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단상>
안철수는 애초에 자기당을 창당 했어야 한다고 본다. 문제는, 그 당이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 일 것이다. 문국현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았을 뿐인거 같다. 또, 막연한 지지층에 대한 세력화도 심적 부담을 주었을 것이라고 여긴다. 문제는 민주당으로 들어가서 안철수가 무엇을 했는가일 것이다. 아무리 작은 단체일지라도 유명하다고 할지라도 새사람이 바로 뭔가를 바꿀순 없다. 단지 활력을 불어넣어 거픔을 만들어 낼수는 있다. 사람은 에너지에 반응하는 존재이니까.
바깥에서 아무리 날고긴들, 집단안으로 들어온 이상, 그 자신도 그 집단의 구성원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거기에는 책임이 따른다. 들쑤시기만 한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다. 불만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새로 유입된 에너지에 붙어서 들쑤시게 된다. 당연한 수순인 것이다. 집단에 핵이 없는 상황이라면, 이런 상황은 더 가속화 된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 전체를 복기하지 않는 자는, 절대로 핵이 될 수 없다. 핵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자신의 태도에 따라 핵이 될 수도 있고 그저 지리멸렬한 많은 덩어리에 불과 할 수도 있게 된다. 핵은 그 자체로 내부에 자체엔진이 있다. 자체엔진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핵의 유무는 결정된다.
안철수 자신이 핵이 되고 싶었다면, 지금까지 보여온 행보로는 아닌 것이 된다. 그가 미래의 리더로서 무엇을 보여주었다는 것일까...? 양보했다고 능사는 아니다. 그는 아마도 더 많은 것을 양보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결단이 더 큰 안목을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돌아서면 후회하는듯한 미련을 너무 많이 보여 주었다. 때로는 몽니로 비춰지기도 했다. 그는 민주당에 가서 무엇을 배운 것일까...? 아무리 구태해진 정당이라고 하나, 여기까지 흘러온 시간들의 축적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거쳐지나 가고 있고 현재도 진행중이다. 감추어져 보이지 않으면, 그는 자기정신을 괴롭혀서라도 그것을 보아야 했다. 한국 역사에서 지금의 자신의 좌표를 찍으려면, 그정도의 수고로움은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닐까...? 모두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안철수 그 자신을 들쑤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알고도 같이 가려면, 그만한 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건 또 아닌거 같다. 안철수와 쉽게 만날 수 있는 정치인은 없는거 같아 보이니 말이다.
새로 들어간 사람이 툭하면 뒤집자,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 탈당한다. 전당대회 다시 하자. 대표 사퇴해라...등등..., 너무 휘어잡으려 하다간 자신이 먼저 다친다.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졌을때는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공동대표 사퇴 했었으니 그걸로 자신은 스스로 되었다고 여기는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회를 안준다고 생각하는가? 사람들도 그렇게 만만하게 어리석지는 않을터인데...? 안철수 자신을 둘러보라. 그가 정치하면서 그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과 뭔가를 끌어 보겠다고 하면, 과연 그것이 신뢰할만한 것인가?
안철수가 정치에 입문하면서, 한 일이라곤, 민주당내 보수성향 인사들을 끌어낸 것 뿐이다. 안철수는 그 자신이 상당히 보수적 이면서도 경직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거 같다. 자신의 정치를 하고 싶으면, 당연히 실험정신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길은 뻔하다. 자기 하고 싶은데로 하려면, 자기 길을 가면 되는 것이다. 안철수는 공통체에 대한 이해가 너무 약하다고 여긴다. 아무리 그 당이 욕을 많이 먹는 당이라고 할지라도, 너무 오랜시간 동안 그 당의 속살을 노출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체로 내분은 속에서 봉합하고 외부적으로는 균열을 보이지 않는게 리더의 역할이다. 내부의 약점을 보여주는 이유는 힘을 외부에서 얻고자 함일때, 그때 뿐일 것이다. 자기당에 대한 자부심이 없는 자가 어찌 핵이 되고 리더가 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또한, 친노에 대해서 끊임없이 물고 늘어지는 것도 별로 좋지가 않다. 왜? 정당안에 친노가 있는 것이 아니고 정당밖에 친노가 있다면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정당안에서 친노를 공격하는 행위는 정당밖의 친노인 셈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건, 곧 sns와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입을 막고 싶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곧 그것은 문재인의 입을 막고 팔다리를 꺾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부의 약점을 외부에서 보완해주는 그 순환을 차단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정당에 대해 국민의 참여를 막는 것이 된다.
사람이 모이면 곧 파티다. 파티는 끊임없이 사람의 유동적 움직임에 의해 유지된다. 안철수는 파티!를 그만 방해하고, 자기정치에 있어서 가장 큰 방해자는 자기자신임을 자각하기를 바래본다.
안철수는 애초에 자기당을 창당 했어야 한다고 본다. 문제는, 그 당이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 일 것이다. 문국현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았을 뿐인거 같다. 또, 막연한 지지층에 대한 세력화도 심적 부담을 주었을 것이라고 여긴다. 문제는 민주당으로 들어가서 안철수가 무엇을 했는가일 것이다. 아무리 작은 단체일지라도 유명하다고 할지라도 새사람이 바로 뭔가를 바꿀순 없다. 단지 활력을 불어넣어 거픔을 만들어 낼수는 있다. 사람은 에너지에 반응하는 존재이니까.
