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본 구조론
자연에 구조가 있다. 사람들은 기역자나 니은자를 읽어서 단어를 조립하고 문장을 엮어내지만, 나는 자연을 관찰하여 패턴과 포지션과 밸런스를 읽어서 그것으로 구조체를 조립하고 시스템을 엮어낸다. 구조는 자연의 완전성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연은 완전하다. 완전성은 거울과 같다.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며 제 색깔을 토해내듯이 완전성의 거울에 비추어보면 구조가 드러난다. 처음 자연을 관찰하여 패턴을 발견한다. 패턴에 질서가 있음을 깨닫는다. 패턴의 반복과 연속이다. 같은 패턴이 2회 반복된다면 형제다. 그 형제를 낳는 어미가 있다. 그 어미에 의해 패턴은 연속된다. ● 반복 - 같은 패턴이 2회 이상 반복된다. 복숭아가 둘이면 반복, 두 복숭아가 공유하는 하나의 가지가 있으면 연속이다. 손가락이 둘 이상 있으면 손가락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손목이 있다. 어미 1에 딸린 형제 2의 패턴이 연속이다. 패턴이 연속되면 형과 아우의 서열이 있다. 그것이 포지션이다. 앞과 뒤, 시작과 끝, 원인과 결과, 밤과 낮, 음과 양처럼 모든 짝지어져 연속되는 것에는 반드시 포지션이 있다. 서열이 있고 질서가 있다. 패턴은 닮음이다. 새끼 백조의 닮은꼴 패턴이 두번 나타나면 반복, 두 새끼 백조가 같은 어미에게서 나온 형제이면 연속이다. 연속되는 형제 둘 사이의 질서가 포지션이다. 그 둘이 공유하는 어미를 포함한 셋 사이의 질서가 밸런스다. 이때 형제 2에서 어미 1로 위로 한 단계 올라가는 것이 가역이다. 손가락 형제들은 손목이라는 하나의 어미에 의해 연속된다. 손목 어미가 한 단계 서열이 높고 손가락 형제는 서열이 낮다. 손가락에서 손목으로 질서를 거슬러 올라가면 가역이다. 하나의 밸런스는 어미 1과 형제 2로 세팅된다. 이때 어미와 자식의 관계로 서열이 차별화 된다. 그것이 질서다. 손가락에서 손목으로, 꼬리에서 몸통으로, 가장자리에서 중심으로, 형제에서 어미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가역이다. 형제 2의 포지션에서 어미 1과 형제 2를 포함 3자의 밸런스로 나아간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가역하여 거슬러 올라가면 더 이상 갈수 없는 한계에 도달한다. 막다른 곳에 도달한다. 그것이 분할이다. 손가락은 손목을 만나 몸통에 도달하여 더 갈 곳이 없고, 형제는 부모를 만나 가족에 도달하여 더 갈 곳이 없다. 외부와 분리된다. 하늘과 땅은 별도로 분리되어 있지만 에너지의 순환에 의해 하나의 산하(山河)로 통일된다. 비가 산을 깎아 바다로 돌아가고 다시 비가 되어 산에 내리며 순환된다. 동물과 식물은 전혀 다르지만 하나의 생태계로 통일된다. 구조는 계 안에서 패턴이 집적된 정도에 따라 반복≫연속≫가역≫분할≫순환 다섯 질서를 이룬다. 질서가 점차 고도화 되어 순환에 이르면 완전하다. 완전하면 소통하고 소통하면 낳는다. 낳아서 널리 세상을 이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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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3개는 눈에 보입니다.
거기다가 시작과 끝, 자궁과 아기를 추가하면 다섯이재요.
나는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나의 탄생과 사멸까지 포함해야 완전합니다.
그것만 생각하면 되재요.
무조건 기본 3개(주도권, 밸런스, 포지션) + 탄생의 자궁과 사멸의 끝을 추가한다는 것.
대체 동렬님은 뭘 말씀하시고
대체 나는 뭘 듣는건지
구조는 쉽고 단순합니다.
쉬운게 쉽지 않다면 저도 당황스럽죠.
