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딩은 서태지 노래가 나오자마자 이해한다. 왜냐하면 그런 노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뜻도 모를 팝송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서태지 노래를 이해하지 못한다. ‘무슨 수작이야? 그것도 노래냐?’ 그들은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결국은 기다림이다. 기다림이 있어야 한다.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나는 까뮈의 이방인이나 이상의 날개나 김기덕 영화가 어렵다는 사람들의 하소연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들은 기다리지 않았던 거다. 왜 기다리지 않지? 왜 화가 나 있지 않았다는 말인가? 어른들이 듣는 뽕짝을 듣고도 화가 나지 않았나? 불만이 없었던 건가? 그렇다. 김기덕 영화나, 까뮈의 이방인이나, 이상의 날개가 어렵다는 사람들은 전통적인 영화나 소설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던 거다. 왜 불만을 느끼지 않지? 불만이 없다면 진보도 없는 거다. 불만이 있어야 사회가 발전한다. 이명박의 세상, 박근혜의 나라에 그대들은 불만이 없어? 이게 좋아?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불만없는 사람들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잔뜩 화가 나 있어야 한다. 화가 난 사람들이 현재를 부정하고 미래를 기다린다. 어디서 짠 하고 진짜배기가 나타나줄것만 같다. 그럴 때 과연 까뮈의 이방인이 나타나고 이상의 날개가 나타나고, 고흐와 세잔의 그림이 나타나고, 서태지의 노래와 김기덕의 영화가 나타난다. 노무현이 나타난다. 이해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오래도록 기다려왔기 때문이다. 까뮈의 이방인이나 이상의 날개 첫줄을 읽고 뻑이 가지 않은 사람과 대화할 이유는 없다. 그런 사람들은 기다리지 않은 사람들이며, 평소에 불만이 없는 사람들이며, 이상주의가 없는 사람이며 그렇다면 우리편이 아니다. 나는 김기덕의 영화나 이상의 소설이나 세잔의 그림이나 서태지의 노래, 노무현의 정치를 세세하게 살펴보지 않는다. 중요한건 우리편이라는 사실이다. 그걸로 충분하다. 무인도에서 백년 만에 사람 하나 만났는데 어찌 기쁨이 없을손가? 춤을 덩실덩실 출 일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미 충분히 보상받았다. 그런 사람들과 이 별을 공유한다는 사실에 충분히 만족한다. 천년의 기다림, 짜릿한 만남, 그리고 전율! 더 무엇이 필요한가? 우리편이면 된 거다. 과연 지구가 살아줄만한 별이냐가 중요하다. 지구가 우리편이면 된거다. 3학년때 숙제로 사전찾기를 하다가 구조론의 첫 단서를 얻었다. 다른 사람도 국어사전을 봤을텐데 왜 그들의 눈에는 띄지 않았을까? 그들은 기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훨씬 이전부터 기다려왔다. 뭔가 깨달아줄 만한 것이 떠억하고 나타나주기만을 기다렸다. 그래 내 눈에 띄기만 해봐라. 내가 단박에 깨달아주마. 다 갖고와봐. 이런 마음이 있었다. 그럴 때 딱걸린거다. 옳거니. 용코 걸렸다. 단박에 깨달았다. 기다렸으니깐. 단번에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사실 기다리지 않은 거다. 그게 잘못된 거다. 타자는 투수가 공만 던지기를 기다린다. 그래 몸쪽 직구 높은거만 던져. 당겨쳐서 홈런을 때려주마. 그런 마음으로 타석에서 대기한다. 그래 암거라도 화두 하나만 던져봐. 내가 단박에 깨달아주마. 깨닫는데 3초가 걸리면 억울하지. 너냐? 너야? 너구나. 딱걸렸네. 낚시바늘에 붕어걸리듯 걸린 거다. 통발에 미꾸라지 들듯이 걸린 것이다. 내가 깨닫는다는 표현은 잘못된 거다. 뭐든지 동사로 기술되면 잘못이다. 깨달음이라는 방망이가 있는 거다. 그건 동사가 아니라 명사다. 깨달음이라는 방망이로 매우쳐서 때려잡는 거다. 명사로 만들면 된다. 만유인력의 법칙에 다 들어있다. 사과가 왜 떨어지지? 무겁기 때문에 떨어진다. 떨어진다는 것은 동사다. 사과가 떨어지게 함이라는 명사로 바꾸면 된다. 그게 만유인력이다. 자석이 쇠를 당긴다는 동사다. 명사로 바꾸면 자기장이다. 장이 있는 것이다. 깨달음이라는 장에 가둬버리면 된다. 구조론은 두 가지 아이디어가 결합되어 있다. 하나는 국어사전의 기술원칙에서 단서를 얻고 그것을 만유인력으로 풀었다가 린네의 분류법을 응용하여 생물 대신 무생물을 분류한 것이다. 국어사전에서 모순을 찾고, 만유인력에서 그 모순을 해결할 대책을 찾고, 린네의 분류에서 그것을 풀어낼 계통을 찾았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으로 분류한 것이다. 이게 뭘까 생각해보니 그것은 구조였고, 또 사건이었고, 에너지의 처리였고, 의사결정단위였고, 인과율을 공간의 방향과 시간의 순서로 풀어낸 것이었다. 국어사전의 기술방법은 틀렸다. 사전을 쓰려면 만유인력처럼 써야 한다. 자석이 쇠를 당긴다고 하면 안 되고, 자기장이 있다고 명사로 표현해야 한다. 그러려면 관계를 나타내야 하고 그것은 족보다. 린네의 분류는 생물의 족보다. 사건의 족보는? 사건의 관계도는? 그것은 구조다. 또 하나는 고딩때 배운 제논의 궤변이다. 발이 빠른 아킬레스가 한 걸음 앞선 거북이를 추월하는 방법은? 이건 양자적인 상황이다. 그렇다.