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신기한 일이군요. 이 부분이 저는 제일 이해가 안 가더군요.
노인 말을 믿으면 안 되죠.
자칭 잡초 전문가도 동렬님과 같은 얘기를 하더군요. 시신이 그 자리에 있은지 오래되었다면 잡초들이 시신을 다 감싸고 있었을 거라고..
마을 주민도 다 노인이죠.
사진을 가지고 말해야 합니다.
4월 사진은 지금까지 나온게 없습니다.
공개된 사진은 백퍼센트 6월과 7월입니다.
마을 주민 5명이 아무 이익도 없이 한꺼번에 거짓말을 한 것이든지..
112신고 기록마저 누가 다 지웠든지.
동렬님 말씀에 딴지를 걸려는 건 아니구요.
하도 이상한 게 많아서 그럽니다.
도저히 설명되지는 않는 지점들..
기사에 실린 사진은 7월 사진이겠죠.
6월 발견 당시 시신을 들어낸 바닥을 찍은 사진이 있는지 검색해봤더니 안 나오는구요
7월 사진을 보면..풀이 죽어있는 게 맞군요.
그러므로 동렬님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고 저도 생각하는데...
풀이 시신에 의해서 죽은 자리는 한 달 넘도록 새로 돋아나지 않는가 보네요.
워낙 독해서 뿌리까지 죽어서 그런가..
한 달 넘어도 풀 죽은 자리가 그대로 있다면(너무 독해서)..
혹시 그 자리가 4월에 생긴 자리일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일까요?
시체를 옮기기전 치밀하게 준비했다면
미리 무얼 덮어놓는 방법으로
바닥의 풀이 죽게 만드는 방법도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겠구요.
동렬님 말씀대로 이틀이 아니라 2주 이내라고 하더라도,
시체를 재활용했다는 김어준의 가설이 동렬님의 주장과
충돌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파파이스에서 주장하는 가설)
(사진을 보고 판단하신 동렬님의 주장은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풀이 높이 우거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몇 개월씩 지나지 않았다는 말씀, 비가 많이 오면 18일 이내에도 백골이 드러날 수 있다는 말씀, 시신이 전부 백골이 되지 않았다는 말씀, 풀이 죽은 것으로 보아 이틀은 무조건 아니라는 말씀, 머리카락으로 보면 유병언인지 금방 알 수 있다는 말씀 등)
다만, 동렬님의 주장과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노숙자의 시신을 재활용했다는 김어준의 가설은
여러 의심되는 대목을 설명해 준다는 거죠.
1. 4월에 시신이 발견되었는 주민 5인의 주장.
2. 시신 사진을 보면, 7등신에 가까워 보이는 망자의 키.(유벙언의 사진을 보면 두상이 작지 않음)
3. 또 하나..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시신을 재활용하기로 했다면 제일 곤란한 부분이 머리카락과 지문이죠.
그런데 공교롭게도 발견된 시신은...얼굴이 완전 부패되어
머리카락이 두개골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고(머리카락을 별도로 가져다놓았을 개연성 있음)
손은 가루가 되도록 부패되어 있더군요.
하여튼 뭐 그렇다는 거구요. 희한한 지점들이 하도 많아서 몇 자 적어 봅니다.
인체에서 잘 썩는 부분이
산소가 통하는 얼굴부분과 내장 그리고 항문 근처입니다.
공기와 접촉했는가 비를 맞았는가 이런 부분이 중요하구요.
다른 곳에서 적당히 썩게 만들어서 옮겨오기는 물리적으로 불능입니다.
실내에서 시신이 보관되었다면 얼굴과 배만 집중적으로 부패한게 설명되지 않구요.
야외에 두었다가 옮겨왔다면 얼굴이 녹아내린 상태이므로 옮기기가 불능입니다.
시신의 상태를 보면 언제 어느 정도의 비를 맞았는지가 확인됩니다.
