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전이든 이후이든 우리나라 지식인중에 좌파 계열 지식인은 매우 많았습니다. 독립운동의 차원에서 그렇게 한 사람도 많았구요.
물론 지역에 따라 좌파계얼 지식인의 숫자는 차이가 날 수는 있겠지만, 남인이 좌익이 되었고 이들이 박정희의 지지기반이 되었다는 것은 과도한 일반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김동렬 선생이 그간 날카롭게 지적해 오신 것은 남인들의 문제와 그에 연계된 잘못된 지역주의의 문제이지, 이것을 좌익 문제와 결부시켜 해석하는 피콜로님의 견해는 아닌 것 같고 아직 논거 역시 충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해방직후 대구사태 때를 상기하며, 그 때 대구는 좌익적 성향이 강했다거나, 박상희가 그 지도자 중 하나였다거나 하는 지점을 상기하실 지 모르지만, 일제 시대 이후 국내 지식인의 사상적 성향을 돌아볼 때, 좌익을 남인계열과 연결시키고 이를 박정희와 연결시켜 해석하는 것은 아직은 과도한 일반화로 보여집니다. 물론 박정희 정권 초기, 일부 좌익계열이 상대적으로 박정희에 호의적이었다는 사실들도 아직 이를 남인정서와 연결시키기 위한 논거로는 충분치 않다고 보입니다.
1. 우선 을사5적은 서인계열입니다. 조선의 4대사화처럼 왕이 중신들을 처형하던 것은 16세기 중반 이후엔 잘 없었습니다. 임진란 이후 선조의 도망은 왕권의 추락의 신호탄이었고, 서인들은 득세한 후에 줄곧 정권을 맡아왔죠. 안동김씨도 실은 장동김씨이고, 서인계열이었죠. 게다가 서인들이 같은 호남의 호남벌을 전략적으로 매입하고 호남지방 호족과 혼맥을 이루며 정치적 토대를 강화했을 때는 왕도 어쩌지 못했죠. 이들의 말기가 을사 5적으로 나옵니다.
2. 한국좌파의 시조들은 서얼출신이거나 (박헌영) 중인계급의 영남 일본 유학파들이 많았습니다. 영남의 유학자들은 독립운동이 아니라 조선복권운동을 펼쳤습니다.왕정복고운동을 벌였지 공화정부의 수립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3-1운동 때 유학자들의 참여가 적었던 이유였습니다.
3. 일제는 남한지역에 거의 유일하게 대구지역에 방직공장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만주군의 군복을 만들기 위해서 였습니다. 따라서 많은 노동자들이 대구지역에 몰렸고요, 박헌영류의 공산주의자들이 침투해서 많은 노동자들을 좌익으로 전향시킵니다. 그래서 대구는 한때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리기도 했죠. 이들이 해방후에 대구폭동을 일으킵니다. 이 폭동은 나중에 진압되지만 주범자들은 산속으로 도망쳐서 빨치산의 전신인 야산대가 되고. 단순가담자들은 전향서를 쓰고 육군에 들어갑니다. 대구 66연대.
4. 영남지역에서는 중앙정부에 대한 반감은 광범위 했습니다. 임진란 때 결정적인 오판을 한 김성일과 그를 추천한 유성룡의 후손들은 조정에 출사를 못합니다. 유성룡을 따르던 남인들은 권력의 핵심으로 떠오르지도 못했으므로 서인정권에 대한 반감이 아주 강했습니다. 게다가 광해군 후에 거세된 북인들 그룹도 반정부 진영에 참여했지요. 영남에는 이런 광범위한 정서가 있었고, 이것이 해방 이후에 좌익이 득세하는 동력이 됐습니다.
5. 박정희가 민정이양 이후에 윤보선과 맞붙은 5대대선의 대선의 결과는 정확하게 남북대결이었습니다. 영남과 호남은 박정희 지지 그리고 충청도 이북은 윤보선 지지. 이런 선거결과를 두고 당시 중정부장 김형욱은 박정희의 당선은 남한 좌익계열의 지지에 힘입은바 크다고 했다.
"그 남인들이 해방이후에는 좌익이 되고 나중에 쿠데타의 주범 박정희를 뽑는 주요 기반이 되죠."
