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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8114 vote 0 2014.09.22 (23:41:12)

 

    이야기의 5단계 인물에 적용되는 캐릭터의 원리는 이야기의 무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인물이 외팔이 검객처럼 핸디캡을 가져야 하듯이 사건의 무대 역시 병원 응급실처럼 핸디캡이 있는 무대여야 한다. 병원 응급실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환자가 들어오면 그 환자가 부자이든 빈자이든 도둑이든 성자이든 일단 살려놔야 한다.


    이렇듯 이야기의 무대 자체가 쏘아진 화살처럼 일직선으로 작동하도록 설정해야 한다. 그 무대에는 강한 에너지가 걸려야 한다. 특히 재난영화에 이러한 성격이 강조된다. 이때 그 무대의 그러한 일방향적 성격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세계관이다.


    이야기는 무대의 세팅으로 시작하며 그것은 세계관의 선포다. 이 바닥은 원래 이렇다는 것을 납득시켜야 한다. 도박만화라면 이곳은 도박판이니까, 조폭영화라면 이곳은 조폭세계니까 마땅히 이 방식에 관객이 수긍하고 따라와야 함을 분명하게 알리는 것이다. 게임의 룰을 정하기다. 특히 하드보일드 문학에서 이러한 작가의 일방주의가 분명하게 제시된다.


    인물의 캐릭터가 독특해야 하듯이 세계관을 전달하려면 무대도 역시 독특해야 하므로 요즘은 전문지식을 요구하는 작품이 많다. 조폭영화를 만들려고 해도 조폭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잠수함을 무대로 한 영화를 만들려면 잠수함을 타본 사람이 관여해야 한다.


    타짜의 성공은 전직 타짜가 감수했기 때문이다. 전문분야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도 재난영화처럼 상황 자체에 핸디캡을 부여하여 전문지식을 들이대야 하는 상황을 유도할 수 있다. 화재가 나면 화재진압에 대해 지식이 있어야 하고 물에 빠지면 인명구조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이때 작가는 전문지식에 따른 권위를 가지고 자기 세계관을 주입할 수 있다. 전쟁영화라면 베테랑 전사의 경험을 앞세워 관객을 어리버리한 이등병 취급할 수 있다.


    인물의 캐릭터는 그 세계관과 연계되어야 한다. 고르고 13이라면 킬러의 세계에서는 냉혹하고 잔인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독자에게 주지시킨다. 이는 세계관이다. 이 바닥은 인정사정 봐주는 세계가 아닌 것이다. 다음 주인공은 ‘의뢰받은 일은 어떻게든 해낸다’는 규칙을 세운다.


    이는 캐릭터다. 고르고 13이 싫어하는 것은 자기 뒤에 누가 서 있는 것이다. ‘내 뒤에 서 있지 마라’는 규칙을 주인공은 관객에게 요구한다. 이때 독자는 충분히 납득한다. 이런 식으로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세계관이 앞서가며 캐릭터를 이끈다. 우선순위가 중요하다. 그냥 주인공은 이상한 놈이라고 우길게 아니라 그 바닥에 한 10년 굴러먹다 보면 혹은 상황이 워낙 위중하므로 그럴 수 밖에 없다고 납득시킨다.


    다음은 주인공의 선택이다. 네오는 빨간약과 파란약 중에서 파란약을 선택해야 한다. 이 선택은 필연적인 것이어야 한다. 병원 응급실을 무대로 한다면 치료비가 있건 없건 일단 죽어가는 환자는 살린다는 결정을 내린다. 그 환자가 자신의 아내를 죽인 살인자라 할지라도. 이는 필연적인 것이다. 라이프오브파이라면 주인공은 호랑이와 공존할 것인가 헤어질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필연성을 입증해야 한다. 세계관은 선택의 논리를 제공하고 주인공은 그 논리에 맞는 일관된 선택을 해야 한다. 캐릭터는 주인공에게 핸디캡을 부여하는 방법으로 다른 선택의 여지를 차단한다. 주인공의 선택이 필연성을 얻을 때 극의 긴장은 팽팽해진다.


    독자들도 손에 땀을 쥐게 된다. 이때 소실점이 드러난다. 극 전체의 무게가 한 점에 실린다. 그 소실점을 드러낼 때 극은 뒤뚱거린다. 하나의 선택에 다른 모든 것이 연동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연동에 의해 독자의 몰입감은 극대화 된다. 실패한 작품들은 주인공의 선택에 필연성이 없다. 주인공이 사실 다른 선택을 해도 상관없는 것이다.


