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참 아름다운 글자다.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현대의 모더니즘 양식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붓으로 글씨를 썼다. 그런데 붓으로 글씨를 쓰면 45도 각도가 나온다. 궁서체가 된다. 한자의 삐침과 같다. 이런 주장은 어떤 일본인 학자가 처음 거론했다고 하는데, 왜 세종은 붓글씨체로 하지 않고 네모 반듯한 글자를 만들었을까? 사실 붓으로 딱 이렇게 쓰기 어렵다. 안 써진다. 동그라미도 정원보다 타원이 그리기 쉽다.
파스파문자만 봐도 붓으로 쓴게 45도 각도가 많다. 그럼 왜 세종은 자연스럽게 붓으로 가지 않고, 파스파문자처럼 시원시원하게 초서로 날려쓰지 않고, 족보에 없는 독특한 글자를 만들었을까? 쓰기도 불편하게 말이다. 일본인 학자는 농부가 모래에 막대기로 그릴 수 있게 할 요량으로 그랬다고 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글자가 45도로 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팔 각도가 45도이기 때문이다. 영어도 알파벳이 필기체는 45도가 많다. W, Y, K, A, X, Z, V, M, 에 빗금이 들어가 있다. 붓과 상관없이 45도가 자연스러운 형태이며 빗금은 긋기 쉽고 수평선은 긋기 어렵다. 팔꿈치를 콤파스의 축으로 삼고 팔을 움직이면 자연히 45도 각도의 빗금이 된다. 세종의 글자 디자인은 인체구조의 자연스러움을 따르지 않았다. 쓰기 불편한 형태다. 붓에도 맞지 않고 모래판에 막대기로 그어도 맞지 않다. 단 보기가 좋다. 그런데 모더니즘 양식이다. 옛날 양식으로는 보기에 좋지 않다. 무엇인가? 필자가 노상 디자인을 거론하는게 모더니즘 양식이다. 왜 모더니즘인가? 옛날에는 글자 한 자 안에, 건물 한 채 안에, 옷 한 벌 안에, 자동차 한 대 안에 기승전결을 다 넣으려고 했다. 자연히 지붕은 뾰족뾰족하게 된다. 자연히 옷은 울긋불긋하게 된다. 자연히 글자는 석봉체가 된다. 그런데 추사선생 만은 오직 특별하게 한글체를 모방하고 있다. 추사선생의 일부 글씨는 석봉체와 달리 한글 디자인을 연상하게 한다. 추사는 왜 한글을 따랐나?
45도 빗금을 자제한 추사의 예서. 자세히 보면 글자의 균형이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보기에 편한 글자는 한석봉 글씨다. 균형을 딱딱 맞춘다. 그래서 명필이다.
한석봉 글씨는 글자 안에 완벽한 균형이 있다. 그 균형은 45도 빗금에 의해 달성된다. 그런데 틀렸다. 어떤 균형은 다른 균형을 방해한다. 동적균형은 불균형의 균형이다. 한석봉의 균형은 정적균형이고 추사의 균형은 동적균형이다.
◎ 세종은 한글창제에 주역의 음양론을 적용했다. ◎ 음양의 조화개념은 외부환경과의 결합가능성을 함의한다. ◎ 한자는 자체적으로 완결되어 있고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결합해야 완성된다. ◎ 세종은 또다른 결합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모더니즘 양식을 적용했다. ◎ 디자인은 내적 완결성보다 외부환경과의 결합성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무엇인가? 세종은 음양오행의 원리를 적용하여 글자를 만들었다. 오행이론은 중국의 사성을 연구하는데 적용했고 한글의 제자원리는 음양론이 핵심이다. 음양은 결합이다. 요소간의 결합성을 높이는데 주의하는게 모더니즘 양식이다. 건물은 지붕을 뾰족하게 하고, 옷은 현란하게 하고 하는 식으로 내부적인 균형을 따라가면 외부와의 결합성이 떨어진다. 한글은 세종이 음양론을 따라 만들었으므로 내부적인 균형보다 외부와의 균형을 추구했다. 그것은 오히려 불균형이다. 한글의 'ㄱ'은 불균형한 글자다. 균형을 맞추려면 궁서체로 비스듬히 써줘야 한다. '가'의 ㄱ은 45도로 비스듬하다. 그게 더 쓰기 편하고 꽉 차서 보기도 좋다. 그런데 세종의 'ㄱ'은 왼쪽 아래가 비어서 불균형이다. 위태롭다. 불편하다. 'ㅏ'도 불균형이다. 그러나 자음과 모음을 합치고, 글자와 글자를 합치면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자모 하나, 글자 한 자는 불균형이나 쓸수록 안정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모더니즘 양식이 외부 환경과의 결합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한글 뿐 아니라 현대의 디자인은 모더니즘을 따라야 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외부와의 결합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음양론이다. 글자로 이렇게 기분을 내면 보기도 좋고 쓰기도 편한데 디자인이 안 된다. 영어도 필기체는 디자인이 안 된다. 글자든, 옷이든, 집이든, 자동차든 외부와의 결합성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좋은 집은 보기좋은 집도 아니고, 살기편한 집도 아니고, 외부의 손님이 방문하고 싶은 집이다. 집을 너무 으리으리하게 지으면 안 된다. 손님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결합성을 높이려면 심플하게 가야 한다. 세종의 한글 디자인은 음양론을 적용했기 때문에 붓글씨 모양과 다르게 된 것이다. 마치 600년 앞을 내다보고 설계한듯 하다. '현대'라는 21세기 시대개념과 맞다. 옷을 입어도 자기만족적인 옷은 곤란하다. 옷 한 벌 안에 기승전결이 다 갖추어지면 안 된다. 장식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 각기 다른 옷을 입은 다섯 명이 모여야 하나의 그림이 나와주는 그런 옷이어야 진짜다. . 백자가 흰 색인 이유는 다른 사물과의 결합성이 좋기 때문입니다. 너무 균형을 맞추려 해도 안 되고 너무 내부를 꽉 채우려 해도 안 됩니다. 비움으로써 끌어당기게 해야 합니다. 옷이 너무 화려하면 커플티가 안 되는 이치입니다. 음식도 단순 담백해야 궁합이 잘 맞습니다. |
하!
멋져부러. 나랏말싸미로 시작하는 저 그림이 그렇게 아름다웠던 까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