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를 하나의 사건 안에서 통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별개의 두 가지 에너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위치에너지는 받침목을 제거하는 마이너스로 통제된다. 운동에너지는 외부에서 장치를 투입하는 플러스로 통제된다.
운동에너지를 이용하려면 별도의 장치를 추가해야 한다. 장치를 설치하면 운동에너지가 위치에너지로 바뀐다. 마이너스냐 플러스냐다. 마이너스가 정답이다. 플러스는 무조건 틀린 것이다. 많은 오류는 플러스로 가는 규칙위반에 의해 일어난다. 1+1=2다. “아닌데? 1+1=3인데? 왜냐하면 내가 몰래 하나를 더 갖다놨거든.” <- 이거 반칙이다. 몰래 갖다놓기 없기다. 플러스는 반칙이다. 문장은 전제+진술로 조직되며 전제에 없는 것을 새로 더하면 논리위반이다. 일원론의 관점으로 이해해야 한다. 개별적으로 파악하지 말고 통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과학가의 태도이다. 통합하는 것은 사건이다. 사건을 규정하는 것은 의사결정이다. 하나의 사건 안에서 의사결정단위 중심으로 파악해야 한다. 1회의 에너지 투입이 1사건이다. 위치에너지는 1회의 에너지 투입으로 조작되나 운동에너지는 2회 이상이다. 에너지는 현상을 변경시킬 수 있는 물적상태다. 위치에너지만 에너지다. 운동에너지는 이미 이용되고 있는 상태다. 이미 현상이 변경되고 있다. 문장은 전제+진술로 조직된다. 에너지의 전제는 현상이다. 운동에너지는 이미 현상을 변경하고 있으므로 전제를 깨뜨리고 있다. 규칙위반이다. 운동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지만 사건을 새로 조직해야 한다. 의사결정을 새로 해야 한다. 운동하고 있는 물체의 힘을 쓰려면 상대적으로 운동하지 않는 바깥의 무언가를 동원해야 한다. 외부의 것을 끌어대므로 가짜다. 전제에 없는 것을 투입하므로 가짜다. 몰래 하나를 더 가져다놓고 1+1=3이라고 우기는 짓이다. 운동은 상대운동이다. 날아가는 총알이라도 총알 자신의 관점에서는 정지해 있다. 외부의 공간이 총알쪽으로 다가오는 거다. 그러므로 운동에너지를 쓰려면 상대적인 외부환경을 조직해야 한다. 외부환경을 조직하면 곧 위치에너지다.
◎ 에너지는 쓸 수 있는 물적 상태다. 에너지는 사건 안에서 작동한다. 하나의 사건이라는 닫힌계 안에서 관측해야 한다. 모든 오류는 에너지의 입력과 출력으로 이루어진 1회의 사건, 1회의 의사결정이라는 계를 허물기 때문이다. 닫힌계 안에서 사건을 유발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면 위치에너지다. 사건이 시공간 속에서 진행되는 모습이 운동에너지다. 엄격한 의미에서 에너지는 위치에너지 뿐이다. 운동에너지를 새로 조직하여 위치에너지로 바꿀 수 있으나 이는 별개의 사건이므로 구분해야 한다. 그 사이에 사건의 층위가 있다. 닫힌계로 이루어진 단위 사건 안에서 통짜덩어리로 이해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파악하려들므로 오류가 일어난다. 위치에너지는 에너지가 두 방향으로 꼬인 것이다. 그 중에서 한 방향을 버리는 방법으로 우리는 그 에너지를 사용한다. 운동에너지는 한 방향 뿐이라서 버릴 방향이 없다. 외부에서 개입하여 방향을 꼴 수 있지만 그것이 바로 위치에너지다.
