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1인칭에 선다. 그러므로 아무런 보상이 없다. 개는 3인칭에 서므로 적절히 보상받는다. 개는 실적을 평가하는 주인이 있고, 실적을 다투는 경쟁자가 있고, 경쟁자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기 원한다. 그래서 개인 것이다. 사건의 원인측이냐 결과측이냐다. 인간은 원인측에 서므로 보상이 없고, 개는 결과측에 서므로 보상이 있다. 어느 쪽이 더 기쁨이 클까? 뼈다귀를 얻은 개가 행복한가 아니면 세계를 발견한 인간이 기쁜가? [생각의 정석 39회] 일의 순서는 복제, 조합, 연출이다. 처음 새 길을 가는 복제는 잘하고 못하고가 없으므로 평가되지 않는다. 처음 가는 길은 잘 가거나 못 가거나 판명할 수 없다. 가느냐 안가느냐 뿐이다. 뒤에 가는 조합과 연출은 남보다 잘할 수 있다. 잘한다는게 반드시 좋은 소식인 것은 아니다. 손님은 대접받고 주인은 대접한다. 사람은 보상하고 개는 보상받는다. 대접받고 보상받는 것이 반드시 본인에게 좋은 소식인 것은 아니다. 부르느냐 응답하느냐다. 처음에는 누구나 응답하는 포지션에 서지만 최후에는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남들에게 칭찬받고 싶은 마음, 집단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넘어설 때 신의 마음을 이해한다.
노벨상을 받는 나라보다 노벨상을 주는 나라가 낫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잘 먹고 잘 사는 행복한 사람보다, 열심히 일 벌여서 세상을 정신 번쩍 차리게 격동시키는 존엄한 사람이 낫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도 보상받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인간 대 인간으로 진정한 만남에 이르느냐가 중요할 뿐입니다. 할머니들은 일을 벌여서 세상을 격동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
[생각의 정석 39회] 문창극의 참극
http://gujoron.com/xe/4868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