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패는 무조건 바꿔라 의사결정은 패를 바꾸는 것이다. ‘패를 바꾸라’는 말은 과감하게 의사결정하라는 말이다. 게임은 딜러가 패를 돌렸을 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패를 바꿨을 때 시작된다. 이 원칙을 기억하라. 고지식한 태도라면 곤란하다. 무작정 바꾸는게 아니다. 중요한건 당신의 의도다. 애초에 적당한 시점에 패를 바꿀 의도를 가지고 자신의 패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그 바꾸어야 한다는 ‘패’가 뭐지? 하나의 ‘화두’로 받아들여야 한다. 쉽게 보면 쉽고 어렵게 보면 어려운데, 심오한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내가 가볍게 말한다고 해서 만만하게 보면 곤란하다. 끝까지 읽고 자기 패를 확인하기 바란다. 에너지는 언제라도 밖에서 들어오는 법이다. 패를 바꾸어 바깥의 물꼬를 안으로 돌렸을 때, 해외파에서 국내파로 변신했을 때, 용병에서 프랜차이즈 스타로 신분이 바뀔 때 당신의 게임은 시작된다. ◎ 기억하라!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당신의 첫 번째 신분은 용병이다. 당신이 데뷔무대에서 보여준 기술은 개인전술이다. 그것은 팀에 필요한 개인기다. 버려야 한다. 그걸로는 해외파 신세를 면할 수 없다. 1회용으로 쓰이고 버려진다. 강을 건넌 다음에 뗏목을 버려라. 진짜는 단체운전술이다. 개인전술 아니라 팀전술이다. 그것을 얻었을 때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가 되고, 하수를 졸업한 고수가 되고, 용병이 아니라 프랜차이즈 선수가 된다. 그러므로 의사결정하라. 구조론연구소는 고수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 ‘흥 넌 잘난 고수냐? 난 하수다.’는 식이라면 번짓수를 잘못 짚은 거다. 수학을 몰라도 잘 살 수가 있지만, 수학 사이트에 가서는 수학을 존중해야 한다. 하수라도 사는데 지장없지만, 고수 사이트에서 하수자랑 곤란하다. 패를 바꾸지 않았다면 하수다. 개인전술에서 팀전술로 갈아타야 한다. 하수도 자동차 운전은 할 수 있으나 인생은 단체운전이다. 자유게시판에 비트 이야기 나왔지만 내가 모르는 분야는 패스. 그런데 하수와 고수를 가르는 넘사벽이 있다. 바둑이라면 두고 나서 수순대로 복기를 할 수 있으면 일단 하수를 면했다고 볼 수 있다. 피아니스트라면 곡을 세 번 쳐보고 연주할 수 있어야 고수다. 그쪽도 모르지만 내가 들은 바로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 하수는 몇 십번 지겹게 반복하여 쳐도 곡을 외우지 못한다고. 지능의 문제일까? 아니다. 뇌가 아니라 몸이 반응하는 지점이 있다. 하수와 고수를 가르는 경계선이 있다. 곡은 프레이즈들의 집합이다. 하나의 프레이즈는 하나의 동그라미가 된다. 그 안에서 호흡하는 완전성이 있다. 혹은 오르고 내리며 혹은 밀고 당기는게 있다. 작곡가는 프레이즈를 반복하며 일정한 간격으로 파격을 집어넣는다. 청중이 잠들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거다. 거기에 자연스러운 에너지의 흐름이 있다. 고수는 에너지의 흐름에서 이탈한 부분만 체크한다. 