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아들님 글에서 발췌합니다.
님은 구조론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려고 하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획의 중심이니 그가 곧 줄기에요. 하나님의 계획은 예수님을 언약속에서 인류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곧 언약의 뿌리에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줄기로 나오신것입니다. 이 줄기에 가지들 곧 인류가 접붙임을 입게 되는데 이것을 설명하는것이 바울사도님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이 특정지목되어서 예수역할을 한 것이 아닙니다. 개체에 절대적 운명론 따위는 없는 겁니다. 운명론을 들이댈려면 시스템에 들이대야죠.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에 일정한 절차와 순서가 있고 그것에 종속되서 개체(배우)가 수행해야할 역할이 포지션으로 나타납니다. 그 포지션에 누가 들어갈지는 개체(배우)가 정하는 것이죠.
야구경기를 할때 류현진이 투수의 운명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투수포지션을 만들어 낸 것도 아닙니다. 투수포지션이 먼저 있고 여기에 류현진이 들어가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계획(뼈)이 먼저 있었고 그 계획의 일부로서 예수포지션(뼈)이 생긴겁니다. 그 자리에 예수님(살)이 쏙 들어가버린것이죠. 예수님을 특정해서 계획한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구조론창시도 마찬가지죠.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구조론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면 창시자 포지션이 생긴겁니다. 그 포지션에 김동렬님이 쏙 들어간거죠. 태초에 그런 운명이였다? 아닙니다. 예수도 그런 운명이 아니고 본인이 결정해서 들어간 것이며 동렬님도 아무도 안하는 것 보고 먼저 들어간거죠.
시간을 정지시킨 공간만 보고 빈 포지션을 찾으니 현재 청년들이 괴로운 겁니다. 공간상에 빈 자리는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빈자리가 생기죠 그 자리를 알아보고 들어가야 합니다. 바울처럼 공간만 보고 새 포지션은 없다고 우기면 그 이후는 다 틀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접붙임 같은 헛소리까지 지껄이게 되는 것이죠. 뭔 접붙임입니까? 이미 신이 낳았구만. 여기 하나님의 아들 아닌자가 어디 있습니까? 너는 아니다라고 해야 자기만 하나님아들 됩니까? 왜 아직도 집밖을 두려워하고 안나오느냐 말입니다. 신은 하나님 아버지는 지금도 일하러 길위에 계시다구요. 집안에 안 계시고요..이 집에도 없고 저 집에도 안계십니다. 길위에 계십니다.
빛의 아들님은 대화의 상대방으로서의 핑계이구요..
무득님처럼 관람자를 낚을 의도로 대화하는 척 한 겁니다.
원래 자기 장기수는 잘 안보이지만
옆에서 남이 두는 것 보면 길이 잘 보이잖아요...
무득님이 배우셨다니 다행입니다. ^^
죄송한 비유이지만
빛의 아들님과의 대화를 탈출도구로 써서
무득님이 똥통에서 탈출하신 것...이중관절
야바위도 마찬가지죠..
가짜손님이 이기는 모습을 보여줘야
호구가 걸려들듯이..
대화나 싸움은 그것이 본질이 아니고
관람객을 낚으려는 떡밥...
사람은 어떤 상황에 반응을 하는데 대체적으로 두가지로 나뉩니다.
짜증을(상처를 받으면서) 내면서 반응하는 상황과 그렇지 않으면서 반응하는 경우입니다.
빛의 아들님의 글을 읽으면서 제자신이 답답하고 짜증이 막 올라왔습니다.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지요.
내 이론은(기독교) 옳다. 구조론도 옳다. 그러니 서로 연결지을 수 있다.
이면에는 하나님을 믿으니 죽어서 천당 갈 수 있어 좋코, 구조론을 믿으니 진보인의 위치에 서있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죠. 즉 삶과 죽음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고 하니 환장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포지션을 나누는 거죠]
숨어있는 전재를 잘 밝히셨네요.
