. 뒤통수쳐야 한다. 그냥 독일에서 사고친 시리아 난민 죽일놈 하고 분개하는건 되통수치는게 아니다.


    그런데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주윤발은 보트를 돌리는데 그들은 보트를 돌리지 않는다. 구조론은 지도자를 양성하는 곳이다. 0.00001퍼센트 안에 드는 지도자가 되려면 다르게 말해야 한다. ‘죽일놈!’ 하고 분풀이 하면 지도자는 아니다.


    대중들이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 지도자는 당연히 거기에 대칭을 세워 다르게 말해야 한다. 이걸 말해조야 아느냐고? 잘난척 하는 사람들은 다 그런다. 대중들이 적삼을 벗어 바다에 던지라고 요구하니까 오기로라도 안 던진다. 당연잖아?


    던지란다고 던지냐? 미쳤냐? 시키는대로 하면 을이다. 근데 대부분은 시키는대로 한다. 영화감독이 ‘요 장면에서 울어라’고 시키면 시키는대로 운다. 히말라야 우는 대목에서 우는 사람은 진 거다. 그들은 보트를 되돌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대칭을 찾고 대칭의 대칭을 찾고 대칭의 대칭의 대칭까지 찾아조야 한다. 뒤통수의 뒤통수까지 가야 한다. 간단하다. 대칭은 좌우대칭이므로 상하대칭을 찾으면 된다.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대칭이다. 거기서 닫힌계의 판구조가 드러난다.


    기울어진 축구장이 드러난다. 게임의 법칙이 드러난다. 그 게임 바깥으로 나가면 된다. 거기서 확산이냐 수렴이냐의 문제가 제기된다. 수렴방향으로 가면 권위주의 이원론자 수구꼴통이다. 확산방향으로 가면 노자, 히피, 허무주의자다.


    확산방향으로 가서 에너지를 취하고 수렴방향으로 틀어서 그 에너지를 사용하면 깨달음이다. 이건 감이 있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아는 거다. 주윤발이 떠나는 장면에서 왠지 돌아올 것 같잖아. 그렇지 않나? 우리가 서부극 한 두 번 봤냐고?


    4편에서 한솔로가 떠났다가 다시 오는거 그런거 많이 봤잖아. 안봐도 비디오잖아. 이걸 말해줘야 안다면 그게 이상한거 아녀? 깨달음은 간단하다. 호응이다. 대칭은 호응한다. 원인과 결과가 호응한다. 흩어진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어 있다.


    춘향과 몽룡이 헤어졌으니 다시 만날건 안봐도 비디오잖아. 민주당과 유권가자 헤어졌으니 다시 만날 것은 안봐도 비디오잖아. 달이 차면 기울 듯이 공중으로 던져진 것은 땅으로 내려오는게 법칙이다. 이걸 모른다고? 모르는게 이상한 거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id: 느닷없이느닷없이

2016.01.09 (22:59:46)

말해조야 → 말해줘야


잘난척 → 잘난 척


찾아조야 → 찾아줘야

프로필 이미지 [레벨:21]사발

2016.01.10 (01:47:39)

잘난 척 은 띄어쓰기가 맞지만 나머지 두 개는 일부러 그렇게 쓴 것입니다. ^^

[레벨:8]상동

2016.01.10 (09:21:09)

딱딱한 글에 약간의 유머를 더해서
조금이나마 재미지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名 可名 非常名

언어는 그렇게 표현할 수 있을뿐

항상 문법대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 아니죠.


문법보다 중요한 것은 뒤뚱입니다.

뒤뚱이 없으면 너무 딱딱하고 지겹잖아요.

[레벨:3]귤알갱이

2016.01.10 (14:30:55)

뭔가 닉네임하고 잘 어울립니다 ㅋㅋ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6.01.10 (11:18:46)

급하게 써서 오타가 많은데 오타는 안 찾고 참

[레벨:8]상동

2016.01.10 (12:30:58)

뒤통수 하면 그냥 뒤에 있다가 때리는 느낌이지만.

되통수하면 처음엔 앞에 있었지만 몰래 살짝 뒤로 돌아가서

뒤통수를 치는 느낌이잖아요.. 재미진 표현..


되돌아가서 뒤통수치기 = 되통수


마지막 문단에 민주당과 유권가자는 명백한 오타지만 

소통에 방해는 안됨

프로필 이미지 [레벨:4]펭귄

2016.01.10 (12:58:09)

중득이 중독으로 읽혀 잠시 오해.

구조론이 중독성이 있지요.



급하게 쓰셨다고 하는데 참 좋습니다.

저같이 늦는 사람을 위해 예도 많이 들어 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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