" 민정이양 후에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올린건 좌익이었습니다. "
--> 남인 유생들이 해방 이후에 좌익이 되었다는 근거는 님의 글 2,3,4에 충분치 않습니다. 남인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고래로 내려온 반중앙정부적 기질이 좌익사상가들이 운신하기에 좋은 여건이 되었다고 표현하셨으면...모를까.. 남인 엘리트 가문에서 좌익사상 시조들이 나왔다는 것 역시 적절한 논거가 되기 힘든게, 당시 우리나라 좌익계열 지식인들 적잖이 일본유학파에서 나오고, 일본유학파들 굳이 영남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영남에 좌파가 세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사실의 직접적 논거는 님의 글에도 나오듯이 공장과 노동자, 조직 의 측면이 더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겁니다. 당시 노동자 조직이 전국적으로 대대적 파업을 일으키고 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확인되니까요. 그리고 그 배후에 조선노동당 등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분석들도 존재하지요.
그리고 박정희에 좌파가 우호적인 분위기였었다는 60년대 초의 상황이 "좌파가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올렸다"고 일반화하여 진술할 충분한 논거 역시 되지 않습니다.
'박정희를 올린 건 좌파'라고 강한 주어식 서술을 할 게 아니라
'박정희의 60년대 초 집권에 좌파 역시 우호적 분위기를 형성한 요인 중 하나이다'라고 서술을 하는 정도에 그친다면 더 나았을 겁니다.
그리고 피콜로님은 다른 글에서도 보이듯
자주 박정희의 역할..
이부분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박정희를 직접 언급하는 글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글에
굳이 박정희를 연계하여 꼭 이야기하실 필요는 없지 않나 싶네요
택후님: 젊쟎게 댓글을 주셔서 앞으로 유의하겠다는 답을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그 남인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요. 양반들도 대대로 벼슬을 못하면 가세가 기울면 신분하락이 됩니다. 중농인 사람들도 과거 남인의 후예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영남의 양반계급은 을사조약 이전에 반일 의병활동을 하며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런 피해가 3-1운동에 유림이 많이 참가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공화정부 수립 자체에 반대한 유림들도 많았지만요.
아무튼 대구의 양반계급들은 을사조약 이후에 대구를 많이 뜹니다. 북간도라든지 하는 곳으로 말이죠. 그래서 이때 대구주민들의 구성도 많이 바뀝니다.
그러므로 남인이라는 말은 이젠 의미를 잃거나 존재하지 않은 사어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조선시대 때 정철의 탄핵을 받아 죽은 화담학파의 자손들은 호남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지리산으로 들어갔을 경우가 많고, 또한 북인계열도 경남쪽 지리산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서인정권에 대단한 원한을 가진 사람들었습니다. "화개장터"라는 곳이 영호남의 화합을 상징한다고 하나 실은 같이 지리산에 들어간 북인들과 화담학파 사람들이 동병상련을 느끼며 교유하던 곳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아무튼 대구지역과 지리산 지역 일대에 광범위하게 거주하고 있던 반정부적인 사람들은 좌파사상에 휩쓸렸을 가능성이 많고, 이들을 "남인"이라 지칭해도 무방하리라 봅니다.
인사가 만사라 했던 ys 는 정작 단행한 족족 파행인사였는데
문재인님 같은 분이 대통령된다면 얼마나 멋진 인사를 보여줄까 벌써 설레고 기대됩니다.
새로 영입한 인재들이 잘 활약하는 일만 남았군요.
마치 스타크레프트 게임 에서 앞에서 고전하는 거 처럼 보였는데
알고보니 미네랄을 몸땅 준비하였고
몰래 전투 병력을 만들어
일제히 "공격 앞으로" 하는 그림 처럼 보입니다.
유권자앞에 내공을 드러냈다 봅니다.
그동안 그의 인내와 속도조절과 사리판단력,
의사결정력을 이해하는 사람은 극소수였고...
지금 한 대 맞고 찌그러지는게
나중 백 대 맞을 우환을 예방하는 행동이라는 교훈이 필요.
남들 데모할 때 공부만 했다는 얌체들이나
남들 투쟁할 때 양다리 걸치고 사회자노릇 하겠다는 자들이나
양심에 털난 무임승차 심뽀이기는 매 한가지.
팀플레이 안 하고 개인플레이 하는 자는 쳐맞는게 당연.
어젠가 그젠가 페북서 네 줄 읽다가 만...
' 이 자식 봐라 개소리를 아주 장황하게 늘어놨네 '
###아래 검정색 글은 누구 글이죠?
제 글입니다.
김장훈이 페북에 쓴 글이 꼭 간철수가 쓴것 같아요. 무슨 말하는 줄 모르겠어요
노인 자살율과 더불어 20대 청년 자살율도 1위라는데
노인 노령연금과 더불어 청년배당도 당연히 도입해야.
