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센티브가 효과없다는 것은 구조론에서 늘 하는 이야기입니다. 행복은 인센티브죠. 그러나 인간은 존엄을 추구합니다. 존엄은 일의 일관성에서 얻어집니다. 질이라는 대장 뒤에 입자 힘 운동 량이라는 졸개가 따라오는 것이죠. 복지부의 출산대책도 효과가 없는게 인센티브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존엄의 문제로 방향을 틀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조론은 공동육아를 제안합니다. 아기를 낳지 않는 이유는 첫째 낳아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다음 단계인 육아단계를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산모가 시설에 아기를 빼앗기고 돈은 시설이 가져가는 방법이 아니라 산모가 직접 돈을 받고 육아에 참여해야 합니다. 일일교사가 되어 학교수업에 교사지위로 참여해야 합니다. 학부모 모임 형태로 커뮤니티를 만들고 이걸로 교회를 대체해야 합니다. 그 커뮤니티 안에서 권력을 잡아야 하며 두번째 세번째 아기를 계속 낳아야 계속 학부모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은 반대로 촌지를 바치죠. 만화에서 할배는 자기주도성, 능동적인 에너지를 말했는데 이게 먼 소린지 알아들을 사람이 없습니다. 언어의 문제라는 거죠. 존엄이라는 개념이 서지 않으면 답을 찾지 못합니다. 존엄은 일의 일관성, 계속성에서 얻어집니다. 인센티브를 받으면 이미 갑이 아니라 을이 되어서 문제를 푸는 즉시 거래가 종료됩니다. 거기서 일이 스톱된다는 거죠. 그러므로 존엄이 깨지는 것입니다. 일관되게 가지 않으니까요. 시설에 돈 주는 정부의 육아대책도 마찬가지. 출산과 육아, 보육, 학교교육은 연속되어야 하는데 끊어집니다. 산모의 권력이 깨진다는 거죠.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학교에 가서 일을 하고 돈을 받고 의사결정에 참여하여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일이 연결되게 해야 합니다.
막연하게 자기주도성, 능동적인 에너지 이러면 추상적이고 모호해서 의사전달이안 되고 구조론의 질 포지션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질이 입자를 지배하고, 입자가 힘을 지배하는게 자기주도성이며, 능동적 에너지입니다. 인센티브가 효과가 있는 경우도 인센티브 자체보다는 임금이 올라서 그 돈으로 다른 데서 역시 구조론의 질 포지션에 설 기회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족민들이라면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해도 꿈쩍도 안 하는 거지요.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욕망이 없습니다. 성욕도 없고 명예욕도 없고 잘난척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욕망들은 사회적 경쟁의 산물이지 인간의 본성이 아닙니다. 즉 구조론의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궤도에 태워진 거죠. 벌여놓을 일을 수습하기 위해 욕망을 도구로 쓰는 거지 인간이 진정 원하는 것은 섹스나 식욕의 충족이나 야망의 실현이 아니라는 거죠. 대부분은 열등감의 보상심리 때문에 그런 욕망을 탐하게 됩니다. 실은 상처입은 거. 얼그러진 일 때문에 입은 심리적 상처를 회복하려 하다가 거기에 중독된게 욕망이라는 거죠. 욕망이 있다는건 실패의 증거입니다. 시작한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하므로 계속가게 되고 그러다 틀어지면 보상심리로 허겁지겁. 흉년에 굶으면 걸신이 들어서 과도하게 음식을 탐하게 됩니다. 한꺼번에 많이 먹어두어야 한다는 트라우마. 욕망이라는건 그대로 트라우마. 존엄과 존엄을 위한 일관성의 추구가 진짜입니다. 일은 마무리지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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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부분은 다 읽지 못했지만,
한국인의 강점은 분위기를 안다는 것입니다.
누가 말을 시켜서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에 있으면서 체득한 것을 알고
그 분위기 를 맞쳐간다는 거죠.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것은 오랜동안 한 땅덩어리에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 일지도 모릅니다.
이민자나라인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세계각국출신이 섞이면 문화라는 것이 만들어 질 수 없으니 이민자나라들은
한국처럼 의사결정이 빠를 수 없습니다.
살아온 과거가 다르기 때문에 공통분모로 삶을 과거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 서류를 중시하고 더 시스템을 중시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법률이 더 발달한 이유일 수 있습니다.
미국의 주류가 유럽출신이 때문에 유럽도 어느 부분은 미국과 비슷합니다.
