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의 일이다. 조선을 사랑하는 착한 일본인도 있었다. 조선인 제자에게 물어보았다. 그대는 장차 무엇이 되려는가? 조선인 제자들은 한결같이 대답했다. 저는 철학자가 되겠습니다. 저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저는 역사학을 전공하겠습니다. 이공계를 지망하는 학생은 없었다. 착한 일본인 교사는 사랑하는 조선인 제자들을 꾸짖었다. 너희 중에 기술자가 되겠다는 사람은 정녕 없다는 말인가? 너희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지금이 과거시험 보는 조선왕조 시절이냐? 왜 기술을 배우려 들지 않느냐? 양반의 자제라고 상놈들이 배우는 기술을 차별하는가? 이 가르침을 가슴에 새긴 훌륭한 제자가 박정희였다. 그는 기술입국을 천명하고 금오공대를 세우고 딸에게 전자공학을 전공하게 했다. 박근혜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훌륭한 전자공학자가 되기는 개뿔 그럴 리가 없잖아. 공부 안 했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모두 이공계 출신이다. 역시 박정희는 타고난 빨갱이였다. 삼성가의 이병철은 자제들에게 인문학을 전공하게 했다. 기업을 하기에는 인맥이 중요하고 사람과 소통하는 데는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삼성과 박정희는 철학이 달랐고 그래서 매번 충돌했다.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하려는건 아니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편협성은 인문학적 소양의 부족 때문일 수 있다. 박근혜의 막가파 정치도 마찬가지다. 한 명이 그러는 것은 괜찮지만 그쪽 동네가 다 그러면 문제가 된다. 이공계 출신으로만 모여 있으면 정치가 안 된다. 박정희도 그 시대에 맞는 결정을 했다. 지금은 21세기다. 1970년대라면 박정희의 공업입국이 맞는 방향이지만 21세기에는 세계를 무대로 삼아야 한다. 공장은 중국에서 돌리고 방향판단에만 치중하는 일론 머스크를 본받아야 한다. 지식은 공유되는 것이다. 인문학적 소양이 있어야 지식을 공유할 수 있다. 물론 공유되지 않는 지식도 있다. 미국이 인문학을 경시하고 경험주의, 실용주의에 매몰된 결과 세계를 어긋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미국 특유의 배타주의는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은 이슬람이 무섭고 중국도 무서운 것이다. 자신감이 부족하다.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이다. 시진핑과 대화하려면 시경에 나오는 시 한 수 정도는 알고 가야 한다. 피곤한 일이다. 한국인이라면 삼국지나 수호지 한 토막을 꺼내면 되는데 말이다. 일본인을 만나면 하이쿠 한 수 읊어주면 된다. 그런게 인맥만들기에는 도움이 된다. 높은 레벨로 올라가면 그런 것이 중요해진다. 지식의 획득보다 지식을 공유하는 플랫폼이 더 중요하다. 조중동의 싸우고 쳐부수고 이기자는 태도는 후진국에나 필요한 관점이다. 그것도 그 시대에 필요했기 때문에 한국에 먹힌 것이다.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고 떠들던 사람도 있었다. 그런 시대는 애저녁에 지나간 것이다. 지식의 공유가 진짜다. 누가 조중동 방식으로 악착같이 나오는 자와 지식을 공유하려고 하겠는가? 중국처럼 저작권을 무시하고 대범하게 기술을 훔치는 소아병적인 나라와 누가 지식을 공유하겠는가? 이제는 어른스러워져야 한다. 저작권을 존중해야 지식의 공유가 가능한 것이다. 아득바득 이기려는 자는 배척된다. 한국이 이 방면으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남의 것을 뺏고 남의 머리를 밟고 올라서는 시대는 지났다. 선진국이 되면 전국구도 아니고 세계구급으로 놀아야 한다. 차별과 편견과 혐오로 무장하고 있으면 배척된다. 받아들여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받아들여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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