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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7071 vote 0 2009.07.27 (21:39:02)

동영상 해설입니다.

‘아우라(aura)’는 미학에서 많이 쓰이는 개념이다. ‘오라’라고도 하던데 그게 부처님 후광이다. 대가의 원작에는 그런 신비한 기운이 있다는 말이다. 하여간 이런말 하면 유물론자들은 신비주의적인 표현이라고 씹는다.

그런데 있다. 실제로 번듯이 존재하여 있는걸 어쩌겠는가? 구조로 보자. 아우라는 외부세계와의 소통능력이다. 모든 위대한 철학 사상의 시조들에게는 그런 것이 있다. 아우라를 과시한 최초의 인물은 누구인가?

영웅 중의 영웅 알렉산더다. 고대인들이 영웅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을 때 거기에 가장 잘 들어맞는 역사상의 실존인물은 알렉산더다. 알렉산더 이전에 영웅이 없었고 알렉산더 이후에 또 버금가는 영웅이 없다.

물론 이건 필자가 의도적으로 영웅의 조건을 까다롭게 잡은 거고. 문학적인 표현이 그런 거고. 각자가 자기 나름대로 기준을 세워 영웅상을 가지면 되는 거고. 하여간 필자가 말하려는 맥락에서 그러하다.

왜 알렉산더는 위대한가? ‘세계’라는 개념을 최초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 사람들은 중국인들이 그러하듯이, 자기네가 문명의 중심이고 나머지는 다 오랑캐라고 보았다. 그들은 세계를 사유하지 않았다.

최초로 세계를 사유한 이가 알렉산더다. 진정 후광이 빛나는 영웅은 알렉산더 뿐이다. 알렉산더 이후 무수히 많은 일들이 새로 일어났고 많은 일들은 알렉산더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

르네상스를 촉박한 즉 아랍의 도서관에서 유럽으로 일제히 쏟아져들어온 고대 그리스의 기록물들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족보가 있고 그 족보의 정점에 알렉산더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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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야의 대가와 고작 흉내나 내는 얼치기를 비교한다면 무엇이 다른가? 전문가는 되도록 외부와의 소통하려고 한다. 비전문가는 어떻게든 닫아걸려고 한다. 닫아걸어서 내부의 전문성을 지키려고 한다.

일전에 이야기했던 오현명의 가곡 명태, 오현명은 확실히 대가다. 그는 구조적으로 사고할 줄 아는 사람이다. 50년대에 그가 명태를 노래하자 평론가들은 ‘그런 것은 노래라고 세상에 내놓지도 말지어다’ 하며 악평을 쏟아냈다.

오현명이 자서전에서 그 평론가의 이름까지 적시한 것을 보면 어지간히 속이 상했던 거다. 작곡가는 실망하여 외국으로 떠났고 작곡을 그만두었다. 10년 후 외교관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보니 명태는 크게 히트해 있었다.

작곡가가 기운을 차려서 다시 작곡을 시작했다고 한다. 문제는 명태에 들어가는 일부 애드립이다. ‘카아~’ 하고 소주를 들이키는 퍼포먼스. 무엇인가? 당시는 가곡이라는 것이 막 국민들에게 알려지던 시점이었다.

닫아걸려고 하는 비전문가는 ‘가곡이란 이런 것이다’ 하는 원칙을 대중들에게 알려주고 싶어한다. 그런데 50년대 그 당시에 시대를 앞서가는 오현명의 ‘카아~’ 는 확실히 평론가의 분노를 자아낼만 하다.

국민이 원곡도 모르는데 벌써 변주를 하다니. 이것이 전문가 간판을 달고 영업하는 비전문가의 관점이다. 진정한 전문가는 다르다. 어떻게든 대중과 연결하는 소통의 접점을 뚫으려고 한다.

애초에 세상을 바라보는 눈높이가 다르다는 거다. 알렉산더는 밖으로 열었다. 그래서 이후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러므로 알렉산더에게 아우라가 있다. 번득이는 후광이 있다.

그 알렉산더의 뒤를 이은 카이사르나 징기스칸이나 나폴레옹에게는 그것이 없거나 약하다. 카이사르 역시 세계를 사유하기는 했지만 시오노 나나미의 띄우기가 일정 정도 먹혔던거고.

나폴레옹은 자기가 가교를 놓아 건설한 세계 앞에 당황했다. 그는 세계에 휩쓸렸다. 그가 세계를 규정한 것이 아니라 세계가 그를 규정했다. 징기스칸은 자신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도 몰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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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단지 ‘철학‘이라는 하나의 개념을 제시했을 뿐이다. 화두를 던졌을 뿐이다. 플라톤에게 전문성이 있다. 그는 철학의 출처를 밝혔다. 소크라테스가 제시한 개념의 근거를 댄 것이다.

