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장애아동은 도움을 받는데 익숙하다. 어쩔 때는 도움을 넘어 과잉간섭이 되기도 한다. 아이가 스스로 할 것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교과서를 제때 못 꺼낸다고 해서 덥석 책을 대신 꺼내주는 것은 좋지 않다. 장애아동에게 책꺼내야 한다고 알려주는게 자연스럽다. 못 꺼내면 "내가 꺼내줘도 돼지?"하고 양해를 구하고 꺼내준다. 체육시간에 나갈 때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아이를 잡아끌 것이 아니라 "00야, 체육시간이니까 나가자"라고 하고 같이 나가면 된다. 비록 피구 공을 잘 못던져도 던질 기회를 준다. 던지면 박수를 쳐준다. 티볼 배트질을 잘 못하길래 배트를 잡은 아이 팔을 붙잡고 타격을 도와주고 1루로 뛰라고 했더니 1쪽으로 뛰다가 자기가 친 공을 붙잡아서 아웃이 되었다. 그래도 헤벌쭉 웃음을 짓는다. 아이들도 웃고 나도 웃는다.
어제 진로적성검사를 했다.처음에는 검사지를 안주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주는게 낫다. 아이가 낙서삼매경이다. 검사지와 답안지를 가방에 넣길래 괜찮겠다 싶었다.
여자화장실에서 안나온다고 도우미 애들이 힘겨워한다. 마침 4교시가 끝난 시간이었다. 애들보고 그냥 교실로 가라고 하고서 내가 화장실 입구에서 외쳤다. "ㅇㅇ야 밥먹자!" 그러고나서 모른 척 교실로 갔더니 금방 교실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문제가 금방 해결되지는 않는다. 지금도 하루에 두 번 정도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오는데 한 20분은 걸린다. 화장실이 좋은가보다. 하도 안나와서 애들이 잡아끌면 고집을 피우거나 웃으면서 드러누으려고 한다. 내가 부르면 곧 오긴 한다. 다행히 애들이 교실 문쪽에서 숨어 있으면 몇 분 뒤에 오기는 하지만, 어떻게 해야 아이가 화장실에서 죽치고 있지 않게 할까?
순간 방법이 떠올랐다. 아이가 좋아하는 놀잇감을 교실에 마련해놓고 화장실에서 안나올 때 그 놀잇감을 문앞에서 흔드는거다. 또는 다른 애들이 화장실 변기칸 청소하는 시늉을 하면 불편해서 나오지 않을까?
1급 장애아동이 얼마나 달라질지 알 수 없다. 아이에게 들어본 말은 "네"와 "..뭐예요?" 정도다. 아이에게 쉬운 말을 반복해서 들려줄 생각이다.
지금 내 옆반 선생님은 이 장애아이를 올해도 맡겠다고 자원하실 정도로 작년에 많이 애쓰셨고 아이에 대한 애착이 크다. 아이들도 다루기 힘든 이 아이를 인내심있게 잘 도와준다. 특수 선생님도 꺼려지는 아이 뒷처리도 잘해주신다. 이러니 내가 힘이 날 밖에..
*혹시 장애아동을 돕는데 필요한 정보나 노하우가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지금도 종종 수업시간에 자리를 이동하거든요. 여러분의 훈수가 필요합니다. 교육은 소통에서 답이 나오니까요.
애쓰십니다. 이상우 샘은 복제 안되나요? 제주 이상우, 경상 이상우, 전라 이상우, 충청 이상우, 경기 이상우, 강원 이상우...............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일선 교사는 이렇게 대안으로 살아가는데, 교육부, 정부는 뭔짓하고 있당가?
교육은 우선 부모(가정) - 교사 (학교) - 필요한 도움이들 (상담가, 의사, 친구 등)이 함께 협력할 때, 제대로 이루어지는 거라 봅니다. 사람에겐 저마다 다른 고유한 특성이 있어서 저마다 다 다르고, 저마다 돌봄의 방식도 다르다고 봅니다. 다만 이것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깨달음을 갖고 함께 여정을 걸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상우 샘 화이팅
동감입니다.
비 전문가 입장에서 몇 번의 장애 아동을 경험한 견해를 말씀드리자면, 장애아동은 일정기간 장애아동끼리 따로 모아서 교육을 시키는게 낫지 않을까 합니다. 성인이 돼면 독립하고요. 아무튼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중간자가 필요합니다.
선생님 입장에서 장애아동을 함께 교육하시는게 힘든게 당연한데,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해결할 수 없다고 봅니다. 모든 방법은 보완의 의미만 있지, 결국 장애 자체를 치료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함께 교육을 할 때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비장애인화 하는데 집중합니다. 심지어는 장애가 치료될 수도 있다는 믿음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완의 방법으로 자신들의 리그에 끌어들이려는 수고를 하죠. 근데 아무리 해도 안되요. 서로 상처만 받습니다. 두뇌구조 차이로 인한 사고방법 차이에 넘사벽이 있다는걸 알아야 합니다.
장애아동이 일반아동과 섞여서 지낸다면, 서로를 알아가는데 나름은 의미가 있겠으나, 6학년부터 시작해서 중학교에 올라갈 시절이 되면 분명히 왕따 현상이 생길겁니다. 초등시절은 장애아동과 비장애 아동의 차이가 별로 크지 않아, 비장애 아이 입장에선 그냥 특이한 친구 정도로 생각하고 어울릴 수 있으나, 중학교에 올라가면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인격이 형성될 때 까지는 보호를 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국가(선생님)에서 보조를 해주는 형식으로요. 직접 관계는 불가하고 중간자를 만들어 주는 겁니다. 그게 사람(선생님, 전문보조원 등)이 될 수도 있고, 사회안전망 혹은 정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간자가 없으면 서로 싸우게 되고, 당연히 소수그룹이 집니다.
