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 선생님들 보시라고 쓴 글입니다.
마음의 구조의 귀퉁이에 동렬님이 쓴 글의에서 아이디어를 갖다 썼어요.
짜임새있게 쓴 글은 아니고, 그냥 생각나는대로 30분안에 막썼습니다. 퇴고도 별로 안하구요.
그런데, 선생님들의 반응은 꽤나 뜨겁고 좋았습니다. 반응은 나중에 또 올릴게요.
구조론 조금만 갖다 쓰면, 다들 열광합니다. 회원님들도 현장에서 적용해보세요.
이제는 어떻게 말하느냐도 중요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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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대화나 교사역할훈련은 존중 중심, 소통과 공감 중심으로 나아가는 지식과 기술을 알려줍니다.
긍정의 훈육은 부드럽고 단호하게 교육하는, 좀더 균형감각있는 실제적인 훈육 방법을 알려줍니다.
교사의 마인드는 비폭력대화와 교사역할훈련으로, 실제적인 상황에서는 긍정의 훈육이 잘 통하기도 합니다.
비폭력대화는 1대1에는 강점이 있지만, 1대 다수를 대할 때는 노련한 비폭력대화 훈련가가 아니라면
애들의 장난과 저항에 휘말리기 쉽습니다. 긍정의 훈육은 잘못된 목표를 추구하는 아이의 문제행동의 원인을 진단하고
대처하는데 유용한 지침이 됩니다. 또한 학급회의를 민주적인 방식을 통해 실질적인 문제해결에 도움이 많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대할 때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 이유는 선생님 측면, 부모님 측면, 학교 측면,
지역분위기 측면 등등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특성에 초점을 맞춰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아이들은 자기 편이 되어줄 사람을 원합니다. 초등학교에 들어와서 아이들이 가장 충격을 받는 것은 선생님이
내 편이 아니라 친구 편을 든다는 사실입니다. 친구를 때려도 친구가 잘못했기 때문에 자기가 때린 겁니다.
고로 선생님께서 친구의 잘못을 응징해줄 것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정작 선생님은 자신을 혼냅니다.
이거 충격이 큽니다. 선생님이 내편이 아니라니! 물론 대부분의 아이들은 충격은 받겠지만,
선생님이 자기 편을 들어주지 않아도 그럭 저럭 학급에서 적응합니다. 문제는 말을 잘 듣지 않고 말썽을 계속 부리는 아이들은 적어도 선생님이 자기 편이 아니기 때문에 선생님 말에 반항하고 제멋대로 행동합니다. 아이들의 문제행동을 줄일 수 있는 열쇠 중의 하나는 선생님께서 아이 편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적절한 맞장구와 공감은 필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선생님들이 아이 편이 되어주기 보다는 잘잘못을 가리고, 억지 사과를 시키고, 재발방지를 위한
협박을 서슴치 않습니다. 때문에 아이는 수치심을 느끼고, 선생님께 복수하려고 하거나 문제를 더 크게 일으킵니다.
둘째로 아이는 선생님이 존경할 만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따집니다. 더 간단히 말씀드리면, 내가 복종할만한가 그렇지 않는가
를 금방 구분합니다. 어떤 교실에 가면 아이들이 도대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면, 대부분 선생님들은 그 반 애들이
좀 문제가 많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쩌죠? 솔직히 말하면 아이들보다 아이들을 맡은 선생님께 원인이 있습니다.
지식이든, 수업이든, 운동이든, 성량이든, 유머든, 외모든, 말발이든지 뭔가를 아이들에게 보여줄 것이 있어야 합니다.
보통 자신이 잘 못하는 것을 상대방이 잘하면 대단해 보입니다. 내가 잘하는 거 잘 해봤자 그다지 멋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부모님은 만날 잔소리에 짜증나게 하는데, 선생님은 잔소리 별로 없이도 친구들과의 다툼을 노련하게 처리합니다.
