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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577 vote 0 2015.05.09 (23:43:49)

     

    다양성과 획일성


    대개 획일적인건 나쁘고 다양한건 좋다고 여긴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녀는 획일적으로 학원에 보낸다. 말로는 창의적인 교육을 찬양하면서도 일제히 몰입교육으로 몰려간다. 다양성과 창의성을 떠들어대는 그 표정은 다양하지도 않고 창의적이지도 않다.


    다양성과 획일성. 세상은 복잡한데 인간이 이해하는 수준은 이 정도다. 어림없는 일이다. 세상이 복잡한 만큼 언어도 분주해져야 한다.


    생각해보자. 다양한 것이 좋다고? 그런데 좋은 것은 과연 좋은 것일까? 내게 나쁜 것은 상대방에게 좋고, 내게 좋은 것은 상대방에게 나쁜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 상대가 누구지? 그 상대가 자기 자신이 되는 경우는 없을까?


    내 몸이 수고로우면 마음이 편안하고, 내 마음에 수고로우면 몸이 편한거 아닐까? 오늘 수고하면 내일 편하고, 내일 수고하기로 하면 오늘 편한거 아닐까? 때로는 좋은 것이 나쁜 것이고 나쁜 것이 되려 좋은 것이 아닐까?


    도대체 좋다/나쁘다를 판정하는 근거가 뭐지? 그거 믿어도 되는 거야?


    개인에게 좋은 것은 집단에 해로운 것이 아닐까? 집단이 망하면 결국 개인도 망하는게 아닐까? 그런 예는 많다. 조나라 간신 곽개는 개인의 복수를 위해 충신을 죽이고 진나라에 붙었다. 나라가 망하자 도적떼가 일어나 결국 개인도 망했다.


    진나라 간첩이 왜 나라를 팔아먹느냐고 물어보자 곽개는 변명했다. ‘조나라의 존망은 국가전체의 일이며, 나는 내 개인의 복수만 하면 그만이지 않은가?’ 이완용의 변명이다. 중국사에 이와 유사한 행태를 보이는 한간漢奸은 부지기수다. 그들의 말로는 좋지 않았다.


    내게는 좋은데 나라에는 해롭다. 나라에 해로우면 결국 내게도 해롭다. 인간은 좋은거 찾다가 실패한다. 좋은거 좋아하지 마라.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여기지만 개인의 이기적인 행동은 집단을 해친다. 집단이 망하면 개인도 망한다. 결국 남 좋은 일 시킨다. 자신을 고립시키고 이웃을 해치고 적을 이롭게 한다.


    일원론으로 이해해야 한다. 절대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상대성을 나타내는 용어는 버려야 한다. 헷갈리기 때문이다. 수학자들은 나눗셈을 쓰지 않는다. 분수를 쓰면 된다. 일원화하여 한 방향으로 풀어야 쉽다.


    우리는 더하기 반대말이 빼기라고 여기지만 과연 그럴까? 천만에. 더하기는 진행이고 빼기는 방향전환이다. 반대가 아니다. 반대로 쓰는 것은 편의다. 편의 좋아하다 망한다. 빼기라 하지 말고 방향전환이라고 해야 헷갈림을 방지한다. 3-2는 3-(+2)라고 해야 하다.


    구조론으로는 빼기가 먼저다. 더하기는 다음에 와야 한다. 먼저 방향을 정하고 다음 진행한다. +3은 ‘빼기, 빼기, 더하기, 3’이다.


    다양한 것은 가짜다. 다양성과 획일성이 있다고 믿으면 착각이다. 하나의 전개가 있을 뿐이다. 머리는 획일적이고 꼬리는 다양하다. 하나의 전개에서 머리를 보느냐 꼬리를 보느냐다. 보는 것은 인간의 관점이다. 결국 다양성이나 획일성은 존재의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비뚤어져 있는 인간의 시선을 의미한다.


    어떤 것이든 거리를 늘려주면 다양하게 된다. 즉 동일한 것에 더 많은 공간과 시간을 투입하면 다양해진다. 그러나 실상 다양한 것이 아니라 단지 공간과 시간을 늘렸을 뿐이다. 가짜다. 어린이는 키가 작지만 매년 커진다. 어린이는 성장하면서 다양한 모습을 가진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무엇인가? 어떤 것이 다양하다는 것은 단지 학년을 구분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옛날에는 결혼하고 상투 올린 성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일이 흔했다. 한 교실에 어른과 아이가 같이 수업을 받으니 교육이 다양하다. 그건 교육의 실패다.


    동일한 것에 다른 공간과 시간을 투입하여 다양한 척 하는 것은 가짜다. 그렇다면 진짜는 무엇인가? 짝짓기다. 짝을 지을 수 있는 것이 다양한 것이다. 짝을 지으려면 일치해야 한다. 다양하지 말아야 한다.


    다양하지 않아야 진정으로 다양할 수 있다. 결혼하려면 결혼적령기가 되어야 한다. 결혼적령기로 획일화 되어야 다양한 커플이 탄생하는 것이다.


