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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080 vote 0 2015.05.13 (17:40:39)

 

   
    척 보고 아는 구조론적 센스


    맥주캔은 왜 원기둥 모양일까? 캔을 공모양으로 만들면 표면적이 줄어드니 알루미늄이 절약되고, 사각기둥으로 만들면 빈 공간이 줄어 상자에 더 많이 적재할 수 있다. 정답은.. ‘공장에서 생산하기 쉬우니까’다. 공모양이나 사각기둥은 만들기가 어렵다. 정치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다.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통제하기 쉬운 쪽으로 간다. 먼저 통제에 성공하고 난 다음 올바름을 추구해야 한다. 먼저 뼈를 취하고 난 다음에 살을 입혀야 한다. 먼저 다이어트 하고 옷을 사야 한다. 바둑의 수순과 같다. 먼저 대마부터 살려놓고 난 다음 집을 지어야 한다.


    ◎ 상황의 통제가 뼈, 이상의 추구는 살이다.
    ◎ 먼저 상황의 통제에 성공한 다음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는 수순대로 가고 있는가? 개판이다. 보통 상황의 통제는 보수로 치고, 이상의 추구는 진보로 친다. 무식한 거다. 진보든 보수든 상황의 통제가 먼저다. 이건 이념과 무관하다. 외출하기 전에 먼저 밥을 먹고 다음 옷을 갈아입는다. 진보는 뭐 옷갈아 입고 밥을 먹나?


    진보도 공부해야 한다. 진보는 양심이 바르니까 무식해도 된다는 생각이 고약한 거다. 서로간의 의견차이로 보여지는 많은 부분이 사실은 무식해서 일어난 해프닝이다. 기본이 안 되어 있다. 진보가 현장과 거리가 먼 강단에 안주하다보니 현실감각을 잃어먹었다. 현장을 익혀야 한다.


    생각없이 하던 짓을 반복하는 관념진보 특유의 보수적 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구조론은 뼈다. 어디를 가나 뼈가 있다. 뼈는 에너지가 가는 통로다. 건물이면 대들보가 중력을 지탱하는 뼈다. 자동차라면 파워트레인이 뼈다. 자전거라도 체인에서 바퀴로 동력을 전달하는 뼈가 있다.


    디자이너가 손댈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뼈라 해서 동물의 등뼈나 갈비뼈를 떠올릴 필요는 없다. 겉으로 내세우는 구호 말고 밑바닥에서 돌아가는 본질이 있다. 그것이 뼈다. 에너지가 드나드는 입구와 출구가 있다. 에너지는 유체의 꼴을 하고 있으므로 반드시 강약조절기능이 있다.


    어떤 것이든 '원래 그렇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뭔가를 모르는 사람이다. ‘조절하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뭔가를 아는 사람이다. ‘넌 이래서 안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답을 모르는 하수이며 ‘넌 이걸 조절해주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뭔가를 아는 김성근이다.


    경상도는 어떻고, 전라도는 어떻고, 조선족이 어떻고, 다문화는 어떻고 하며 떠드는 차별주의자들이 있다. 그들은 ‘원래 그렇다.’고 말한다. 속성이 그렇다는 거다. 조절방법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는다. 누구든 3분만 대화해보면 그 사람이 아는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인지 판가름이 난다.


    에너지의 출입구가 있으며, 조절장치가 있고, 그곳을 못 찾은 사람은 대사회적인 발언권이 없다. 조절장치를 못 찾은 사람은 부화뇌동하는 군중의 포지션에 서 있다. 조절장치를 찾은 사람이 사회를 향해 발언할 권한이 있는 선각자다. 생각해봐야 한다. 당신의 조절장치는 무엇인가?


    조절장치는 ‘질, 입자, 힘, 운동, 량’ 중에서 질 포지션에 있다. 질은 형태가 결정되기 전인 유체의 성질을 가지므로 조절장치가 있다. 형태의 결정이 가장 중요하므로 질의 단계에서는 형태가 결정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 일찍 직업을 정하는 독일식 교육은 좋지 않다.


    나중에 그 직업이 사라져 버리는 수가 있다. 조절이 안 된다. 입자는 조절장치가 없다. 사람들은 대개 입자 위주로 생각한다. 입자는 패턴이 반복된다. 자연의 자연상태는 반복되는 상태가 아니다. 반복된다면 정해진 궤도 안으로 진도가 상당히 나간 거다. 신제품이 아니라 중고품이다.


