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log.daum.net/yhc4298/205 징기스칸에 대해서는 예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최근 게시판에서 의사결정구조를 논하다보니 다시 짚어볼 부분이 떠올랐다. 징기스칸에 대해서는 아랍의 역사가들이 쓴 것과 징기스칸의 측근이 쓴 작자미상의 몽골비사가 있는데 둘은 관점이 다르다. 아랍인이 본 징기스칸은 대단한 마초에다 흉악한 폭군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공포의 대왕이다. 왜 아랍인은 징기스칸을 폭군으로 묘사했을까? 첫째는 징기스칸이 그것을 원한다고 보고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다. 이는 김두한 자서전만 봐도 알 수 있다. 김두한은 자신을 깡패, 살인마, 악당, 사기꾼으로 묘사하고 있다. 김두한은 왜 자신을 나쁜놈으로 묘사해서 김용옥으로부터 ‘너 가짜지? 너 장군의 아들 아니지?’ 하는 의심을 일으켰을까? 김두한은 장군의 아들 맞다. 당시 상황을 입증하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신문기사에 사진도 있다. 김두한이 바보짓을 한 이유는 바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살인이 애국이라고 여겼다. 아랍의 역사가들은 징기스칸이 좋아할걸로 여기고 대단한 마초라고 썼지만 사실 징기스칸은 보르테 앞에서 꼼짝도 못하는 공처가였다. 둘째 아랍인들은 징기스칸을 이용해서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정당화할 속셈이었으므로 최대한 징기스칸에 되도록 많은 권력을 부여해야만 했다. 징기스칸에 100의 권력을 주여해야 자신에게도 10의 국물이 떨어진다. 징기스칸을 대왕 위의 대대대왕으로 만들어놓고 자신이 왕노릇이라도 해보려는 심보다. 징기스칸을 낮추어 보통의 왕으로 치면 자신은 왕보다 못한 봉건영주로 지위가 깎이기 때문이다. 이는 뭐 뻔한 영웅전의 공식이다. 조선은 어떤가? '해동육룡이 나라샤 일마나 천복이시니 고성이 동부하시니' 하며 용비어천가를 불러제끼는 것은 아랍인의 관점과 같다. 삼국사기는 어떤가? 김유신은 천관녀를 만나려다가 그 자리에서 말의 목을 쳤다. 대단한 마초라 할 것이다. 김유신전은 그의 손자가 쓴 것인데 가문을 높이기 위하여 김유신을 대단한 마초로 만들어 놓았다. 과연 그랬을까? '흥 여자 따위!' 하면서 말의 목을 쳐버리고 동굴에서 10년씩 수도를 했을까? 이런 에피소드들을 곧이 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설사 사실이 그랬다 하더라도 그게 과연 기록할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별개다. 특정한 방향으로 편향된 정보만 골라모은 것이다. 그 반대편의 에피소드들은 묵살한 거다. 반대로 몽골비사는 징기스칸을 대단한 찌질이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모든 중요한 결정을 엄마에게 물어보고 하는 마마보이였다. 게다가 자무카와 갈라설 때는 마누라의 명령을 따랐다. 본인에게 의사결정권이 없었다. 몽골비사의 정 많고, 눈물 많고, 소심한 겁쟁이에 비겁자 징기스칸은 아랍의 역사가들이 기록한 위대한 징기스칸의 이미지와 맞지 않다. 완전히 캐릭터가 다른 두 징기스칸이 있다. 무엇이 진실일까? 둘 다 진실이 아니다. 몽골비사는 부족주의 관점에서 씌어진 역사서다. 역사는 주관적 감상을 배제하고 준엄하게 쓰는 춘추필법이 정답이다. 사마천의 사기처럼 건조하고 쿨해야 한다. 감정이입이 들어가면 그게 소설책이지 역사서는 아니다. 그런데 말이다. 몽골비사의 찌질이 관점이 너무나 구약성경의 찌질이 역사관과 비슷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게다가 삼국지연의에 묘사된 울보 찌질이 눈물 9단 유비 캐릭터와도 흡사하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과연 구약성경에 묘사된 대로 이스라엘의 왕들은 다 울보, 찌질이, 비겁자, 음란마귀 임금이었을까? 과연 이스라엘인들은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사통하는 문화였을까? 과연 진시황은 여불위의 아들일까? 이런 것을 곧이 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다만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역사가의 감정을 개입시키는 부족주의 관점이 역사를 체계적으로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부족주의 마인드가 징기스칸을 마누라한테 바가지나 긁히는 찌질이로, 삼국지의 유비를 우는 것 외에 할 줄 아는게 없는 머저리로, 구약성경의 인물들을 음란마귀로 묘사하게 한 거다. 