그때 아이들은 선생님에겐 메리처럼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믿게 됩니다. 참고로 저같은 경우 몇 번 해보지도 않은
선생님들 강의 경험이나, EBS 다큐 자문경험, KTV 출연경험 등을 아이들에게 얘기해줍니다. 직접 증거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축구는 제가 정말 못하지만, 축구이론을 공부하고 남학생들이 축구할 때 유튜브를 보고 축구를 가르쳐주기도 하고,
전략을 짜주기도 합니다. 개인기술 뿐만 아니라 아이들끼리 협력할 수 있는 연습방법을 인터넷에서 찾아서 알려주기도 하고,
직접 수업시간에 연습시키기도 합니다.
저희반 사례를 보면, 학기초에 아는 것 많다고 나불대고, 친구를 비판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비폭력대화를 통해서
아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찾아보고, 때로는 아는 척 계속 하면 칭찬해주기도 하고, 어떨 때는
더 높은 과제수준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친구들을 비난할 때 같이 비폭력대화를 연습하기도 했습니다.
4월만 해도 아이들이 이 아이에 대한 불만이 높았는데
지금은 아이가 친구들을 비난하지도 않고, 잘난 척 해서 수업분위기를 깨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날카로운 질문과 창의적인
발표로 수업 분위기를 좋게 하고 학급의 학업수준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그래서 이 아이에게 물어봤습니다. 자신이
바뀐 이유가 무엇이냐고... 아이는 자기도 잘 모르겠답니다. 그냥 어느 순간 없어졌답니다.
저는 위의 아이를 대할 때 적어도 이 아이를 크게 혼내지는 않았습니다. 이 아이는 잘난 체 하고 친구한테 험한 말을 많이 해서
제게 몇 번 혼나기도 했지만, 아이가 지적 호기심이 많은 것에 착안해서 칭찬도 해주고, 수업 시간에 미리 답을 해서
김을 빼놓을 때는 아쉬움을 표현하고, 손짓으로 자제를 부탁했고, 따로 만나서 얘기했습니다. 물론 매번 그러지는 않았지요.
그러면서 아이보고 너는 커서 팀체제의 전문가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독립적인 전문가가 되어 활약할 만한 자질을 갖췄다고
칭찬했습니다. 혹시 네게 다른 팀워크를 발휘할 잠재력이 네게 있는지도 모르니까, 선생님이랑 한 번 도전해보자, 모둠원들
얘기를 잘 들어주고, 자신있게 네 의견을 펼쳐보라고 했습니다.
지난 번에는 아이들이 젠가 때문에 다툼이 생겼습니다. 이 아이가 다른 애들이 자꾸 젠가로 만든 구조물을 넘어뜨려서
짜증이 난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다른 애들에게 막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을 10여분 동안 학급회의에 부쳤습니다.
교사역할훈련의 제 3의 방법을 활용하였지요. 젠가를 넘어뜨린 아이들은 젠가 때문에 다닐 수 없다고 하였고,
어떤 학생은 젠가를 던지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했씁니다. 우선은 젠가를 던져서 생기는 안전문제부터 빠르게 다뤄서
매듭짓고, 양쪽에서 젠가 때문에 느끼는 감정과 자신들이 원하는 욕구를 명확히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자유롭게
대안을 내놓게 하였지요. 결론은 사물함을 여는데 편하도록 젠가놀이를 약간 떨여져 하자. 지나가는데 불편할 때는
잠깐 비켜달라고 하고 지나가자. 아이들은 이 두가지에 모두 동의했습니다. 다행히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는 조용하네요.
지나친 왕따나 학폭,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문제가 아니라면 아이들의 잘잘못을 가리지 않고도 문제를 비교적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아이들을 통제하는데 힘도 덜 듭니다. 현재 5학년을 맡고 있는데
별로 어려움을 못 느낍니다. 동학년 남자 부장님(늦깎이 교직생활 7년만에 최초로 동학년에 남자가 있다니...)과
협력이 되는 측면도 있고, 동학년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괜찮은 측면도 작용한 듯 합니다.