    다윈은 진화론을 주장했지만 진화의 뼈를 찾지 못했다. 진화의 뼈는 유전자다. 다윈은 엉뚱한 데를 조사하고 다닌 거다. 진화는 유전자로 다 조절된다. 종의 기원 필요없고 신종도 만들어낼 수 있다. 종이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종에 대한 집착은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때문일 수 있다.


    종은 입자다. 입자는 반복되므로 출발점이 될 수 없다. 왜곡된 것이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역시 정신의 뼈를 찾지 못했다. 정신의 뼈는 뇌과학인데 엉뚱한 데를 뒤지고 다녔다. 다윈도 그렇고 프로이드도 그렇고 말이 많고 산만하다. 결정적인 한 방이 없다. 조절실패 이론실패다.


    케인즈에게는 있는게 다윈에게는 없고, 프로이드에게도 없고, 마르크스에게도 없다. 그들은 조절장치를 찾지 못했다. 마르크스는 때려부수는 혁명의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입자 위주의 사고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반드시 조절장치가 있어야 한다. 창조론도 그렇다.


    창조는 조절장치가 없다. 애프터 서비스가 없다. 피드백이 없다. 가짜다. 역사의 발달은 조절장치를 찾아가는 형태로 일어난다. 처음에는 조절개념이 없이 무작정 돈을 벌고 보자는 중상주의가 득세했다. 실패하자 자연의 조절에 맡기자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각광을 받았다.


    미쳤지. 자연이 뭘 조절해? 그럴 리가 없잖아. 사실 자연도 조금 조절하기는 한다. 홍수가 나면 둑을 쌓는다는게 중상주의다. 이 방법은 작은 수해에 먹힌다. 큰 홍수가 나면 그 둑이 터져서 도시를 쓸어버린다. 괜히 둑 막았다가 더 손해봤다. 그냥 놔두는게 차라리 낫다. 포기하자.


    그러나 포기는 답이 아니다. 귀농한다는 사람 중에 그런 말이 있었다. 가만 내버려 두는 농사법으로 해보겠다는 식이다. 장난하나? 내버려두면 허약한 곡식이 잡초의 왕성한 생명력을 이길 수 없다. 인간이 재배하는 곡식은 1만년 전부터 종자개량을 해서 자연으로부터 크게 멀어졌다.


    경쟁하면 곡식이 잡초를 이길 수 없다. 자유경쟁, 시장만능은 무모한 발상이다. 귀농한다는 진보주의자가 이런 조중동이 할 소리를 하고 있으니. 농부는 절대로 곡식을 보호해야 한다. 정답은 일원론이다. 운하를 파서 일원론으로 해결한 것이 우임금의 치수다. 개입주의는 물에 대항한다.


    물의 진행방향에 맞서 대칭을 세우는 것이다. 패배한다. 대칭행동 하지마라. 진리는 비대칭이다. 우임금의 운하는 물과 같이 간다. 물의 에너지에 대립하여 맞서는 것이 아니라 물의 치고나가는 에너지를 오히려 치수에 이용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일원론이 정답이다. 우임금이 성공했다.


    ◎ 이원론 - 대칭방향 개입은 실패한다.
    ◎ 다원론 - 묻지마 자유방임정책은 실패한다.
    ◎ 일원론 - 개입하되 자연과 같은 방향이어야 한다.


    인간은 자연에 개입하되 자연이 가는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원론은 역방향 좌석이므로 실패한다. 힘으로 힘을 막는 어거지 방법이므로 실패한다. 둑을 쌓는 플러스는 실패한다. 운하를 파내는 마이너스가 성공한다. 에너지와 유체는 언제나 마이너스에 의해서만 제어된다.


    여기서 패턴의 발견이다. 중상주의 시대의 개입주의≫애덤 스미스의 방임주의≫케인즈의 관리주의다. 프로야구도 비슷하다. 감독의 권위로 무작정 휘두르다가 자율야구로 내버려두다가 다시 관리야구로 회귀했다. 그 안에 두 번의 방향전환이 있다. 뭐든 두 번 방향바꿔 원위치 된다.


    ◎ 개입주의.. 부모가 자식을 키운다. (혼자 독단한다.)
    ◎ 방임주의.. 청년이 독립하여 경쟁한다. (주변의 눈치를 본다.)
    ◎ 관리주의.. 프로가 철저하게 시스템화 한다. (팀을 꾸린다.)


