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존재가 궁극적으로는 물 위에 뜬 배와 같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정치든, 경제든, 문화든, 예술이든 그러하다. 생물이 그러할 뿐 아니라 물질의 세계 역시 그러하다. 양자의 세계다. 동적균형이 존재의 본질적인 모습임을 간파해야 한다. 우리가 존재로 여기는 것은 신체감관에 의지한 거다. 손으로 만져지면 거기 무언가 있다고 여긴다. 이는 사건의 원인이 아닌 결과측이다. 사건의 원인측에서 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거기서 어떤 의사결정이 일어나면 실제로 거기에 무엇이 있다. 여기에 양자적 존재, 불확정적 존재, 확률적 존재, 전혀 다른 세계의 모습이 있다. 각각 100명씩으로 이루어진 두 그룹이 넓은 길에서 마주쳤다고 하자. 사람들 사이의 간격이 넓다면 한 사람도 어깨를 부딪히지 않고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 충돌했으나 충돌하지 않았다. 멀리서 망원경으로 이를 관측한다면 아무 것도 포착되지 않는다. 원소들이 너무 작은 데다 넓은 공간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100명 중에서 한 명이 어깨를 부딪혀 넘어졌다면? 옆에 있는 사람도 함께 넘어진다. 200명이 일제히 넘어져서 엉켜버린다. 커다란 덩어리가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보인다. 멀리서 망원경으로 관찰하면 200명으로 이루어진 큰 덩어리가 보인다. 무에서 갑자기 존재로 도약한 것이다. 없는 것이 갑자기 생겨났다. 이것이 양자세계의 작동원리다. 양자세계에서 진공은 자체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며 그 100명이 엉켜 넘어지면 존재가 된다. 그 100명이 잘 빠져나가면 무로 사라진다. 존재와 무 사이를 오가는 것이며 엉켜서 넘어질 가능성은 확률로 존재한다. 수십억년 후에 안드로메다 은하와 우리 은하가 충돌하면 어떻게 될까? 아무 일 없이 빠져나간다. 별들의 간격이 충분히 넓기 때문이다. 멀리서 외계인이 육안으로 이를 관측한다면 두 은하가 정면으로 마주쳤는지 아니면 그냥 뒤로 지나간 것인지 알 수 없다. 양자세계로 들어가서 100명의 두 그룹이 충돌하되 한 명도 어깨를 부딪히지 않고 무사히 교차하여 지나감으로써 그 존재를 외부에 들키지 않을 확률이 98프로이지만 2프로 확률로 부딪힌다면? 2퍼센트 확률로 그곳에 물질이 존재하는 것이다.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는 세계다. 우리는 진공에 아무 것도 없다고 여기지만 실은 들키지 않았을 뿐이다. 그곳에 무언가 있다. 이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 세계는 추상적 세계다. 우리가 항상 버티고 있는 것만 존재하여 있는 것이고, 확률적으로 있는 것, 간헐적으로 출몰하는 것은 없다고 말하면 곤란하다. 사실 우리 인간도 엄밀히 말하면 확률적으로 있다. 단지 그 확률이 대단히 높을 뿐이다. 상부구조의 동적균형을 파악하려면 확률적 존재, 가능성의 존재가 작동하는 세계를 받아들여야 한다. 어떤 의사결정이 일어나면 그곳에 무언가 있는 것이다. 국가는 눈으로 볼 수 없다. 일정한 조건이 주어지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전쟁이 일어나거나 재난이 닥치면 국가는 분명하게 보인다. 양자세계가 그렇다. 사실 모든 세계가 그렇다. 단지 확률이 높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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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그린스펀이 어린시절, 뉴욕의 유태인동네에서, 양키스와 부르클린 다저스 게임을 보면서, 확율 (타율, 출루율)등을 중얼거렸던 이유를 알겠네요. 결국, 이자율 하나로 꿰서 풀어버리는 지적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