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칭과 역사의 진보, 그리고 거대한 방향>
1.
역사는 언제나 왼편이 결정한다. 여기서 왼편은 진보적 방향성이 거대한 방향을 잡을때, 오른편을 휘돌아 왼편을 아울러 그 힘으로 도약할때 사용되는 힘이 최종적으로 왼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먼저, 좌우대칭이 성립되어야 한다. 그때, 에너지의 방향성이 생겨난다.
2.
대칭에서 보자면 왼쪽이 진보, 오른 쪽이 보수다.
대칭을 깨고 비대칭으로 도약(방향성)을 하려면,
언제나 가고자 하는 반대 방향으로 먼저 이동하게 된다.
즉, 뜻은 언제나 나중에 눈에 보여진다는 의미이다.
하기 싫은 것부터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하기 싫다고 안하고 놔두면 그것이 곧 방해자(벽)가 되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3.
산자락을 타고 흐르는 강물이 먼저 바위산에 강하게 부딪혀 물길을 만들어 속도를 내고 그 속도로 모래를 완만한 곳에 쌓아놓고 다시 유유하게 흘러 가는 것과 같다.
4.
무엇을 한 번이라도 시스템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거나 실행하려고 시도라도 해 본 사람은 안다.
역사의 진보를 이뤄내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보수집단을 건드리게 되어 있다.
그곳을 건드리지 않고서 역사가 진보하는 경우는 없다.
5.
에너지는 돈과 지식과 사랑에서 나오지만,
현실에서 에너지는 보수에 집약되어져 있다. 왜? 인간은 무엇인가를 쌓게되면 보수적 기질이 발동하여 움켜쥐려 하기 때문이다.
그 움켜쥠을 무장해제 시켜야 한다. 이 말은, 리스크를 지식이 감당할 수 있다는 신뢰를 교환하는 것과 같다. 이는 새로운 융합과 같다.
에너지(돈)가 방향성을 상실할때 에너지(지식)가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것과 같다.
6.
진보가 역사의 방향성, 국가의 방향성, 집단의 방향성, 국민의 방향성을 만들어 내고 길을 내려면, 반드시 우회로의 벽을 뚫어야 한다. 그 벽을 뚫어 그 안에 에너지가 흐르게 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다. 갇혀 있는 에너지가 흐르게 하는 것. 바로 그것.
7.
하나의 감정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하나에 담긴 에너지들의 결집과 흐름을 보는 것. 반쪽으로는 되지 않는 것... 2를 1로 만들어야 그것이 진보적 동력이 되는 것. 그러므로 진보적 에너지란, 정치적 이념인 것이 아니라 결집할 에너지들의 방향성인 것. 오갈데 없이 좌충우돌하여 서로 치고 박는 에너지에게 큰 흐름을 만들어 주는 것.
8.
그것을 누가 할 것이냐...인데..., 욕 얻어 먹을 각오가 있는 사람이 한다. 페북에도 그런 류의 책들이 올라오곤 하던데... 그런 책들에 좋아요는 많이 눌러져 있더라.... 그렇게는 이해 되는데, 이렇게는 이해 안된다라...하면, 책은 부질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현실에 적용을 못시키거나 책과 현실이 따로 논다면, 책이 그 누군가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책을 쓰는 이들도 이를 다시 한 번 상기해봐야 할 것이라고 여긴다.
9.
책이 곧 현실이다. 책이 현실을 만들어 낸다. 빅데이터라는 말도 있더라... 이 말은 곧, 어떤 한 사람이 그 시대의 시류와 그 시대의 마음을 읽어 그 시대를 이해 한다는 말도 된다. 이해만 한다고 해서 될 것인가...? 실행력이 나와줘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역설이다. 방법론에서 반드시 역설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한 발자국 앞으로 가기 위해 두 발자국 뒤로 가야 하거나, 아예 먼 길을 돌아와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지름길로 가 버리면 될 거 같지만, 토대가 그것을 허용치 않는다. 정리하고 치우고.. 방해벽들이 전혀 해결되지 않은체로 있기 때문이다. 그 방해벽들과 부딪히거나 피해서 돌아오거나...어찌되었든 토대가 일이란 것의 단초이므로 토대를 넘어서서 뭔가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10.
진보하기 위해 보수를 휘돌아서 진보를 아울러서 흘러가야 하는 길.
언제나 자신 옆에 있는 이가 가장 나중에 혜택을 보게 된다. 인간의 역설이다. 돌아돌아 와야 하는 길, 돌고 돌아서 마침내 제 자리에서 뜻을 드러내는 일, 여기서 다 마치지 못하면 그 다음에서 또 계속하여 해야만 하는 것. 그것이 역사적 진보이자 현실에서의 진보.