이 글의 제목이 허용이냐 엄격함이냐 인데, 결론은 허용도 답이 아니고 엄격함도 답이 아닙니다. 허용과 엄격의 조화입니다.
그리고 허용과 엄격함 이전에 선생님이 아이 편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적어도 '선생님이 내편이구나, 나를 이해해주시는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아이에게 권위있는 존재(권위적인 존재가 아니라
뭔가 멋진 존재, 존경할 만한 존재, 따르고 싶은 존재)가 되어야 아이가 선생님 말씀을 따르고 학급 분위기가
통제불가의 교실붕괴상태로 빠지지 않게 됩니다. 이 두가지가 바탕이 되면, 비폭력대화든 교사역할훈련이든, 감정코칭,
긍정의 훈육이든 어느 한가지를 열심히 공부하시고, 연수받으시고, 가능하면 강사 자격증까지 따셔서 적용하면 됩니다.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계속 적용하시면서 노하우도 생기고 마음도 편안해지고 문제도 줄어들고, 문제를 보는 눈도 여유로워
집니다. 무엇보다 함께 문제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격려와 더 큰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저는 요즘에는 회복적 생활지도에 관심이 많이 갑니다. 계속 배워갈 것이고, 좋은 분들과의 나눔들 속에서
좋은 영향력을 받게 되겠지요. 애들에게 윽박지르기 보다는 그래도 한 번 더 호흡하며 아이성장을 위해서 노력하시는
선생님들을 응원합니다.
글쓰면서 뭔가 매끄럽지 못하다고 느꼈는데, 콕 짚어주셨네요.
아이들에게 자신이 인류의 대표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교사의 대표라는 마음으로 애들앞에 섭니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다는 것을 제가 아이들을 존중하면서 경험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축구할 때도 이기는 즐거움이 아니라, 멋진 경기를 할 때의 희열, 팀웍으로 창의적인 플레이를
할때의 쾌감을 누리도록 돕고 있지요. 그전에는 그냥 골넣는거 이기는거만 좋아했지만, 요즘은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입니다.
자기주도식으로만 하라고 하면 답이 안나옵니다. 시범식, 유도식으로 하면서 자기주도적인 방법과
협력적인 방법들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변화하는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울 수 있게,
골고루 이것 저것 해보면서 자기가 잘하는 것을 찾을 수 있게,
뭔가 일을 해나가면서 성취의 경험으로 개인과 공동체가 진보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속 좁은 나 자신이 펴지면서 맘이 편해집니다,,,감사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고
막연히 스스로 답을 알아내게 한다는 식의 사고는 위험합니다.
적절히 힌트를 줘야 합니다.
외부의 적을 알려주고 내부의 동지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답을 암기하게 할 필요는 없지만
함께 가는 방향은 알려줘야 하는 거죠.
인류가 한편임을 알려주고
함께 가는 방향이 있음을 알려주고,
진리라는 대장이 있음을 알려주고
함께 가는 대장정의 길에서 끊임없는 긴장을 유지해줘야 합니다.
그 쾌감에 중독되어야 하는 거죠.
허용도 답이 아니고, 엄격도 답이 아니고, 유도가 답입니다.
긴장으로 통제하는 거.
울타리나 장벽으로 통제할 수 없고, 몽둥이나 체벌로 통제할 수 없지만
유쾌한 긴장감, 기대감, 설레임으로는 통제할 수 있습니다.
사탕발림으로 통제할 수 없고 상장이나 훈장으로 통제할 수 없지만
화음이 맞아떨어질 때의 쾌감, 하이파이브가 맞아떨어질 때의 즐거움.
의견이 일치할 때의 쾌감, 동지의식을 느낄 때의 기쁨으로는 통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