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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148 vote 0 2015.09.16 (15:16:43)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은 말을 하는 능력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말을 할 줄 안다고 믿지만 대개 남이 운을 띄워줘야 겨우 대꾸나 하는 식이다. 혼자서는 언어를 이루지 못한다. 말은 본래 두 사람이 마주본 채로 주고받는 것이다. 이는 불완전한 언어다. 존재는 사건이다. 언어는 사건을 복제해야 완전하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는 이미 일어난 사건 속에서 기능하는 불완전한 언어이며, 사건 밖으로 나와서 객관적으로 그 사건을 반영하는 지식인의 서술도 역시 불완전한 언어다. 독립적으로 자기 사건을 연출할 수 있을 때라야 완전하다. 언어가 사건을 따라가면 틀렸다. 언어가 곧 사건이라야 한다.


    언어가 사건의 원인이라야 한다. 언어가 사건을 낳는 주체라야 한다. 이 언어의 획득을 깨달음이라 한다. 대부분 격이 떨어지는 저급한 언어를 쓴다. 먼저 치고나가지 못하고 남의 글에 댓글이나 달아 반격하는 언어로는 곤란하다. 짐짓 사건에서 발을 빼고 팔짱낀 채 평론하는 언어도 불완전하다.


    ◎ 동물어 : 동사.. 반응한다. 실행한다.
    ◎ 유아어 : 명사.. 반복한다. 약속한다. 전달한다.
    ◎ 대화어 : 주어.. 명령한다. 듣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 주관적 자기소개어.
    ◎ 지식어 : 명제.. 비교한다. 자체의 논리가 있다. 객관적 논리분석어.
    ◎ 깨달음 : 담론.. 복제한다. 완결성이 있다. 변화를 추동하는 에너지가 있다.


    동물어는 시키는대로 하는 것이다.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온다. 사람의 언어가 동물과 다른 것은 약속하고 전달하기 때문이다. 매번 지시할 필요없이 한 번 말해두면 되기 때문이다. 개는 열 번 명령해야 열 번 실행하지만, 사람은 한번만 말해둬도 열 번 실행하는 것이 동물과 다르다.


    보통사람은 대화어를 쓴다. 동물어든 유아어든 대화어든 둘이서 주고받는 언어다. 즉 사건 안에 언어가 있다. 사건이 일어나 있고 그 사건을 반영하여 언어가 기능한다. 동물어가 축구공이라면 유아어는 축구선수다. 대화어는 주장이나 코치 쯤 된다. 명령이 가능하다. 동료에게 패스를 할 수 있다.


    동물어가 경마장의 말처럼 기수가 없이는 달릴 수 없는 말이라면, 유아어는 육상경기처럼 혼자서 달릴 뿐 동료와 팀플레이가 불가능하다. 대화어는 팀플레이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 모든 초보적 언어는 게임 안에서 기능한다. 게임 밖으로 나가면 한 마디도 할 수 없게 된다. 사건 안에서만 쓰인다.


    지식인행세를 되려면 지식인처럼 말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냥 자기 생각을 말하면 유치한 거다. ‘누가 물어봤냐고?’ 하고 공격이 들어온다. 상대가 있는 말에 익숙하면 ‘쇼미더머니’에서 떴다는 힙합가수 도끼처럼 자기소개만 하게 된다. 지식인도 그저 되는게 아니고 나름 트레이닝을 받는 거다.


    지하철 시와 진짜 시는 차이가 있다. 미묘하지만 분명하다. 아닌건 아니다. 시처럼 보이지만 시가 아니라 자기소개다. ‘나는 이렇게 느꼈어.’ 쪽팔린 줄을 알아야 한다. ‘누가 너 일기장 보쟀니?’ 주관을 벗어나 객관에 올라야 비로소 시가 된다. 그러려면 사건에 대한 자신의 판단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지식어는 ‘전제+진술’로 명제의 형태를 가지며 ‘이게 이렇게 되면 저게 저렇게 된다.’는 내적 대칭구조를 이룬다. 언어는 어차피 대칭이다. 대칭이 없으면 언어가 안 된다. 대칭이 상대방을 향하면 지식인이 못 된다. 상대방을 배제해야 하며 동시에 나를 배제해야 한다. 그리고 보편성을 얻어야 한다.


