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기원 과학자에게 한 움큼의 에너지를 쥐어주고 그걸로 어떻게든 주물러서 각자 하나씩 우주를 창조해 보라고 하면 어떨까? 우주 창조의 대략적인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고 답하는 과학자도 있다고 한다. 수학적인 구조 안에서 에너지로부터 시공간과 물질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견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은 무에서 뭔가를 이루어낸다. 처음에는 모니터로 출력된 결과물만 보여주었는데 이용자는 아타리의 아케이드 게임이나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일반인이 컴퓨터로 할 수 있는게 없다. 컴퓨터 내부에서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과정까지 모니터로 보여준 사람이 애플의 워즈니악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영감을 받아 일제히 컴퓨터에 달려들었다. 초창기 애플의 공로는 많은 천재들이 컴퓨터에 달려들게 한 것이다. 천재들에게 아이디어를 대량으로 복제하여 공급했다. 장군과 병사만 있는 군대에 중간허리 역할의 장교가 가세한 꼴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21세기의 이 세상은 여전히 모니터에 출력된 결과물만 보여준다. 세상 앞에서 인류는 철저히 을의 신세다. 세상이라는 컴퓨터가 있어도 할 게 없다. 내부를 부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시공간과 물질이 뒤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양자역학이 그 뒤를 열심히 뒤지고는 있다. 우리가 인식하는 우주는 시공간과 물질로 되어 있다. 물질을 먼저 창조하고 별도로 시공간을 창조해야 한다면 피곤한 일이다. 이중창조론이 된다. 구조론은 일원론이다. 시공복합체를 창조하면 물질은 자동으로 딸려나오거나, 아니면 물질을 창조하면 곧 시공간이 딸려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에이다 러브레이스다. 이전에도 컴퓨터의 시초가 되는 계산기는 있었지만 정해진대로 출력되는 단순 반응기계이다. 반복문만 있고 if를 쓰는 조건문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에이다 러브레이스에 의해 비로소 컴퓨터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의 일을 줄여주기만 하는게 아니라 사람이 지시하면 컴퓨터가 스스로 일하는 것이다. 컴퓨터의 지위는 농기구에서 하인이나 집사로 격상되었다. 무엇인가?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견인하는 역전현상이다. 개인용 컴퓨터도 워즈니악이 컴퓨터가 일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프트웨어를 먼저 구상하고 거기에 맞는 하드웨어를 제작한 것으로 봐야 한다. 수학은 발견되는 것일까 아니면 발명되는 것일까? 콘체비치는 발견설을 주장했고 비트겐슈타인은 발명설을 주장했다. 바둑의 많은 수는 발견되는 것일까 아니면 발명되는 것일까? 유한이냐 무한이냐다. 바둑판의 사이즈는 유한하다. 바둑을 두면 판이 모두 메워진다. 그러므로 바둑의 수는 발견이다. 그런데 만약 바둑판 없이 바둑을 둔다면? 무한히 많은 수가 나온다. 이 경우 바둑의 수는 발명이다. 어쨌든 오목은 바둑판 형태와 상관없다. 오목은 무한이다. 바둑판이 하드웨어라면 바둑의 수는 소프트웨어다. 사실은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견인한다. 둘은 일치한다. 시공간이 하드웨어라면 물질은 소프트웨어다. 반대다. 물질이 운동하여 시공간을 연출한다. 컴퓨터의 진짜 기원은 소프트웨어다. 에이다 러브레이스의 조건문 if에 의해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우주는 발견일까 발명일까? 아인슈타인 우주는 발견에 가깝다. 그는 시공의 상대성을 주장했지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시공간의 절대성을 웅변한다. 상대성이 둘 모이면 절대성이 하나 탄생한다. 승부는 어떤 팀을 만나느냐에 따라 상대적이지만 룰은 절대적이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을 알았으므로 오히려 절대적인 우주를 생각했다. 그의 우주관은 팽창하지도 수축하지도 않은 정적우주론이다. 그러나 허블 망원경이 관측한 바에 따르면 우주는 빅뱅으로 폭발해서 팽창하고 있고 조만간 몰락할 예정이다. 우주의 팽창이 절대온도 0도에 이르면 모든 것이 균일해져서 시공간은 몰락한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은 신이 제한된 크기의 바둑판에서 바둑을 둔다는 말이고, 보어의 입장은 무한히 넓은 바둑판에서 오목을 둔다는 말이다. 구조론은 보어를 지지한다. 필자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고교때 ‘발빠른 아킬레스가 한 걸음 앞서 출발한 거북이를 추월할 수 없다.’는 제논의 궤변을 배웠기 때문이다. 