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삼은 30년 전 3당합당 때 죽은 사람이다. 공과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역사공부 안 한 자들이다. 영삼의 공은 없고 과만 있다. 공과 좋아하네. 지하에서 김일성이 웃는다. 김일성도 나름 공은 있겠지만 심판을 피할 수 없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예컨대 영화라고 치자.. 박찬욱의 상업영화는 다 잘해도 단 한 곳만 잘못되면 욕을 먹는다. 반면 김기덕의 예술영화는 다 잘못되어도 단 한 곳만 잘 되면 칭찬을 듣는다. 상업영화는 기본 남의 것을 팔므로 실수가 있으면 안 되는 것이고, 예술영화는 기본 자기 것을 팔므로 실수가 있어도 그것을 나무랄 수 없다. 제것이냐 남의것이냐에 따라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독립운동하다가 친일파로 돌아선 사람 많다. 마지막이 중요하다. 독립운동의 공과 친일파의 과를 공정하게 판단하는 바보는 없다. 구조론으로 말하면 대칭성 위에 일의성 있다. 공과는 대칭성이다. 맥락의 일의성으로 판단하지 공과의 대칭성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맥락을 정하는 것은 개인의 행적이 아니라 팀플레이다. 팀으로 판단한다. 팀에 유익하면 공이고, 팀에 무익하면 과다. 사람을 살린 적이 있는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면? 그냥 살인자일 뿐이다. 과거에 사람을 하나 낳았으니, 하나 정도는 죽여도 된다는 그런 논리는 없다. 독일에 패하고 비시정부를 차렸던 1차대전의 영웅 페텡원수의 예를 참고할 수 있다. 전쟁기간 동안에는 심지어 페텡을 영웅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프랑스의 창과 방패라 했다. 밖에는 드골이라는 프랑스의 창이 있다면 안에는 페텡이라는 프랑스의 방패가 있다는 식이다. 44년 당시 프랑스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페텡이 죽을 죄를 지었다는 사람은 3퍼센트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민심은 급변하여 결국 페텡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던 드골이 종신형으로 감형해 주었지만 역사의 판결은 사형이다. 김영삼에게 내리는 나의 판결 역시 같다. 그는 30년 전에 죽은 자다. 그 이후는 수치에 수치를 더했을 뿐이다. 왜 전후 프랑스의 여론이 급변했을까? 왜 페텡을 옹호하던 그 많은 프랑스인은 돌연 태도를 바꾸었을까? 프랑스놈들은 원래 변덕이 심한가? 그것이 역사의 무게다. 역사를 공부하면 자연히 알게 된다. 이런거 모르는 사람은 역사공부 안 한 사람이니 어디 가서 글자 안다고 나불대지 말라. 지식인 자격이 없다. 조조는 당대에 인기가 있었다. 유비는 왕실 촌수나 팔아먹고 다니는 뜨내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왜 조조는 2천년간이나 줄기차게 씹혔을까? 원균도 마찬가지다. 원균은 여진족을 물리쳐서 공을 세웠고 선조임금의 신임을 얻어 경상우수사가 되었다. 이순신보다 계급이 높다. 원균이 나쁜 사람이기 때문일까? 사람이 도덕적으로 좋고 나쁘고는 역사의 판단대상이 아니다. 그건 그의 개인 성격일 뿐이다. 인격이 야비하고 치사한 사람도 공을 세우면 영웅이 된다. 역사의 생명성을 인식해야 한다. 역사는 살아있다. 역사는 역사 자신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역사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 프랑스인이 나름 히틀러에게 개겼다는 페텡을 밟아버린 것은 향후 국제 외교무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책략 때문이다. 눈치 깠다. 히틀러가 협력을 요구하자 ‘차라리 내 목을 가져가라’ 하고 개긴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텡은 프랑스의 수치다. 왜? 프랑스가 페텡의 공과를 반반으로 결정하는 순간 외교무대에서 왕따가 된다. 프랑스 역사는 똥이 되는 것이다. 정통성은 오직 드골과 레지스탕스가 백퍼센트 가져간다. 비시 정부는 눈꼽만큼의 정통성도 인정받지 못한다. 프랑스가 페텡을 씹어버리지 않으면 나치와 동급으로 국제무대에서 씹힌다는 거다. 마찬가지다. 우리가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않으면 패전국 일본과 같이 씹힌다. 외국 입장에서 식민지 조선은 자발적으로 일본에 협력한 일본과 한 패거리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진다. 이완용이 조선의 대표라며? 이완용이 일본의 작위를 받았다며? 조선은 자발적으로 일본 밑으로 기어들어갔다며? 일본이 전범국이면 조선도 같은 전범국이네? 이렇게 되는 것이다. 이승만이 건국했다며?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건국했다면 상해임시정부는 부정되는 것이며, 드골망명정부는 부정되는 것이며, 페텡의 비시정부가 정통성을 가지는 것이며, 이완용의 작위가 정통성을 가지는 것이며, 프랑스는 자발적으로 나치에 협력한 자들이며, 그러므로 전후 국제사회에서 프랑스는 나치와 동급으로 취급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눈치 빠른 프랑스인들은 모든 책임을 페텡에게 지웠다. 그것이 역사다. 실제 페텡이 한 결정들 하나하나는 굳이 나무랄 일이 없다. 그 상황이면 그럴수도 있다는 느낌이 든다. 프랑스가 완전히 나치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 보다는 차라리 형식적으로라도 프랑스의 숨통을 끊지 말고 살려놔야 식민지를 독일에 뺏기지 않고 보존할 수 있다는 논리도 있다. 