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제 자리를 찾다” 필자가 극장에 발길을 끊기 시작할 때 부터 한국영화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지난해의 ‘디워소동’ 이후부터일 것이다. 왜 한국사람들이 영화를 보지 않을까? 보지 말라고 하니까 안 보는 거다. 애국질이나 하는 저질영화 보지 마란다. 그런데 말이다. 애국질 하지 않은 영화가 또 어디에 있나? 놈놈놈은 빌어먹을 애국질 안했나? 주인공 송강호는 돈만 찾는 악당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그래서 교묘하게 애국질의 혐의를 피하는 알리바이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일본군을 파리죽이듯 한다. 이것이 애국질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괴물도 디워도 놈놈놈도 신기전도 애국질로 시작해서 애국질로 끝난다. 애국질 하는 영화 보지 말라고 하면서 스크린 쿼터 애국질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한다. 치사하다. 관객들이 심형래를 주목한 것은 그의 영화가 대단해서가 아니다. 그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코미디언 심형래였기 때문이다. 심형래는 영화인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한국인들은 원래부터 충무로를 혐오했던 것이다. 히딩크도 마찬가지다. 그가 역겨운 축구협회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각별히 주목한 거다. 노무현도 마찬가지다. 흔한 정치 자영업자가 아닌, 여의도의 별종이었기 때문에 판갈이를 해줄 적임자로 그를 주목한 거다. 관객들은 외부에서 온 심형래가 충무로를 엎어버리기 원했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 주기를 원했다. 결국 심형래는 모욕당했고 관객들이 원하였던 그 무엇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들 차분하게 일상으로 돌아갔다. 충무로는 본래의 썰렁함을 되찾았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 충무로의 본래면목이다. 파리 날리는게 정상이다. 이상과열 분위기 가라앉히고 정상을 회복한 것이다. 그렇지 않나? 무엇인가? 80년대 영화는 무겁다. 90년대 영화는 치열하다. 공포의 외인구단 이후 장군의 아들로 이어지면서 기본 섬에서 지옥훈련 찍고오기의 치열함이 있었다. 그리고 2천년대 들어 민주화 분위기, 개혁분위기, 한류분위기와 맞물리면서 의외의 산뜻함이 있었다. 딴지일보가 모토로 내세우는 엽기발랄한 싱그러움이 있었다. 거기서 한국영화가 약간의 대중성을 얻었다. 2008년이다. 정권 바뀌고 한국은 본래대로 돌아갔다. 박정희 독재의 질식된 분위기, 전두환 싹쓸이의 썰렁한 분위기, 그리고 노태우, 김영삼의 목마른 분위기로 되돌아갔다. 충무로도 그때 그시절로 되돌아갔다. 사실 한국영화는 부단히 변신해 왔다. 80년대가 다르고 90년대가 다르고 2천년대가 다르다. 80년대가 기초를 닦았다면, 90년대가 건물의 층수를 올렸고, 2천년대에 와서 마지막으로 지붕을 올렸다. 지붕을 올렸으니 이제는 간판달고 영업해야 한다. 한류간판 달았다. 그런데 무엇을 영업할 것인가? 세계로 뻗어나가야 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2프로가 부족하다. 최근 10여년의 한국영화 붐은 숨은 2프로 찾기였다. 2프로 찾기에 전국민이 참여한 것이다. 그 2프로는 한류를 세계로 뻗어나가게 할 플러스 알파였다. 그것이 무엇일까? 만약 그 2프로가 관객의 응원이라면, 우리팀이 다 잘하는데 다만 관객의 응원이 부족해서 뒷심이 딸리고 있다면, 그래서 마지막 깔딱고개 하나 못넘어가고 있다면, 한국인들은 5천만이 총출동하여 시청앞 네거리에서 촛불행진이라도 할 태세다. 그 갈구하던 마지막 2프로가 무엇이었느냐가 중요하다. 애국질 하지 마란다. 그 2프로는 없다는 선언이다. 설사 그것이 어딘가에 있다고 해도 관객의 묻지마 응원이 정답은 아니란다. 대기권슛이나 날려대는 국대팀 가지고는 아무리 응원해도 월드컵 16강도 못간단다. 그렇다면? 그만 흥미를 잃는다. 그래서 영화를 안본다. 영화가 좋아서 보는 순수관객은 원래 많지 않았다. 2002년에 길거리 응원하던 그 많은 시민들이 다 축구4강에 관심있었던 것은 아니다. 축구에 축자도 모르는 소녀들이 그 광장에 모였던 것은 4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축구든 아니든 뭔가 해보는 데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대중의 자발적 참여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동기부여다. 그들은 동기를 찾으러 온 것이다. 동기만 주면 달려들 태세는 되어 있었다. 가슴 속에 한가닥 뜨거움 품고 있었다. 그런데 그 동기를 잃었다. 한국인들은 꿈을 잃어버렸다. 이 우울한 문화의 암흑시대에 영화보고 박수치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한국영화에 관객이 몰렸던 지난 10여 년이 이상과열이었다. 조중동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는 그 10년 말이다. 한국인들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40년간 우울했던 본모습을 되찾았다. 한국인들은 동기부여를 원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에 짓눌려 있다가 단군이래 처음으로 민주적 정권교체 성공시키고, 짜릿한 해방감 맛보고 그 분위기로 마냥 내달려보고 싶었던 것이다. 관객들은 그것을 그래픽에서 찾았다. 평론가들이 강조하는 주제의식이나 작품성 따위로는 세계로 밀고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주제의식 따위는 소설가의 임무가 아닌가?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받을 대문호가 출현하기 전에는 어림없다. 그렇다면? 스필버그가 뜨고 주성치가 날고 하는 것이 다 그림장난이다. 그림으로 어떻게 주물러서 어쩌면 세계시장에 먹힐 수 있겠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래서 디워에 주목했던 것이다. 2천년대에 와서 특히 한국영화의 그림수준이 높아졌다. 그것이 동기부여가 되어서 뭔가 멋진 그림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목격하기를 그들은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짜임새있는 미드가 뜨면서 한국영화의 한계를 절감하고, 디워식 그림장난의 한계를 절감하고, 한류의 한계를 절감하고, 민주화세력의 총체적 한계를 절감하고, 조중동의 파워에 짓눌리고, 딴나라당의 친일짓거리에 주눅들고, 딴나라당에 대한 30프로의 묻지마지지에 주눅들어서 그만 동기를 잃어버렸다. 동기가 없는데 영화는 왜 보나? 이 물음에 충무로가 답해야 할 것이다. 아마 답하지 못할 것이다. 정권이 다시 바뀌기 전에는. 지난 10년의 그것도 실상 충무로가 잘해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이쪽의 뭔가 해보자는 들뜬 분위기에 충무로가 감염된 일시적 효과였기 때문이다. 애국질은 없었다. 박정희에서 김영삼까지 친일파 40년 독재 끝나고 해방감에 만세 한번 불러봤을 뿐이다. 만세 부르지 마란다. 그래서 그들은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콕 박혀서 나오지 않을 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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