정리하면,
초등교육은 같이 > 중등 ~ 고등 교육은 전문 시설 > 일정한 능력(기술)을 갖추고 사회 독립(국가가 보조)
장애인 등급, 장애인 연령, 가족의 입장, 장애인 학급, 이해관계 및 국가의 교육정책 및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맞고 틀린 문제가 아니라, 도움을 주냐 못주느냐의 문제라고 봅니다.
등급을 나눠서 관리하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단, 가족의 입장 등은 빠져야 합니다.
대개 장애아동의 가족들은 자신의 아이가 사회와 격리 되는 것을 싫어하는게 당연합니다. 그래서 보통 학교에 넣어버리는데, 결과는 학부모는 맨날 불려가고, 선생님도 학생들도 심지어는 자신의 자식마저 힘들어져 버리는 결과를 낳죠. 서로 도와주려고 하지만 결국 모두에게 피해가 가고맙니다. 상우님의 경우에도 나타나지만 상우님은 장애 아동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 아동 선생님입니다. 어려운게 당연하죠.
한국에서 의무교육을 시키는데 있어, 학부모의 의견은 묻지 않습니다. 왜? 학부모는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학부모는 전문가가 아니거든요. 학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결정한답시고 의무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감옥갑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장애아동은 장애아동에 맞는 교육을 받아야 하며, 국가가 이를 책임져야 합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표명하지 못하는, 장애우를 포함한 모든 아이들은 국가가 그 인권을 기본적으로 책임지고 있습니다. 장애우는 그에 맞는 범주 안으로 들어가서 체계적으로 관리돼야 합니다. 그게 그들의 인권이 보호받는 방법이며 보통사람들과 현격한 능력의 차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똑같이 대하려는게 오히려 불평등입니다.
부모의 사랑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오래 가지도 않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여야합니다. 식물인간이 된 보호자가 나중에는 그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하며 괴로워 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장애아동 부모가 언제까지고 자식을 사랑할 것 같지만 불가능합니다.
부모가 젊을 때부터 장애아동 뒷바라지 한다고 제대로 된 직장조차 잡지를 못합니다. 장애아동은 손이 많이 가거든요. 24시간 관리체계가 돼야 하니깐요. 이런 페이스로 가다가 부모가 70이 넘어서, 자기 먹고 살기도 힘든데, 30~40대 된 장애 자식과 함께 살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지옥입니다.
이러다 부모가 죽으면? 평생 부모하고만 함께 해온 자식들은 어떻게 해야하죠?
장애인은 등급이 문제고, 나머지는 수준이 문제겠지요. 제가 보기에는 전문가/비전문가 구분보다 "Boundary" 이슈가 더 크다고 봅니다. 학부모가 낄때 안낄때 구분 못하고, 학급과 후원자들도 마찬가지고, 더 나아가 국가기관 (교육부)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Boundary가 있어도 그 선을 구분못해서 문제입니다.
가르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는 교사들에게 하루에 터무니 없이 많은 양의 공문을 처리하게 하는 것도 그렇고, 행정처리까지 맡기는 상황에서 전문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참 웃기는 이야기지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부모가 제정신이 들면, 최고의 전문가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로서 해야할 것과 하지말아야 할 것만 제대로 알아도 교육 문제는 상당히 많이 해결됩니다. 태어나면서 잘못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문제아는 없습니다. 문제 부모가 있을 뿐........ 문제는 가정에서 생기는데, 해답은 교사들에게 떠맡겨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장애아동의 경우는 특수 교육 분야로서 전문가가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는 부모들이 평생 껴안고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단, 국가의 대대적인 사회복지제도 아래서...... 우리나라는 여전히 이 부분에서 후진입니다. 많이 좋아졌다고들 하지만.......
성우제 씨가 쓴 "느리게 가는 버스"는 장애를 대하는 사회와 국가가 어떤 차이를 가져다주는지 알아보는데 참고할 만합니다.
장애아동은 장애아동 전문 선생님이 맡아야 한다는 겁니다. 일반 아동 선생님이 맡으라는게 아니고요. 상우님이 저런 고민을 해야 한다는 상황 자체가 아이러니인 겁니다. 제가 초등교육론을 배운적이 없어 모르겠지만, 일반 초등교사가 장애우를 대하는 방법을 교육대학에서 배우는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현재 학교에는 선생님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할 일이 지나치게 많죠.
부모는 절대 중립적으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이를 위한답시고 이리저리 해보다가 결국 자식도, 자신도 불행해집니다. 제가 함께 살던 중증 장애 아이는 부모의 욕심으로 학교도 보내보고, 직장도 보내보고, 결국 결혼까지 시켜봤지만, 이혼 했습니다. 될리가 없잖아요. 여자 아이라 중간 중간에 사회로부터 당했던 온갖 궂은 일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티비에 장애를 가진 청소년 들이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거 자주 나오잖아요.
한국은 이제부터 한국이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보고 배울 곳이 별로 안남았죠. 일부 분야에서는 세계가 오히려 한국을 쳐다보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웃긴다는 표현은 좀 삼가주셨으면 좋겠네요.
웃긴다는 표현이 차우님을 불편하게 한 모양입니다.
상황이 웃긴다는 것이었는데, 차우님의 이야기로 들렸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아마도 저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잘 돌보는 경우를 꽤 많이 봐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쉽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이래야만 한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사회의 문제는 전체가 움직일 수 있는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몇자 적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전문가가 불필요하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자녀 양육에 대한 문제, 교육에 대한 문제는 전문가는 물론 위에 제가 언급한 사람들이 함께 통짜로 엮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요.
거꾸로 이야기하자면, 전문가에게 제대로 맡길만한 사회가 되면 더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