힘도 없는 주제에 괜히 개기다가 알제리와 베트남 등 많은 식민지까지 다 독일에 바치는 것 보다는 낫잖아? 이런데 설득되면 바보다. 역사를 미시적으로 쪼개서, 팩트위주로 보면 안 된다. 팩트야말로 당신의 눈을 가리는 안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식인이 잘 빠지는 함정이다. 개별적인 사실판단은 의미없다. 역사 자신의 생명성을 봐야 한다. 무엇이 역사를 예쁘게 하는지 봐야 한다. 위대하지 않은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니라는 드골의 말을 생각해야 한다. 추악한 프랑스는 지워야 하는 것이다. 왜?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미래와의 약속이다. 과거의 판단은 과거에 맡기면 안 된다. 미래가 과거를 결정한다. 전두환이 학살지령을 내렸는지 안내렸는지는 그의 뒷날 행적으로 판단한다. 박정희가 친일파인지 아닌지는 그의 훗날 행적으로 판단한다. 미래가 과거를 결정하는 것이 역사다. 박정희를 친일파로 확정한 사람은 박근혜다. 대못을 박아버렸다. 박정희를 독재자로 확정한 사람은 전두환이다. 역시 대못을 박아버렸다. 전두환의 잘못은 모두 박정희의 것으로 된다. 박정희가 씨를 뿌렸기 때문이다. 역사는 계속 흐름을 이어간다. 그 흐름 전체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프랑스인은 현명하게도 공과가 반반인 페텡에게 사형을 때려서 전후 세계질서에 주역으로 나서는 이득을 취했다. 한 것도 없는 주제에 무려 전승국 대접을 받았다. 한국인은 현명하게도 공과가 어떻든 영삼에게 단호한 심판을 때려서 향후 세계질서에 우리가 주역으로 나서는 이득을 취해야 한다. 전략이다. 역사 앞에서 겸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네 무덤에 확실하게 침을 뱉어주는 것은, 살아남은 자가 계속 가야할 역사의 전략이자 십자가다. 역사는 결코 개별적인 사실을 판단하지 않는다. 전체적인 그림을 본다. 오점이 하나만 있으면 똥으로 취급된다. 좋은 그림일수록 완벽해야 한다. 우리는 미래와의 약속을 위해서, 앞으로 우리가 세계질서를 주도하기 위해서, 우리의 진짜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서 영삼이라는 오점을 지워야 한다. 밟을 것은 확실하게 밟아야 한다. 모르고 어버버버 하다가 도매금으로 똥 되는 수 있다. 눈치 확실히 챙겨라. 국제무대는 여전히 살얼음판 전쟁터다. 어리광 부릴 시기는 아니다. 단호하게 금을 그어야 산다.
계속 가느냐 여기서 끊느냐입니다. 계속 갈 거면 유산을 상속하고, 끊을 거면 확실히 끊어내야 합니다. 부채는 끊고 유산은 챙기는게 정답입니다. 김영삼은 끊어야 할 부채이지, 챙겨야 할 유산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나아갈 미래는 세계무대이기 때문입니다. 영삼찌꺼기 안고있어봤자 어디서 알아주는거 아닙니다. 왜? 전쟁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아직 끝 안났습니다. 긴장타야 합니다. 자기연민에 빠져서 헤롱댈 상황이 아닙니다. 마음 다잡으십시오. |
김영삼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 후손들에게는 꽝이었고, 잊혀질 것입니다. 다만 정치인들에게는 과반을 차지해야하는 오늘의 한국적 현실에서 타협할 여지가 있는 인물이겠지요.
프랑스인은 현명하게도 공과가 반반인 페텡에게 사형을 때려서 전후 세계질서에 주역으로 나서는 이득을 취했다. 한 것도 없는 주제에 무려 전승국 대접을 받았다.
너무 좋은 예시입니다.
팩트만 보면 프랑스는 2차세계대전에서 초반에 박살난 패전국이죠.
솔직히 말해서 레지스탕스가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뭘 얼마나 기여했겠냐구요.
하지만 역사는 팩트로만 연결되지 않습니다. 팩트보다 중요한 것은 해석이고,
해석이 맥락이고 맥락이 이어져 그림을 그려나갑니다. 그림이 아름다워야 진짜죠.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 이것이 결정이지요..
결정이 앞서고 해석이 뒤따르는데 해석이 팩트를 싸버리니까.
팩트가 뭐가 되었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포장이 되어버렸으니..
1997년 11월 22일 - IMF에 경제주권 내 주던 대통령
2015년 11월 22일 0시 22분경- 서거
뭔가 교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나는 그날 학교에 갔다오다가
어둠이 깔리는 초저녁에
말끔한 양복을 입고 맨발에 슬리퍼를 싣고
맨발을 나에게 보여주며
며칠동안 밥을 못 먹었다고
500원만 달라고 말한 중년의 신사를 기억한다.
그렇군요!!!!!!
양비론은 없다.
그 때 그시절 김문수도 민주화를 위하여 엄청난 노력을 했다.
지금 1번 대표님도....
그분들의 공을 쳐 줘야 하나?
그분들의 공을 쳐 줘서 "친일은 과지만 공이 있으니 없던 일로 치자."
이런 논리가 성립될 수 있나?
그들은 돌아썼다.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배신자다.
이 분도 젊은 시절 민주화를 위하여 노력했지만
대통령이 되기 위하여 본인을 피박한 사람에게 돌아섰다.
잘못 설계된 판 위에 서서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 끝이 아름답게 끝날리 없다.
일의성에 의해서
잘못 설계된 판은 오작동 할 수 밖에 없다.
"죽었으니 지난 삶을 미화하자"
이런 논리도 성립될 수 없다.
그냥 아주 큰 배신자 일 뿐이다.
대통령직을 담보로 건....
김영삼에 대한 평가에 대해 '어버버'하고 있었는데 확실히 선 그어버리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