구조는 다섯이 있습니다.
구조가 다섯이 있다는 말은 테트리스 벽돌 종류가 다섯이라는 말과 같고
바둑이 검은돌 흰돌 외에 셋 더 있다는 말과 같고
장기판 말이 다섯 밖에 없다는 말과 같고
알파벳 자모가 스물여섯이 아니라 다섯이라는 말과 같고
레고블럭 블록종류가 다섯이라는 말과 같고
건물을 짓는데 건축자재의 종류가 흙, 벽돌, 나무, 쇠, 돌 이렇게 다섯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 다섯은 복잡한 정도로 구분하는데
한글자모도
으, 이, 아래아는 아주 단순하고
아, 어, 오, 우는 약간 단순하고
야 여 요 유는 보통이고
위, 외, 워, 와, 에, 애는 복잡하고
웨, 예, 얘, 왜는 아주 복잡합니다.
마찬가지로 구조도
● 아주 단순한 것.
● 약간 단순한 것.
● 보통
● 약간 복잡한 것
● 아주 복잡한 것.
이렇게 다섯이 있습니다.
그런데 경험적으로 이중에 셋 정도는 보입니다.
서구의 삼위일체설이라든가 우리나라의 천지인 사상이라든가
그러한 경험의 산물이지요.
하루가 있다면 아침, 점심, 저녁이 있고
물건이 있다면 왼쪽, 오른쪽, 가운데가 있고
상,중,하도 있고
도형도 삼각형에서 부터 시작하고
뭐든 대충 봐도 셋 정도는 있습니다.
그냥 보면 아침이나 저녁이나 대등해 보이지만
아침은 저녁을 포함하고 있고
씨앗은 떡잎을 품고 있고
시작은 끝을 포함하고 있고
원인은 결과를 품고 있고
저녁은 아침을 포함하지 않으므로
떡잎은 씨앗을 품지 않으므로
끝은 시작을 포함하지 않으므로
결과는 원인을 품지 않으므로
이들은 서로 다른 종류의 레고블럭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조의 레고블럭은 단순과 복잡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무한히 복잡해지는 것이 아니라 5단계 이상으로 복잡해지지 않습니다.
자동차가 아무리 복잡해도 엔진과 바퀴 사이를 연결해 둔 것입니다.
아주 단순한 구조는
구조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단순해서 사람들은 그것이 구조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0과 같지요.
0도 분명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구조인데 그걸 모르는 거지요.
왜냐하면 0은 나서지 않으니까.
걸리지 않으니까.
방해하지 않으니까.
인간은 뭐든 걸려야만 눈을 뜨고 살펴 보며 그 존재를 인식하는데
약간 단순한 구조는 선의 형태를 가지고 있으므로 간혹 발에 걸립니다.
걸리니까 아 이게 구조로구나 하고 아는 거지요.
보통의 구조는 밸런스가 있으니까 역시 아는 거고
약간 복잡한 구조는 1에 의해 대표되니까(집합이나 그룹 가족 같은 단위를 만든다는 뜻)
역시 경험적으로 아는 거고
아주 복잡한 구조는 공기 속에서 공기를 모르듯 모릅니다.
자신이 그 안에 들어있기 때문이지요.
자동차를 만들고자 한다면 도로부터 만들어야 하는데
도로도 자동차의 일부를 구성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지요.
나무를 심으려면 밭을 먼저 구해야 하는데
그걸 모르는 겁니다.
보통 어떤 배경으로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결론적으로
구조는 단서≫포지션≫밸런스≫주도권≫생명성 이렇게 다섯이 있는데
● 두번째 포지션은 앞과 뒤로 짝지어져 있으므로 경험적으로 압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뭔가 짝지어져 세트로 있는 것이 무수히 있습니다.
축구골대도 항상 두 개가 있고
농구골대도 항상 두개가 있고
젓가락도 두 개가 있고
커플도 둘이 짝을 짓고
짝지어져 있는 것은 주변에서 금방 찾아낼 수 있습니다.
눈에 빤히 보인다는 말이지요.
