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의 포맷 ‘냉장고를 부탁해’를 시청한 양모님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이 프로그램이 구조론적인 포맷을 두고 있다고 한다. 멤버들이 한 공간에 모이는 것은 질, 냉장고는 입자, 요리종목의 선택은 힘, 요리과정은 운동, 요리가 끝난 후의 평가는 양이다. 구조론의 질, 입자, 힘, 운동, 량은 이렇게 딱 칸이 나누어지는게 아니다. 그러나 맥락을 보면 도드라진 부분들이 있다. 예컨대 요리를 선택하는 장면에서 힘의 특성이 가장 강조된다는 말이다. 예능프로그램이 포맷을 설계한다면 제한된 공간을 정하는게 중요하다. 축구는 축구경기장 안에서 행해져야 한다. 프로레슬링처럼 링 밖으로 나가면 긴장감이 떨어진다. 닫힌 공간의 설정이 중요하다. 입자의 역할이다. 그 다음은 요리종목을 바꿀 수 없어야 한다.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 부분이 무시되면 요리를 성의없이 하고 말장난으로 대충 때우려는 사람이 나타난다. ‘아빠 어디가’는 시간이 갈수록 그 제한이 풀렸다. 애들은 계속 고생시킬 수 없기 때문에 해먹과 럭셔리한 캠핑카가 있는 바닷가 좋은 피서지나 호주에서 안락한 여행을 하며 긴장이 사라졌다. 근데 재미는 있다. 볼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볼거리와 재미를 찾다가 포맷 자체가 망가져서 프로그램 막을 내리게 되는게 보통이다. 시청자들이 원한다고 해서 이것저것 추가하다가 망한다. 메시나 호날두의 개인기를 보고싶다고 해서 심판이 반칙을 눈감아준다거나 류현진의 공을 더 보고싶다고 해서 볼을 스트라이크로 판정한다거나 하면 곤란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멤버선발이다. 질은 유체의 불확정적인 성질을 가진다. 멤버는 유체의 역할을 해야 한다. 자기 캐릭터만 강조하면 구조가 깨진다. ‘삼시세끼’는 미남이지만 요리를 잘하는 차승원과 만능조연 유해진이 둘 다 유체의 성질을 가졌다. 융통성 있는 캐릭터다. 아빠어디가는 남자애보다 더 똑부러지게 행동하는 송지아와 형이지만 울보인 김민국이 유체의 성질을 가졌다. 성준은 보다 구심점이 되는 입자의 성질이다. 자기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고집만 내세우는 식으로 입자의 성질을 강조하면 전체의 그림이 깨진다. ◎ 질 – 유체의 불확정성성으로 팀을 융합시킨다. ◎ 입자 – 대칭구도를 만들어서 긴장을 부여한다. ◎ 힘 – 중요한 의사결정으로 하부구조를 연동시킨다. ◎ 운동 – 강약을 조절하며 패턴을 반복시킨다. ◎ 량 – 볼거리나 율동과 음악으로 양념친다. TV를 안 봐서 많은 부분을 말하지 못하지만 예능프로그램에서 구조론의 질, 입자, 힘, 운동, 량을 찾아보는 훈련이 도움이 되겠다. 질은 이중적인 캐릭터라야 한다. 남자인데 여자의 역할을 하거나, 사나워보이는데 부드럽거나 해야 한다. 의외성을 보이고 부드럽고 타협적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부족분을 채워주는 역할이라야 한다. 입자는 대칭적 캐릭터라야 한다. 누군가와 각을 세워야 한다. 안 되면 PD와 각을 세우는 것도 방법이 된다. 대칭구도 만들기다. 힘은 중요한 결정을 한다. 취침할 잠자리를 선택하게 하는 방법이 많이 쓰인다. 이 정도면 포맷은 대충 만들어진 셈이며 운동이나 양은 너무 강조되면 안 된다. 시청자들은 운동이나 양에 환호하지만 사실은 질, 입자, 힘에서 만들어진 긴장 때문에 그게 가능한 것이다. 볼거리에 치중하거나 음악이나 춤으로 때우려 하다가 망한다. 관객을 긴장시키는 장면에서 관객은 반응하지 않는다. 그 긴장이 풀릴 때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온다. 그렇다고 긴장을 빼버리면 망한다.
구조론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뭐든 하다보면 구조론에 맞게 되어 있습니다. 단지 그것을 경험에 의거하여 귀납적으로 판단하는 것과 이론에 의거하여 연역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다르다는 거죠. 거기서 고수냐 하수냐가 갈리는 것. 보통 예능의 시청률이 떨어지면 출연자를 교체하거나, 볼거리를 투입하거나, 춤과 개그 위주 버라이어티로 끌고가서 망하는게 일의 경중을 판단하지 못하는 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