◎ 위치에너지는 사용할 수 있다. 흐르는 물에 물레방아를 설치할 수 있다. 흐르는 물의 운동에너지를 물레방아의 위치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 에너지는 물레방아의 축에서 나온다. 물레방아의 축을 움직이는 힘은 위치에너지다. 실제로 쓰는 것은 언제라도 위치에너지인 것이다. 운동에너지를 위치에너지로 바꿀 수 있지만 하나의 사건은 아니다. 하나의 사건이 아니면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메르스 사태가 확대되자 박근혜가 일본과의 위안부 문제 협상에 진전이 있다고 발표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메르스 덕분에 위안부 문제가 진전된 것인가? 메르스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이런 식의 무리한 전개가 논리규칙 위반이다. 메르스와 위안부 사이에는 아무런 사건의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위안부 문제에 진전이 있었다면 원인은 메르스로 인해 지지율이 떨어진 박근혜를 국민이 압박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압박이 사건의 원인이다. 인과법칙은 반드시 하나의 사건 안에서 추적되어야 하며 애초에 주어진 전제에 무언가를 추가하면 안 된다. 세상은 마이너스로 풀어야 한다.
에너지는 '안에서 일한다'는 뜻입니다. 안에서 작동하는 위치에너지만 에너지이고 밖에서 작동하는 운동에너지는 에너지가 아니라 에너지의 전달인데, 논리학을 안 배운 무개념 과학자들이 대충 에너지라고 이름을 붙여버리는 바람에 혼선이 빚어졌습니다. 사실 아무데나 에너지라는 표현을 붙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석유에너지. <- 이런 표현은 잘못된 겁니다. 석유는 에너지가 아니라 그냥 석유죠. 석유를 태워서 에너지로 바꿀 수 있으므로 에너지라고도 하는 겁니다. 대충 말은 되는데 구조론에서는 이를 엄격히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
그동안 수도 없이 반복해서 말한 것을
모르겠노라고 하면 설명해줘도 역시 모를건데 난감하네요.
여기서 '꼬임'으로 검색하면 15개 게시물이 검색됩니다.
'세상은 마이너스다.'에는 책 한 권 전부가 이 내용입니다.
이 내용을 이해하면 구조론을 다 이해한 것이며
반대로 이것을 이해 못하면 구조론은 포기하는게 맞습니다.
이건 뭐 너무 단순해서 이해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겁니다.
사람이 눈으로 본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에게 간단한 사물을 보여주고
똑같이 베껴서 그대로 종이에 그리라고 해도 못 그립니다.
그런데 종이에 그려놓은 그림은 베낄 수가 있습니다.
3차원을 2차원으로 옮기지 못하는 거에요.
고등학생들에게 어떤 물체의 앞면을 보여주고
정확히 대칭된 뒷면을 그리라고 하면 의외로 다수가 못 그립니다.
자기 눈으로 본 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은 포기하는게 맞죠.
워낙 단순한 내용이라 사실 설명하고 자시고 할게 없어요.
지구 중력을 그려보라고 하면 몇 사람이나 그릴까요?
그리지도 못하면서 지구 중력을 이해했다고 말하면 한 대 맞아야죠.
그림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사실 이해한게 아니죠.
지구가 둥근지 모르는 사람에게 둥글지 않고 어떻냐며 그려보라면?
고등학생에게 이 물체의 뒷면을 그리라면 그릴 사람이 몇일까요?
초딩도 그릴 수 있는데 고딩이 되어서도 못 그리는 사람은
구조론을 어차피 못 배운다고 봅니다.
이건 말로 설명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그런데 마음만 먹으면 쉽게 그릴 수 있습니다. 지적 용기가 필요한 거죠.
답변 감사합니다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꼬임에 대한 글 의미를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의자의 윤곽을 담아내는 배경을 말씀하고 계신것이 아닌지
다시 묻기가 조심스럽네요
구조론에서 쓰는 꼬임 혹은 엮임은 대칭을 우리말로 쓴 것입니다.
의자문제는 그냥 앞모습을 보고 뒷모습을 그리면 됩니다.
감사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영국이라 합니다
글 내용 중 말의 의미가 피부에 와 닿지 않아 질문드립니다
"위치에너지는 에너지가 두 방향으로 꼬인 것이다."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