    예술도 이 패턴으로 간다. 처음에는 좋은 스승을 만나 배워야 한다. 스승에게 복종해야 한다. 조금 되다가 한계를 만난다. 독립하여 자기만의 캐릭터를 찾아야 한다. 다른 음악가들과 교류하고 경쟁한다. 일정 수준에 오르면 다시 시스템화 해야 한다. 손발이 맞는 드림팀 띄워야 한다.


    스승의 그늘에서 독립하지 못해도 망하고, 독립하여 혼자 떠돌아다녀도 망하고, 드림팀을 만들어야 성공하는 거다. 권위주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유주의 혼선을 극복하고 또다른 지평을 열어야 한다.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면서도 실무는 전적으로 리더의 지휘를 따르는 것이어야 한다.


    독재는 개입주의로 망하고 야당은 방임주의로 망한다. 무엇이 다른가? 조절장치가 다르다. 개입주의와 방임주의는 조절장치가 없다. 개입주의는 부모가 자식을 마마보이로 만들고, 방임주의는 부모자식 관계가 끊긴다. 조절기능이 없다는건 에너지가 없다는 의미다. 가짜라는 말씀.


    에너지없이 존재없다. 어느 분야든 조절장치를 찾기 전에는 그것을 이론이라고 주장하면 곤란하다. 그럴듯한 아이디어라도 조절장치가 없으면 미완성이거나 반제품이다. 프로이드로 보자.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이라면 조절장치가 없잖아. 아이디어는 좋으나 우리가 찾는 답은 아니다.


    트라우마는 말하자면 방아쇠와 같다. 방아쇠만 있으면 총알이 나가나? 장약이 있어야 한다. 장약을 셈하여 사거리를 조절할 수 있다. 과거는 핑계이고 정신의 많은 문제들이 현재와 미래에 숨어 있다. 영장이 나왔는데 입영하기 싫으니까 과거의 트라우마가 도지는 식이다. 계산 있다.


    과거 놔두고 현재와 미래를 풀어야 한다. 그곳에 억압이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일관성 문제 때문에 정신의 많은 문제가 일어난다. 과거에 시작된 사건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거기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다. 우리애가 어떻다 하는 사람들 부모가 문제다.


    진리의 파악에 있어서 뼈는 인간의 사회성이다. 인간의 사회성이 진리를 보지 못하게 차단한다. 사회 안에서 역할하려 들므로 남을 차별하고 증오한다. 본질은 사회에 긴장된 공기를 주입하여 에너지를 태우려는 거다. 에너지가 있는 사회, 조절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려 하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을 하든, 축제를 하든, 푸닥거리를 하든, 스포츠를 하든, 전쟁을 하든 한 방향으로 에너지를 분출시켜 주면 사람들이 말을 잘 듣는다. 꼴통들도 고분고분해진다. 그래서 히틀러가 전쟁을 한 거다. 조절장치는 바깥에 있어야 한다. 컴퓨터의 스위치가 안쪽에 내장되어 있다면?


    켜고 끌 수 없다. 입과 항문은 바깥에 있다. 조절을 하되 바깥으로 치고나가는 외교로 풀고 세계화로 풀어야 하는데 내부에서 조절하려 하니 풍선효과라 이곳을 누르면 저곳이 나온다. 이곳을 누르면 해결되는데 저곳이 튀어나오니 저곳이 없어저 버렸으면 좋겠다. <- 이게 차별주의다.


    모든 차별주의는 사회의 에너지 조절장치로 써먹으려는 의도를 감추고 있다. ‘난 쟤가 싫어. 왕따 시키자.’ <- 사실은 그 수법으로 동료를 규합하고 패거리의 결속력을 조절하는 장치로 써먹으려는 꾀를 냈다. '쟤가 싫다'는 건 표면의 의식이고, 뇌 안의 무의식에서 다 계산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이유없이 종북이가 싫다면 '요걸로 선거 이기자'는 계략을 쓰고 있는 것이며 당신이 의식하든 못하든 당신의 뇌는 잔대가리 굴린 거다.


    세상 모든 것은 뼈가 있고, 뼈는 유체 속에 있고, 반드시 조절장치가 있고, 조절은 마이너스로만 가능하며, 그 조절장치에서 힘의 방향이 두 번 꺾여서 원래대로 돌아간다. 그러나 애초의 방법과 두 번 꺾여서 다시 온 방법은 다르다. 개입주의≫방임주의≫관리주의로 가는 패턴이다.