흐름과 맞는 부분은 건너뛴다. 하수는 무작정 전부를 본다. 완전성 개념이 없는 하수는 뇌가 감당하는 한계를 넘어 너무 많은 정보를 받아들인다. 불필요한 정보를 걸러내지 않는 거다. 고수는 흐름을 타고 이탈하는 부분만 보므로 몇 번 쳐보고 전 곡을 외운다. 그것이 고수와 하수 사이의 넘사벽이다. 무작정 연습을 많이 한다고 되는게 아니다. 음악이든 그림이든 글쓰기든 반드시 장벽이 있다. 장벽은 하나일 수도 있고 여럿일 수도 있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반응하는 지점이 있다. 영화라면 부둘님이 말한 감정이입과 감각이입의 차이다. 그림이라도 초딩그림은 이미지가 아니라 일종의 데이터, 기호들의 집합이다. 이발소 그림처럼 텍스트집합 방식으로 그린다. 텍스트와 이미지의 본질적인 차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잘 그려도 똥이다. 어느 분야든 하수가 절대 모르는 고수의 경지가 있다. 대충 감으로 아는 사람도 있고, 알고 아는척 하는 사람도 있다. 염경엽 감독은 대략 감으로 아는 사람이다. 그는 이랬다 저랬다 하며 실험한다. 조금씩 확률을 높여간다. 잘하고 있지만 위태롭다. 양상문 감독은 확실히 알 것을 아는 사람이다. 김성근 감독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다. 정해진 스케줄대로 끌고 간다. 전체과정이 머리 속에 들어있다. 매팅리가 하수인 이유는 선수에게 물어보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김성근 ‘너 팔이 쳐졌더라. 컨디션이 안좋구나.’ 매팅리 ‘너 컨디션 어때? 지금 던질 수 있어?‘ 넘사벽이 가로막는다. 절대 못 넘는다. 구조론에서는 질과 입자의 차이다. 개별적인 것에서 전체적인 것으로 도약해야 한다. 그 과정에 반드시 패를 바꾸어야 한다. 누구나 처음에는 입자로 출발한다. 그냥 질이 되는 경우는 전혀 없다. 2002년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과의 단일화를 거부할 때는 개인전술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하고 자기 캐릭터를 내세워서 고집을 부린다. 그러나 결정적인 타이밍에는 패를 바꾸어서 성공한다. 나의 입장을 뒤로 물리고 진보의 전술, 인류의 전술, 지성의 전술, 대한민국 전술로 갈아타는 것이다. 개인전술에서 팀전술로 갈아탄다. 유능한 용병신분에서 끝까지 갈 프랜차이즈 스타로 바꿨다. 안철수처럼 자신이 용병신분이라는 사실을 끝내 모르면 곤란하다. 그는 바꾸어야 할 패를 바꾸지 않았다. 에피타이저 신분인데도 메인요리로 착각한 거다. 대중의 의사결정에 의해 요리되고 말았다. 패를 바꾸어 미성년자에서 어른이 되며, 3인칭 객관적 관점을 버리고, 1인칭 주체적 관점을 획득하는 것이다. 먼저 개별적인 것에서 비빌언덕을 얻고 난 다음 전체적인 것으로 패를 바꾸어 승부한다. 개별적으로 잘하는 관우, 장비, 여포, 마초 이런 애들 모아서 강군 안 된다. 매팅리가 왜 깨졌겠는가? 팀전술 없었다. 전체적으로 잘하려면 편제를 잘해야 한다. 사관을 양성하여 중대가 강해야 한다. 한 명 한 명이 잘하는게 아니라 조를 잘 짜야 한다. 로마군처럼 보급을 잘해야 한다. 군대는 밥만 잘 줘도 강군이 된다. 밥 안 주면 오합지졸로 변한다. 약속을 지키고 소속만 잘 정해도 강군이 된다.