유럽은 자기집 아이가 소매치기를 해도 부모가 아이를 간섭하지 않는다는데,
아이에게 나쁜것은 나쁘다고 알려줘야죠.
의사결정이 한국인 가장 빠른 것은
사회 분위기 속에 연장자 우선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밥을 먹을 상사시키는 것으로 통일.
물론 바깥에서는 순종적으로 보이지만
분위기를 탈때에는 엄청난 속도로 창의적으로 일을 해내요.
한국인은 또 일정부분 자기권한하에 일을 해내는 것 같아요.
그리고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일정부분 cover해주는 것이 있어요.
이런 모습을 다른 나라사람들이 보면 "wonderful"을 외쳐요.
(문서로 적어 놓지 않았는데, 시스템처럼 움직이는 부분이 있어요.)
그러나 유럽이나 미국은 메뉴얼이나 시스템에 동료와 일에 대해서 말하라는 것이 없는지
A직원이 하는 일은 B직원은 절대 하지 않으며
열번을 메일보내서 서로 공유했으면 좋겠다고 해도 열번을 거절해요.
아주 서로 의사소통도 안 하는 것 같아요.
이런데서 일을 완성하는데 한국과 외국이 시간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지죠.
또 퇴근시간에 대해서 말을 하면
미국이나 유럽같이 칼같이 5시가 되면 하던 일 던지고 퇴근을 합니다.
(독일같은 경우는 시간외근무하면 경찰이 온다는데 )
하던 일이 끝마치지 않아도 시간이 됐으니까 그냥 갑니다.
일의 연속성이 끊어지죠.
한국은 일정 부분 연속성을 위해서 한단위의 일을 끝내면 퇴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보다는 일의 연속성을 중점을 두는 것 같아요.
전에 "내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중국대표가 한국의 유교문화를 잘못 배운것 같은데,
연장자는 아무것도 안하고 선배대접만 받든 것이 아니라
연장자는 지식과 일정부분 경제적인 것으로 후배를 끌어주고
후배는 사회초년병이기 때문에 선배의 지식을 받고
가진 것이 적으니 몸으로 움직이는 거죠.
이런 것도 일정부분 유교의 영향이라고 보는데요.
욕망은 '열등감의 보상심리'라는 말에 동감.
박정희 죽기전에 얼굴 보면 이미 까맣게 죽어 있더라는것. 시바스리갈과 여대생과의 파티가 아니면, 잠을 못잤다는게 그 증거. 얼마나 김일성에 열등감을 가졌던건지. 김책공대 따라서, 카이스트만들고, 북핵따라서, 핵만들려다가, CIA에게 당하고.
애 하나 키우기가 열 키우기보다 어렵습니다.
아기가 열 명이라면 맏딸에게 맡겨두면 됩니다.
어머니.. '큰애야. 뭐하니?'
맏이.. '둘째 이리와봐. 엄마가 꾸중하시잖아.'
둘째.. '셋째야 뭐하니. 막내들끼리 싸우고 있잖아. 니가 해결해야지.'
셋째.. '내 밑으로 다 집합.'
한국의 유교가 강한 것은 의사결정 매뉴얼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선배가 후배를 움직일 수 있다는 거죠.
반면 그 매뉴얼이 도리어 새로운 의사결정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기본이 안 되어 있는 나라가 많다는 거죠.
기본적으로 인간들이 말을 안 듣습니다.
한국인들은 그래도 선배가 시키면 합니다.
회사에서 안 시켜도 일거리를 찾아내서 일한다는 거죠.
그 이유는 연속되는 일의 흐름 속에 있으려는 심리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흐름이 끊어지면 다시 발동걸기가 힘듭니다.
정부에서 지원해도 아기를 안 낳는 이유는 그 흐름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큰애>둘째>셋째로 가는 권력관계의 계통도가 끊어진 거죠.
그렇다면 단순히 돈이라는 인센티브로 때우려 할 것이 아니라
흐름을 복원해놓고 거기다 돈을 투자해야 합니다.
흐름을 복원한다는 것은 학부모 모임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서열을 만드는 거죠.
아기를 많이 낳을수록 거기서 서열이 올라가는 구조라야 합니다.
이등병이 승진해서 병장되는 구조가 있어야 합니다.
여성이 월 100만원 정도를 받고 주 2~3회 20시간 정도를 일하며
보조교사로 학교의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합니다. 권력이 주어져야 하는 거죠.
이렇게 되면 흐름을 유지하려는 본능 때문에 아기를 더 낳는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