    어차피 주인공은 행운의 사나이니까. 그렇다면 작품은 망한다. 전체가 한 줄에 꿰어져야 한다. 작가는 지속적으로 마이너스를 가하여 주인공이 다른 선택을 할 여지를 제거해야 한다.


    그러므로 캐스트어웨이처럼 무인도에 고립되거나, 올이즈로스트처럼 바다 위를 표류하거나 그래비티처럼 우주 공간을 떠돌거나 하는 식으로 상황은 극도로 단순화 된다. 유토피아보다 디스토피아로 가는 것이 이야기를 끌고가기에 좋다. 유토피아로 가면 주인공을 막다른 길로 몰아넣을 수 없다.


    선택의 지점에서 극이 뒤뚱대는 것이 중요하다. 주인공의 선택이 하마터면 지구의 운명을 바꿀뻔 했다는 식이다. 실제로도 기우뚱할수록 좋다. 무중력 공간을 설계한 영화는 대개 히트한다. 절벽에 배달리거나, 우주공간에 뜨거나, 파도에 휩쓸리거나, 태풍에 날려가거나, 비행기가 고장나거나 하는 식으로 뒤뚱대는 무중력 공간을 얻을 수 있다.


    다음 이야기의 플롯은 주인공이 선택에 의한 연쇄작용을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 주인공의 선택이 다양한 인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주인공이 결정적인 선택을 하면 조연들도 거기에 걸맞는 응수를 하는 것이다. 주인공과 악당은 같이 강해지는게 보통이다. 그러나 보통은 주인공이 천신만고 끝에 겨우 강해졌는데 악당은 약물주사 한 방으로 졸지에 강해졌다는 소림축구식 설정으로 망한다. 악당도 천신만고해야 어울리는 이야기가 된다.


    마지막은 관객의 선택이다. 대개 주인공이 위대한 결단을 내려 혼자 적진으로 쳐들어갈 때 그때까지 냉소하며 구경만 하던 군중들이 하다못해 호미나 괭이라도 들고 와서 주인공을 구하는 설정으로 간다. 이때 몰려온 군중들은 관객의 입장을 대변한다. 관객과 주인공이 한 편이 됨으로써 감정이입은 극대화 되고 이야기는 종료된다.


    ◎ 세계관의 제시.. 배경에서 대칭의 논리를 도출한다. 

    ◎ 캐릭터의 설정.. 주인공이 동적균형으로 그 세계를 대표한다. 

    ◎ 주인공의 선택.. 감각이입을 통해 한 점에 전체를 연동시킨다. 

    ◎ 이야기의 전개.. 연쇄작용에 의해 주인공의 선택이 널리 파급된다. 

    ◎ 독자들의 선택.. 감정이입에 의해 관객과 주인공이 하나가 된다.


    극은 세계관의 제시≫캐릭터의 설정≫주인공의 선택≫이야기의 전개≫독자들의 선택 순으로 전개된다. 이때 세계관에서는 대칭구조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고르고처럼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세력과 당연히 뒤통수를 치는 세력이 대결하는 것이다. 재난영화라도 위험에 대비하는 세력과 설마하며 늑장부리다가 먼저죽는 세력의 대립이 있다. 항상 대칭구조를 끌어내야 한다.


    캐릭터에서 주인공은 장점과 핸디캡을 동시에 가진 입체적인 캐릭터를 가져야 하며 동적균형을 통해 그 세계를 대표해야 한다. 주인공은 약간 비정상이지만 워낙 그곳이 비정상적인 세계이므로 미묘한 균형이 얻어지는 것이다.


    비정상이 오히려 정상처럼 보이는 돈 키호테의 세계다. 주인공은 비정상적으로 뒤뚱거리면서도 묘한 균형을 유지한다. 주성치 영화에 이런 동적균형이 잘 표현된다. 일단 주성치가 약간 제정신이 아니다. 역시 제정신이 아닌 인간을 만나 의기투합하니 둘 다 제정신이 아닌 것이 균형을 이루어 오히려 약간 제정신인것처럼 보인다.


    보통은 일본 만담처럼 보케와 츳코미로 역할을 나누어 보케가 사고를 치면 츳코미가 수습하는 패턴이 되는데 좋지 않다. 한 명이 사고를 치면 다른 한 명은 더큰 사고를 쳐서 물타기하는 방법을 써야 동적균형이다. 정으로 동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동으로 동을 견제하는 것이다. 역시 주성치 공식이다.


