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이와 숙제는 옛날의 어진 사람이다. 어진 것을 구하여 어진 것을 얻었으니 또 무엇을 원망했겠는가.” 과거에 운동권 백이숙제를 비난하고 박정희 주무왕을 찬양하는 풍조가 있었다. 교과서에 이와 관련한 내용이 있었는데, 교사는 백이숙제를 두고 현실을 모르는 꽁생원으로 비판하도록 학생들을 유도했다. 나는 크게 분개하여 가슴에 맺힌 것이 있었고 오래도록 이 주제를 생각했다. 한 동안 가슴 한 켠이 아팠다. 수년동안 생각해서 내린 내 결론은 이렇다. 선善은 선에 이름으로써 이미 보상받았고, 악惡은 악에 이름으로써 이미 징벌받았다. 고흐는 그림을 얻어서 행복했고, 소로은 호숫가에 있어서 즐거웠고, 백이숙제는 어짐을 얻어서 행복했다. 고흐를 동정하거나 백이숙제를 비난한다면 박제가 된 천재 이상이 비웃는다. 인간의 큰 기쁨은 우주에 답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확인하는데 있지 구태여 그것을 내게로 가져와 사람들 앞에 전시하고 인정받는데 있지 아니하다. 고흐의 그림이 팔리지 않았거나, 소로의 책이 팔리지 않았기에 오히려 그들은 승리자다. 패배한 쪽은 세상이다. 내가 이기면 되는 거다. 좋은 것을 내가 찾아냈는데 세상이 가져가지 않으면 그들이 진 거다. 좋은 것을 독점하지 남주겠는가? 귀한 어짐을 백이숙제가 독점하지 남주겠는가? 한창 사유에 빠져있던 시절 나를 가장 강력하게 끌어당긴 주제 중의 하나다.
예전에는 주책바가지 영감이 따분한 소리나 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다시 보고 공자의 사유가 상당히 구조론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오늘부터 논어 중에서 각별히 필이 오는 대목만 골라서 하루에 한구절씩 해설하겠습니다. |
싸나이 의기천추!
2천5백년 전에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셨다고 죽은게 아니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곁에 숨쉬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낳았고
소크라테스는 알렉산더를 낳았고 헬레니즘을 낳았고
현재 우리에게는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있다.
백이숙제가 수양산에서 굶어죽었다고 죽은게 아니고
지금도 여전히 지식인으로 살아 숨쉬고 있다.
백이숙제는 공자를 낳았고
백이숙제는 사마천을 낳았다.
현재 우리에게는 선비(지식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 숨쉬고 있다.
전태일은 조영래를 낳았고
전태일은 수많은 위장취업한 공순,공돌이 대학생들을 낳았고
전태일은 노무현을 낳았다.
현재 우리에게는 좌빨 혹은 친노라는 이름으로 살아 숨쉬고 있다.
맨땅에 헤딩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헤딩한다고 불쌍히 여겨주는 이도 없고 바라보는 넘도 없고
당연히 박수쳐주는 넘도 없다.
입자, 힘, 운동, 량 아무 것도 없이 질을 혼자 만드러내는 것은
극히 어렵다.
소크라테스처럼 독배를 마시거나
백이숙제처럼 굶어 죽거나
전태일처럼 자기몸에 불을 붙이거나 해야
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사마천처럼 고추 짤려도 글을 쓰라는 말도 아니고
고호처럼 동생한테 빈대붙은 돈으로
5살짜리 애딸리고 성병걸리고 임신한 은퇴한 창녀를
부양하라는 말도 아니다.
소크라테스, 백이숙제, 전태일, 사마천, 고호가 겪은 삶의 고통만을 보고
그들 영혼의 내부를 들여다볼 용기가 없는 자들은
하루하루 똥을 만드는 기계일 뿐이다.
저 비루한 교사같은 아첨꾼의 가벼운 생각과 말들이 쌓이고 쌓여서 한낱 악인에 불과한 자가 우상으로 태어난다.
학생들이 독재자를 비난하는 것은 그가 이미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이고, 악행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 비루하고 가벼운 교사라는 인간은 그 자신 신의 위치에 올라 서서 독재자를 반대하는 학생들의 양심과 독재자의 악행을 다 떨어진 잣대로 재려든다.
참으로 건방지고 비굴한 교사여. 너의 더러운 판단을 왜 남에게 강요하는가.
https://ko.wikipedia.org/wiki/%EB%B0%B1%EC%9D%B4%EC%99%80_%EC%88%99%EC%A0%9C
구조론에선 500방씩 맞는 도올이지만
도올 덕분에 사서를 한글로, 제대로 읽을 수 있게되어 너무 좋았었습니다.
구조론적으로 공자를 돌아본다니 너무나 기대됩니다. :-)
도올선생도 훌륭한 사상가이며 대한민국 인문학발전에 큰 기여를 한걸 부정해선 안돼죠..
다만 그 분의 포지션이 구조론에 비해 한 분야로 국한되어 있으므로
구조론에선 500방 맞는거겠죠.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