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의 변명 http://m.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47 한겨레는 늘 최악이었다. 탄생 당시부터 그랬다. 신문사 이름부터 그랬다. 제호를 왜 그 따위 폰트로 썼는지부터 그랬다. 백두산그림을 대문꼭지에 박아놓을때부터 그랬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고 오로지 언론권력을 추구했을 뿐이다. 자본이 돈을 추구하며 대중들에게 아부할 때, 그들은 개인의 명성을 추구하며 대중을 엿먹이는 먹물의 모습을 보였다.
“돈 보다 언론권력이 낫다.” <- 본심 한겨레의 모토.
창간호부터 최악이었다. 솔직히 나는 이 사진과 제호와, 제호에 박힌 백두산 천지 그림을 보고 무슨 사이비종교 출범식 하는줄 알았다. 애초에 반민중적이었다는 거. 왜 이따위 썩은 짓을 했을까? 당시 시대 분위기가 그렇긴 했다. 오라 남으로! 가자 북으로! 하며 기세 올리고 그랬으니깐. 나는 거기서 읽었다. 섬뜩함을! 제호에 있는 7개의 뾰족한 칼날.
그들은 멋모르고 기대를 건 나같은 순진한 대중들을 기선제압하려는 의도를 보인 것이다. 사실이지 제압당했다. 기대를 끊고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끼어들지도 않고 간섭하지도 않고 말이다. 하긴 창간주주들이 ‘나 소액주주인데 신문사 그따위로 할거야?’ 하고 난입해도 피곤한 일이긴 하다. 그들은 오만한 태도로 '지식의 지배'라는 큰 그림을 그린 거다. 일본제국주의 욱일기를 연상시키는 판화 백두산천지 그림은 그물처럼 느껴졌다. 커다란 그물을 펼쳐 민중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자기들 권세를 오로지 하겠다는 탐욕을 내보인 거였다. 정치권력만 권력인 것은 아니다. ‘니들은 빠져!’ 하는 배타성과 오만을 나는 거기서 읽은 것이고, 그래서 매우 씁쓸했고, 그래서 소외감 느꼈고 차라리 딴지일보가 반가웠다. 한겨레는 국민을 대변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조중동은 재벌의 눈치를 보고 만만한 넘을 까는데, 한겨레는 두루 깐다는 점이 다를 뿐, 까는 권력의 쾌감에 중독되어 있었다. ‘우리가 돈도 별로 못 버는데 까는 재미라도 누려야 되는거 아냐?’ 이런 심보로 신문장사 하고 살았던 거 맞다. 상대적으로 도덕적이었지만 그 도덕의 크기만큼 그들은 권력적이었다. 존 포드 감독의 흑백영화 '역마차'에는 '달라스'라는 이름의 매춘부가 나온다. 착한 여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법과 질서'라는 청교도 모임에 의해 마을에서 추방되어 어쩔 수 없이 역마차에 오르게 된다. 단번에 어리버리한 민중을 제압하고 그들을 바보로 만든 한겨레의 야심만만한 출범식 앞에서 나는 매춘부 달라스 기분이었다. 내가 법과 질서를 어겼나?