우를 돌아 좌를 끌어 안는 일. 우측으로 먼저 이동할 수 밖에 없는 일들...
11.
이건, 어디 저기 안드로메다에서 온 얘기가 아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늘상 접하고 늘상 알고 있는 얘기이다. 단지, 그것은 어색한 상황을 만들어 내거나 긴장감을 조성하기에 부딪히고 싶어하지 않은 일일 뿐이다. 부딪힘으로 인해서 에너지들이 나타난다. 영원히 부딪히지 않고 간다...? 그럴 수 있나...과연...? DNA도 한 번 만나자 서로 튕겨지지 않고 계속해서 나선형 꼬임으로 잘 가고 있는 판국에....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 많은 교류로 무수한 확률을 만들어 내는 판국에... 정치라고 다를 것인가...? 보는 관점과 시야...그리고 생각을 키우면 될 일이다.
12.
서로 다른 것이 만나서 부대끼고 서로 알아가는 과정은 한 번은, 혹은 간헐적으로 필요하다. 부딪혀야 에너지가 생성되거나 있는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서로 다른 이질적인 것은 많은 소리를 낸다. 그러나 우리가 문화라고 하는 것들은 모두 하나의 공간을 공유하며 그런 시간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다. 정치라고 다를 것인가...? 때로는 정치가 가장 늦되다. 그것은 또, 가장 늦되니 그만큼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 우야둥둥 대칭을 만들었다. 야쪽의 선택이 대칭을 만든 것이다. 대칭이 만들어지면 어떤식으로든 에너지는 흐르게 된다. 그것이 집단의 요구고 집단의 마음이라면...이건 무의식적 요구와 같다. 그렇다면 이제 집단에게 의식이 생긴 것과 같다. ...즉, 그 마음을 읽어 현실로 끌어낼 사람이 필요하다. 즉 핵이 생긴 것과 같다. 무의식의 의식화다. 마음이 의식으로 표면화되면 실행하게 된다. 그거 할려고 문재인 뽑은 것과 같다. 얼마나 집단의 무의식을 잘 읽었는지 좀 더 지켜봐야 할거 같다. 그리고 나는 그를 신뢰 한다. 집단의 마음을 읽었을 것이라고 여긴다.
1.
역사는 언제나 왼편이 결정한다. 여기서 왼편은 진보적 방향성이 거대한 방향을 잡을때, 오른편을 휘돌아 왼편을 아울러 그 힘으로 도약할때 사용되는 힘이 최종적으로 왼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먼저, 좌우대칭이 성립되어야 한다. 그때, 에너지의 방향성이 생겨난다.
2.
대칭에서 보자면 왼쪽이 진보, 오른 쪽이 보수다.
대칭을 깨고 비대칭으로 도약(방향성)을 하려면,
언제나 가고자 하는 반대 방향으로 먼저 이동하게 된다.
즉, 뜻은 언제나 나중에 눈에 보여진다는 의미이다.
하기 싫은 것부터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하기 싫다고 안하고 놔두면 그것이 곧 방해자(벽)가 되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3.
산자락을 타고 흐르는 강물이 먼저 바위산에 강하게 부딪혀 물길을 만들어 속도를 내고 그 속도로 모래를 완만한 곳에 쌓아놓고 다시 유유하게 흘러 가는 것과 같다.
4.
무엇을 한 번이라도 시스템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거나 실행하려고 시도라도 해 본 사람은 안다.
역사의 진보를 이뤄내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보수집단을 건드리게 되어 있다.
그곳을 건드리지 않고서 역사가 진보하는 경우는 없다.
5.
에너지는 돈과 지식과 사랑에서 나오지만,
현실에서 에너지는 보수에 집약되어져 있다. 왜? 인간은 무엇인가를 쌓게되면 보수적 기질이 발동하여 움켜쥐려 하기 때문이다.
그 움켜쥠을 무장해제 시켜야 한다. 이 말은, 리스크를 지식이 감당할 수 있다는 신뢰를 교환하는 것과 같다. 이는 새로운 융합과 같다.
에너지(돈)가 방향성을 상실할때 에너지(지식)가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것과 같다.
6.
진보가 역사의 방향성, 국가의 방향성, 집단의 방향성, 국민의 방향성을 만들어 내고 길을 내려면, 반드시 우회로의 벽을 뚫어야 한다. 그 벽을 뚫어 그 안에 에너지가 흐르게 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다. 갇혀 있는 에너지가 흐르게 하는 것. 바로 그것.
7.