    양의 다양함이 아니라 질의 다양함이 진짜다. 도자기를 굽는다 치자. 동일한 흙이라도 온도를 다르게 하면 도기와 자기가 다양하게 만들어진다. 청자와 백자는 굽는 온도가 다르다. 토기는 된장항아리로 쓰고 백자는 꽃병으로 쓴다. 다양한건 그 만나는 파트너다.


    무엇인가? 다양함은 어떤 존재 내부의 고유한 속성이 아니라 바깥의 짝짓기다. 사람은 같은데 환경이 다양한 것이다. 이것이 진짜 다양함이다. 환경은 그대로 두고 자신을 다양하게 늘이거나 변형하는 다양성은 가짜다.


    다양한 것은 대칭이다. 그리고 그 대칭은 반드시 비대칭을 가진다. 대칭되지 않는 것은 다양해 보여도 보는 눈이 비뚤어졌을 뿐 실제로 다양하지 않으며, 대칭된 것은 반드시 배후에 비대칭을 감추고 있다.


    같은 사람을 어두운 곳에서 만나면 미인으로 보이다가 밝은 곳에서 만나니 다른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단지 조명을 변화시켰을 뿐인데 다양성이 얻어진 것이다. 가짜다. 진짜는 무엇인가? 내부 에너지의 다양함이다.


    활력이 있는 것, 열정이 있는 것, 에너지가 넘치는 것, 생기가 있는 것, 생동감을 주는 것은 진짜다. 삼국지의 인물 조조를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에너지가 있는 인물이냐 없는 인물이냐는 평가가 달라질 수 없다. 캐릭터가 있는 인물이냐 없는 인물이냐, 존재감이 있는 인물이냐 없는 인물이냐는 확실하게 평가된다. 이런 것은 질적인 다양함이다.


    문학작품이라면 인물을 판단하되 착하다 나쁘다 하는 초딩수준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곤란하다. 그 인물이 단선적, 평면적이냐 복합적, 입체적이냐로 평가해야 한다.


    ◎ 질적 다양성.. 계에 투입되는 에너지를 변화시켜 입자, 힘, 운동, 량으로 전개시킨다. 예) 같은 밀가루가 점성에 따라 빵을 굽는 강력분, 국수를 만드는 중력분, 과자를 만드는 박력분으로 나눠진다. 빵, 국수, 과자로 다양하게 변화된다.


    ◎ 양적 다양성.. 에너지 변화없이 단순히 공간적 형태와 시간적 거리를 변화시킨다. 예) 같은 손가락이 길이만 다른데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소지로 나눠진다.


    문제는 질적인 다양성의 경우 획일성으로 오해될 수 있다는 거다. 왜냐하면 계에 투입되는 에너지의 강약을 조절하여 한꺼번에 많은 것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굉장한 착각이다.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우리가 기대하는 창의가 아닌가?


    언어의 한계다. 인간들이 쓰는 언어는 어차피 질적인 다양성과 양적인 다양성을 구분할 수 없다. 일일이 따지자면 국어사전만 두꺼워진다. 인간들의 지적 수준은 이것을 잘 구분할 정도가 되지 않는다. 일일이 설명하자니 입만 아프다.


    구조론으로 말하면 전개다. 전개는 두루마리처럼 돌돌 말려있는 것을 펼친다는 거다. 새싹과도 같다. 새싹은 획일적으로 보이나 키우는 과정에서 온갖 다양한 모습들을 연출해낸다. 그 새싹을 보관하는 용기는 획일적이다.


    구조론의 전개는 다양과 획을 두 가지 얼굴을 동시에 가진다. 돈과 같다. 돈은 획일적으로 동전 아니면 지폐지만 온갖 물건과 교환된다. 돈과 교환되지 않는 것은 없다. 영화와도 같다. 그냥 필름인데 빛을 비추면 온갖 것들이 나타난다.


    질은 거의 무한대로 담아낼 수 있다. 주파수와 같다. 1억명이 모두 주파수라는 하나의 획일적인 수단으로 통화할 수 있다. 태양과 같다. 하나 뿐인데 온갖 작물을 키워낸다. 태양은 획일과 다양의 모습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 진짜 다양성.. 자체로는 획일적이나 짝짓기를 통해 온갖 모습을 연출한다.
    ◎ 거짓 다양성.. 자체로 다양하나 공간과 시간을 빌린 것이며 획일적이다.


    진짜 다양성인지 가짜 다양성인지는 독립되어 있는지 딸려있는지를 보고 알 수 있다. 구조론의 전개로 가서 질 입자 힘 운동 량에 이르면 가짜 다양성이 된다. 다양한데 실제로는 획일적으로 쓸모가 없다. 양은 딸려있으므로 쓸모가 없다. 양보다는 운동이 낫고, 운동보다 힘이 낫다. 질이 가장 낫다.


