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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812 vote 0 2024.05.04 (14:37:34)

    https://v.daum.net/v/20090617111008443 


    중국 속담에 '늦게 팬 장작이 위로 올라간다'는 말이 있다. 김부식이 역사를 날조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늦게 팬 장작이 위로 올라가야 한다.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은 일찍 팬 장작이다. 김부식이 역사를 왜곡하려고 했다면 박혁거세 천황이라고 써놨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가스라이팅 되었다. 조선 역사는 실패한 역사로 각인되었다. 화가 났다. 엉뚱하게 김부식에게 화풀이를 한다. 비겁하다. 우리가 프레임 놀음을 버리고 구조의 눈을 얻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에 매력을 느껴야 한다. 김부식이 잘했다.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매금왕, 갈문왕, 차칠왕, 마립간, 대왕이라는 다양한 명칭에 의해서 우리의 역사는 더 풍부해졌다. 아름다워졌다. 구조로 보면 화쟁和諍된다. 화쟁의 눈을 얻어야 한다. 원효의 화쟁은 정과 반이 합으로 통합되는게 아니라 오히려 번성한다.


    나무의 가지가 벌어질수록 밑둥이 굵어지듯이 정과 반이 공존하므로 오히려 더 발전하는 것이 화쟁이다. 여당과 야당이 경쟁할수록 국민의 지혜가 성숙해진다. 여당과 야당이 화합하여 짜고 치면 국민은 바보가 된다. 화쟁론은 일원론이다. 율곡 일원론의 뿌리다. 


    모든 한국적인 것은 화쟁과 닿아있다. 화쟁사상은 반도라는 지리적 특성에 기초한다. 경상도든 전라도든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완전히 밀어낼 수 없다. 중국이라면 그 반대가 된다. 화쟁은 일본의 와和사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 역시 섬이라서 공존해야 한다. 


    일방이 타방을 완벽하게 밀어낼 수 없다. 그런데 다르다. 일본은 나눠먹기다. 한반도는 균형이다. 한반도를 동서로 나누면 중부가 개입하고 남북으로 나누면 중국과 미국이 개입한다. 한반도는 삼국시대부터 솥발처럼 정립해 있었다. 혹은 정립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고려가 오랑캐와 송나라와 균형을 이루고 발전했듯이 말이다. 한반도의 역사는 절대 중국사와 떼놓을 수 없다. 삼국이 일어난 것은 중국이 혼란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재난을 피해서 인물이 한반도로 쏟아졌다. 한나라 치세가 계속되었다면 삼한이 계속되는 것이다. 


    삼국의 건국은 왕망의 신과 겹친다. 이 시기에 철기문명과 기마술이 한반도에 들어온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대체적으로 고고학적 성과와 일치한다. 경주 나정 발굴과 풍납토성 발굴로 확정되었다. 애매한 부분도 있지만 그게 정상이다. 완벽하면 그게 조작이다.


    백제 초기 200년은 애매하다. 마한을 멸망시켰는데 다시 부활하는게 그렇다. 신라 초기의 200년은 국가 단계로 보기 어려운데 그게 더 매력적이다. 우리는 국가주의에 매몰되어 전제군주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기 때문에 부족동맹체를 국가로 인정하지 아니한다. 


    이는 근대의 절대주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나폴레옹이 민족주의를 발명한 이후의 유행이다. 고대에 민족주의, 국가주의, 절대주의가 있었을 리 없다. 그게 있어야 한다는 믿음 자체가 크게 비뚤어진 생각이다. 부족국가라며 깎아내리는 태도가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우리가 믿는 고대국가 개념은 중국 한족 역사를 정통으로 놓고 유목민을 오랑캐를 멸시하는 태도를 전제한다. 유목민은 원래 부족협의체다. 그들은 전쟁을 할 때만 징기스칸 같은 지도자 중심으로 뭉치고 평화가 오면 흩어져 생활한다. 뭉쳤다가 헤어지고 반복한다.


    기마민족은 뭉쳤다가 헤어지는게 정상인데 헤어진 시점을 기준으로 세우고 그 이전에 뭉쳐 있던 시기를 날조라고 우겨대는 것이다. 이는 역사가 선형으로 발전한다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무조건 시간적으로 늦은 시기가 더 진보해 있다는 믿음이 있다는 말이다.


     중국사만 해도 인구가 춘추시대 3천만에서 초한지 1천만, 한나라 3천만, 삼국시대 1천6백만, 6천만으로 변한다. 새로운 기술이 들어오면 일시적으로 인구가 폭발했다가 지력이 고갈되면 다시 쇠퇴하기를 반복하는게 정상이다. 삼체는 항세기와 난세기가 교대한다.


