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인터넷 대통령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나는 오늘날 세계 최초 인터넷 대통령(전자신문제목이었음)이 어떻게 탄생했는가 되돌아본다.
88년 5공화국 청문회가 있던 때이다.
비서진의 능력이 모자라 그랬는지 몰라도 최선을 다해 일했다. 노무현 국회의원도 정말 열심히 하셨다.
청문회에서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당시, 가장 늦게 의원회관의 불이 꺼지는 방, 국회 도서관에서 책을 가장 많이 빌려가는 방으로 기사화 되기도 했다.
청문회가 있다보니 자연히 국회의원과 참모가 회의도 많고, 준비할 일도 많았다.
당시는 수동 타자기를 쓰다 보니까 속도에 문제가 있었다.
일정도 많고, 일도 많고 보통 국회의원들은 모든 일을 수행비서와 함께 다니면서 처리했다. 비서가 필요 할 때도 있었지만 국회의원 일정이 진행되는 동안 빈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는 핸드폰, 인터넷, pc 이런게 없었다.)
노무현 의원은 회의에서 결론을 내셨다. 첫째, PC를 산다. 타자기, 이것 가지고는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없다. (당시의 PC는 엄청난 고가였다. 최초로 PC를 쓰게 되었고, 직원들의 학원비를 사무실에서 보조해 컴퓨터를 배웠다.)
둘째, 내가 전자 수첩을 쓰겠다. 일정을 일일이 알아서 챙기고, 필요하면 수행을 붙이고 해서 불필요한 요소를 줄이자.
# (전자 수첩에 얽힌) 에피소드 1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는 국회의원들이 더 권위적이었다. 노무현 의원이 전자수첩에 일정 관리 등을 입력하고 하면 국회의원들이 구경을 했다. 이게 뭐냐고.. 전자 수첩이라고 하면 처음에는 신기해하다가 ‘그런거 다 비서 시키면 되지 체면 깍이게 들고 다닌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차츰 컴퓨터에 관심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왜 대한민국은 똑같은 또는 비슷한 일이 일어나면 똑같이 허둥대고 그럴까? 왜 정치에는 축적되는 지식이 없는 걸까, 매뉴얼을 만들어 놓고 대응해 가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 아닌가”라는 고민을 계속해서 털어놓으셨다.
전산화(기계화)가 진행되며 왜 실업자가 생기는지 우리는 알게 되었다.
93년, 어느 날 안희정, 나, 서갑원 의원 등을 부르시더니 컴퓨터로 워드를 치라고 하셨다. 일하는 모든 것을 data base화 해 달라. 그래서 너희들이 언제든지 해고해도 data가 있어서 일을 해 나가는데 문제가 없도록 해 달라.
워드로 서식을 만들어 입력하고, 보관하니, 효과적이지 못했다.
자료 분류와 data base에 대해 공부할 것과, PC는 물론이고, 그때부터 우리는 문서 분류, 자료 관리 이것을 파일링 하는 회사를 방문하면서 배워야 했다. 그래도 생산성에 문제가 있었다.
어느 날, 명인 프로그램을 보시더니 직접자료, 인명관리 program을 설계하시겠다고 말씀 하셨다.
# 에피소드 2 :
당연히 컴퓨터에 대해 관심은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 자택을 방문했는데 온 집안이 컴퓨터를 분해해 놓은 것으로 어지러워져 있었다. 여사님께 무슨 일인가 여쭈어 보았더니
“컴퓨터 관련 책을 세 권 사시더니 몽땅 외우고 나셔서 아들과 더불어 컴퓨터를 사가지고 오셔서 분해해 보면 원리를 알 수 있다 하여 분해 하였으나, 조립을 다 못해서 그렇다.”는 말씀.
건호씨는 나가고 없고 조립에 열심이시다.
어어지는 사모님 말씀 “언제는 낚시를 배운다고 하시더니 낚시 책을 사가지고 오셔서 ‘음 원리가 이렇군’ 하시곤, 낚시와 관련된 물품을 죄다 사가지고 오셔서 낚시 도구가 한 몇 가방 돼요.”
“집에 전기불을 갈거나 두꺼비집 같은 것 가끔 손 볼 때가 있는데, 이에 대비해야 하신다고 공구 통을 사가지고 오셔서 집에 없는 공구가 없어요.”
노대통령의 사물에 접근하는 방식은 대체로 이렇다. 책을 본다. 외운다. 물건을 산다. 분해한다. 원리를 이해한다. 아 그렇구나!
이 컴퓨터는 건호씨가 결국 조립을 했고, 이런 영향인지 건호씨는 연세대 법대에 들어가고서도 컴퓨터에 집중적인 관심을 가졌고, 가장 좋아하는 분야가 되었다.
노대통령님의 program 설계는 집요하게 계속 되었다. “A4 용지 1만장은 들어갔다.”고 말씀하였다.
정치 생활을 해야 하고, 자금도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니 어려웠기 때문에) 프로그램은 조금씩 진화를 했다.
프로그램 등록도 하고 몇 copy 팔기도 했다.
“언젠가 끝을 내야지” 하셨다.
우리는 그 집념에 놀랐고,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program 회의는 늘 일요일에 열렸다.)
과학과 기술, IT에 관심은 나날이 높아질 수 밖에 없었던 거 아닌가 싶다.
대통령 선거와 인터넷도 어느 날 캠페인이 아니라 축적된 mind 때문에 생긴 일이라 본다.
대통령에 당선 되셨다.
청와대 직제 개편을 하시는데 “과학 기술 보좌관이 필요하다”고 말씀 하셨고, 나는 그 이유를 200% 이상 알 수 있었다.
김태유 서울대 교수가 보좌관으로 발탁되셨다. 더 나아가 “과학 기술 부총리를 만들어 과학기술 위상을 높이겠다.”는 약속도 지키셨다. 국가 R&D 예산을 대대적으로 들이셨다.
또한, “나라 운영에서 매뉴얼, 기록, Data가 가장 중요하다”는 신념은 제 2단계 사업으로 발전했다.
청와대, 정부 내 모든 보고서, 결재, 자료 관리 등이 이루어지는 이지원시스템을 창출하신 것이다.
국장급 공무원 노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이메일을 받은 공무원들은 기절하셨으리라 (이 공무원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노대통령 접속 시간은 한 밤중이었다고), 이 과정을 겪다보니 온라인으로 보고해야 하고, 수석과 장관들은 컴퓨터를 배우고, 쓸 줄 알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 되었다.(열심히 배우는 장관들 여럿을 보았다.)
더 나아가 이는 국가 기록물 관리 시스템으로 법률적으로 정착되었다.
학자들은 국가 기록물 관리의 한 역사를 장식했다고 평가한다.
문제의 본질과 근원에 충실하고,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그 분은 원칙주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계 최초 인터넷 대통령은 이제 영원히 로그아웃 하셨다.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세상과, 보통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우리가 log in 해서 소통하시길 원할 것이다.
평화로 하나 되는 조국,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과 의지와 생활이 존중되는 조국,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충만한 나라.
이제 모두 log in 해 볼까요?
권력은 짧다는 것, 그러나 나라는 무한하다는 것 국민을 이기려는 위정자가 가장 바보라는 것 머리를 맞대어 진전하는 역사를 만들어 볼까요?
출처 http://www.yeskj.or.kr/sub.asp?id=memorial&mode=read&subID=35&cid=&no=7&p=1&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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