    게임은 공격팀과 수비팀 사이에서 일어나지만 심판은 편들지 않는다. 지식인은 심판처럼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지식인의 얍삽한 테크닉만 배워서 중립적인척 하면서 사기치는 3류 지식인이 많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다. 진짜 지식인은 심판이 될 수 없다. 링에 올라 주먹을 휘둘러야 진짜 지식이다.


    ‘내가 때렸나 글러브가 때렸지.’ 이런 식의 유체이탈 화법은 3류 지식인의 언어를 정치인이 배운 거다. 책임은 의사결정권을 따라간다. 진짜 지식인은 지식의 편을 들어 결정하고 책임진다. 객관적 평가만으로 부족하고 정의의 편에서 시시비비를 가려 준엄하게 꾸짖는다. 이는 춘추필법에서 유래한다.


    사마천의 사기만 해도 이 수준에 이르러 있다. 근래 한국의 지식인들은 짐짓 심판인 척 하며, 객관적인 척 하며 자기 이야기를 마치 남 이야기하듯 한다. 진중권, 유시민, 노회찬들이 그렇다. 그들은 민주당 선수가 아니라 정의당 선수인데, 정의당은 링에 올라가지도 못했으므로 심판이라는 궤변이다.


    진리는 전부 연결되어 있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 그 어떤 소식도 남 이야기가 될 수 없다. 이것이 깨달음이다. 깨달음 언어를 써야 깨달음이다. 깨달음은 복제한다. 무엇이 다른가? 동물어, 유아어, 대화어가 사건 안에서 기능하는데 비해 지식어는 사건 밖에서 기능하고 깨달음은 사건을 만든다.


    ◎ 동물어 – 안에서 사건에 쓰인다.
    ◎ 유아어 – 안에서 사건을 전달한다.
    ◎ 대화어 – 안에서 사건을 지시한다.
    ◎ 지식어 – 밖에서 사건을 평가한다.
    ◎ 깨달음 – 밖에서 새로 사건을 일으킨다.


    안이냐 밖이냐다. 안은 두 사람 사이의 안이다. 대화는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다. 지식인은 링 밖에서 평론한다. 깨달음은 별도로 사건을 일으킨다. 지식인이 판단기준만 있는데 비해 깨달음은 에너지가 있다. 깨달음은 복제한다. 춘향과 몽룡이 광한루에서 만난다. 원인이다. 어사출도로 다시 만난다.


    이는 결과다. 깨달음은 두 사건의 연결로 되어 있다. 삼국지라면 도원결의로 시작한다. 유관장 트리오가 만난다. 그리고 다시 관우가 유비를 찾아온다. 오관참육장이다. 관우가 죽자 유비가 복수한다. 관우의 죽음에 가담한 자는 모두 죽는다. 한 번 만나서 의를 맺고 두 번 만나매 의를 지켜서 완성한다.


    보통은 복수극이다. 첫 번째 살인은 원인이 되고 두 번째 살인은 결과가 된다. 첫 번째 살인은 주인공의 아버지가 죽고 두 번째 살인은 악당이 죽는다. 대화어가 두 사람이 서로 공을 떠넘기는 핑퐁과 같다면, 지식어는 둘의 비교평가이며 깨달음은 사건의 복제다. 하나의 사건이 또다른 사건으로 연결된다.


    ◎ 대화어 – 둘이서 대칭을 이룬다.
    ◎ 지식어 – 둘의 대칭을 하나의 주제에 꿴다.
    ◎ 깨달음 – 두 사건을 하나의 에너지로 관통시킨다.


    깨달음이 에너지가 있는 것은 일이 커졌기 때문이다. 광한루에서 일어난 춘향과 몽룡의 첫 번째 만남은 작은 사건이고 어사출도에서 일어난 두 번째 만남은 큰 사건이다. 작은 사건이 큰 사건으로 도약한다. 그리고 또다른 사건으로 이어질 것을 암시한다. 결국 인류 모두의 사건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언어는 대칭을 쓰지만 깨달음은 대칭을 넘어선다. 복제하기 때문이다. 물리학은 전부 대칭되어 있지만 중력은 대칭이 없다. 맨 꼭대기에 있는 것은 대칭이 없다. 깨달음은 대칭이 없다. 그러므로 깨달음은 말대꾸를 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질문에 답하면 깨달음이 아니다. 깨달음은 사건을 일으켜 제압한다.


