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라 춘풍일줄 알았더니 어제의 오는 봄을 오늘 꽃샘이 막아서더라. 3월의 눈이 내렸다. 사찰 강당의 열린 문으로 바라보는 3월의 눈은 어떤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이 세상인데 이 세상과 잠시 떨어져 있는 어떤 미지의 공간 속에 잠시 머무는 느낌이었다. 대지의 공간에서 또 다른 공간의 순간적인 탄생 - 이런 느낌이 선적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고요해지는 ..주변과 상관없이 자기세계로의 몰입. 어느 다우님께서 3월의 눈이라 말씀 하시니, 아~ 정말 멋진 표현이라 생각되었다. ' 3월의 눈' 너무 낭만적이고 시적이지 않은가...봄을 기다리는데 봄비도 아닌 함박눈이 가볍게 내려주니 잠시 잊혀진 겨울 여행을 다녀온듯한.... 3월의 눈이라 쓰고 서설이라 읽는다.
제 2회 선차아회(禪茶雅會)가 용문사 - 상원사에서 행해졌다. 선차아회는 선차의 실천적 수행적 차모임이다. 바르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차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선차의 실질적인 행동 양식과 같다. 선차를 현실에서 실현시키는 모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차의 정신성을 선차아회를 통하여 문화적으로 삶의 양식으로 풀어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선차가 가진 1500년의 역사적 내재성을 현재에 다시 되살려 내는 작업을 하게 된다. 또한 시대성과 현대성을 담아 내기도 한다. 바로 우리시대, 이 시대에 선차가 1500년의 숨결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차문화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차문화의 에너지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선차(禪茶)의 이름이 새롭게 되살나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이름만 남아 있다는 것은 이름이 없다는 말과도 같다.
명목상으로만 존재 한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 유명무실 해졌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름만 남아 있는 것은 정작 마땅하게 새롭게 불릴만한 이름이 없다는 것과 같아서, 이름만 남아 있는 것에는 정작 에너지가 실리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미 그 이름이 퇴색되어져 버린 것이다. 또한 이름만 남아 있다는 것은 정작 부를 이름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다시 이름을 만들어 생명을 불어 넣으면 된다. 명목상으로 존재하는 것에 이름을 부여하여 개념을 세우고 흩어진 내용을 한 방향으로 정렬 시키면 된다. 이것이 에너지를 실어 주는 것이다. 비로소 생명을 받아 부활한다. 날아오를 수 있게 된다.
이름이란 그래서 중요하다. 무엇인가 딱 한마디로 그것을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아란도라 하자. 아란도란 이름이 없다면 아란도를 설명할 수많은 말들을 동원해도 아란도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딱 한마디 아란도 라고 하면 알아 듣게 된다. 말이 통하게 되는 것이다. 아란도라는 이름과 실제의 형상있는 아란도가 일치가 되기 때문이다. 딱 한 마디로 정의되고 그것을 담아낼 그릇이 있어야 하는것. 그것이 이름이다. 이 그릇안에 개념이 담긴다. 이미 개념은 있다. 이미 아란도가 이름이 없어도 아란도란 몸이 있고 존재하고 있듯이. 있는 개념을 담아낼 그릇은 정신성에 있어서 이름이다. 이 이름이 명명되어야 비로소 거기에 딱 한마디로 정의되는 것이 생긴다. 선차를 수만가지로 설명해도 선차라는 이 한마디가 명확하지 않으면 안개처럼 흩어져 버린다. 그 모호함을 담아낼 그릇이 이름이다. 정신을 담아낼 틀인 것이다. 개념이 바로서면 세부적인 내용들이 채워진다. 큰 것 안에 작은 것들이 일렬로 쫘악 담기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정렬이 되면 일방향이 성립되므로 방향성이 드러난다.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가 드러난다. 어디로 갈 것인가가 명확해진다. 처음 시작된 지점부터 앞으로 흘러갈 방향이 한 길로 드러나는 것이다.(저를 예로 들어서 설명 했어요.)