밸런스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 세 번째 밸런스는 이쪽과 저쪽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 핸들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꺾을 수 있습니다.
축구골대나 농구골대는 하나를 빼버리면 시합이 안 되는 수가 있지만
젓가락 한짝을 버리면 반찬을 집을 수 없는 곤란함이 생겨나지만
밸런스는 항상 한쪽을 버리는 형태로 사용을 합니다.
그런데 버려도 저절로 자동복원이 되어요.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기어를 바꾼다든가 하는게 밸런스입니다.
오르막길은 일단, 내리막길은 7단.
이건 길이 오르막이냐 내리막이냐에 따라 상대적이므로 상대가 바뀌면 다시 원위치 됩니다.
너무 달다 싶으면 물을 더 타면 되고
너무 싱겁다 싶으면 소금을 더 타면 되고
너무 맹숭하다 싶으면 조미료를 더 치면 되고
얼마든지 조절할 있는 것이 밸런스입니다.
역시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관찰할 수 있습니다.
● 네 번째 주도권은 1분대, 1소대, 1중대, 1대대, 1연대, 1사단 하는 식으로
1단위를 이루는 것인데 말하자면 집합이죠.
인간도 개인, 가족, 부족, 국가, 인류로 집합을 만듭니다.
역시 주변에서 흔히 관찰할 수 있습니다.
여럿이 모여서 하나처럼 행동하는 것은 전부 이 구조에 해당합니다.
이 포지션, 밸런스, 주도권 셋은 경험적으로 사람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르는건 이들의 서열이지요.
왜 서열을 모르는가 하면 가장 낮은 단서와 가장 높은 생명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시작과 끝을 모르니 그 중간의 서열 역시 모르는 것입니다.
● 첫 번째 단서는 침투하여 있습니다.
독립해 있지 않고 빌붙어 있어요.
칼라는 빛에 빌붙어 살고, 소리는 공기에 빌붙어 살고, 맛은 분자에 빌붙어 삽니다.
바람이 없으면 소리도 죽습니다.
이것도 하나의 구조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집합에서 개인도 하나의 집합입니다.
식구가 자기 하나 밖에 없어도 가족입니다.
1인가구지요.
0이 그렇습니다.
사실 0은 0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1에도 2에도 숨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갑자기 10에서 모습을 드러낼까요?
● 다섯째 생명성은 시스템,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 것을 탄생시키는 자궁입니다.
계에 밀도가 걸려 있죠.
건드리면 소리를 내고 새끼를 낳습니다.
핵분열을 일으킵니다.
이렇듯 구조는 다섯이 있으며 이들은 포함관계를 이룹니다.
단서가 둘이면 포지션이 되고 포지션이 둘이면 밸런스가 되고
밸런스가 둘이면 주도권이 되고 주도권이 둘이면 생명성이 됩니다.
이 중 첫 번째는 빛깔이나 소리, 냄새처럼 어딘가에 침투하여 있으며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정보만 주고 사라지므로 우리가 그 존재를 모르며
다섯 째는 보통 주변에 배경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역시 모릅니다.
집을 짓는다면
첫째 땅이 있어야 하고
둘째 기초를 놓아야 하고
셋째 기둥을 세워야 하고
넷째 지붕을 덮어야 하고
다섯째 사람이 살아야 하는데
보통 그 첫째와 마지막은 없어도 된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가장 단순한 집, 모래로 만든 두꺼비집이나 까치집이라도 이 다섯은 있어야 합니다.
수화목금토,
인의예지신
동서남북중
오색찬란
오오오오오 구료.
세상과 함께 태어나
세상과 함께 살다가
세상과 함께 죽는
세상과 나는 하나라는 생각은 분할이죠?
순환까지는 못간거죠?
순환까지 갈라면 세상과 내가 서로 좋게 잘 교류해야하는거죠?
물리학 느낌 안나는
이런 설명 참 좋네요.
드라마 소설 같은 이야기면 이해가 금방 가는데요.
수식 같은게 들어가면
3개 정도 쌓일때부터 정신을 못차려요.
구조론에는 수식이 5개나 들어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