   DSC01488.JPG


    입자는 딱딱하므로 쳐부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너죽고 나죽기로 됩니다. 막 가는 거죠. 양차세계대전으로 1억명이 죽었습니다. 20세기의 실패는 입자적 사고의 폐해, 대칭적 사고의 폐해, 이원론적 사유의 실패입니다. 질은 말랑말랑하므로 조절이 가능합니다. 반죽이 되다 싶으면 물을 한 컵 투척하세요.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조절됩니다. 남녀가 결혼하면 입자가 됩니다. 남편과 아내로 역할이 고정된다는 거죠. 입자는 패턴의 반복입니다. 남편역할의 반복, 아내역할의 반복입니다. 망하는 수순 들어갔습니다. 결혼후에도 연애때처럼 역할을 나누지 말고 말랑말랑한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반복하면 익숙하므로 편하지만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그것은 딱딱해진 것이며 죽은 것입니다. 

    구조론은 간단히 결혼이 시작이 아니고 연애가 시작이라는 겁니다. 당연한거 아닙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이 입자에 집착하는 이유는 입자는 이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남편이다 아내다 하는 이름이 있는 거죠. 연애 때는 그 이름이 없습니다. 인간은 확실한 이름이 없으면 생각을 못합니다. 모형적 사고를 훈련해야 합니다. 모형적 사고는 좌표와도 같습니다. 데카르트가 발견하기 전에는 생각 못한 거죠. 입자와 질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입자는 그냥 홍길동이면 홍길동, 김갑순이면 김갑순인데 좌표는 이름이 없이 X축과 Y축을 말해줘야 합니다. 세상은 질로 되어 있고 질은 좌표라는 개념을 떠올리고 항상 좌표로 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원론-개입주의는 좌표를 이루는 두 축을 별도로 보고 다원론-방임주의는 좌표 안의 공간을 대충 보고 일원론-관리주의는 좌표 하나로 통일시켜 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무득

2015.05.14 (10:09:16)

트라우마는 말하자면 방아쇠와 같다. 방아쇠만 있으면 총알이 나가나? 장약이 있어야 한다. 장약을 셈하여 사거리를 조절할 수 있다. 과거는 핑계이고 정신의 많은 문제들이 현재와 미래에 숨어 있다. 영장이 나왔는데 입영하기 싫으니까 과거의 트라우마가 도지는 식이다. 계산 있다.

 

현재와 미래에 숨어 있는 그것도 과거의 트라우마가 작동하여 판단 행동 되어진다는 것이 프로이드 이론인데

에너지 공급원인 현재와 미래가 과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유입되어야 하는 것에 대해 좀더 설명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5.05.14 (10:24:28)

총기난사범도 과거탓 하지만 다 거짓말입니다.

쌍팔년도에 군생활 하면서 개고생한 선배들도 멀쩡하게 다 잘 삽니다.


그렇다면 이 넘은 왜 총기난사를 했는가? 

유승준 MC몽 때문에 상태가 안 좋은 자들이 현역입영한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인데 뇌에서 사회의 어떤 약한고리를 발견하고 

이걸 사회에 보고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거죠.


이 사람에게 부여한 뇌의 임무는 친구를 사귀고 사회의 중심으로 나아가라는 건데

보통 반대로 해석합니다. 오히려 친구를 괴롭히고 친구를 죽이죠.


정신병자들은 가까운 사람을 해칩니다. 그 이유는 가까운 사람을 사귀라는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북한도 남한과 사귀고 싶으니까 해치는 거죠.


총기난사범은 상태가 안 좋은 사람을 현역입영시키는 사회모순을 발견하고

그걸 사회에 보고하라는 뇌의 명령을 받고 흥분한 겁니다. 


원래 임무를 받으면 흥분하는게 인간이죠. 띨한 자들이 흥분하면 남을 해칩니다.

일베충이나 까스통할배도 사회모순을 발견하고 흥분한 거에요.


일베충이 흥분한건 남녀성비불균형, 20대 취업난 이런 겁니다.

까스통할배도 한국노인들의 노후불안문제를 사회에 보고할 의도가 있죠.


옛날에는 자식이 다섯이라 돌아가면서 노인을 모셨는데 이제는 한 명인데 안모셔.

사회모순을 발견했지만 그것을 설명할 정도로 똑똑하지 않다는게 문제.


에너지 공급원은 현재의 모순입니다. 그 모순은 항상 사회에 있습니다.

총기난사범이나 IS는 사회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습니다. 


그 사람들의 진짜 의도는 사람을 사귀고 사회의 중심으로 나아가서

자신이 발견한 사회모순을 모두에게 보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 능력이 안 되므로 관심끌기 퇴행행동을 합니다.

