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연구소에 시비하는 분이 간간이 있으나 이죽거리기나 할 뿐 진지하게 달려드는 사람을 보지 못한 것이 유감이다. 3합이 오가기도 전에 인신공격이 나오고 욕설이 나오는게 보통이다. 진리라는 황금을 챙기는 판에 참을줄 알아야지, 자기 언어에 감정을 실으면 그게 사실상 항복선언이다. 나도 만나는 논객마다 시비붙던 때가 있었는데 작정하고 기본 한 달은 물고 늘어졌다. 이곳은 광장이 아니라 연구소다. 연구실적으로 덤벼야 핑퐁을 해도 상호작용이 되어준다. 구조론은 방법론이다. 방법론 보고 방법론이 어떻고 하는건 시비거리가 안 된다. 이유는 따로 있다. 안그래도 화가 날만큼 엿같은 시대다.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신 후 명박이나 국정원이나 근혜나 한길이나 철수나 다 마뜩치 않다. 이곳 분위기도 다운되었다. 경제도, 정치도, IT도 다 불경기다. 그럼 다른 곳도 많은데 왜 하필 여기서 화풀이인가? 시빗거리가 있다. 구조론이 대단하다면 왜 당장 결과를 내놓지 못하느냐 말이다. 그러나 그게 쉬우면 이전에 남들이 다 해먹었을 거다. 소실점은 눈으로 보면 보인다. 사람들이 뻔히 보이는 소실점을 다빈치가 일러주기 전에는 알아채지 못한 이유가 있다. 심지어 소실점을 중국인에게 알려줬는데도 300년간 못본 이유가 있다. 일본에도 알려줬는데 제대로 못 본게 우키요에다. 조선에도 알려줬는데 김홍도가 엉터리로 그린게 이유가 있다. 김홍도도 북경에서 나름대로 배운다고 배웠는데 그려놓고보니 맞지가 않다.
- 19세기 책걸이 그림..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맞지가 않다.-
선들이 한 점에서 모두 만나야 한다. 그런데 만나지 않는다. 분명히 이건 서양인들에게 배운 것이다. 근데 뻘로 배웠다. 건성으로 들었다. 조선이나 일본이나 중국이나 다들 진지하지 않은 것이다. 300년간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이 총들고 오기 전에는. 왜 다빈치인가? 다빈치는 대충 보여주지 않았다. 이런게 있으니 알아서들 하시라가 아니라 봉건에 빠진 그들을 완전히 굴복시켰던 거다. 인류사 1만년에 허다한 인걸이 다녀갔는데 내게까지 돌아올 차례를 남아있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구조론은 백년의 계획으로 가는 것이며 낡은 학계 시스템에 끼어들려는게 아니다. 시스템이 시스템인 이유는 통째로 갈아야 하기에 시스템이다. 학계 바깥에서 또다른 학문의 전통을 세우고 계보를 만드는 거다. 그러므로 이 또한 시비붙으려는 자의 트집일 뿐 진짜는 아니다. 진짜는 무엇인가? 간단하다. 내가 그 사람들을 싫어하므로 그들도 나를 싫어하는 것이다. 내가 뽕짝은 노래가 아니라 하고, 이발소 그림은 그림이 아니라 하고 지하철 시는 시가 아니라 한다. 강신주 노가리는 철학이 아니라고 하니 그들이 화를 내는 것이다. 따는 화를 낼 법 하다. 사실 화를 내라고 하는 말이다. 거짓을 보면 마땅히 화가 나야 한다. 그래야 진짜를 알아볼 수 있다. 쇠붙이만 자성이 있는게 아니다. 다른 물질들은 마주보고 상쇄되어 자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 안에 사랑이 있지만 자기애에 빠져 있다면 그것은 외부로 표현되지 않는다. 내부의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유도해야 형태가 일어난다. 대칭을 비대칭으로 유도해야 존재가 벌떡 일어선다. 의도적으로 자극하여 감추어진 에너지를 끌어내려는 것이다. 집적거리는 거다. 내가 그 사람들을 업수이 여기고 함께 놀아주지 않으니 그들이 화가 나는 것이다. 내가 의도를 가지고 고의로 그렇게 한다. ‘다 함께 모이자’고 해놓고 ‘너는 일베충이니 빠져!’ 그런다. 사실 이런 논쟁은 이천오백년 전부터 있어왔다. 오세님이 생각의 정석 30회 에 가져다 놓았듯이 이판은 사판을 비웃고 성철은 숭산을 비웃는다. 큰 스님은 대중과 만나주지 말아야 한다. 봉암사는 1년에 하루만 문을 연다. 혜가라도 팔을 자르지 않으면 달마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다. 원래 그렇게 한다. 그러니 당연히 불만이 있는 것이다. 입장 바꾸어 생각해보라는 말이다.