    지식인은 말로 밥먹지만 깨달음은 말을 넘어선다. 사건을 터뜨려 말을 제압한다. 깨달음은 불을 지르고 불을 꺼트린다.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알아듣는다. 단지 알아듣기만 할 뿐이다. 이는 불완전하다.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언어는 상대가 있다. 그 상대를 넘어서야 한다. 상대가 없는 언어가 깨달음이다.


    말을 알아들을 뿐 아니라 말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 말에 반박하는 식으로는 곤란하다. 그것은 상대방의 언어에 편승하는 것이다. 지식인은 객관적으로 말하기를 훈련한다. 굳이 논술공부를 안 해도 칼럼을 읽고 쓰다보면 언어에 형식이 있다는걸 알게 된다. 특히 양비론이 그렇다. 교묘한 술수다.


    삼류지식인이 유체이탈화법으로 여야를 꾸짖는다. 자기는 빼놓고 말이다. 깨달음을 주장하는 스님들 이야기도 가만이 들어보면 지식인 특유의 나몰라라 하는 객관적 말하기 수법이라는걸 알 수 있다. 법륜스님이 제법 맞는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쓰고 있는 툴이 지식인의 언어를 카피한 모조품 언어다.


    법륜은 자기 언어를 얻지 못했다. 그가 구사하는 언어 중에 자기 것은 없다. 이것 저것 다 내려놓아라 어쩌구 하는 사이비들 많다. 썩은 언어다. 담론은 이야기다. 이야기는 도입부와 결말부가 수미일관으로 만난다. 주인공은 사건 안에서 두 번 만난다. 복수극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두 번 만나 완결한다.


    세상은 무수한 만남들로 이루어져 있다. 만나고 또 만나고 또 만나면 큰 세상이 이루어진다. 그 만남의 현장에서 관객들은 전율한다. 그것이 깨달음이다. 능히 사람을 만나게 할 수 있다면 좋은 것이다. 남이 만들어 놓은 무대에서 뚜쟁이짓 하지 말고 자기류의 사건을 획득해야 한다. 만나게 해야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하는건 자기소개지 지식인의 언어가 아니다. 지식인은 메커니즘을 쓴다. ‘네가 이렇게 생각할 때 남은 이렇게 대응한다.’ 지식인의 언어 역시 부족하다. 남의 생각에 꼽사리 끼지 말고 자기 생각을 일으켜야 한다. 언어에 끌려가지 말고 언어 밖으로 도망치지 말고 언어를 이끌어야 한다.


    ◎ 대꾸말 - 네가 때렸으니 나도 때린다.
    ◎ 지식말 - 강한 놈이 약한 놈을 때린다.
    ◎ 담론말 - 처음에는 강자가 약자를 때리지만 나중에는 약자가 강자를 때린다.


    예수는 언어를 만든 사람이다. 예수의 언어를 쓰지 않는 자는 가짜다. 자기 언어를 갖지 않으면 가짜다. 객관적으로 계측해보니 이렇더라는 지식인의 언어이나 가짜다. 그것은 언어가 아니다. 사실에 불과하다. 그 언어에 호흡이 없고 에너지가 없고 사건을 일으키지 못한다. 죽은 사건을 평가할 뿐이다.


    깨달음은 언어의 획득이다. 비로소 입이 트이고 혀를 놀려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누가 말을 하는가? 밤길에 개구리 우는 소리처럼 시끄러우나 떠들어대는 자가 있을 뿐 말 하는 자는 없다. 사건 안에서 각자 떠들어대는 소리는 난폭운전 하는 만원버스 승객의 비명소리에 불과하다.



   DSC01488.JPG


    깨달음은 언어감각 안에 있습니다. 언어는 의미로 구성됩니다. 의미는 의사결정에 의해 촉발됩니다. 천국에 가건 지옥에 가건 남의 버스 타고 가는건 자신이 결정한게 아니므로 의미가 없는 개소리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며 유아의 본능에 불과한 것입니다. 내가 만든 천국이 아니면 천국이 아닙니다. 한국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누구나 본질에서 이미 깨달아 있습니다. 단지 알아듣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표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누구든 입에서 말이 나올락말락 혀가 간질간질한 수준까지는 도달해 있습니다. 거기서 한 걸음만 더 내딛으면 됩니다.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말을 안해봐서입니다. 일단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 언어로. 

  


[레벨:30]이산

2015.09.16 (15:54:33)

좋은글 감사합니다.

[레벨:4]고볼매

2015.09.16 (16:14:52)

완전 명문입니다.~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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