이분법으로 나누는 종교는 독약입니다. 모든 정상적인 생각들을 마미시켜 버립니다.
마비 된 상태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쓰레기일 뿐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독약을 마신 사람은 자신이 독약을 먹었다는 자체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동렬님 말때로 대화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마비된 사람은 획일적으로 가기 때문에 본인은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안타까운 것이죠.
마비된 사람은 구조론과 계속 대칭시켜서 본인의 위치를 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과거 제가 어떤 실수를 하고 있었는지 빛의 아들님 때문에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맞소.
대화가 안 되는 사람들은 대개
본인은 그게 행복하기 때문에 대화가 호응이 안 되는 겁니다.
꼬맹이와 대화를 해보면 알게 되는게 상대방 말을 전혀 귀담아 듣고 있지 않아요.
그러면서도 '왜요?' 하고 장단은 또 잘 맞춥니다.
하루종일 설명해주면 역시.. '왜요?'
무의미한 반복.. 근데 꼬맹이는 신났어요. 그게 즐거운 거죠.
도박중독자들도 그게 좋아서 하는 거죠. 어차피 오링될거지만 지금은 좋아좋아.
뇌에서 호르몬은 나와주니까 좋죠.
게임이죠.
대화내용과 상관없이 그 상황을 즐기는 거.
어쩌면 그들은 득도한 사람들.
웃겼습니다. 저 득도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항상 생각하고 살았지요^^ 어쩜 그렇게 내 속마음을 아실까....
깜딱 놀랐습니다. ㅋㅋ
상동님은 인류를 통째로 보고 설명하고 계시지만....전 인류를 양분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참감람나무 가지의 존재들과 돌감람나무가지의 존재들 샘의 후손들과 가인의 후손들
이삭의 후손들과 이스마엘의 후손들 사울의 후손들과 다윗의 후손들
바로의 후손들과 모세의 후손들
욥의 후손들과 사단의 후예들.......
내 아들은 웅비 하나고 나머지는 다 남의 자식들
단지 내자식이 귀한만큼 남의 자식도 귀하다는것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인과 기독교가 아닌 종교를 가진 분들.....
세상을 보십시요. 기독교와 기독교가 아닌 종교만 이세상에 존재한다는것을 아십니까?
기독교가 아닌 종교들은 모두 하나라고 말합니다. 통합을 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만이 배타적으로 말합니다. 우리는 너희와 통일할수 없다고...
이건 어쩔수 없는 것입니다.
접붙임이 왜 나오냐구요? 하나님이 토기장이이시니까! 돌감람나무가지를 꺾어다가
참감람나무 줄기에 접붙일수 있는 분은 과수원지기입니다. 토기장이 입니다. 농부입니다.
돌감람나무 가지가 스스로 참감람나무 가지에 접붙일수 없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할수 없습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할수 없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너희가 하는게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인간이 내가 할수 있다고 말하는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은 없고 내가 신이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할수 없습니다. 키도 내맘대로 자라게 할수 없고 머리카락도 내맘대로 안자라게 할수 없고
눈섭도 내맘대로 기를수 없고 대머리도 내맘대로 대머리를 막을수 없는것이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하실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인의 고백입니다. 토기장이의 권세에 나를 맡겨 나를 사용하십시요!
나를 하나님이 쓰시기에 좋은 그릇으로 만들어 주십시요. 어떤 그릇을 만들든지 저는 감사하며 그 뜻에 합당하게 살겠습니다. 라고 말하는것이 기독교인이 할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단, 하나님이 질그릇같은 우리에게 한가지 자유를 허락했습니다. 하나님을 따를것인지 하나님을 따르지 않을것인지..
그것이 자유입니다. 내가 신이 되든지 아니면 신에게 나를 의탁하든지......내가 신이되려면 하나님을 버려야하고
신에게 나를 의탁하는것은 하나님을 통해서 진리를 깨닫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신이 되기 위해 하나님을 버릴수 없는 존재들이니 내가 신이 될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신을 통해서 신과 하나되어 신의 뜻을 행하는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일수 밖에 없습니다.