당시의 기상대 자료와 맞춰보면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머리카락이 7월까지 일부 남아있었는데 그 부분도 중요한 자료가 되고
국과수는 현장의 구더기로도 사망시간을 맞출 수 있습니다.
이미 4월에 죽여놓고... 신고 기록 삭제하고..냉동보관 했다가 다시 그 자리에 시신을 가져다 놓고 2주간 방치...
사진을 보면 시신이 약간 미이라 형태로 보여서..
냉동고에 시신을 얼려 놓았다가 다시 풀밭에 가져다 놓으니 저런 형태가 아닐런지...
시신이 풀밭에서 뒹글었을리는 없고...
미리 그런 형태를 만들고 시신을 저기에 놔뒀다면...
시신으로 타이밍 조절했을 것 같은....
증언 부분은.. 누가 뭘 추정하고 그런 게 아닌지라
사실일 거라고 저는 생각하는 거죠. 게다가 여러 명이 한꺼번에, 아무 이익될 거도 없는데 거짓말 했을 리가 있겠는가..하는 거죠.
1.유병언을 누군가 죽였고
2.사인이 밝혀지지 않으려면 부패되어야 하는데..부패는 안되었고
3. 마침 두 달 전에 주변에서 발견..보관 중인 노숙자자 시신이 있고
4. 그래서 머리와 손을 집중적으로 인공으로 부패시킨 후
5. 유병언의 머리카락을 노숙자의 두개골 밑에 깔아놓고
6.4월 신고한 근거를 모조리 지우고
7.시신발견자와 4월이 아니라 6월 12일에 발견한 걸로 입을 맞춘 후(신고 보상금이 얼만데..)
8.시간을 충분히 벌어서 유병언의 시신을 노숙자의 시신과 비슷하게 부패시킨 후 시신을 다시 진짜 유병언으로 교체시킨 후
9.나중에 국과수에는 유전자를 판별할 수 있도록 진짜 유병언의 살이나 뼈를 보내고
10.그러면 이제 사인이 규명되지 않으니 만사 오케이
11.유족들이 찾아가 보니 치열 등 모든게 유병언 틀림없고
12.모든 게 완전한데..풀이 어쩌고 하니까..유품 찾ㄴ다고 풀 다 깎아서 현장 훼손하고..
대충 이런 거 아닐까 하는 거죠.
그리고 이미 그때 시신은 거의 저 사진상태로 있는 상태에서 냉동보관...
그렇다면 유병언을 누가 왜? 죽였지...? 하는 의문이 생기죠...
이 살인사건을 덮기위해 세월호사건을 일으킴... 가설입니다.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은 자유지만
제가 불만을 가지는 것은 왜 사진에 딱 나오는 증거에 무관심한가입니다.
1. 사진에서 유병언의 머리칼, 반곱슬에 완전백발인데 잘 없습니다. 굉장히 드문 확률이죠.
2. 머리칼 밑에 죽은 풀, 독소 때문에 풀이 자라지 못합니다.
3. 그리고 얼굴과 배와 손, 가슴과 발의 각기 다른 부패상태.
4. 60미리의 많은 비가 내린 당시의 날씨.
5. 풀의 자란 상태
6. 어떤 분은 사월 이야기하는데 4월과 5월은 풀 종류가 다릅니다.
7. 딱 보면 4월풀, 5월풀, 6월풀 구분 못합니까?
8. 왜 옷자락이 일부 헤쳐졌고 신발이 벗겨졌는가?
9. 풀이 썩은 상태가 머리부분, 등부분, 발부분이 다릅니다.
10, 주변의 풀이 햇볕을 찾아 이동한 상태,
11. 눌린 풀 중 일부 살아있는 풀이 햇볕을 받아 각도가 변한 상태.
12. 유병언의 이동경로가 산인지 도로인지 하천인지.
13, 육포, 지팡이, 막걸리병, 비닐포대, 옛날 소주병 등.
14. 구더기의 성장정도.
15. 토양오염정도.
이렇게 굉장히 많은 흥미진진한 단서들이 있는데
다들 엉뚱한 이야기하고 있어요.