선차아회는 선차의 이런 정신성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방식이므로 그 프로그램이나 내용적인 측면은 계속하여 다듬어 가면 된다. 그러나 그 기본 시작은 선차의 정신성인 철학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 기준점이 제대로 서면 그 다음은 그에 맞춰서 진행되게 된다. 이것은 그렇게 맞춰지지 않으면 제대로 흘러가지 않으므로 그렇게 맞춰져야만 일이 되어가는 당위성이 저절로 드러나게 되는 것 때문에 그러하다. 그 방향으로 가야만 일이 되는 그런 지점들이 있는 것이다. 억지로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고 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선차를 제대로 받아 들일때 자신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러한 정신성이 발현된다고 여긴다. 이러한 이유들로 선차가 지금 이 시대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선차라는 이름은 무상선사의 '선차지법' 에서 나왔고, 그 흐름은 선승들에 의해 계속 계승되어 왔었다. 이제 그 몸통으로 흐르는 원류를 회복하는 것이고, 시작부터 현재 미래를 잇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동북아시아 차의 정신은 선차인 것이다.
한국에서 선차의 실천적 수행이 거의 사라져 버린 지금 [선차아회]는 실천적 방식으로 하나의 선례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실천적 수행 방식이기도 하지만 문화적 접근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차계와 불교계 그리고 여러 문화계들을 잇는 시도가 계속하여 진행되고 있다. 차로서 모두 한데 모이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사람이 모이는 것은 그 자체로 에너지이다. 교류가 진행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또 문화의 질적 수준이 향상되는 것이다. 한국 선불교는 선차의 실천적 방식을 앞으로 더 모색해야 할 것이다. 불교가 퇴락해져 가는 지금에 있어서 선차는 불교계에 또 하나의 에너지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완성된 것 끼리만 최고의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불교계는 선차의 실천적 형식이 보존되어 있지 않으나 선문화가 보존되어 있고 선문화의 산실인 사찰이 보존되어 있다. 차계는 한국의 열악했던 차문화 현실을 딛고 어느정도 그 토대를 일궈내고 있다. 차계는 불교계는 선차로 다시 만나야 하고 서로 상생의 협력을 할 때가 되었다고 여긴다. 또한 이러한 선차문화는 한국 문화와 정신성을 한층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이름 하나가 모든 모호성을 해소 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1500년 선차의 역사에 에너지가 내재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여긴다.
<아래부터는 선차아회 프로그램 진행사항에 맞춰서 시간의 흐름대로 순차적으로 이어집니다. 사진으로 선차아회를 감상하는 위주로 후기를 씁니다.>
상원사 용문선원 선원장이신 의정 스님의 [고청규(古淸規)를 통해 본 한국선가의 차생활] 논문 발표가 있으셨다. 선가에서 행해지는 선차례와 선차의 계보적 정리를 대략적으로 설명 하시었다. 선차의 흐름을 잇는 논문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여긴다.
대승불교연구원장이신 오형근님께서 [원효선과 일미사상] 논문을 발표하여 주셨다. 원효대사의 선사상에 대한 논문인데,
유가는 요가를 음역한 말이며 곧 선을 뜻한다고 한다. " 원효대사는 지관의 수행을 대승지관의수행 이라고 하였다. 원효대사의 선정이란 마음이 반연하는 대상에 대하여 자세하고 바르게 관찰하며 마음과 경계가 하나가 되는 수행을 뜻한다고 하였다. 원효대사의 선사상은 금강삼매경론의 대의에 대하여 일미관행이라고 설파한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원효대사의 선사상은 인도의 대승선을 바로 받아들인 선이다. 인도의 유가행파의 선이기 때문에 혜능대사 이후의 중국선과는 판이하게 다르다....일미라는 말은 심일경성의 일승을 뜻하며 일미평등의 일각을 뜻하는 것이다. 일각은 본각과 시각이 둘이 아닌 원각을 말한다. 그러므로 일미는 부처의 경지임을 밝히고 끝을 맺는다. "
자신을 공위원이라 불러 달라시는 공위원님 이시다.
전직이 논설위원이어서 공위원이라 사람들이 그리 부른다고 하셨다.
자료없이 선차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시었다.
돌아오는 길에 같은 차를 타게 되어서 그 안에서 여쭤본 것이다.^^
차의세계 잡지 발행인 최석환님이시다. 세계선차대회발기인이자 동시에 선차대회를 시작하신 분이시기도 하다.
또한 선차아회를 주관하시고 계시고, 현재 여러 차문화 행사를 진행 및 기획하시고도 있으시다.
그동안 선차대회와 한국밖의 인식적 상황과 한국안의 인식적 상황과
중국과 일본의 선차대회의 인지도와 지지도와 위상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 하시었다.