나아가 전국민 자살율도 세계 탑수준이므로 국민존엄임금도 차후 도입해야 됨!
정답: 부관참시 대기중인 누구네 아빠.
그 누구의 스승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소이다.
관심이 없으면 그냥 스킵하시지요.
누구세요? 좀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지요?
글 올리는 것도 허락이 필요합니까?
이 곳은 동렬샘 제자분들도 많고 뭔가 좀 아는 분들도 많으셔서 제가 수년간 지켜본 바로 이러한 현상은
왕왕 일어 납니다. 근데 출석부 만큼은 태클 전혀 없더군요.
해서 전 주로 거기서 놀죠 ㅎㅎ..
논다는 표현이 무례하시다면 죄송합니다.
글은 잘 읽고 있습니다.
원인은 권위의 문제입니다.
권력이 아닌 권위 말이죠.
세상 모든것을 논하지만 결국 여기는 구조론 연구를 기반으로하는 모임이기 때문이고
창시자의 권위와 수십년간의 쌓아온 지성의 힘으로 발언하는 동렬샘의 목소리가 줄어드는것에 대한
회원들의 반감이 자연발생적으로 존재합니다.
독재적,민주적 옳고,그름의 문제가 아닌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으나
교실의 교단에서 선생님의 교편을 우등생들이 너무 오래 잡고 있으면 생기는...뭐 그런거 말이죠.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경험적으로 볼때 문제가 아닌 걍 과정임.
온대지방 기후가 경제성장의 한 단면이 되나 본질은 따로 있습니다.
말레이지아의 경우 중국에서 건너간 화교들이 거의 경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거지요. 화교만 경제가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마하티르가 나서자 달라졌습니다.
마하티르가 화교를 차별하고 말레이계를 우대하자
말레이인도 경제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런데 마하티르의 지나친 차별이 오히려 화교들에게 이익을 주는
역전현상이 또 일어납니다. 특혜를 받은 말레이계가 이슬람학 등 종교만 전공해서죠.
화교는 전문기술로 몰려서 더욱 돈을 벌게 되는 아이러니.
인도는 더운 지방이지만 옛날부터 남아공까지 항해하며 활발하게 경제했습니다.
인도인들이 역사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는데
중세경제활동은 거의 인도가 담당했습니다. 아랍의 문물은 사실 인도문물입니다.
인도가 근래 낙후한 것은 800개의 언어와 분열 및 역사의 부재 때문인데
인도라는 개념은 영국이 만들어준 것입니다.
간디가 '너희는 인도야' 하고 알려줬기 때문에 인도가 살아나고 있습니다.
만약 간디가 없었다면 인도는 계속 낙후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역사를 기록하지 않아서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인도 내부에서 같은 인도인끼리 카스트라는 이름의 인종차별이 난무하는 겁니다.
요즘 인도경제는 10퍼센트 성장을 하고 있는데 이들은 시크교도가 책임지고 있습니다.
간디가 정체성을 만들어주고, 영국이 언어를 만들어주고, 시크교가 장사기술을 전수하자
인도는 열대기후 지방에서 멋지게 도약해버린 것입니다.
경제의 핵심은 게르만의 종사제도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돈키호테가 산초를 꼬시는데 산초는 왜 따라갔을까요?
산초친구가 나타나서 '너 바보냐?' <- 이렇게 말했다면 산초가 돈키호테를 죽이고
로시난테를 타고 갔을 것입니다. 독일이 발전하는건 이유가 있습니다.
이러한 의사결정구조, 일을 이어받아 연속시키는 구조는 만드는데 5백년 걸립니다.
일본도 한국에서 건너간 퇴계유교로 발전한 것이며
근래의 침체는 이차대전의 책임을 유교에 뒤집어 씌우고 신토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기후도 영향이 있지만 기후가 지능과 연결되는 것이며
기후 그 자체가 경제에 직접적인 요인은 아닙니다.
결론은 사람이며, 사람은 바뀔 수 있으며, 뛰어난 지도자가 있거나
그 지도자를 받쳐줄 이념과 문화와 의사결정구조가 있으면
아프리카라도 단번에 도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의 구조를 봐야 답을 알 수 있습니다.
동렬님 감사드립니다.
각기 다른 시대에 각기 다른 조건들을 가진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흥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내가 저 글을 올린 이유는 한국경제 성장에 있어서 박정희의 역할을 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동렬님의 생각대로라면 박정희의 역할을 어느 정도 인정해줘야 한다는 얘기인데.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보고 있습니다.
