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의 공식 문제와 답 사이에는 등호 ‘=’가 있다. 그러므로 문제와 답은 같다. 문제를 알았다면 답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문제 속에 답이 있다. 그 답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는지가 중요하다. 구조론은 직관한다. 직관이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아니다. 김성근 감독쯤 되면 선수의 타격자세만 봐도 어디가 문제인지 정확히 짚어낸다. 이는 직관이지만 그냥 감으로 느끼는 것과 다르다. 직관이야말로 정확히 아는 거다. 이는 거꾸로 직관하지 못한다면 아직 아는게 아니라는 말이다. 골똘히 생각해서 답을 찾아낸다면 그것은 제대로 아는게 아니다. 바로바로 답이 나와야 아는 거다. 바로바로 답이 나올 수 있는 이유는 모형을 쓰기 때문이다. 포드시스템으로 답을 찍어내기 때문이다. 공장이 있다는 말이다. 간단하다. 모든 문제는 동사로 존재한다. 동사를 명사로 바꾸면 된다. 보통 문제를 일으켰다고 한다. 사고쳤다고도 한다. 이게 다 동사다. 원래는 고요한 상태인데 문제라는 넘이 갑작스럽게 활동을 시작하여 소란을 일으킨 거다. 전란이나 천재지변이라도 그러하다.
1. 동사를 명사로 바꾸라. 화살이 날아가는 이유는 어딘가에 활이 있기 때문이고, 비가 오는 이유는 어딘가에 장마전선이 있기 때문이고, 바람이 부는 이유는 어딘가에 바람공장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기압골이다. 그것들은 모두 명사다. 명사라는 활이 동사라는 화살을 쏜다. 범인은 언제라도 명사이며 명사를 잡아다 족치면 문제가 해결된다. 명사만 원인이 될 수 있다. 반면 동사를 내세우면 거짓말이다. 예컨대 ‘몸에 좋다’거나 ‘은혜받았다’는 식의 거짓말 있다. 이건 형용사 포함 동사이므로 무조건 거짓말이다. 특히 종교인들이 동사를 원인으로 내세우는 엉터리 말을 태연하게 쓰는 경우가 많다. 모든 것은 동사로부터 시작된다. 동사는 눈으로 관측된 데이터다. 그것을 명사화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 그 명사는 내부에 에너지의 입출력 메커니즘을 갖추고 에너지를 처리하는 장場의 형태다. 답은 정적균형을 동적균형으로 바꾸는 것이다.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평화가 깨진 것이며, 안정이 무너진 것이며, 불안정하다는 것이며,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며, 에너지가 가해진 것이다. 그 에너지를 처리하고, 움직임을 처리하고, 불안요소를 처리하면 된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반드시 이 패턴을 가진다. 이는 정해진 공식이다. 병에 걸렸든, 물에 빠졌든, 전쟁이 터졌든 마찬가지다. 정의 상태가 동의 상태로 변한 거다. 그러므로 문제를 일으킨 동을 제압하여 본래의 평화상태, 정의 상태로 되돌리면 된다. 문제해결 공식은 시끄러운 동을 본래의 고요한 정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직관적으로 고요하고, 편안하고, 안락하고 안정된 것이 답이라고 여긴다. 운동이 멈추어진 상태를 추구한다. 과연 그럴까? 일없이 조용한 것은 오히려 죽음과 가까운 것이 아닐까? 평화롭고 고요하게 만드는 방법은 내부에 계급질서를 두어 차별하는 것이다. 강자와 약자를 차별하고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고 임금과 신하를 차별하여 제각기 분수를 일러주면 평화가 찾아온다. 과연 그럴까? 이 방법은 실패한다. 왜냐하면 알고보니 본래의 상태가 정이 아닌 동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문명은 가만 두어도 점점 성장하고 발전한다. 나무는 가만 두어도 점점 크게 자란다. 회사는 가만 두어도 점점 커진다. 식구는 가만 두어도 점점 늘어난다. 그렇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본래의 상태가 정이 아니라 동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동이 아니라 정이다. 