당연히 단서들에 흥미가 가야 하지 않습니까?
탐정만화를 보더라도 담배꽁초 하나 가지고 범인을 잡는데.
저는 사람들이 이런 눈에 너무나 잘 띄는 단서들에 아무런 흥미를 보이지 않고
결론에 짜맞춘 엉뚱한 소설 쓰는게 너무 한심해 보입니다.
3월풀, 4월풀, 5월풀, 6월풀은 종류가 다른데
4월까지 엄청 빨리 자라다가 꽃 피고 바로 죽어버리는 풀도 많습니다.
풀 종류만 봐도 아는데 그런데 관심을 표하는 사람이 없어요.
왜 눈에 보이는 금덩어리를 놔두고
보이지 않는 기왓장타령을 하는지 참 이상하다 말입니다.
물론 더 한심한건 경찰이죠.
탐정만화도 안 봤나?
경찰이라면 소년탐정 김전일 이런 것도 보고
탐정놀이도 하고 혹시 존재할지 모르는 밀실도 찾아보고
이래야 하는거지, 에휴 기가 막힐 뿐.
기상대 날씨자료도 언급하는 사람이 없어요.
눈앞에 5억이 있는데 '흠 노숙자군' 하고 가버리다니 말이 됩니까?
정신병자에요? 거기 왜 노숙자가 있어?
차라리 처음 신고받은 구원파 경찰이 조작했다고 의심을 해야 그럴듯하지.
별장수색이 개판인것 하며
운전기사가 숨어 있었던 연수원에 와서 큰 소리로 여기 유병언 있다고 떠든것 하며
현지경찰 굉장히 수상합니다.
제가 지하철에서 우연히 유재석을 본다해도 못 알아봅니다.
그러나 방송국에서 유재석을 봤다하면 당장 알아보죠.
제가 아무리 안면인식장애라도 그건 알아봅니다.
거긴 유병언 연고지니까 첫눈에 알아봐야죠.
누가 어디서 어떻게 죽여서 발견 지점에 시체를 유기했는지는
밝혀질 가능성이 전혀 없다.
그저 수많은 추론과 소설만 난무할 뿐.
각자 다 다른 해석과 소설이 가능하죠.
어차피 밝혀질 것도 아닐 테니.
그러니까 어느 누구도
단정적으로 말할 순 없죠.
(그저 심심풀이 오징어 씹듯).. 여러 단서를 통해
추론이나 할 수 있을 뿐이죠.
저는 김어준의 말이 사실일 것이다..
이렇게 꼭 생각한 게 아닙니다. 그러고 싶지도 않구요.
그 친구는 그 친구 나름대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저런 추론도 가능하구나.
저 추론은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을 설명해 주는구나..
뭐 이 정도로 생각하고 마는 거죠.
어차피 소설인데..
다만,
주민 5명의 증언이 있고,
이걸 무조건
시골 노인네 헛소리로 취급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시신의 심한 부패 부위가 절묘하게, 공교롭게
두개골과 지문이 있는 손이고,
목뼈만 유독 부러져 있고,
부러진 다음 그 자리에
일부러 놓은 것처럼 놓여 있고,
온몸이 일직선으로 가지런하고,
풀은 시신 주변까지 다 눕혀져 있고,
가방 안에 든 소주병은 10년 전부터
출고되지 않는 제품이고,
막걸리병은 작년 날짜이고,
게다가 가방 안에 들었는데 흙까지 묻어 있고,
다 수습해갔으면서 머리카락만 현장에 한 달 이상 남아 있고,
그래서 그 자리만 유독 풀이 썩어 있고..
이런 부분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발표된 것만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지점들이다..
하는 걸 얘기하고 싶었을 뿐.
사진이나 진술 등의 단서를 통해
이 정도의 의심을 가지는 게
바보 같은 짓이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추론이나 소설은 그 후의 문제고요.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댓글을 단 것 같아 죄송하네요.