용문사 내에 있는 템플스테이를 위한 강당이다. 이곳에서 논물 발표 시간과 다례시연과 차명상이 행해졌다.
절집에 있는 강당이고 한옥 건물인데 아주 좋다.^^
티월드 페스티발 회장이신 김정순님..
사진 예쁘기 찍어달라 하셨는데...ㅎ~
고선다회의 대표이신 천선혜님
두루마기 조끼 코트가 멋져서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더니 포즈 잡아주셨다. ㅎ~
저녁 공양 시간...정말 맛나게 먹었다. 공양 시간이 많이 기다려졌다는...
열심히 듣고 사진을 찍다보니 허기가 지더라는...ㅎㅎ
저녁 예불 시간
사찰이어서 사찰에서 행해지는 예불에 같이 참여했다.
여기에 참가하는 다례팀 중에는 불자가 아닌 분들도 있으셨으나 모두 함께
종교라는 관념없이 참여해 주셨다.
그런 풍경들이 감사하고도 아름다웠다.
보석 스님과 처자보살님^^..아~ 성함을 물어보지 못했네요.
만나서 반가웠는데...저녁 공양시간에 김도 먹으라 주시고..혼자서 김 득템...ㅎㅎ^^
다례시연에 사용할 꽃꽂이와 화병
상원사 용문선원의 의정스님
ㅎㅎ...법명을 여쭤볼만한 시간이 없어서 사진만...^^;
승복이 좀 짙으니....이 사진이 맘에 든다....ㅎ~
조용하신 성품에 차를 대하시는 자세도 남다르셨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하셨는데
상원사라는 사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벽에 걸린 나무장식품에 그려진 새인지 학인지 애매하지만....
심플하게 딱 하나 황토벽에 걸려 있는데...
은근 감각 있다고 여겼다는...
벽에 저리 딱 하나 걸어 놓았는데...
멋졌다는...
곱게 누비 저고리 치마 개량 한복을 입으신 두 분...
하얀색 누비 저고리 입으신 분은 원유차문화연구원의 원장이신 전재분님 이시다.
그 옆의 분홍 누비 저고리 입으신 분은 제가 미처 여쭤볼 틈이 없었어요.ㅎㅎ^^;
보석스님께서 전반적으로 사회를 맡아 주셨고,
걷기명상도 함께 하여 주셨다.
아주 예리하시고 시원시원 하신 스님이시라고 여겨졌다.
그리고 또 유머도 있으셨다.
다례시연을 위해 공연 준비를 하시고 계시는 풍경...
항아리 형태의 워모용 다구에 초를 안치하고 그 위에 홍배기 용도의 다구를 올리고 차를 덖는다. 직접 시연하게 된다. 그리고 홍배한 차를 돌맷돌로 밀듯이 갈아서 갈아놓은 찻잎을 그대로 물을 끓이고 있는 차솥에 그대로 투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우러난 찻물을 팽주가 나눔숙우에 담아 주면 모두 나누어 마시게 된다. 모두 개인 찻잔에 마신다.
고선다회의 선차시연에 앞서서 준비되는 풍광들...
선차시연을 위해 직접 주문제작한 다구들이라고 하셨다.
투박한듯한 질감을 살려내었는데 고풍스러운 느낌도 있다.
신라시대 투다법인 전다법을 재현하기 위한 다구들이라고 하셨다.
고선다회의 다례시연의 첫 도입부는 헌향의식이다.
여기서 헌향의식에 사용한 병향로는 티벳에서 10년전에 구입하신 것이라 한다.
우리나라에는 병향로가 에밀레종의 비천상과 단석산 신석사의 마애불상군 공양자상에 나타나고 있고,
최근에 출토된 창녕읍 말흘리에서 출토된 병향로가 있다.
병향로에 대해서는 '세상만사 리뷰' 게시판의 <병향로의 여정> 글에 더 자세하게 나와 있다.
장엄하게 울리는 음악에 맞춰서 헌향의식이 행해지는데, 그 분위기가 직접 가까이에서 접하니 훨씬 더 진중하고도 엄숙하다.