바깥에서 아무리 날고긴들, 집단안으로 들어온 이상, 그 자신도 그 집단의 구성원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거기에는 책임이 따른다. 들쑤시기만 한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다. 불만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새로 유입된 에너지에 붙어서 들쑤시게 된다. 당연한 수순인 것이다. 집단에 핵이 없는 상황이라면, 이런 상황은 더 가속화 된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 전체를 복기하지 않는 자는, 절대로 핵이 될 수 없다. 핵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자신의 태도에 따라 핵이 될 수도 있고 그저 지리멸렬한 많은 덩어리에 불과 할 수도 있게 된다. 핵은 그 자체로 내부에 자체엔진이 있다. 자체엔진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핵의 유무는 결정된다.
안철수 자신이 핵이 되고 싶었다면, 지금까지 보여온 행보로는 아닌 것이 된다. 그가 미래의 리더로서 무엇을 보여주었다는 것일까...? 양보했다고 능사는 아니다. 그는 아마도 더 많은 것을 양보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결단이 더 큰 안목을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돌아서면 후회하는듯한 미련을 너무 많이 보여 주었다. 때로는 몽니로 비춰지기도 했다. 그는 민주당에 가서 무엇을 배운 것일까...? 아무리 구태해진 정당이라고 하나, 여기까지 흘러온 시간들의 축적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거쳐지나 가고 있고 현재도 진행중이다. 감추어져 보이지 않으면, 그는 자기정신을 괴롭혀서라도 그것을 보아야 했다. 한국 역사에서 지금의 자신의 좌표를 찍으려면, 그정도의 수고로움은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닐까...? 모두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안철수 그 자신을 들쑤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알고도 같이 가려면, 그만한 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건 또 아닌거 같다. 안철수와 쉽게 만날 수 있는 정치인은 없는거 같아 보이니 말이다.
새로 들어간 사람이 툭하면 뒤집자,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 탈당한다. 전당대회 다시 하자. 대표 사퇴해라...등등..., 너무 휘어잡으려 하다간 자신이 먼저 다친다.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졌을때는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공동대표 사퇴 했었으니 그걸로 자신은 스스로 되었다고 여기는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회를 안준다고 생각하는가? 사람들도 그렇게 만만하게 어리석지는 않을터인데...? 안철수 자신을 둘러보라. 그가 정치하면서 그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과 뭔가를 끌어 보겠다고 하면, 과연 그것이 신뢰할만한 것인가?
안철수가 정치에 입문하면서, 한 일이라곤, 민주당내 보수성향 인사들을 끌어낸 것 뿐이다. 안철수는 그 자신이 상당히 보수적 이면서도 경직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거 같다. 자신의 정치를 하고 싶으면, 당연히 실험정신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길은 뻔하다. 자기 하고 싶은데로 하려면, 자기 길을 가면 되는 것이다. 안철수는 공통체에 대한 이해가 너무 약하다고 여긴다. 아무리 그 당이 욕을 많이 먹는 당이라고 할지라도, 너무 오랜시간 동안 그 당의 속살을 노출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체로 내분은 속에서 봉합하고 외부적으로는 균열을 보이지 않는게 리더의 역할이다. 내부의 약점을 보여주는 이유는 힘을 외부에서 얻고자 함일때, 그때 뿐일 것이다. 자기당에 대한 자부심이 없는 자가 어찌 핵이 되고 리더가 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또한, 친노에 대해서 끊임없이 물고 늘어지는 것도 별로 좋지가 않다. 왜? 정당안에 친노가 있는 것이 아니고 정당밖에 친노가 있다면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정당안에서 친노를 공격하는 행위는 정당밖의 친노인 셈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건, 곧 sns와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입을 막고 싶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곧 그것은 문재인의 입을 막고 팔다리를 꺾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부의 약점을 외부에서 보완해주는 그 순환을 차단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정당에 대해 국민의 참여를 막는 것이 된다.
사람이 모이면 곧 파티다. 파티는 끊임없이 사람의 유동적 움직임에 의해 유지된다. 안철수는 파티!를 그만 방해하고, 자기정치에 있어서 가장 큰 방해자는 자기자신임을 자각하기를 바래본다.
친노의 정체..
우리때 그 해 태어난 인간이 60만이라고 했소.
80년대 태어난 지금 30대 중반은 인간이 무려 100만이라고.
지금은 출생아 숫자가 50만 이하.
다른 세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인구가 많소.
어느 나라든 특정 세대에 인구가 많으면 인구파워를 느끼고 엉덩이가 들썩들썩.
세를 느끼면 룰을 바꾸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심리.
친노의 정체는 인구파워이기 때문에
인구와의 전쟁을 하지 않는 한 절대 친노를 이길 수 없소.
친노를 이기는 방법은 30대 젊은이를 모두 중동으로 보내는 수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