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eumbook.tistory.com/440 이 논쟁에 대해 깊은 수준의 논의에 참여하려면 두 사람의 이방인을 다 읽어보고, 프랑스어까지 공부해야 할 판이다. 그런건 논외로 치고, 구조론의 관점에서 논쟁의 내용이 아닌 형식을 보자. 난 정말이지 때려죽이고 싶은 자가 있다. 이방인을 읽고 어렵다고 말하는 자나, 이상의 소설 날개나 오감도가 어렵다고 말하는 자다. 때려죽여야 한다. 어떤 사진작가가 있었는데 전시회에 흑백사진 네 점을 출품했다. 사진에는 아무 것도 찍혀 있지 않았다. 제목은 ‘눈 내린 겨울날의 시카고 시내 동쪽풍경’, 서쪽풍경, 남쪽풍경, 북쪽풍경이다. 눈이 하얗게 내린 장면을 흑백사진으로 찍어서 출품했으니 아무 것도 안찍혀 있는게 당연하지. 근데 그 사진을 보고 어렵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때려죽여야 한다. 도대체 암것도 없는데 뭐가 어렵다는 말인가? 어려우려면 뭐가 있어야지? 그런데 그걸 보고도 어렵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어찌 주먹이 울지 않겠는가? 이상의 오감도나 까뮈의 이방인이나 첫 한 줄을 읽고 나는 뻑이 갔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내가 오래 기다려온, 내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바로 그거야. 여기서 게임 끝이다. 더 읽을 필요도 없다. 김기덕 영화는 포스터만 봐도 영화값 한다. 김기덕 영화는 포스터만 가지고 3시간 떠들거리가 있다. 영화평만 읽는다면 사흘 연속 강의를 할 수 있다. 영화를 다 본다면 석달동안 떠들어도 아직 미진한 것이 있다. 왜냐하면 내 안에 채워져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는 안 봐도 된다. 중요한건 피아구분이다. 이방인의 첫 줄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 이새끼 우리편이네. 내가 그토록 찾던 쿨한 넘이잖아. 그럼 된 거다. 소설을 잘 썼던 못 썼던 논할 거리가 없다. 근데 이정서 이 새뀌는 일단 우리편이 아니다. 부조리 소설인 이방인을 이문열 소설로 짜맞추려고 하고 있다. 짜증난다. 플롯을 엉성하게 만드는게 나의 목표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플롯이 완벽하면 이문열이지 이방인이냐고? 분명히 말한다. 이건 피아구분의 문제다. 누가 우리편이냐다. 쿨하면 우리편이고 찌질하면 적군이다. 플롯이 완벽하면 그게 찌질한 거다. 그건 소설이 아니다. 예술이 아니다. 똥이다. 예술은 사무라이처럼 단칼에 베어버리는 것이어야 한다. 이유는 없다. 총이 있으면 그 총이라는 넘이 알아서 쏘는 것이다. 이상의 오감도를 보자. 제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여기서 끝났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세월호의 죽음을 보라. 그 어떤 유려한 설명도 아귀를 맞게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다. 말을 짜맞추려는 자가 있다면 그 새끼가 살인자다. 때려죽여야 한다. 그것은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고작 300명의 죽음을 목격하고 고통을 겪고 있다. 까뮈는? 2차대전은 1억명을 죽였다. 1억명을 죽여놓고 조리있게 설명한다고? 그런 새뀌는 쳐죽여야 한다. 위안부 문제를 두고 시시콜콜 변명하는 아베새끼가 아닌가? 이게 부조리다. 그 어떤 말도 필요없다. 말을 맞추려는 자는 단매에 쳐죽여야 한다. 모르겠는가? 그래도 모르겠다는 자는 입을 찢어버려야 한다. 어머니가 죽었다. 타격받은 거다. 그리고 내 손에 총이 쥐어져 있다. 그렇다면 총알은 지가 알아서 기어나가는 거다. 그걸 어떻게 말로 조리있게 설명하느냐고? 그걸 설명하려는 자는 아베새끼가 아니고 뭐냐고? 때려죽여야 한다. 여기서 피아구분이 들어가는 것이다. 적군인가 아군인가? 뫼르소는 우리편이다. 김기덕은 우리편이다. 이상은 우리편이다. 그들은 음울한 공간을 묘사한다. 그 공간 자체가 범인이다. 태양이 범인이다. 총이 범인이다. 죽음이 범인이다. 20세기가 범인이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새끼는 적군이다. 2차대전에 휘말려 죽은 1억인은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죽은 거다. 