이리 희한한 우연이 이리도 희한하게
한 사건에 겹칠 수 있다니..하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고 상식적이지 않나요?
그걸 희한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더 희한한 일 아닐까요?
에휴
주민 5명의 증언은 없었습니다.
실명을 밝히고 명확한 증거를 대야 증언대접을 해주는 거죠.
현장의 구더기를 잡아오든가 썩은 단백질 성분이 든 흙이라도 파오든가.
그냥 군중들이 무질서하게 떠드는 것을 증언이라니요?
동네 할배들이 무슨 말을 못해?
잡담인디?
막걸리병, 소주병은 당연한 노숙자 위장이죠.
그런게 전혀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대로 변장하지 않은게 이상하지.
자기 동네에 시신이 나왔는데
위치도 특정하지 못하는 그런게 증언입니까?
위치가 특정되면 그 지점의 흙을 파서 국과수에 넘기지 않고 뭐하고 있습니까?
그 증언이라 주장되는 마을사람 헛소리에 약간의 신빙성이라도 있었다면
벌써 신문기자 100명이 달라붙었고 관련기사 300꼭지 나왔습니다.
다들 출세해 보려고 눈알이 벌겋게 되어 있는 상황인데.
황금덩어리가 눈앞에 있는데
신문기자가 모른척 하고 그냥 지나간다구요?
명량 이야기 나오면
당시 왜선이 몇 척이었느냐 이런 이야기 꼭 나오죠.
근데 대부분 전쟁의 기본을 모르고 하는 헛소리들입니다.
윤관장군이 오랑캐를 토벌할 때
17만을 동원했지만 실제 전투는 몇 천명 단위로 일어납니다.
수나라, 당나라가 기본 100만을 동원하지만
압록강까지 오면 30만, 평양성 근처까지 오면 10만으로 줄어듭니다.
나폴레옹이 60만 대군을 일으켰는데 모스크바까지 간 병력은 8만입니다.
게티스버그에서 남군이 7만대군을 일으켰는데
총맞아 죽은 인원은 고작 5천명입니다.
5천명이 죽으면 1만명 이상이 부상당하고 전염병에 도주자, 행방불명 등
2만 정도의 병력손실이 일어나고 이 정도면 남군은 궤멸됩니다.
2차대전때 쓸데없는 카미카제로
수백명의 엘리트 조종사가 죽었는데
일본생각 - 고작 수백명 죽었어. 카미카제 계속해.
그러나 현실은 .. 알고보니 그 수백명이 일본공군전력의 90퍼센트
이후 급조된 초보 파일럿은
미군 항공모함 근처도 못가보고 작은 경비함에 박았어요.
카미카제로 일본 전투기 손실 1500여대, 미군사망자 5천명.
전투기 한대와 에이스급 조종사 버려서 겨우 미군 3명 죽인거.
카미카제를 안했다면 미군에게 훨씬 더 많은 타격을 주었을 것입니다.
전쟁을 꼼수로 이기려 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예.
명량당시 왜군은 600척 이상이 있었고
그 중 상당은 전투함이 아닌 작은배입니다.
한산도 담배값 그림을 보면 조선군도 작은배를 꽤 많이 끌고다닙니다.
명량으로 이동한 배는 300척, 그 중에서 전투에 투입된 전함은 133척
거기서 선봉부대 33척이 격파되었다면 왜군은 거의 전투불능상태가 된 것입니다.
선봉부대와 후속부대의 전력차이는 굉장히 큽니다.
7만명의 남군 중에 겨우 5천명이 죽었는데도 사실상 궤멸된거 보세요.
이후 남군은 공격다운 공격을 못합니다.
명량에서 왜군은 탈탈 털렸다고 봐야 합니다.
칠천량에서도 원균이 전투에서 진 것은 아닙니다.
왜군은 교묘하게 원균을 뺑뺑이 시켰는데
주변의 섬들을 이용해 조선군이 다가오면 도주하고 도주하고 거듭해서
피로하게 만든 거지요. 왜군이 계속 도망가니까 원균은
왜군이 밤에 야습할거라곤 상상을 못한 거.