곧 이데아 개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더욱 발전시켜서 수학과 접목하고 박물학을 창조하였다. 근대과학이 거기서 유래함은 물론이다. 무엇인가? 플라톤이 제시한 이데아의 근거를 밝힌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대지 못한 철학의 근거를 플라톤이 댔고, 플라톤이 대지 못한 철학의 실용성을 아리스토텔레스가 해결했다. 소크라테스가 자동차라는 개념을 제시했고 플라톤은 자동차를 실제로 제작했다.

그러나 엔진을 발명했을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거기에 운전석을 달아 실제로 운전해 보였다. 자동차에 승객을 태우고 목적지까지 가보였다.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져 1사이클 완성이다.

그런데 누가 윗길인가? 소크라테스가 윗길이다. 그것이 아우라다. 무엇인가? 일전에 말한 콜롬부스의 다단계와 비슷하다. 다단계는 밑에서 판매를 늘릴수록 위에서 이익을 본다. 그게 아우라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일을 벌일수록 소크라테스의 입지는 탄탄하게 다져진다. 그런데 이것이 서구에서는 논쟁적인 개념이지만 동양에서는 흔하다. 불가의 화두다. 조주의 끽다거 한 마디다.

조주가 단지 ‘끽다거’ 한 마디를 던졌을 뿐인데, 센리큐가 다도를 발전시켰고, 그 담백하고 간명한 정신이 우끼요에와 하이쿠에 반영되었고 서구에 건너가서 인상주의로 발전한 것이다.

갈수록 일이 커진다. 그럴수록 원작이 빛난다. 죽림칠현 중의 한 사람인 유령이 술만 들어가면 옷을 벗어던졌을 뿐인데, 그 정신이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영국까지 전해져 오노 요꼬와 존 레넌이 벌거벗었다.

분명히 관련이 있다. 북경의 나비 한 마리에서 플로리다의 토네이도까지 전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추사의 서권기 문자향, 그 기(氣)와 그 향(香)이 아우라다. 스님 초의와도 교유한 소통의 정신.

그러므로 대가는 꾀하여 밖으로 열어젖히려 한다.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자 한다. 그러나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2류나 아류들은 어떻게든 닫아걸려고 한다. 딱 표시가 난다. 1초만에 간파된다.

미술이든 음악이든 마찬가지다. 미치지 못하는 비전문가는 기교 위주로 가고 단선적으로 전개한다. 아는 사람끼리만 통하는 폐쇄형 구조로 간다. 대중은 모르는데 자기네들끼리 의미심장한 미소를 주고받는다.

좀 아는 대가는 비선형으로 가고 창조적으로 가고 입체적으로 간다. 외부와 소통되는 접점을 만들어낸다. 개방형 구조로 간다. 분명한 자기색깔을 드러낸다. 외부사람에게 이야깃거리를 던져준다.

선형 구조인가 비선형 구조인가? 이것만 봐도 보인다. 우리사회의 문제는 바로 제대로 된 전문가의 부재에 있다. 우리나라에 근대건축의 관점에서 한옥을 제대로 지을 수 있는 전문가는 한 명도 없다.

지금 경복궁 수리하고 남대문 짓는 도편수 어른도 전통적인 도제수업을 받은 사람이지 근대적인 방법론으로 접근하는 분은 아니다. 그 정도로 연구가 미비하고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

그러니 고도의 전문성을 추구하여 외풍을 막고자 안으로 닫아걸 뿐 밖으로 소통하려 들지 않는다. 밖으로 문을 열고 개방하면 바깥바람을 타서 그 약간의 전문성조차 훼손되고 말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계를 장악하고 통제할 수 있느냐다. 대가는 그것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밖에서 배워 안을 살찌우려 한다. 그러므로 지나가는 손님에게도 물어서 배우고자 한다. 음악가가 미술가와 대화하는 식이다.

높은 신분의 추사가 낮은 신분의 초의에게도 배운다. 그러나 미치지 못하는 자들은 철저하게 닫아건다. 지나가는 손님과 대화하지 않는다. 오직 폐쇄적인 자기네끼리만 살롱에서 은밀히 대화한다.

그것도 어려운 전문용어를 써서 행여나 외부인이 알아듣고 참견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 그들 쓰레기 영화인 입장에서 심형래 사태는 외부의 어중이 떠중이가 끼어들어 참견하며 판을 깨놓은 재앙이다.

왜 그들은 닫아거는가? 상황을 통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통제를 못하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통제를 못하니 검찰과 경찰을 동원하여 통제하려고 한다. 이명박 입장에서는 국민이 촛불시위로 난리를 치는 거다.