구조론의 핵심은 그때 착안되었다. 가장 작은 시공간의 크기는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것은 없다. 아니 없어야 한다. 궁극적인 레벨에서는 하드웨어를 없애버려야 한다. 바둑판 없는 바둑을 두어야 한다. 시공간은 물질이 즉석에서 조달한다. 그것을 없애는 방법은? 하나 안에 둘이 들어가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에너지는 ‘일을 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왜 일을 하지? 하나 안에 둘이 들어갔을 때 그 중의 하나가 거기서 기어나오기 때문이다. 스프링의 반발력과 같다. 에너지는 기어나오려는 상태다. 그러므로 방향이 있다. 에너지에 대한 보다 진전된 개념이다. 신은 주사위를 던져야만 한다. 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주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작은 것은 점이다. 점은 크기가 없으므로 숫자 0과 같아서 아무리 더하고 곱해도 0이다. 그러므로 점으로는 우주를 지을 수 없다. 하느님 할배라도 안 되는건 안 되는 거다. 초끈이론은 점의 깊은 허무에 좌절한 과학자들이 선을 대타로 세운 것이다. 구조론은 대칭을 쓴다. 존재의 최소단위는 작은 알갱이 입자가 아니라 대칭으로 이루어진 쌍이다. 구조론은 마이너스다. 쌍이 해체되어 1+1로 전개하면서 물질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하나인데 둘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모형은 시공간의 바다에 당구공처럼 생긴 소립자가 떠 있는 모형이다. 구조론은 에너지가 깨지면서 당구공이 나타나고 시공간은 그때 연출된다. 컴퓨터 게임이면 아바타가 가는 곳이 밝아지면서 맵이 드러나는 것과 같다. 다른 점은 예측가능성이다. 시공간을 보고 물질의 위치를 예측하는데 물질이 시공간을 연출한다면 예측은 불가능해진다. 과연 예측가능한가? 천재와 바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당연히 천재가 이긴다. 우리는 승부를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은 천재가 진다. 왜냐하면 천재는 손자병법을 쓰기 때문이다. 손빈이 제나라 장군 전기의 빈객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말 세 마리가 차례로 나서는 경마시합에서 첫 번째 게임을 져주고 나머지 두 게임을 잡는 2승 1패 전술로 돈을 쓸어담았다. 삼사법三駟法이라 한다. 첫 게임은 자신의 3등말을 상대의 1등말과 붙인다. 두 번째는 자신의 1등말을 상대의 2등말과 붙이고, 세 번째는 2등말을 3등말과 붙인다. 프로야구라면 KBO의 한국시리즈 첫 게임은 무명의 신인을 내세워 상대팀을 헷갈리게 한다. 첫 게임을 지지만 운이 좋으면 이길 수도 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확실히 이긴다. 김성근 감독이 큰 경기에서 첫 게임을 지는 일이 많았는데 삼사법을 쓴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기려면 져야 한다는 모순 때문에 우주는 확률로만 접근이 가능하다. 거시세계는 많은 확률이 집적되었으므로 항상 이길 자가 이긴다. 그러므로 예측이 가능하다. 미시세계는 다르다. 의도적인 우연이 있다. 상대의 예측을 빗나가게 한다. 컴퓨터와 바둑을 둔다면 컴퓨터의 계산에 없는 수를 내밀어야 한다. 바둑판 귀퉁이 엉뚱한 데를 놓아서 컴퓨터를 헷갈리게 하면 이긴다. 의도적인 비합리성이다. 길을 가다가 벽을 만나면 왼쪽으로 방향을 틀까 아니면 오른쪽으로 틀까? 50 대 50이다. 그런데 적을 헷갈리게 하려면? 되도록 무질서한 선택을 해야 한다. 적이 이쪽의 결정을 예측한다면 패배하기 때문이다. 신은 상대가 예측하지 못하도록 주사위를 던져야 한다.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 안에 숨어 있어야 한다. 룰을 정해놓고 싸우는게 아니라 싸우면서 룰을 만들어간다. 정치판이 그러하듯이. 뉴턴은 기계론-결정론적 세계관을 열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세계를 전복시켰지만 큰 틀에서는 뉴턴을 벗어나지 못했다. 양자역학은 확실히 뉴턴을 엎어버렸다. 길을 따라 가는게 아니라 가면서 길을 만들어낸다. 시간도 공간도 물질도 없었을 때 에너지가 있었다. 에너지가 깨지면 물질이 되고 시간과 공간은 부산물이다.
우주 만들기는 신나는 일입니다. 에너지에다 일정한 조건과 반복을 부여하면 짜잔하고 우주가 만들어집니다. 모니터로 출력해볼 수 있습니다. 그 우주는 컴퓨터 게임 상의 우주일 수도 있고, 골목에서 꼬마들의 놀이일 수도 있습니다. 우주의 다른 점은 모든 세포가 DNA를 갖추고 있듯이 전부 내장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밭이 있고 농부가 쟁기를 들고 밭으로 가는게 아니라 밭을 스마트폰 안에 내장하고 다닌다는 거지요. 발상의 전환입니다. 창조경제 하기 전에 일단 각자 자기 우주부터 하나씩 창조하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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