결국 칠천량은 본격적인 전투도 못해보고
그 이전단계의 신경전에서 완전히 말려버린 것입니다.
신경전이 중요하다는 거.
왜군은 패전도 패전이지만 완벽하게 포위해서 다 이겨놓고도
결국 털렸다는 점에서
다시는 이순신을 이길 수 없다는 절망에 빠진 거죠.
동렬선생님 짱!
97년 IMF로 금융기업이 하나둘씩 무너지고
대O증권도 무너지냐 버티냐의 생사의 기로에서 버티는 쪽으로 기울 때,
대O증권에서 기존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회사의 이름을 바꾼다고
전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사명공모를 한다고 일간지에 냈고
한학기 등록금을 준다고해서 응모한 적이 있었다.
머리를 감다가 갑자기 생각난 이름이 "너, 나 그리고 우리, 우리증권" 이게 좋겠다고 싶어서
둘째언니에게 내 이름으로 응모하라고 얘기했고,
언니는 내 학교 이름으로 공모를 했다고 했다.
합격자 발표 날이 다가와서 대O증권에서는
마땅한 이름이 없어서 이번 응모결과는 취소하고
사명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내용을 일간지에 실었던 것 같다.
그리고 5년후
TV CF에는 내가 낸 사명이 다른 금융회사의 이름으로 방영되었고,
광고카피도 똑같은 것이었다.
그후로 언니에게 응모한 것 맞냐고 몇 번 물어봤지만
"본인은 응모한 것이 맞다고' 대답했다.
동렬선생님, 영화를 보고 쓰신건가요? 영화 줄거리랑 거진 같은데요.
안봤고, 모든 전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신경전입니다.
초반에 서로의 전략을 가늠하는 단계, 응수타진..
영화를 본 분이 왜선이 나아갔다 물러섰다 하며 응수타진하는 단계를 건너띄고
40분간 전투만 졸라리 했다고 해서 쓴 건데
영화줄거리와 같다니 믿기 어렵네요?
제 글의 요즘은 본격적인 전투 직전의 신경전이
모든 전쟁영화의 핵심이어야 하며
그 신경전이야말로 구조론이 강조하는 뒤뚱의 법칙과 맞다는 거지요.
이순신과 왜군의 머리싸움이 신경전에 다 나타나는데
한나절동안 씨루기만 했을 걸로 본다는 거죠.
영화에 그런게 없다고 하던데요?
앙꼬가 없으면 거진 비슷해도 무효!
동렬 선생님이 원하는 딱 그거는 없어요. ^^;;
참고로 명량과 같이 조류가 빠른 바다에는 큰 파도가 생기지 않습니다.
영화 만드는 사람이 이런거 알리가 없지만.
큰 파도를 그린 옛날 그림은 다 엉터리.
이것도 엉터리
분석은 열심히 했으나 대략 맞지 않소.
전투는 물리적인 면에서 원인과 결과를 찾아야하오.
심리적인 분석 접근은 아니오.
오히려 심리적으로는 왜군이 우위에 있었소.
그리고 어선과 전함은 아주 멀리서도 파악이 쉽소.
조선 수군의 선단 규모는 이미 왜군도 파악하고 있었던것..
명량해전의 비밀을 내가 구조론적으로 풀이해서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올려놓을테니
참고 하도록 하시오.
엊그제 쓴 글은 급히 쓰느라 몇가지 설명이 미진한듯 하여
오늘 몇자 더 적었소.
명량해전은 에너지 전쟁이었다. 는 취지요.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올려놓았으니 참고 하시오.
이순신의 대장선이 용감 무쌍하여 적진에 돌격하였다는 식의 주장은
고수들은 해서는 안되는 말이오.
이순신 장군을 욕되게 하는 말이 되오.
내 이름을 잘 알겠지만 주변 손님들을 위해 내 이름이 '구윤상'이라는 점 밝히오.
큰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