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적균형은 아는 것이 아니라 다루는 것이다. 다룬다는 것은 현장에서 먹힌다는 것이다. 보통의 학문은 멈추어 있는 대상의 상태를 기록한 후 그것을 나중에 응용하기 위한 지식으로 축적해둔다. 아는 것과 하는 것의 영역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이것이 정녕 진정한 학문의 모습일까?
아니다. 개중 맞은 것은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절반은 성공했다고 해주어야 할까? 그러나 맞냐 틀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다. 그리고 진짜 중요한 것은 남이 못 본 것을 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남이 못 보는 것을 보는 사람은 고수가 되고 천재가 되고 부자가 되며 리더가 된다는 사실이다.
고수들에게는 단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밸런스에 통달했다는 것이다. 운동을 시작할 때 자세가 중요한 이유도 밸런스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지자면 밸런스는 황금알이 아니라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좋은 밸런스를 가지고 있는 시스템에 압력이 가해지면 계는 자체적인 생산력을 가지고 에너지를 출력해낸다. 밸런스가 좋지 못하면 효율이 높고 밸런스가 나쁘면 효율이 낮다.
투구폼이 좋지 못한 투수는 좋은 공을 뿌리지 못한다. 그런데 투구폼이 좋지 못한 투수가 좋은 공을 던진다고 하면 그건 더 문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어딘가에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투수는 팔꿈치 부상으로 마운드에서 내려온다.
자세가 안 좋은 투수는 팔꿈치 부상으로 끝나지만 밸런스가 안 좋은 집단은 위험인자를 축적하다 재앙으로 자멸한다. 밸런스가 좋은 시스템은 자체적인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생산해낸다.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멈추어 있는 엔진은 그냥 고철덩어리에 불과하지만 움직이는 엔진은 자동차의 무거운 바퀴를 돌릴 수 있는 가공할 힘이 있다.
밸런스는 동적균형이다. 동적균형은 관계성이다. 관계성을 발견한 사람만이 엔진을 돌릴 수 있고 자동차를 몰 수 있고 돈을 끌어당길 수 있고 사람을 모을 수 있다. 그런데 관계성은 안타깝게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마치 자석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자기력선처럼. 우리를 숨쉴 수 있게 하는 공기처럼. 빛이나 마이크로파나 빅뱅때부터 우주를 떠돌고 있는 우주배경복사처럼. 심지어 우리의 땀을 식혀주는 바람마저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에는 절대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자신들의 삶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구조는 삶을 지배하고 있다. 구조는 현실적이며 실제적이다. 아무도 숫자를 눈으로 본 사람이 없지만 수학은 가장 정확하게 이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구조는 이 세계를 규정하고 있다. 바람이 자동차를 뒤집고 사람을 날려보내지만 사실은 바람이 아니라 태양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기온의 차이가 기압의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언제나 한 단계 위에 올라서야 실상을 알 수 있다. 지식을 섭렵하고 정적인 사물을 관측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해야 한다. 자본주의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는 현물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결국에는 그것의 가치를 누가 결정하는 가로 전부 설명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이 수직 방향으로 계속 위임되어 재화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태양이 바람을 만들고 권력이 경제를 낳으며 입이 항문보다 먼저 온다. 현대의 무수한 철학이론과 사상은 이런 관계성과 방향성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마치 그 과정에 있는 수많은 단계들이 저마다의 개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나 한 것처럼 세상을 여러개의 조각으로 나누고 작위적인 분석을 시도한다.
섣부른 언어화, 대상화, 타자화를 동반한 보통의 관측방법으로는 세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 안에 숨겨져있는 운동성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운동성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하늘 아래 운동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운동성을 해명하려는 주체는 운동성을 다룰 줄 알아야 하며 스스로가 동적 균형의 상태에 있어야 한다. 대상과 일체화를 이룬 책임감 있고 실제적인 주체가 등장한 것이다. 주체는 세상과 동떨어져 개별화된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주체는 세상과 합일하여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한다. 관계성의 영역에서 세상을 굽어볼 수 있게 된다.
모든 구조는 일방향으로 전개되고 의사결정을 책임지고 있는 단 하나의 점을 가지고 있다. 원인의 원인의 원인의 원인을 추적하다보면 다른 어떤 원인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단 하나의 소실점이 있다. 감이 좋은 사람은 그 한 점을 직관적으로 포착하고 본능적으로 이용할 줄 안다. 구조론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직관할 수 있도록 해준다.
구조론적인 직관은 다른 것이 아니다. 씨앗이 열매를 낳고 아버지가 아들을 낳는다는 것이다. 구조를 부정하는 것은 자식이 부모를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훌륭한 글 잘 읽었습니다.^^
파워는 스피드가 아니라 밸런스에서 나온다-bruce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