자기들은 경제살린다고(?) 열심히 삽질하는데 국민이 촛불시위다 뭐다 하며 난리를 친다고 믿는다. 그게 건강한 소통의 시도, 진정한 참여정치의 꽃, 민주주의 화룡점정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말이다.

노무현은 당신의 진정성만으로 충분히 통제가 되니 통제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검찰을 통제하지 않고 풀어줬더니 거꾸로 주인을 물었다. 그 차이다. 결국 외부와 연결하느냐 닫아거느냐다.

FTA에 대한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좌파 어리보기들은 한사코 닫아걸려고 한다. 내부를 통제할 욕심에. 대가들은 어떻게든 외부와의 소통의 창구를 개설하려고 한다. 근본적인 시선의 차이가 있다.

이명박의 돌발영상에 잘 나타나 있다. 보신 분은 알겠지만 그는 무려 세 차례에 걸쳐서 산사태 등으로 고통받는 강원도 산꼴짜기 주민들을 도시의 아파트에 수용하는 아이디어를 고집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양반이 워낭소리는 왜 봤을까? 명박은 워낭소리를 보고도 워낭할아버지와 조금의 소통도 하지 못했다. 워낭할아버지에게 배운 것이 없다. 그 할아버지가 돈이 없어서 아파트로 이주하지 않았을까?

이명박이 워낭 할아버지를 아파트에 가두어 놓는데 성공한다면 내 이명박을 인정한다. 한번 시도해 보라. 그게 되는지. 그는 원초적으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결여되어 있는 자다.

대가와 얼치기의 차이가 거기에 있다. 대가들은 어떻게든 외부와 연결한다. 워낭소리와 아파트계획을 연결해 본다. 비전문가는 따로 생각한다. 워낭할아버지 고집은 고집대로 좋고 아파트는 아파트대로 아이디어 참신하고?

그러므로 창조하지 못한다. 낳아내지 못한다. 알아야 한다. 세상 모두는 전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세계를 사유하는 시선을 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모를 보는 시선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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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 이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고 한다. 2천 4백년 전에 알렉산더가 가슴 속에 품었던 그 이상 말이다. 조주가 끽다거 한 마디로 지구 한 바퀴 가로지르기 해 보인 그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하고자 한다.

나는 이를 인류의 집단지능 네트워크라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가 외국어 따위를 배워서 세계시장 속으로 들어가서 텔레비젼이나 팔아먹는 그런 소소한 계획이 아니다.
그건 너무나 영삼스런 영삼 아이디어다.

사유해야할 세계는 우리 안에 있다. 우리가 스스로 완성되면 통한다. 완성되면 보편되고 보편되면 소통한다. 통하면 낳고, 낳으면 채워지고, 채워지면 이룩된다. 널리 공명한다. 보편을 얻을 때 세계가 우리 안에서 호흡한다.

http://gujoron.com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09.07.27 (23:24:53)


어쨌든 뭔가를 해보려 시도하는 사람들은 위의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일듯...
글 가져갑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4]꼬치가리

2009.07.28 (09:17:48)

"우리가 스스로 완성되면 통한다. 완성되면 보편되고 보편되면 소통한다. 통하면 낳고, 낳으면 채워지고, 채워지면 이룩된다. 널리 공명한다. 보편을 얻을 때 세계가 우리 안에서 호흡한다."

참 좋구랴!

090726_Fabaceae.jpg
첨부
프로필 이미지 [레벨:22]id: ░담░담

2009.07.28 (10:41:13)

집단지능,
완성하기.
좋소.
공동작업,
하오.

신과 팀플,
우주와  팀플,
자연과 팀플,
진리와 팀플,
넷과 팀플하오.

프로필 이미지 [레벨:17]안단테

2009.07.28 (11:49:12)






미나리.jpg
장중한 오케스트라 연주를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사유해야할 세계는 우리 안에 있다. 우리가 스스로 완성되면 통한다. 완성되면 보편되고 보편되면 소통한다. 통하면 낳고,
낳으면 채워지고, 채워지면 이룩된다. 널리 공명한다. 보편을 얻을 때 세계가 우리 안에서 호흡한다.'... 꼬치가리님 말씀처럼
저도 이 부분에 기꺼이 동감 백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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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레벨:24]꼬치가리

2009.07.29 (15:00:34)

진리는 공변된 것 아니겠소. 
화자가 김동렬이든 안단테든 꼬치가리든 상관이 없을터.
같이 호흡하고, 가슴에 떨림을 느끼고, 그 떨림이 맥놀이가 되는 그 자체로 통하는 것이겠지요.

공감하니 참 좋구랴!

090726-stream.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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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레벨:15]aprilsnow

2009.08.04 (01:44:15)

인류의...파노라마...거대한 서사시를 읽는 듯 했습니다.
지나온 세월들이 살아나고 막혔던 곳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한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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