    결국 다양성이란 짝짓기의 다양성이며 짝짓지 못하는 다양성은 가짜다. 짝짓기는 대칭을 통해 얻어지고 그 대칭을 만드는 것은 비대칭이다. 즉 획일성이다. 획일성이야말로 진정한 다양성을 내부에 품고 있는 것이다. 말로 하면 헷갈리고 모형으로 이해해야 한다.


    대개 에너지가 있는 것은 진짜고 없는 것은 가짜다. 나무의 줄기는 하나라도 내부에 만 개의 가지를 담고 있으며, 나무의 가지는 천만이라도 무의미한 반복이다. 에너지는 유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유체에 가까운 것은 일단 좋은 것이다. 



DSC01491.JPG


    다양성과 획일성. 이 두 단어로는 복잡한 진실을 모두 나타낼 수 없습니다. 에너지가 진짜입니다. 에너지가 있으면 획일적이라도 다양하게 변주되고, 에너지가 없으면 다양해도 허당입니다. 다양하게 뻘짓을 할 뿐입니다. 구조론이 정답을 찍어주므로 획일적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극복해야 합니다. 문턱을 넘어서면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거기서 또다른 거대한 세계를 만납니다. 


[레벨:4]혜림

2015.05.10 (02:11:28)

다양성에 대해 재정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표현하면서 확실히 맞는 언어를 쓰고 있는지 헷갈렸으나, 일단 용기 있게(?) 표현해봤습니다.
그래야 제 생각이 어디서부터 틀렸고, 어디가 맞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획일성의 의미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는데,

사전적 의미를 보며 다시 인지해보니

획일성은 하나의 같은 패턴을 말하고 있고
(언어의 한계라 틀린 표현일지도 모르지만요.)

이전에는 모양이 같은 느낌의,
양의 단계인 결과적 수준의 같음으로 인지했구나 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쨋든... 제가 더 이해하고 싶었던 부분은...
세상은 하나이지만, 질적인 다양성을 통해
여러개로 나뉘어 보이는 듯 하잖아요.

이원론적인 관점에서...

선과 악, 신과 인간 등.

본래 하나이지만 여러개로 보이는 이유를 구조론이 설명해주는 것이잖아요.

그 과정을 더 이해하고 싶었어요.
결국 구조모형을 통해 신은 신이 존재하게 한 것이고 그게 질적 다양성에서의 방식인데...

이원적인 사고에서 보면 대칭에 대한 어떤 상이 생기게 되잖아요..
대칭과 비대칭의 분리된 상.

결과적으로는 진짜구조냐 아니냐가,
에너지가 있느냐 없느냐를 통해,
판정할 수 있겠지만
이원적 사고를 가지게 된 과정과 원인이 있고,
그 과정, 원인을 알아야 그 사고의 틀을 버리고
구조 틀을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아
더 이해하고자 합니다..

그에 대해
현재 제가 이해하고 있는 느낌이 정말
맞는 것인지, 고쳐야할 게 어딘지, 그 과정에 대해
더 이해하고,
구체적인 저의 현재 이해수준에 대해서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제 설명과 질문에 또 다른 삐딱한 관점과 오류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구조론을 훼손하지 않는 일원론의 관점에서의 다양성은 존엄이고, 존엄 안에서 각각의 아름다운 개성, 스타일로 표현이 되는것이다..

굳이 제 수준에서 표현하자면 이 정도인데..
좀 더 납득하고, 납득시키기 위해
배우고자 합니다아.,

어쨋든 이 글 통해
획일,다양성과 같은 상대성의 언어에 대해
재고해보고
제 생각의 모형수준을 체크해보고
여전히 이원적 사고에 갇혀
혼란, 왜곡을 야기할 수 있는 표현을 쓰고 있었구나..
인지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레벨:11]큰바위

2015.05.11 (21:24:38)

다양성은 그동안 인류가 치고받고 살륙한 결과로 받아주는 겁니다. 

너 나랑 달라. 그러면 죽였습니다. 

너 나랑 하나가 아냐. 그러면 죽였습니다. 

패거리들이 모여서 다양성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가만 보니까 너도 죽고 나도 죽고 하니까 이제 다양성을 인정해주자 그래서 지금 다양성을 좋게 보는 거. 

그리고 그 다양성이란 것이 본질이 아니라, 겉껍데기라는 거. 

본질이 같으면 쳐주고, 그 외의 것은 봐주자 뭐 그런겁니다. 


겉을 다 발라내면 뼈만 남습니다. 

그 뼈를 추려내는 것이 구조론이라 봅니다. 


사실 다양성은 다 추려내고 나면, 인간의 존엄과 연관됩니다. 

다양성 인정하지 않으면 인간의 존엄을 무시하는 게 되고 맙니다. 


그런 의미에서 획일을 추구하는 것은 일원 혹은 일의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봅니다. 

획일은 Uniform을 입혀서 인간성을 모두 다 같게 만들려는 심산이라서 

결국은 인간성 말살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일의와 다양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위에서 말하는 진짜 다양성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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