하나의 감정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하나에 담긴 에너지들의 결집과 흐름을 보는 것. 반쪽으로는 되지 않는 것... 2를 1로 만들어야 그것이 진보적 동력이 되는 것. 그러므로 진보적 에너지란, 정치적 이념인 것이 아니라 결집할 에너지들의 방향성인 것. 오갈데 없이 좌충우돌하여 서로 치고 박는 에너지에게 큰 흐름을 만들어 주는 것.
8.
그것을 누가 할 것이냐...인데..., 욕 얻어 먹을 각오가 있는 사람이 한다. 페북에도 그런 류의 책들이 올라오곤 하던데... 그런 책들에 좋아요는 많이 눌러져 있더라.... 그렇게는 이해 되는데, 이렇게는 이해 안된다라...하면, 책은 부질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현실에 적용을 못시키거나 책과 현실이 따로 논다면, 책이 그 누군가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책을 쓰는 이들도 이를 다시 한 번 상기해봐야 할 것이라고 여긴다.
9.
책이 곧 현실이다. 책이 현실을 만들어 낸다. 빅데이터라는 말도 있더라... 이 말은 곧, 어떤 한 사람이 그 시대의 시류와 그 시대의 마음을 읽어 그 시대를 이해 한다는 말도 된다. 이해만 한다고 해서 될 것인가...? 실행력이 나와줘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역설이다. 방법론에서 반드시 역설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한 발자국 앞으로 가기 위해 두 발자국 뒤로 가야 하거나, 아예 먼 길을 돌아와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지름길로 가 버리면 될 거 같지만, 토대가 그것을 허용치 않는다. 정리하고 치우고.. 방해벽들이 전혀 해결되지 않은체로 있기 때문이다. 그 방해벽들과 부딪히거나 피해서 돌아오거나...어찌되었든 토대가 일이란 것의 단초이므로 토대를 넘어서서 뭔가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10.
진보하기 위해 보수를 휘돌아서 진보를 아울러서 흘러가야 하는 길.
언제나 자신 옆에 있는 이가 가장 나중에 혜택을 보게 된다. 인간의 역설이다. 돌아돌아 와야 하는 길, 돌고 돌아서 마침내 제 자리에서 뜻을 드러내는 일, 여기서 다 마치지 못하면 그 다음에서 또 계속하여 해야만 하는 것. 그것이 역사적 진보이자 현실에서의 진보.
우를 돌아 좌를 끌어 안는 일. 우측으로 먼저 이동할 수 밖에 없는 일들...
11.
이건, 어디 저기 안드로메다에서 온 얘기가 아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늘상 접하고 늘상 알고 있는 얘기이다. 단지, 그것은 어색한 상황을 만들어 내거나 긴장감을 조성하기에 부딪히고 싶어하지 않은 일일 뿐이다. 부딪힘으로 인해서 에너지들이 나타난다. 영원히 부딪히지 않고 간다...? 그럴 수 있나...과연...? DNA도 한 번 만나자 서로 튕겨지지 않고 계속해서 나선형 꼬임으로 잘 가고 있는 판국에....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 많은 교류로 무수한 확률을 만들어 내는 판국에... 정치라고 다를 것인가...? 보는 관점과 시야...그리고 생각을 키우면 될 일이다.
12.
서로 다른 것이 만나서 부대끼고 서로 알아가는 과정은 한 번은, 혹은 간헐적으로 필요하다. 부딪혀야 에너지가 생성되거나 있는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서로 다른 이질적인 것은 많은 소리를 낸다. 그러나 우리가 문화라고 하는 것들은 모두 하나의 공간을 공유하며 그런 시간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다. 정치라고 다를 것인가...? 때로는 정치가 가장 늦되다. 그것은 또, 가장 늦되니 그만큼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 우야둥둥 대칭을 만들었다. 야쪽의 선택이 대칭을 만든 것이다. 대칭이 만들어지면 어떤식으로든 에너지는 흐르게 된다. 그것이 집단의 요구고 집단의 마음이라면...이건 무의식적 요구와 같다. 그렇다면 이제 집단에게 의식이 생긴 것과 같다. ...즉, 그 마음을 읽어 현실로 끌어낼 사람이 필요하다. 즉 핵이 생긴 것과 같다. 무의식의 의식화다. 마음이 의식으로 표면화되면 실행하게 된다. 그거 할려고 문재인 뽑은 것과 같다. 얼마나 집단의 무의식을 잘 읽었는지 좀 더 지켜봐야 할거 같다. 그리고 나는 그를 신뢰 한다. 집단의 마음을 읽었을 것이라고 여긴다.
홍신
5. 에너지(돈)가 방향성을 상실할때 에너지(지식)가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것과 같다.
>> 국가경쟁력이 떨어지고 출산율이 떨어질때, 우리가 무엇을 위해 나아가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것은 진보의 역할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