멈추면 죽는다. 상어는 아가미가 없으므로 멈추면 호흡을 못해 죽는다. 좁은 수족관에 상어를 가둬놓으면 죽는다. 생명은 본래 동이므로 정을 추구하면 죽는다. 팔리지 않은 음식처럼 멈추어진 생명은 죽는다. 그러므로 문제해결은 동을 정으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정을 동으로 되돌리는 것이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벌써 뇌가 꼬이기 시작할 거다. 그렇다. 여기서 말하는 동이 그 동이 아니다. 산이 그 산이 아니고 물이 그 물이 아니다.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므로 도리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그것은 정적균형이 아닌 동적균형이다. 생명은 움직임에 의해 도리어 안정된다. 기업은 성장해야 안정되고, 국가는 부흥해야 안정되고, 조직은 회원이 늘어가야 안정되고, 축제는 시끄러워야 안정되고, 심장은 뛰어야 안정되고, 사대강은 흘러야 안정된다. 존재는 본래 동이다. 우리는 동이 문제를 일으키므로 본래의 정으로 되돌리려고 하지만 실패다. 생물은 원래 동이며, 정이 문제를 일으키므로 본래의 동으로 되돌려야 한다. 그러나 그 동은 동이되 균형있는 동이다. 그것이 동적균형이다. 팽이는 돌기 때문에 도리어 안정된다. 배는 파도를 넘기 때문에 도리어 안정된다. 자전거는 달려야 안정되고, 비행기는 날아야 안정되고, 생물은 번성해야 도리어 안정된다. 역사는 진보해야 안정되고, 연인은 뜨겁게 만나야 도리어 안정된다. 내부에 경쟁구조를 갖추고 역동성과 활력을 가진 팽팽하게 긴장된 상태가 더 안정된 상태다. 팔팔하게 살아있어야 안정된다. 정지해 있는 것은 타격하면 넘어지지만 스케이트를 타는 김연아는 밀어도 넘어지지 않는다. 움직이는 것은 에너지를 흡수하기 때문에 안정된다. 에너지 입출력구조를 갖춘 동적균형이 정답이다. 모든 소란은 정적균형을 추구하는 보수와 동적균형을 추구하는 진보의 의견차이 때문이다. 문제는 때로 진보가 도리어 정적균형을 추구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진보답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FTA를 반대하고, 시장개방을 반대하고, 기업의 성장을 반대하고 뭐든 반대한다. 얼굴표정부터 우울하다. 그들은 정적균형을 추구한다. 이는 진보가 노선을 잘못 정한 것이다. 늙은 진보다. 진보는 역동적이고 활력있는 동적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편안한 진보가 아니라 긴장된 진보, 경쟁하는 진보, 아슬아슬한 진보, 깨어있는 진보, 뛰어다니는 진보를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 진짜다. 답은 정해져 있다. 어떤 문제를 만났거든, 문제의 동사를 명사로 바꾸되, 그 명사는 내부에 생정점과 방향성을 갖춘, 의사결정의 축과 대칭구조를 갖춘, 동적균형을 이루는 에너지장 형태면 된다.
비가 오면 장마전선이요, 바람이 불면 기압골이요, 자석이 붙으면 자기장이요, 사과가 떨어지면 만유인력이요, 생물이 번성하면 생태계요, 돈을 벌면 은행이요, 의사결정하면 민주주의입니다. 반드시 배후에 그것이 숨어 있습니다. 에너지를 처리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처 이름이 부여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거기다 명명하면 됩니다. 반면 은혜받는다니 축복받았다니 영빨이 좋다거니 하는 식의 동사로 설명하면 무조건 거짓말로 보면 됩니다. 한의사들 말투로 어디가 허하다느니 간에 열이 찼다거니 하는 식의 말투도 동사이므로 가짜입니다. 1초 안에 직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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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표정부터 우울하다"
이 구절 백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