또한 멀리서 접할때보다 더 직접적으로 선차시연의 분위기가 마음에 스며 들기도 하였다. 선차시연은 시연을 하기 위하여 창작된 공연형태이지만, 보여주지 않고 자신들의 수행의 방침으로 진행될때는 좀 더 집중이 되어 한데 정신을 모아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시연으로 하는 것과 수행으로 하는 것은 조금은 차이가 있을듯 하다. 시연은 좀 더 보는 이들에게 더 부각 시켜야 하는 부분들이 필요해지므로 공연 형태는 더 디테일 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수행으로 행할때에는 좀 더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여겨진다. 보는 이 입장에서도 그 진중한 선차시연이 나를 압도하는 것 같았다. 그 자체로 어떤 정화의 느낌도 생겨난다. 문화란 이렇게 행하는자와 보는자와 접하는자와 느끼는자가 모두 서로 바로 그 자리에서 통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선차시연들이 한층 더 정제되고 완성도가 높아지길 기대해본다. 멋진 선차시연이었다.
시연이 끝나고 홍배기에 남은 차...
이렇게 차솥(탕기처럼 생긴 차솥)에 물을 끓여 거기다 멧돌에 갈아 놓은 차를 투여하여 우린다.
차나눔 숙우와 찻잔 헹금용 물 나눔 숙우
막대형 손잡이가 차나눔 숙우
원유차문화 연구원 분들이 차명상 시연을 하기 위해 준비중...
원유차문화연구원의 차명상 시연은 각자의 다도구 세트가 준비되어진 상태에서 진행된다.
고산다회 선차시연 후 선차시연때 우려진 차를 마시고 있다.
원유차문화연구원의 원장 전재분님께서 진행을 하셨다.
차명상이 진행되는 동안 차명상을 리드하는 나레이션이 나온다.
차차로 차명상으로 진입하게 된다.
그리고 차를 우려 마시며 전체가 하나가 되어 정적으로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간결하게 차를 마시며 명상을 한다.
차명상 시연이 끝나고, 모인 대중에게 차공양이 진행 되었다.
차공양 준비중....
말차에 금가루를 띄우다...
금은 해독 작용을 하고 피로를 푼다하여 식용 금을 말차에 띄웠다.
부드러운 말차가 입안에 퍼지자
조금은 피로했던 몸이 풀리는거 같다.
ㅎㅎ...시연들을 보고나니 차가 고팠나 보다.
모인 대중이 다함께
원유차문화연구원 분들에게 차공양을 받고 있다.
정성스레 준비한 다도구들이 아름답게 바닥에 펼쳐졌다.
꽃들의 향연처럼 펼쳐진 찻자리이다.
우려내어준 차를 마시며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준비해오신 수고로움이 그대로 찻자리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준비하는 그 손길이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그래서 더 차한잔이 애타도록 고마웠다.
연차가 그 모습을 활짝 펼치다.
선차아회가 만개하듯이 연차도 연지에서 그 모습을 제대로 피워내었다.
차명상 시간
녹차 한 잔을 모두 앞에 놓고
찻잔에 있는 찻물의 절반을 입에 머금고 있다 목 안으로 흘려 넣는다.
그리고 10여분간 명상을 하고 찻잔에 남은 절반의 찻물을 마신다.
그리고 처음과 마지막이 어떠한지에 대해서 다담을 나눈다.
이는 상징적인 것과 같다.
마음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다.
모두 각자의 명상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다.
먼 기억에 대한 얘기가 현재에서 풀어지는 이야기
바로 지금 일어난 이야기
혹은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
10여분으로 뭔가가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나 그 명상의 시간이 갖는 상징성과
선차아회를 접하고 하루를 마감하는 시점에서의 느낌과 소회들...
분명 마음하나, 점하나 찍힌 그것들에 대하여....
첫모금을 마시는 차명상으로 진입해 가는 풍경...
차명상 후 명상에 대한 다담과 자기 소개를 대략적으로 하는 풍경...
선차시연이 행해진 강당
하루 숙박할 템플스테이 공간
이렇게 선차아회의 하루가 저물었다.
사찰내에 있는 약수물로 목을 축이고 이제 잠자리에 들다.
용문사의 산새가 아름답다.
사찰의 밤 풍경도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풍광들도 고즈넉하게 잠들어 간다.
천년 은행나무가 이 밤을 등 뒤에서 지키고 있다.
와 이렇게 꼼꼼하게 기록하시다니.
정말 대단해요. 쉬운일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