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토요일 저녁 동네 마트가 많이 붐비었다. 계산대가 두 줄인데도

심리적으로 5분은 기다린 듯한 느낌이었다. 역시 기다림은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시간이다. 오래 살고 싶다면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면 될 듯하다.

내 뒤에도 서 너명이 서있는 것에 위로를 삼으면서도 손바닥 안쪽으로 전해지는 장바구니의 중력이

점점 신경쓰일 무렵,

내 뒤에 서 있던 서너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자기 손에 들어있던 캐릭터 음료를 옆 줄 계산대에 올려 놓았다.

키가 작아서 겨우 자기 머리 위로 음료를 올려 놓으니 제대로 서있을리 만무했다. 음료수병은 쓰러져서

굴러가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잠시 딴 곳을 응시하던 아이의 어머니는 돌발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개콘코너의 '황해'의 캐릭터 처럼 제대로 당황하셨다.

계산원이 바닥에 떨어진 음료수병을 주워서 아이의 엄마에게 건넸다.

엄마는 아이에게 말했다.

"아휴, 그러는거 아니야. 그렇게 하면 안돼"

"아냐~~ 이렇게 하면 돼."

엄마와 아이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아이가 계속 고집을 피우자,

"너, 자꾸 그러면 다음 번에 마트에 안데리고 온다."

"아이잉~~~. 으으응----, 엄마..."

"엄마, 안아줘"

"아휴.. 얘가 정말 왜 이래.."

몇 번 거절하다가 아이의 칭얼거림에 어쩔 수 없이 장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고, 아이를 안는다.

저 아이가 나중에 어떻게 자랄까?

아이와 엄마와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앞으로 저 아이는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할까?

엄마는 아이의 자기 주도적인 시도를 묵살했다.

아이의 눈높이가 아닌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의 행동을 평가 절하했다.

아이 행동에 담긴 긍정적인 부분은 도외시 하고, 아이의 행동을 금지하였다.

여러 사람 앞에서 아이를 불안하게 만들어서 독립이 아닌 의존적인 생각을 갖게 하였다.

아이는 자신이 엄마를 창피하게 만드는 나쁜 아이란 생각을 갖게 되어 자존감이 하락하였다.

공감이 필요하다. 아이가 당황한다고, 엄마가 같이 당황하면, 아이는 더 당황한다.

아이의 돌발 행동을 맘껏 허락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아이의 행동을 긍정할 수는 없을까?

"우리 아들 대단한데. 어떻게 물건을 계산대에 올려놓을 생각을 했니?"

"아, 빨리 계산하고 싶었구나. 그런데 어쩌지. 우리가 계산하려면 좀 기다려야 하는데..."

"상우야. 조금만 기다려 줄 수 있니?", "우리 순서가 되면, 엄마랑 같이 물건 올려놓자~~"

교육은 아이의 의도를 부정하고 통제하기 보다, 아이의 생각을 긍정하고 아이의 에너지의 방향에

물꼬를 틔여주고, 격려해 줄 때 아이가 제대로 성장한다.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로 보고, 문제의 패러다임에 갖혀, 문제 뒤에 있는 아이의 강점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교육은 성장의 토대가 아니라, 동물을 잡아 끄는 목줄이나 가축의 울타리로 그치고 말 것이다.

# 참고할 만한 에릭슨의 발달과업

*성장의 선순환 - 신뢰-자율-주도-근면-정체-친밀-생산-통합
* 병리의 악순환 - 불신-수치-죄책감-열등-혼미-소외-정체-절망과 혐오

# 영감을 주는 김동렬의 마음의 구조

* 다섯가지 마음 = 정신 - 의식 - 의도 - 생각 - 마음

* 다섯가지 표현 = 존엄(비참) - 자유(억압) - 사랑(소외) - 성취(좌절) - 행복(불행)


[레벨:15]오세

2013.08.19 (09:14:17)

상우님 좋은글 퍼갈게요. 기아자동차 마음산책 뉴스레터에 실어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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