상동님은 기독교인에게 하나님을 버리고 당신이 신이 되라고 말합니다. 바울사도에게 예수그리스도를 버리고
예수그리스도가 되라고 하십니다. 바울사도나 나는 나를 살리는 뿌리와 줄기를 버리고 홀로 가지로 살아갈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뿌리와 줄기가 바로 내 생명의 근원이시고 그 생명의 근원과 하나되었기에 살아갈수 있는
존재들이 바로 기독교인이고 바울이고 나 빛의 아들인것입니다.
이걸 이해할수 없으면 더이상 나를 거론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내 말을 이해할수 없는 자와 무슨 대화를 하겠습니까?
상동님은 뿌리도 줄기도 가지도 다 혼자 다 가지십시요. 다 스스로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언약의 뿌리와 그 뿌리에서 나온 약속성취의 줄기 그 약속성취의 줄기에 붙어 그 생명을 이어가는
가지들이니 가지들에게 뿌리도 되고 줄기도 되고 당신이 언약의 당사자가 되고 언약의 성취자가 되고 언약의 수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라고 강요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언약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맺은것이고 신과 인간이 맺은것이 언약이고 이 언약의 약속의 핵심은 아들이고 그 아들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요 이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성취하시고자 하는 언약의 성취는 바로 온 인류를 이 아들의 줄기에 온 인류를 접붙이고자 하는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고 뜻이며 그것이 하나님이 언약하고 약속을 통해 아들을 주신 이유인것입니다.
접붙임을 우습게 여기지 마십시요! 기독교는 이 접붙임의 종교입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줄기에 붙어있어야 열매를 맺고 농부에게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가지에서 떨어지면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불쏘시게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상동님은 기독교가 무엇인지부터 아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보십시요. 기독교와 기독교가 아닌 종교만 이세상에 존재한다는것을 아십니까?
기독교가 아닌 종교들은 모두 하나라고 말합니다. 통합을 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만이 배타적으로 말합니다. 우리는 너희와 통일할수 없다고...
이건 어쩔수 없는 것입니다.
신천지가 들으면 어떨까요?
아닌뎅~ 실은 너희들이 사탄이고, 재림예수는 우리교주님인뎅. 144,000명과 나머지떨거지만 존재하는뎅
이슬람이 들으면 어떨까요?
이슬람교와 이슬람교가 아닌 종교만 이세상에 존재한는뎅
이분법적 사고는 기독교의 전유물 아닙니다.
은근슬쩍 기독교만 특별하다고 하지마세용. 이분법적 사고가 뭔 자랑이라고..
대화가 힘드시면 앞으로 님의 글은 인용하지 않겠습니다.
상동님 이만희는 누가 돈을 대서 그렇게 큰 종교단체를 만들었을까요?
이슬람교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님은 정말 세상보는 눈이없습니다.
이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가 다 기독교를 없애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슬람교도 천주교의 수도원에서 부터 기획되어지고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신라시대때 경교라고하여 기독교가 신라에 전파되었을때 불교도 같이 들어왔다는것을 아십니까?
결국 신라는 망하고 고려라는 국가가 불교국가로 전락했습니다.
우리민족은 샘의 자손 에벨의 후손 욕단의 자손들입니다.
이스라엘은 샘의 자손 에벨의 후손 벨렉의 자손들입니다.
우리나라의 국화는 무궁화입니다. 예수님은 샤론의 장미 무궁화입니다.
이스라엘의 전통 운동은 씨름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운동도 씨름입니다.