그들이 죽을 죄를 지었는가? 죽을 짓을 했는가? 그딴거 없다. 그들은 태양 때문에 죽은 것이다. 세월호의 어린 소년은 무슨 죄를 지어서 죽었는가? 한국인이라는 죄 때문에 죽은 것이다. 어떤 납득할만한 합리적인 설명도 있을 수 없다. 이게 다 선장 때문이라고 말하는 그 새끼가 범인이다. 누구 때문일 수 없다. 오늘도 TV조선은 이게 다 구원파 때문이라고 굉장히 말이 되는 소리를 한다. 그들은 말을 짜맞추고 있는 것이다. 그 새끼가 범인이다. 그 자가 살인자다. 말을 짜맞추어 앞뒤가 딱 들어맞게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자 말이다. 나는 이방인의 첫 줄을 읽고 노벨상을 줬다. 왜냐하면 오래 기다려왔기 때문이다. 이런 진짜배기 소설을. 소년이었을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초상집의 풍경은 마치 축제의 현장과 같다. 축제라는 제목의 영화도 있다. 온 몸으로 우는 사람들, 괴상하기 짝이 없는 상복을 입은 사람들, 고스톱을 치는 사람들. 나는 그런 풍경이 정말이지 참을 수 없었다. 우스꽝스런 연극 같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죽음을 앞에 놓고 이런 등신같은 연극지랄을 하다니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가? 홧김에 불을 확 싸질러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내가 생각하는 장례는 이런 것이다. 죽음은 남의 죽음이 아니다. 내가 죽은 것이다. 초상집에서 우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 죽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들은 가짜다. 쫓아내야 한다. 당신이 전쟁터에서 한 팔을 잃었다면 울겠는가? 전쟁터에서 우는 새끼는 총알을 한 방 더 맞아야 한다. 장례식의 현장은 하얀 종잇장처럼 표백되어야 한다. 고요해야 한다. 말하지 말아야 한다. 말하는 놈은 패죽이고 싶다. 그러나 그 때는 내가 어렸다. 소년이었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장례식의 우스꽝스런 연극들이 유족의 고통을 덜어주는 심리적 장치임을 깨닫게 되었다. 소년의 내가 생각했던 조용하고 엄숙하고 차분한 죽음은 고통을 증폭시킨다. 떠들썩하고 정신없게 만들어서 개인의 고통을 모두와 나눔으로써 고통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하여간 내가 이방인을 읽었을 때는 고딩이었으므로 ‘장례식에는 불을 싸질러버려야 한다’고 분기탱천해 있던 시절이었다. 이방인은 우리편이었다. 첫 한 줄을 읽고 오르가즘을 느꼈다. 그렇다면 노벨상을 줘야 한다. 군말이 필요한가? 여기에 토 다는 넘은 때려죽여야 한다. 분명히 말한다. 피아구분 들어간다. 우리편은 첫 줄에 반응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여기서 완료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여기서 스케치는 끝났다. 그것은 무서워하는 풍경이다. 풍경의 스케치만 하는 것이다. 더 색깔을 입히려고 덤비는 새끼는 때려죽여야 한다. 토 다는 넘이 때려죽일 이정서다.
*** 때려죽인다는 표현은 의도적으로 쓴 과격한 표현입니다. 말이 안 통한다는 의미. 그러므로 대화상대가 될 수 없음이오. 그런 자와는 잠시도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소. 이방인은 단 한 줄의 해설도 필요없는 작품입니다. 그냥 이 양반은 우리편이다. 됐다. 이거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는 새뀌는 적군입니다. |
와, 쉽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더 이상 안 읽으면 왕따 당할 수도 있겠네요.
이씨가 많군.
20대 때 까뮈를 만나는 순간 그냥 훅 갔습니다.그래서 제가 프로필로 쓰는 현재 사진을 판넬로 파는 곳을
찾아 서울 시내를 다 뒤졌는데 없더군요.당시 80년 대 명동이 판넬 사진을 파는 곳이었는데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청계천도 다 돌았구.
이유는 하나지요. 너무 멋있었다는 것.
엄마가 죽었는데 해변으로 나가 총으로 누군가를 쏴 죽였다.
뜨악.
다 때려죽이고,,,,,통쾌합니다,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