인간적 약점을 강조했다. 부족주의는 천신을 신앙하므로 군주가 신과 동격이면 안 된다. 신은 엄중하고 인간은 나약하다. 인간 위에 인간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용비어천가는 군주를 신인으로 묘사한다. 삼국사기도 김유신에 신격을 부여한다. 박사모는 박정희를 반신반인으로 묘사한다. 아랍인은 징기스칸을 하늘에서 내려온 공포의 대왕으로 묘사한다. 왜? 그래야 국물이 떨어지니깐. 여기에 봉건적 피라미드 방식 의사결정구조를 세팅하려는 의도가 있다. 그렇다. 몽골비사와 구약성경은 국물에 관심이 없는, 의사결정구조 세팅에 관심이 없는 부족주의 관점을 가진, 천신을 신앙하는 사람이 평등주의 관점으로 역사를 쓴 것이며 거기에 맞추어 체계적으로 사실을 왜곡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이나 몽골비사나 삼국유사를 읽을 때는 대충 사회분위기만 파악해야지 기록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역사의 핵심은 인간이 어떻게 정치하여 집단의 의사결정구조를 발달시켜 왔는가이다. 알아야 하는 것은 준엄한 춘추필법의 관점으로 볼 때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이며 사실은 징기스칸 별거 아니라는, 사실 이스라엘 왕들 별거 아니라는, 사실 유비는 찌질이라는 부족주의 관점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특유의 친화력은 있다. 정서적 호소가 먹혀서 대중의 인기를 끈다. 대중들은 역사의 핵심인 의사결정구조의 발달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정치적 의사결정구조의 세팅이 부족의 전통을 파괴한다는 점도 있다.
◎ 마초사관 – 인물을 우상화 시키고 떨어지는 국물을 기다린다. 역사는 국물 빼고 양념 빼고 건조하게 써야 한다. 징기스칸은 공처가가 아니다. 겁쟁이도 아니다. 단지 최적화된 의사결정구조를 만들었을 뿐이다. 자무카는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려고 했다. 어느 면에서는 성공했다. 그러나 완벽한 시스템은 완벽할수록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 안에 동적균형이 없기 때문이다. 정지된 상태에서 균형을 갖추면 도리어 위기에 약해진다. 물론 평화가 계속된다면 봉건적 피라미드 구조가 안정되어 있다. 로마의 시스템은 불완전성을 받아들인 역동적인 시스템이며 그 불완전성에 의해 지속적으로 정복을 해야만 유지가 되는 불안한 시스템이다. 대신 정적균형이 아닌 동적균형을 가진다. 불안에 단련되어 위기에 강하다. 징기스칸은 불안한 시스템, 긴장을 유지하는 시스템, 예민한 시스템, 일종의 전시체제를 계속 가져간 것이다. 일본의 막부나 조선의 비변사는 로마의 독재관과 같이 일시적으로 비상대권을 주는 불안정한 시스템이다. 항구적인 안정된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긴장풀고 허리띠 풀고 갑옷 벗고 탱자탱자 놀아보자던 봉건군주는 모두 죽었다. 항구적인 안정상태를 유지하려면 귀족에게 특권을 줘야 한다. 피라미드식 인간차별 시스템이다. 자무카는 귀족을 죽이고, 새로운 귀족집단을 만들었다. 징기스칸은 귀족집단을 해체하고 대신 비상시에나 작동하는 참모부를 만들었다. 이 비상조직은 항구적으로 유지될 수가 없으므로 계속 전쟁을 해야만 한다. 봉건왕조가 귀족에게 특권을 주는 이유는 그래야 시스템이 안정되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처럼 전쟁이 몇 백년에 한번 있는 나라는 귀족이 필요하다. 그래서 히말라야산맥 덕분에 전쟁이 적은 인도에 계급차별이 심하다. 오늘날 이 나라의 진보세력들은 항구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안정된 시스템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지식의 귀족계급을 만들고 있다. 지식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고졸 노무현을 씹는다. 실패한다.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는 긴장되고 역동적인 참모부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정적균형이 아니라 동적균형으로 가야 한다. 길가에 가만이 세워둔 자전거를 밀면 넘어지지만 달리는 자전거는 밀어도 넘어지지 않는다. 이 사회를 가만이 정지한 채로 안정되어 있는 정적균형의 시스템이 아니라 쉬지 않고 달리며 그러한 운동상태에 의해 안정되는 동적균형의 시스템으로가야 한다. 