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추월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의사결정이며 의사결정은 장의 존재를 전제로 해야 하고, 장은 대칭을 형성해야 하며, 대칭은 비대칭으로 이행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짝수여야 하기 때문이다. 아킬레스와 거북이 사이에서 의사결정을 일으키려면 먼저 의사결정의 장을 세팅해야 한다. 그리고 축이 대칭을 지배하게 해야 한다. 사람들은 이 문제를 수학의 계산으로 풀었다고 하는데 얼빠진 소리다. 그 이야기가 아니다. 추월한다는 것은 속도가 있다는 전제하에 성립하는 말이고 속도는 시간으로 판정되는 것인데 시간이 무엇인지는 위키백과도 모른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적인 물리량이라고 하며 절대시간은 없다고 한다. 시간은 물리량을 기술하는 약속일 뿐이며 그것은 상대적이고,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존재하지 않으며, 실재하는 것은 양자단위에서의 의사결정이고, 엄밀한 것은 의사결정구조 뿐이다. 그러므로 시간은 없고 대신 양자단위의 의사결정이 존재하며, 시간이 없으므로 속도는 없고, 속도가 없으므로 빠르다는둥 하는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불확정성이 지배하는 세계다. 그러므로 수학적인 계산으로 제논의 궤변을 푸는 것은 아인슈타인에게 도전하는 행동이다. 이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 결론적으로 의사결정의 장이 세팅되어야 하며 그 장에서의 의사결정은 대칭에서 비대칭으로 진행하고 반드시 대칭을 통과하게 되어 있다. 아킬레스와 거북이를 대칭시켜야 하며 둘을 통일하는 제 3의 장이 존재해야 하며 그 장이 판정하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시간은 무시된다. 여기서 핵심은 모든 의사결정은 대칭≫비대칭의 절차를 밟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절차를 세팅하는 것이 구조론의 질이다. 의사결정의 지점에서 아킬레스와 거북이는 토대를 공유해야 하며 토대는 대칭을 필요로 하므로 거북이에게 잠시대기를 명령한다. 속도는 거북이 1에 아킬레스 2이므로 거북이가 부족하다. 대칭실패. 거북이에게 부족한 1은 토대가 빌려준다. 대칭이 이루어지면 토대는 거북이에게 빌려준 1을 회수하고 아킬레스 승리를 선언한다. 추월한다. 우리가 아는 음양, 상하, 진보와 보수, 선과 악, 강약, 선후, 미추, 원근, 고저 따위의 대칭을 나타내는 단어들은 모두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조건을 나타낸다. 그리고 모든 대칭은 비대칭으로 이행하여 의사결정을 도출한다.
누구나 여기서 대칭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비대칭을 보지 못한다. 여기서 비대칭을 발견한 사람이 깨달은 사람이다. 곧 전투와 전술과 전략의 차이를 아는 것이며 개인의 긍정이 부정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 팀으로 긍정되는 원리를 아는 것이며,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던 것이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었다가 다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 되는 이치를 아는 것이다.
흑과 백은 귀퉁이에서 대칭을 이루고 있다. 백은 가운데를 차지하여 전부 연결되어 있고 흑은 끊어져 있다. 전부 연결되면 이긴다. 흑과 백은 대칭이면서 대칭이 아니다. 대칭을 비대칭으로 바꾼 쪽이 이긴다. 생장점을 밀고나가는 쪽이 이긴다. 끊어진 쪽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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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칭구조에 골몰하는중,,,,,,,,
엄밀하게 말하면 우주 안에 대칭은 없습니다.
대칭은 겉보기 등급이고 실제로는 하나의 화살입니다.
지진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겠어요?
옆에 있는것을 붙잡습니다.
붙잡으면? 선이 만들어집니다. 이걸 대칭이라고 이름붙인 거에요.
그게 대칭 맞습니까? 아니죠. 그냥 선이죠.
지구 속에 철이 돌고 있기 때문에
그 진동으로 철은 진동에 맞추어 옆에 놈을 붙잡으므로 정렬합니다.
자기력선이라는 거죠.
두 개의 극이 대칭되는게 아니라 하나의 선이 진행하는 겁니다.
대칭이 아니고 사실은 다 선입니다.
눈으로 보기에 대칭일 뿐 실제로 에너지의 작동은 선이죠.
선생님 말씀을 전부 이해하는것도 아니지만,
샘 글을 읽을때 문득문득 이런생각이 들어서 좋습니다.
아 내가 생각했던것 생각이 아니라 어렴품이 머리속을 맴돌던것을
그건 틀린생각이 아니야 , 그건 이런이유때문이야 라고 풀어주시는게 놀랍습니다.
어렸을 때 세상을 알아가면서 교과서와는 다르게 세상의 상식없음에 놀랐었습니다.
세상을 깨부술 엄두는 안나니 그냥 그렇게 순응해야 하나 선택의 기로에 울분만 쌓여가는데 노무현을 알게되어 너무나 기뻤습니다. 노무현을 기다려왔었던 것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