링크된 글의 첫 번째 조건은 공업기계들의 수준을 논하고 있습니다. 이 기계들의 생산기지가 주로 온대지방이었으므로 열대지방이나 타이가 지방에서는 기계의 호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들 지방에서는 생산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요. 게다가 곡물생산이 온대지방에 비해서는 적기 때문에 노동력을 먹일 곡식이 부족하여 경제개발이 더디다는 것이고요, 고온다습하기 때문에 전염병이 잘 돌므로 개발비용이 더 들어가서 경제가 더디게 발전한다고 하거든요. 이것은 지도자의 지도력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보입니다.
내가 보기엔 기계설비에 의한 산업발전은 우선 온대지방에서 싼 노동력을 가진 나라들 순대로 개발되고 경제발전이 이뤄지는 것 같네요. 그리고 이들 온대지방 나라들이 임금이 올라가고 가용노동력도 점점 차게 되니 아열대나 열대지방으로 생산기지를 옮겨가는 것 같거든요,. 일례로 삼성도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인도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것을 볼때 선진국이 필요로 하면 도상국은 개발된다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듯 합니다.
박정희 운운하는 애들은 기본적으로
역사를 안 배운 꼴통들이라서 대화에 끼워주면 안 됩니다.
로마라면 원로원이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카이사르 같은 독재자만 미화하고 원로원은 적으로 설정하는
그런 식의 시오노 나나미 수준, 초딩적 역사인식수준이 문제인 것입니다.
원로원와 민회의 대결구도가 없었다면
카이사르 같은 인물은 애초에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카이사르가 있으면 이제 됐어. 민회도 필요없고 원로원도 필요없어.
이런 소리 하는 초딩들이 문제지요.
대화가 됩니까?
카이사르만 있으면 돼 하고
독재자만 계속 뽑다가 망하는 공식이 페르시아입니다.
구조론의 질은 안 보고 곧 죽어도 입자만 보겠다는 자들과 대화가 됩니까?
박정희가 없었다면 다른 사람이 그 일을 했을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70년대에 당선되었다면 지금 경제는 두 배입니다.
답글 감사합니다.
댓글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일일이 답글 드리지 못하는 점 이해해 주시고요.
오해 절대 없으시길 바랍니다. 저는 김동렬 선생의 글을 서프시절에서 부터 읽어온 사람이고요. 소중한 자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맨 위의 분은 아마도 여러 글을 올리니 "도배"라고 생각하셨는가 본데, 그 점은 잘 유의하겠습니다.
영어 문서를 링크해놔서 화가 난듯 ^^
제가 정치글을 좋아해서 뵌지는 며칠 안됐지만 글 잘 읽고 있습니다.ㅎ
안 되는 나라들의 특징은
'나'라는 개념규정이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도라면 온갖 다양한 언어와 민족과 카스트가 뒤섞여 있는데
피부색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고 천차만별입니다.
'저 이상한 애들이 나랑 같은 인도인이라고? 미쳤어? 그게 말이 돼?'
이거 극복하는게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인도인들은 집에서 싸준 도시락을 먹는데 남의 손이 음식에 닿으면
부정타서 까르마의 등급이 떨어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조라면 내부차별에만 정신이 팔려서 경제가 안 됩니다.
조금 벌면 하인을 고용하고 그들을 지배하는데 재미들려 버립니다.
그들 그룹 내에서 좋은 평판을 받는데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좋은 평판을 받기 위해서 만나는 사람마다 일일이 인사하고
그들의 사생활까지 챙겨조야 하기 때문에 경제불가.
아프리카도 그런게 있습니다. 조금만 돈을 벌면
거기서 왕초짓하는데 재미들려버려서 경제활동을 그만둡니다.
유교는 선후배와 스승과 제자와 부모자식으로 서열을 정해버려서
왕초놀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경제할 수 밖에 없지요.
한국은 좋은 평판 받으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는게 큰 장점입니다.
나이만 많으면 유세 떠는게 한국이라서.
부족민 사회는 돈 있는 추장이나 족장도
자기를 따르는 100여명의 집안 숟가락까지 알고 챙겨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평판공격으로 조져버립니다.
팔로우면 걍 팔로우지요.팔로우 입장에선 스타일을 존중해주는것이고요..이곳은 대한민국 유일이신 분의 스타일저장소로 남았으면 좋겠네요.단 그걸 넘는 제자라면 인정해드립니다.
그 남인들이 해방이후에는 좌익이 되고 나중에 쿠데타의 주범 박정희를 뽑는 주요 기반이 되죠. 김형욱의 말대로 민정이양 후에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올린건 좌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