100년간 탱크의 진화다. 진화는 점차 복잡해지는 것인가? 천만에. 개인전술에서 팀전술로 바뀌는 거다. 왼쪽은 개인전술, 오른쪽은 팀전술이다. 왼쪽이 태어났을 때 오른쪽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진화가 아니라 전개다. 첫 번째 주사위가 던져졌을 때 아직 나오지 않은 눈금의 조합은 확률적으로 결정되어 있다. 점차 구조가 복잡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조합이 다양하게 펼쳐진 것 뿐이다. 철사를 이리저리 구부려봤자 복잡해지지 않았다. 단지 실마리를 찾지 못한 것 뿐. 하수의 눈에는 복잡한 기계가 보이지만, 고수의 눈에는 개별적인 것이 두루 연결되어 단단해진 팀워크가 보인다. 미녀가 야수를 만나는게 드라마다. 그런데 미녀가 처음부터 ‘난 야수좋아’ 이러면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미녀는 야수를 경멸해야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야수의 진정성을 보고 패를 바꿔야 한다. 미녀의 야수에 대한 태도는 개인 입장이다. 패를 바꾼 경우는 야수가 좋아진 것이 아니라 미녀-야수로 이루어진 팀이 좋아진 것이다. 야수가 좋을 리 없다. 미녀는 야수가 아니라 미남을 좋아한다. 생선회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계속 싫어하면 드라마가 안 된다. 언젠가는 그 패를 바꾸기 위해 준비한 캐릭터라야 한다. 스티브 잡스가 맨발로 돌아다녀도 언젠가 폼 잡기 위한 예비동작이다. 무엇인가? ‘인류의 빈 곳’을 발견했을 때가 진짜 게임의 시작인 거다. 그대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일구면, 빈 곳을 발견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나 그 빈곳에 터를 닦으려면 캐릭터를 넘어야 한다. 활을 쏘아도 시위를 뒤로 한껏 당겼다가 패를 바꾸어 앞으로 내달리는 법이다. 바둑을 두어도 변에서 시작하여 중앙으로 진출하는 법이다. 포석과 행마 사이에 반드시 패를 바꾼다. 전술 바꾼다. 첫 번째 판단은 내가 원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집단이 조직한 무대에서 나는 엑스트라로 집단에 이용된다. 바꾼 패는 집단의지를 읽고 집단이 원하는 무대에서 내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 첫 번째 패 – 나의 의지로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집단의 의지가 투영되어 있으며 나는 엑스트라다. 내가 믿는 개인전술. ◎ 두 번째 패 – 먼저 집단의 의지를 읽고, 집단의 빈 곳을 발견하여, 집단의 의지를 바꾸어 주인공이 된다. 내가 운용하는 팀 전술. 인간의 행동은 집단의지에 지배된다. 그러므로 집단의지를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나의 의지는 무의식에 의해 조종된 것이며, 나를 1회용으로 쓰고 버리는 구조이며, 나는 안철수처럼 이용당한다. 집단은 점들의 집합이다. 끊어져 있는 점들을 연결시켜 형태를 일구면 빈 곳이 드러난다. 빈 곳을 때려서 집단의지를 바꾸어야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두 번째 패는 자기가 소속된 집단을 바꾼다. 어린이는 자신을 약자로 설정한다. 사실 약자이기 때문이다. 지식인도 자신을 약자로 설정한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인은 세력이 있으므로 강자다. 대중은 지식인 집단을 강자로 본다. 자신이 지식인이라는 그 사실 자체가 이미 강자임을 뜻한다. 지식인은 자신이 강자라는 인식을 얻어야 집단의지를 바꾸어 진짜 게임을 할 수 있다. 노동자도 연대하여 발언권을 획득하면 강자다. 약자포지션을 강자 포지션으로 바꾼 다음에 발언권을 행사해야 한다. 팀에 들어야 발언권이 주어진다. 의사결정학의 핵심은 개인단위가 아니라 집단의 단위로 중요한 의사결정이 일어난다는 거다. 집단을 격동시킬 의도를 가져야 한다. 민감한 부위를 타격하여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켜야 한다. 시대에 한 방 먹이지 못하면 예술가는 못 된다. 예술가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자기 라운드다. 인간은 두 번 태어납니다. 한 번은 개인으로 태어나고, 두 번 째는 팀의 일원으로 태어납니다. 한 번은 약자로 태어나고, 두번째는 강자로 태어납니다. 한 번은 명령대로 실행하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두번 째는 의사결정하는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당신은 무슨 짓을 해도 좋지만, 애초에 패를 바꿀 타이밍 재고 들어가야 합니다. 강력한 자기만의 캐릭터를 세우고, 다음 그것을 내려놓는 방법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꿀 지렛대'로 쓸 용도가 아니라면, 당신이 '나는 이런 사람이다' 하고 정해놓은 당신만의 고유한 캐릭터는 정말 바보짓입니다. '자신의 주특기'를 강조하지 말고, '인류의 빈 곳'을 발견해야 합니다. |
성경에 빗대는 거 싫어하셔서 참아왔는데
이건 너무 잘 설명되서 눈 감고 질러봅니다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를 찾아와 두번 태어나야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죠
대답을 듣긴 했지만 갸우뚱하고 갑니다.
바로 윗글 설명을 들었다면 무릎을 쳤을텐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