    주인공은 막다른 궁지에 몰려 선택해야 하며 그 선택에 의해 그 무대 전체는 영향받는 상황이어야 한다. 재난영화라면 지구가 파멸할 위기거나 첩보영화라면 핵무기를 탈취당했거나 하는 상황이다. 단 한 번의 긴박한 결정에 의해 모두의 운명이 정해질 때 주인공이 선택은 필연적으로 되고 극의 긴박감은 극에 달한다. 이 지점을 부둘님은 감각이입이라고 한다.


    관객이 주인공의 행동에 공감하는 감정이입과 다르다. 주성치의 괴짜 행동에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주성치의 행동에 다른 인물들이 모두 긴밀하게 연계되어 버린다. 물리적인 엔트로피가 감소하여 모두가 예민한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독자 역시 손에 땀을 쥐고 예민한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 감각이입이다. 주인공의 행동에 공감하여 눈물 흘리는게 아니라 반대로 주인공에 거듭된 어깃장놓기 행동에 벙쪄서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상황이다.


    주인공의 선택이 다른 인물의 선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는 이야기로 풀어낸다. 이는 플롯의 역할이다. 이야기는 헐리우드에 진을 치고 있는 프로작가들 사이에 공유되는 상투적인 수법이 있으므로 그닥 중요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주인공의 선택이 냉소적인 태도로 팔짱끼고 방관하는 군중을 격동시켜 싸움에 가담하게 하는 방법으로 독자들을 격동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다섯 단계 중에서 한국영화나 막장선생 김수현 드라마라면 네 번째와 다섯 번째의 비중이 크다. 작가는 우연한 사건을 일으켜 쓸데없이 이야기를 복잡하게 꼬아대고 관객들은 무조건 감동받는걸 좋아한다.


    이건 후진국에서 먹히는 형식이다. 인도의 발리우드를 연상해도 좋다. 모범경찰 싱감이라면 주인공이 압도적으로 강한데도 악당이 집요하게 주인공을 따라붙으며 괴롭힌다. 이는 현실성이 없다.


    작가는 압도적인 기량을 가진 주인공을 궁지로 몰 수 없다. 악당의 극악무도한 행동은 주인공과 긴밀하게 엮이지 않는다. 그냥 뜬금없이 주인공의 친척이 납치당했다고 우긴다. 근데 악당도 사람 봐가면서 납치를 하든가 해야지 감히 싱감의 친척을 납치해? 말도 안 되는 수작이다. 모범경찰 타이틀이 괜히 붙었냐구.


    중요한건 구조다. 구조는 극 전체가 긴밀하게 엮이는가다. 긴밀하게 엮이려면 방해자를 제거해야 한다. 이야기를 단순한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단순화 시키는 방법은 캐릭터의 부각이다. 주인공이 결벽증이 있다거나 해서 뻔한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이다.


    고립된 우주공간이나 디스토피아의 세계, 혹은 동물의 세계, 병원의 세계, 전문가의 세계, 경마의 세계와 같은 독특한 세계를 설계하고 극도로 단순화된 캐릭터의 구사로 거기서 의사결정이 드러나는 지점을 보여주며, 다음 이야기를 전개시켜 독자와 체험을 공유하고, 감정이입하는 것으로 된다. 이때 세계관과 캐릭터를 앞세우는게 현대의 글쓰기다. 빨간약이냐 파란약이냐와 같은 선택의 지점을 보여줄 때 부둘님의 표현으로는 감각이입이 된다.


    ◎ 감각이입 – 팽팽한 긴장상태에서 주인공의 결정적인 선택.
    ◎ 감정이입 – 타인의 호응에 의해 긴장이 해소되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상태.


    실제로는 감각이입도 감정이입에 속하지만 차이가 있다. 주인공의 선택이냐 관객의 선택이냐다. 주인공이 계속 어깃장을 높고 고집을 피우며 무리한 선택을 하는 것이 감각이입이라면, 마침내 방관하던 군중들이 주인공의 행동을 납득하고 동조하는 것이 감정이입이다.


    감각이입은 극 전체를 끌고가는 힘을 주는 것이며 감정이입은 독자에게 감상의 보상을 하는 것이다. 감각이입 상황에서 관객은 주인공을 말리고 싶고 감정이입 상황에서 관객은 주인공에게 박수를 치고 싶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8]부둘

2014.09.23 (00:24:26)

백날 고민하던걸 단번에 완성시켜버리시는군요.

감사합니다. ㅠㅠ

프로필 이미지 [레벨:11]오맹달

2014.09.23 (10:22:17)

감정이입과 감각이입.

이걸로만 수많은 영화들을 분석하고 분류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레벨:3]파워구조

2014.09.25 (01:43:57)

몇달을 고생하던 '이야기 구조' 개념이, 걍 슈슝 정리되어 버립니다. 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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