그런지도 모른다. 존 포드는 왜 이런 설정을 했을까? 왜 주인공은 법과 질서를 어기는 매춘부여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민중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이다. 한겨레는 깐깐한 법관처럼 민중 위에 군림했다. 제호에 붙은 7개의 칼날이 그것을 상징한다. 매우 깐깐하다. 그들은 한 맺힌 사람처럼 칼을 휘둘렀다. 정의라는 이름의 칼을. 민중의 가슴을 먼저 베었다. 역마차의 주인공은 셋이다. 마을에서 쫓겨난 매춘부 달라스,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 했던 탈옥수 링고 키드, 술주정뱅이 의사 조사야 분이 그들이다. 우둔한 마부 벅은 조연이다. 반대편에는 신사인척 하지만 음흉한 야심을 가진 도박꾼 햇필드, 우아한 귀부인처럼 보이지만 위선적인 루시 맬로리, 탐욕스런 은행가 게이트우드. 세일즈맨과 보안관은 중립. 탐욕스런 게이트우드는 보나마나 조중동이다. 귀부인 루시 맬로리는 당연히 잘난척 하는 이회창의 무리다. 김종인이나 이상돈, 윤여준, 홍석현, 손학규, 안철수의 무리다. 중립인 척 하지만 자기만 아는 소인배다. 음흉한 신사 햇필드는 보나마나 한겨레다. 역마차에 다 나온다. 왜 30년대 영화에 이런 캐릭터가 나올까? 왜 대중은 범죄자나 주정뱅이인가? 나는 존 포드의 역마차를 탄 아홉명의 승객 안에 세상 모든게 다 있다고 생각한다. 엘리트도 있고, 부자도 있고, 충직한 공무원도 있고, 평범한 서민도 있고, 비열한 지식인도 있다. 그리고 대중의 눈으로 볼 때 한겨레는 언제나 비열한 지식인이다. 그들은 정의를 주장하지만 딴 생각을 품고 있다. 그들은 점잖은 양복을 입었지만 속임수에 능한 도박꾼이다. 그들은 정서적으로 우리와 다른 세계를 살고 있다. 그들은 5퍼센트 미만의 지지를 받는 이석기나 정의당 포지션에 있었을 뿐, 50퍼센트 가까운 지지를 받는 민주당 포지션에 섰던 적이 없다. 오마이뉴스도 권력을 잡자 그렇게 변했고, 한때 민중의 편에 섰던 딴지일보도 명성을 얻자 김어준은 홍준표, 박지원과 논다. 올바른 길을 가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다시 공자의 정명을 생각할 일이다. 한겨레의 변명은 나는 신문쟁이니까 내 역할만 하면 돼! 이거다. 하긴 그게 맞는지도 모른다. 단 국민의 돈으로 만든 신문이니까 뭐가 달라도 다르지 않겠나 하고 어설픈 기대를 품었던 내가 창피할 뿐이다. 짝사랑하다 버림받은 대중의 지식인에 대한 환멸, 존 포드는 대중의 그런 마음을 읽고 그런 캐릭터를 배치한 거다.
대중은 링고 키드를 연기한 '존 웨인'을 좋아했습니다. 존 웨인은 매카시즘이 난무하던 시절 보수로 몰리기도 했지만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 한국의 대부분입니다. 정의당이나 이석기의 무리는 한국의 다수가 아닙니다. 그들은 명성을 탐하고 우쭐하는 소인배에 불과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9명 중에 진정한 지도자는 없습니다. 괜찮은 사람이 한 명 있는데 그는 주정뱅이로 등장합니다. 왜 괜찮은 지도자는 주정뱅이에 괴짜여야 하는 것일까요? 하긴 이 엿같은 세상에 맨정신으로 견딜 수는 없는 거지요. 영화에서는 그 주정뱅이 괴짜만 악당 게이트우드와 맞서는 용기를 보여줍니다. |
알고싶습니다.
한 ㅏ
겨 ㄱ ㅕ
레 ㅓ ㅣ
신 ㅅ ㅣ
의 세로 획 수
1년에 한 번 하는 로그인을 하게 만드네.
한겨레가 노빠신문이어서 떠나는 사람이 많았다고?
헐, 이게 뭔 개소리... 난 노무현 재임 초기에 그 질긴 한겨레와의 인연을 끊었고만...
그 땐 한겨레가 빨리 망해서 제대로 된 진보언론의 길을 터야 한다고 말해왔는데, 망하면 안되죠. 진보언론 필요 없으니까 한겨레는 그렇게 근근이 유지하면서 내가 죽을 때까지 고통을 받는 형벌이 적당...
한겨레에 대한 -저도 주주였고 해외에서도 구독했던 독자로서-생각은 그저
마이너에서 짱먹겠다는 골목대장 정도로 봅니다.
참여정부 시절 공덕동에서 우연히 만난 한겨레 기자와 술집에서 난상토론
하던 생각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