    신라는 왕이 여럿이었다. 대왕, 갈문왕, 육부왕까지 왕이 여덟 명 있는 것은 멋진 것이다.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신뢰할 수 있다. 단, 연대는 백 년 정도 오락가락한다고 봐야 한다. 왜냐면 국가라는 것은 갈수록 망하기 때문이다. 구조론의 마이너스 원리가 작동한 것이다. 


    정복자가 국가를 건설해도 30년이 못 가서 흐지부지 된다. 왕은 하나인데 그 권력은 동생들과 자식들이 몰아준 것이다. 왕이 죽으면 각자 제 몫을 찾아 분열된다. 리어왕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망한다. 나라가 다시 부활하는 것은 외부의 적들 때문이다. 


    건국의 위세는 30년도 못 가서 흐지부지 되지만 적국이 침입하므로 부활한다. 고구려는 망했다가 태조왕에 의해 부활하고, 백제는 고이왕 때 풍납토성에서 부활하고, 신라는 내물왕 때 김씨가 집권하면서 부활한다. 왕이 지나치게 오래 산 기록은 부활된 증거이다.


    기록이 없는 시기는 왕이 없거나 인정을 못 받았다고 봐야 한다. 그게 봉건시대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인정받지 못한 왕은 기록말살형에 처해지므로 역사에서 완벽하게 삭제된다. 이집트 역사에 지워진 왕이 많다. 비석에 새겨진 글자를 깎아내고 그 위에 덮어쓴다.


    로마사에도 기록말살형이 자주 등장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도 기록 말살 관습이 묘사된다. 임금의 나이가 이상하게 많으면 보나마나 누군가의 기록이 말살되어 족보가 엉킨 것이다. 전제군주가 왕권을 틀어쥐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중화사상에 오염된 거다. 


    평화가 계속되면 왕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즉 왕권의 약화가 도리어 멋진 것이다. 우리가 절대주의를 버리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많은 것이 보인다.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고고학적 근거가 있다. 기원 전후로 마구가 잘 갖춰진 유물이 발굴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대는 백 년 정도 소급될 수 있다. 왜냐하면 올해가 몇 년도인지 박혁거세가 알게 뭐야? 연도를 알고 싶다면 낙랑을 끼고 중국과 무역을 해야 한다. 고구려와 백제는 부여계 이주민이므로 건국 시기를 믿을 수 있다. 신라는 연대가 소급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상이다. 


    역사기록자들이 연도를 위로 늘릴 수는 있어도 아래로 줄일 수는 없다. 삼국사기는 연대기가 있기 때문이다. 김부식이 날조했다는 주장은 친일파들의 식민사관이고 그것은 원래 잘 알 수 없는 거다. 분명한 것은 왕망의 신과 겹친다는 점이다. 인구이동이 있었다.


    당시 낙동강 주변에 인구 1만 정도의 소집단이 여럿 있었는데 왕망의 쿠데타에 따른 여파가 한반도에 미쳐서 대략적인 연도를 기억하게 된 것이다. 흉노족 일파인 김알지 무리가 경주로 이동한 것이며 그 이전에도 부족국가는 있었으므로 기록이 애매하게 된 것이다.


    흉노계 이주민 김씨가 곧바로 왕이 되었다면 신라사는 김씨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김알지 후손들이 기억을 더듬어 김알지를 생각해내고 추존하여 성한왕으로 밀어올렸다.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다르게 기록했을 것이다. 신라가 기록상 이득을 본 것이다.


    1.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신뢰할 만하다.
    2. 1백 년 정도는 오차가 있다고 봐야 한다.
    3. 오류는 날조한게 아니라 쇠퇴기 기록이 망실된 것이다.
    4. 삼국이 다 중간에 한 번씩 엎어졌다가 다시 부활되었다.

    5. 외부에서 이주해온 건국집단이 토박이 세력의 반발에 부딪혀 일시적으로 무너졌다가 혼란을 수습하고 다시 부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통과의례다. 

    6. 고구려와 백제는 부여를 이탈했으므로 건국연대가 대략 확실하다.

    7. 촌장들이 모여 신라 왕을 선출했다는 것은 연대를 소급했다는 의미다.
    8. 신라초기 일백 년은 선출된 제사장의 집권시기이며 실권이 없었다. 

    9. 국가는 전쟁에 의해 만들어지므로 전쟁이 일어난 해가 진짜 건국 연도다.


    신라 초기 낙랑과 충돌은 평양의 낙랑이 아니라 중국의 무역루트에 속하는 봉건집단과의 분쟁이다. 낙랑은 무역권에 관심이 있을 뿐 영토적인 야심이 없었다. 낙랑이 영토를 욕심내면 오랑캐를 중국에 불러들이는 화근이 된다. 신라의 전쟁은 석탈해왕부터 있었다. 