이스라엘은 음력을 썼습니다. 우리도 음력을 쓰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해서 오해를 하거나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알수가 없습니다. 그건 기독교만의 독특한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상동님은 악한영에 대해서 믿지 않겠지만 우리는 세상에 악한영과 하나님의 천사들이 있다고
믿습니다. 이만희는 악한영의 지배를 받는 자고 이슬람교도 악한영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도 악한영에 의해 지배받고 있는것이고 천주교도 악한영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악한영이 가장 싫어하는게 하나님과 그 자녀들입니다.
나에게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결국 우리는 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선하다고 판단합니다. 이것이 욥의 판단입니다. 그러나 선한것은 하나님 한분 뿐입니다.
저도 선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악을 선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선하지 않습니다.
악한자들은 법에 의해서 심판을 받기도 하지만 악한자가 지배할때는 법이 소용이 없을때가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가 법이 소용이 있을때입니까? 진짜 악한 놈들은 법의 지배를 받지 않고 법을 가지고 선한자들을
통제하고 지배하려고 합니다. 이게 세상입니다.
님이 보는 세상과 내가 보는 세상이 전혀다릅니다. 저는 구조론을 배우는 즐거움에 이곳에 오지만
구조론에 의해서 내 신앙이 바뀔수는 없고 내 생각이 바뀔수는 없는 것입니다. 구조론이 신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신앙이고 철학은 철학입니다. 전 철학을 좋아하고 철학을 공부합니다.
철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그 철학이 내 신앙이 될수는 없습니다. 모든 학문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아래서
이루어 지는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빛의 아들님...
같은 기독교인으로 참 부끄럽습니다.
님의 블로그 잠깐 훑어보았습니다.
나름 통찰이 있기는 한 것 같습니다.
님도 주류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네요.
하지만 여기서는 주류 기독교인과 전혀 다르지 않네요.
철학따로 신앙따로?
그게 있을 수 있을까요?
님은 하나님 한분만 선하다 라고 말하고 있고, 자신은 선하지 않다 라고 말하는데...
선하지 않는 님이 어찌 하나님을 선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선하지 않는 눈으로 선함을 어찌 밝혀낼 수 있을까요?
차라리 솔직하게 나는 하나님과 같은 눈을 가졌다 라고 말하세요.
이만희도 처음에 그랬을 겁니다.
나는 선하지 않으나 하나님 한분은 선하다.
그런데, 하나님이 선하다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나도 선한 존재 아닌가?
나와 하나님은 같은 눈높이를 갖고 있다.
우리가 셈의 자손이라고요?(샘이 아니라 셈입니다. 가끔씩 자주 틀리는 맞춤법...)
그래서요?
제발 기독교를 더 부끄럽게 만들지 마세요.
그 접붙임을 하나님은 뜻을 못이루셨는데 스티브잡스가 이뤄냈죠. 하나님 보다 스티브잡스가 위에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인류가 더 악해지길 원했는지도 모릅니다. 그 이유는..
옳게 대화를 하려면
대화가 안 된다는 점을 부단히 강조해야 합니다.
대화가 되는 척 하면 매우 위험해집니다.
수렁에 빠지는 거죠. 대화가 될 리가 있습니까?
인류전체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거기다 과거와 미래까지 연결시켜서
그 전체의 어우러짐에서 얻어지는 아이디어를 자기 언으로 표현하는 사람과
그냥 너는 너, 나는 나로 딱 구분해놓고 대결해보자는 식으로 나오는 초딩과는
원래 대화가 되면 안 되는 거에요. 그거 굉장히 위험합니다.
나무의 모든 가지는 뿌리에서 대지의 영양분을 공급받아 유지하는 거.
아이디어는 대지에서 나오는 거지 내 입에서 나오는게 아니죠.
'나는 이렇게 생각해.' <- 대화할 준비가 안 된 사람.
누가 네 생각 물어봤냐고. 진리 생각을 끌어와야 대화가 되는 거지.
뿌리는 같은데 한 가지가 다른 가지와 논쟁하는게 웃긴 현실.
대화를 하는게 아니고 사실은 포지션을 나누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