돌고있는 팽이는 채찍으로 쳐도 자빠지지 않는다. ### 논하려는 부분은 우리나라는 아직 충분히 부족주의에서 가족주의로 옮겨타지 못했다는 거다. 가족주의라는 표현은 오해될 수 있는데 여기서 가족주의는 부족주의를 극복한 가족주의를 말한다. 필리핀 등지에는 여전히 부족적 모계습속이 남아있다. 여자가 가문의 중심이며 여자에게는 남편보다 오빠나 남동생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남편은 핏줄이 아니지만 오빠는 핏줄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시부모의 자식에 대한 간여도 일종의 부족주의다. 가족주의는 부부 안에서 의사결정이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시부모가 ‘이 결혼 반댈세’ 하는건 상상할 수 없어야 한다. 왜 남의 결혼에 의견을 내지? 미쳤나? 누가 물어봤냐구. 아무리 드라마라 해도 그걸 물어보는 것도 황당하고 물어본다고 의견내는 것도 황당하다.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닌데 말이다. 이거 해결 못하면 미래는 없다.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1. 징기스칸은 왜 부족에게 쫓겨났나? 딴지일보나 허영만의 말무사에서는 아버지 예수게이가 죽은 후 허엘룬에게 딸린 아홉이나 되는 식구가 너무 많아서 가난 때문에 재혼을 못했다고 되어 있는데 무식한 소리다. 10만명이나 되는 거대 몽골 유목민집단에 귀족이 가난하다는건 말도 안 된다. 가난은 농경민에게나 해당되는 개념이다. 몽골은 모계사회의 습속이 남아있는 사회다. 데릴사위제가 대표적이다. 테무진의 어머니 허엘룬은 유력한 군사지도자 예수게이의 미망인이다. 칸 아니면 결혼할 상대가 없다. 이는 암바가이칸의 두 미망인이 재혼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시 부족의 모계서열은 암바가이칸의 두 미망인이 가장 높고 허엘룬은 넘버 2다. 뚱보 타르쿠타이가 허엘룬을 내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잘못이다. 허엘룬이 넘버원 자리를 노렸기 때문에 부족에서 잘린 것이다. 징기스칸의 숙부들이 형의 두 미망인 허엘룬과 소치겔을 거두지 않은 것은 딸린 식구가 많아서가 아니라 부족 내부 여성권력자들 사이의 알력 때문이다. 허엘룬이 부족내 권력자인 두 미망인을 찾아가서 부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여왕에게 굴복을 하지 않아서 괘씸죄로 잘렸다.
2. 예수게이는 왜 허엘룬을 납치했나?
3. 징기스칸의 잃어버린 10년은?
4. 허엘룬은 왜 벡테르와 결혼하려 했나?
5. 징기스칸은왜 보르테와 소치겔을 버렸나? 있었던 말은 모두 거세된 전투마다. 당시 가난해서 말이 없었던게 아니고 긴급한 상황에서 전투마가 없었던 것이다. 더 있는 말들은 양떼와 함께 다른 곳에 있었을 것이다. 메르키트의 칩입을 타이치우드의 칩입으로 오해해서 타이치우드가 건드리지 않을 여자들은 놔두었을 가능성이 있다.
6. 소치겔은 왜 아들을 보고 도망쳤나?
7. 징기스칸은 왜 칠게르의 아들 주치를 장남으로 받아들였나? ### 중요한 것은 모든 의사결정이 의사결정원리에 의해 지배된다는 점이다. 허엘룬은 귀족의 부인이다. 그 기준으로 의사결정구조가 세팅된 것이며 평생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모계족장의 지위를 버릴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 기준을 벗어난 의사결정은 의미가 없다. 의사결정권을 뺏기는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는게 의사결정의 딜렘마다. 원문은 가난이라든가 먹고사니즘을 강조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몽골비사를 비롯한 여러 기록들은 감상적으로 기술되었기 때문에 삼국지연의가 유비를 바보로 만들 듯이 감상적으로 왜곡되었다. 아랍쪽의 기록은 징기스칸을 무시무시한 마초 독재자로 부풀리고 몽골비사는 아줌마 관점에서 겁쟁이에 찌질이로 묘사해 놓았다. 원래 인간은 복잡한 동물이지만 작가들은 왕마초와 찌질이 외에는 아는 캐릭터가 없다. 캐릭터에 맞추어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진실은 의사결정원리다. 징기스칸은 다음 단계를 내다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계속해간 것이며 자무카는 단 한번의 큰 승부로 몇 십년 가는 안전장치를 만들려고 한 것이다. 즉 자무카는 이걸로 소란을 끝내자는 입장이고 징기스칸은 이걸로 큰 판을 시작하자는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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