    그 이전에도 뭔가 있지만 전쟁이라고 보기 힘들다. 석탈해가 왜국과 우호를 맺고 백제, 가야와 전쟁을 한다. 백제와의 충돌 역시 백제를 따르는 연맹세력과 신라를 따르는 동맹세력의 충돌이다. 부족국가는 광범위하게 동맹을 맺으므로 그렇게 기록이 된 것이다. 


    파사왕 때 경주에 성곽을 쌓았으니 비로소 본격적인 국가의 모습이 등장한다. 서기 100년 전후다. 지마왕 때 왜와 전쟁을 하고 말갈과 충돌한다. 부족국가를 넘어 영토국가로 된 것이다. 풍납토성이 만들어진 시기다. 백제가 임진강에서 한강으로 내려온 것이다.


    백제의 이동에 따른 군사적 긴장이 그렇게 기록된 것이다. 파사이사금 대에 수로왕과 음즙벌국, 실직곡국의 충돌은 해상무역로를 다툼이다. 김해와 포항과 삼척이 다투는데 신라는 슬쩍 뒤로 빠졌다. 신라의 무역은 내륙을 통해 낙랑과 연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국가의 성장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김부식이 역사를 왜곡한다면 처음부터 왕이라고 하지 조잡하게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따위를 끼워넣지 않는다. 김부식은 원시단계의 신라의 순수한 모습을 잘 기록한 것이다. 이는 자랑스러운 것이다. 


    이를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중화사상에 가스라이팅된 것이다. 국가주의, 민족주의, 절대주의, 중화주의를 버리고 순수를 회복해야 한다. 이사금은 잇금이다. 잇금은 치아의 금이 아니다. 백제 칠지도의 일곱 갈래가 이다. 잇금은 신라 금관에 묘사된 사슴뿔 가지다.


    이는 봉건 제후 왕을 나타낸다. 매금은 잇금 중에 기둥 잇금이다. 금관의 出짜 입식의 가운데 기둥이 매금이고 좌우는 잇금 혹은 이사지왕이다. 신라는 촌장도 임금이다. 壹金知 중성리, 壹今智 냉수리, 一金智 봉평리로 알 수 있다. 임금이 바글바글 했던 것이다. 


    그걸 비웃으면 안 된다. 멋진 거다. 그래서 화백회의를 하는 것이고 그러므로 강해지는 것이다. 고구려와 백제는 계속 침략을 당해서 대왕 한 명에게 권력을 몰아준다. 절대왕권이 생기지만 회의를 하지 않으므로 약해진다. 신라는 침략을 덜 당했기에 성장했다. 


    김알지 세력이 이주한 파사왕, 지마왕 시대에 신라는 활발하게 전쟁을 벌인다. 가야와 1차 황산하 싸움, 남경 전투, 다벌-비지-초팔 3국합병, 2차 황산하 싸움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이때 신라가 건국되었지만 그 이전에도 제사장 권력은 있었으므로 소급한 거다.


    거짓 - 김부식이 신라를 정통으로 하기 위하여 연대를 끌어올렸다.

    진실 - 고구려와 백제는 이주민의 건국이므로 건국 연대가 확실하고 신라는 이주민 김씨가 토착민 박씨와 연대하여 석씨에게 넘어간 왕권을 둘려받는 과정에 애매한 부분을 얼버무리다가 연대가 소급되는 이득을 봤다. 


    중국은 3천 년 동안 80살 넘게 장수한 왕이 6명이다. 우리는 수로왕을 포함 8명이다. 실제로는 더 되는데 출생연도가 부정확하다. 조선시대 영조 빼고 7명이 삼국시대 인물. 확률로 보면 삼국시대 7명 중에 장수왕 외 한 명 정도 빼고 나머지는 기록의 오류일 게다. 


    중국의 기록을 믿으면 안 되는게 원래 외국 역사는 이전 시대의 것을 베끼기 때문이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었는데도 중국사에는 고려라고 나온다거나 하는 식이다. 일본사에는 발해가 고려로 나온다. 위서는 한나라 기록을 그냥 베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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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드라마에는 청 태종 계비 울라나라씨가 등장한다. 울라부의 울라패륵 보크도의 딸이다. 몽골의 이름은 몽골 울루스다. 백제 위례성 위례의 어원을 울라로 볼 수 있다. 임금을 어라하라고 하는 것도 같다. 오랑캐는 '오량카이'에서 온 말인데 비슷한 무리다. 


   울란바토르, 노인 울라의 울라도 같은 계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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