원인이 자신의 과거에 있다는건 거짓말이고 현재에 있고 사회에 있습니다.


잘못된건 개인의 과거가 아니라 집단의 현재라는 거죠.

트라우마는 사회에 말을 거는 방법으로 고안된 핑계입니다. 


트라우마는 핑계이기 때문에 정신과의사와 상담해도 해결이 안 됩니다.

그래도 조금 해소는 되는데 그 이유는 사회에 보고했으니까 할 일을 한 거죠. 


권위있는 자가 이야기를 들어주면 상당히 해소가 됩니다.

훈민정음 해례본 훔친 자도 박근혜가 만나주면 당장 해결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무득

2015.05.14 (15:55:24)

답변 정말 감사합니다.

요즘 글을 보면서 그동안 프로이드 이론을 어느 정도 수용하였는데(물론 프로이드 이론에 반박한 빅터 플랭클 이론을 더 중요시 하지만)  수정중에 있고, 사회 현상(사건)을 보는 새로운 안목이 생기는 것 같아 좋습니다.

 

1.

자체가 잘못된 것인데 뇌에서 사회의 어떤 약한고리를 발견하고

이걸 사회에 보고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거죠.

2.

이 사람에게 부여한 뇌의 임무는 친구를 사귀고 사회의 중심으로 나아가라는 건데

보통 반대로 해석합니다.
3.

북한도 남한과 사귀고 싶으니까 해치는 거죠.

4.

원래 임무를 받으면 흥분하는게 인간이죠. 띨한 자들이 흥분하면 남을 해칩니다.

일베충이나 까스통할배도 사회모순을 발견하고 흥분한 거에요.


이런 사실은 대부분 사람들이 인지를 못하거든요.

저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해매는 것이고 이러한 것이 교육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단 것이죠?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5.05.14 (16:04:54)

상태가 안 좋은 분들은

사회의 권위있는 사람이 찾아가서 


직접 이야기를 들어주면 상당히 해소가 됩니다.

단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당의 장엄한 의식이 필요한 거죠.

신부님이 고해성사를 들어주면 되는데 


그 신부님이 권위있는 신부님이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사회의 중심으로 치고들어가고 싶어하지만


사실은 동시에 그것을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능력이 안 되니까. 

그래서 사회의 중심으로 가면서도 가지 않는 방법을 찾는데


그것은 신과 직통전화 라인을 개설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을 잘 쓰는 사람은 클린턴인데


공화당 국회의원도 클린턴이 전화하면 좋아합니다.

이걸 다른 말로 설렁탕이라고 하는데


노무현은 까짓거 설렁탕을 사줘버려야 한다고 제가 예전에 말했지요.

문재인도 설렁탕을 사줘야 주승용 천정배들이 해결됩니다.


다른거 없고 직통전화 라인을 개설하는 겁니다.

푸틴도 이걸로 재벌을 통제하고 있는데 그거 써먹을 데 없지만 


다들 애착을 갖고 있죠. 이건 심리적으로 사람을 조종하는 거에요.

노무현이 독대를 하지 않은 것은 많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한 겁니다.


민주화 시대에 무슨 제왕적인 독대냐고 하겠지만

민주화 시대에 적응한 시민이 우리 사회에 몇 퍼센트나 되겠냐고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9]무득

2015.05.14 (16:44:09)

권위!!

공감합니다.

사람은 신뢰할 수 있고 뭔가 있는 사람을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의사가 하면 통하고 보통 사람이 하면 안되는 것처럼요.

같은 제품 성능이라도 광고를 하면 권위를 갖게되고,

유명인이 사용하면 권위를 갖게되고,

초딩들은 권위로 해결하고,

 

자력을 갖춘 사람은 그 권위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구조론.

그래서 신의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것.

 

이제 조금 이해가 됩니다.

 

[레벨:4]혜림

2015.05.15 (11:36:01)

트라우마에 대해 두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예를들어, 과거에 트라우마 때문에 난 이 음식을 절대 먹지 못해, 라고 말하며 자신의 민감함에 대해 강조하는 사람의 경우... 이런경우는 어떻게 설명이 될까요.
현재의 상대방보다 심리적으로 우위에 있으려는 목적? 혹은 현재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불안이 여러 민감한 반응들로 나타나는 것일까요?

또한 과거에
비교적 강한 충격을 입었던 경우,
상실, 살인의 목격 등과 같은,
그런경우에도 위에 설명과 같이 적용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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