팔을 자르기 전에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좋은걸 너주랴? 화장실 갈 시간이 넉넉하게 있는 사람은 철학자일 수 없다. 젊은애들과 만나서 노닥거릴 시간이 있는 사람은 철학자일 수 없다. 필자가 5천원짜리 이발소 찾는게 돈 아끼려는 것이 아니다. 이곳에서는 5분 안에 깎아주기 때문이다. 1분이라도 내 시간 뺏기는게 싫은 것이다. 평일은 보통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의자에 앉아 있는다. 걸으면서도 생각하고 밥먹으면서도 생각한다. 그렇게 해야 한다. 봐야하는 영화가 백편 밀려있지만 볼 시간이 없다. 시간 나면 하려고 적어둔 아이디어가 수백이지만 시간이 안 난다. 페렐만이 그러는 이유는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거다. 그게 진짜다. 당연히 그러고 싶어야 한다. 사람들은 문제가 있다고 믿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석가는 고가 있다고 주장했고 예수는 죄가 있다고 주장했다. 과연 문제가 있는가? 아니다.
◎ 인간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 X )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 반대로 에너지가 없는 것이다. 진리를 봐도 뇌가 반응하지 않는게 문제다. 영어 이야기 나왔지만 뇌가 반응하지 않는게 문제다. 대중에게 친절하면 사기꾼 라즈니쉬다. 세상에 영합하지 말고, 세상이 필요로 할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진리가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부모잃은 고아가 친부모 찾은 듯이 기뻐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말하고 싶지가 않다. 이해는 한다. 나도 뇌가 전혀 반응하지 않는 지점이 있다. 음악을 들으면서 심지어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는데 이상하긴 하지만 그 사람들은 거기에 반응하는구나 하고 인정한다. 한 사람이 깨달으면 모두가 깨달은 것이다. 진리가 존재하여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2014년에 그걸 어떻게 주물러서 뭔가 연출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주는 넓고 세월은 장대하다. 내가 고아가 아니고 부모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꼭 부모와 손잡고 눈물흘리며 포옹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성철이냐 숭산이냐, 이판이냐 사판이냐, 연구소냐 광장이냐 선택해야 한다. 사이트를 관리해줄 2인자가 있으면 그분에게 맡겨서 분위기를 띄울 수도 있겠으나 지금은 다들 제 일 하기 바쁘다. 책을 여럿 만들었지만 홍보도 하지 않는다. 읽을 사람만 읽어야 한다. 요즘 신규 방문자는 유튜브에 올리는 동영상 보고 찾는 분이 많다. 일부러 동영상은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다. 좋은 것을 내가 갖지 남주겠는가? 잘 찾아보면 있다. 인연이 있으면 닿는다. 철학은 에너지다. 뇌가 반응하는 것이다. 호르몬 싸움이다. 에너지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섣부른 인상비평 나오면 그게 에너지가 없는 거다. 함부로 감정을 실으면 역시 에너지가 없는 거다. 일부러 노무현 대통령과 만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지구 어딘가에 있으면 된 거다. 중요한건 노무현이 아니라 인류이기 때문이다. 인류 안에 노무현 유전자가 있으면 다행이고 없으면 슬픈거다. 진리를 보고도 뇌가 반응하지 않는 사람, 아무런 기쁨 느끼지 못하는 사람, 진리 그 자체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 내면의 에너지를 끌어올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나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 상대성의 세계에 빠져 희희낙락인 사람, 무작정 내려놓으라며 의사결정 회피에 분주한 사람, 마음의 평정에 골몰하는 자기애 환자들은 타격받아야 한다. 한 방향으로 에너지를 유도해야 한다. 결론을 내리자. 내부의 에너지를 끌어내고 한 방향으로 유도해야 쇠가 자석에 붙는다. 이판도 필요하고 사판도 필요하지만 이판이 먼저다. 소승도 필요하고 대승도 필요하지만 대승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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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없다' 라는 말을 쓰지, '맛이 나쁘다' 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문제가 있다' 하지 않고, '에너지가 없다' 라고 한다.
맛이 있다가 없어지는 수가 있는데 이것을 '맛이 갔다', '맛이 빠졌다' 고 말한다.
오늘 구조론 신간 파티에서 전교최강 입학생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답은 이미 알고 있다. 난 답이 맛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좀더 정련하고 싶었을 뿐.
교사들은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려하나 중요한 것은 아이 주변의 상호작용부터 정상화하는 것이 먼저.
아이의 장점을 통해서 단점을 상쇄하는 것이 먼저다. 문제를 없애려고만 매달리면 장점마져 같이 없어지거나,
또다른 문제가 터진다. 요즘은 문제행동이 심한 애들 해결하는게 어렵지는 않으나
이 애 저 애 다 도와주려니 힘이 많이 든다. 걔들도 에너지가 없으니 장마철 젖은 장작에 불붙이는 일만큼 진이 빠진다.
그러면서 이제는 문제 아이들 상대하는 것들은 주변 선생님들 이 해결하도록 코칭하며 맡기고,
나는 최고의 아이들을 키울 생각이다.
물론 나를 만난 아이는 자기들이 세상의 주인임을 안다. 이제는 주인답게 당당한 클수 있도록
수업의 구성면에 미친 관심을 가질 것.
문제아들 상대하는 뒷북 땜빵상담보다 아이들의 에너지를 포착하고 자신이 성장하는 경험을 자주하는 것에
포인트를 맞추겠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스티브잡스를 대량생산~
고흐가 콩따고 에디슨이 풀매는 학교
머지않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구조론이 방법론?
그럼 방법이 뭘까?
방법이란 기본 절차를 따르는 것이다.기본 절차란 바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 수학자들이 만든 작도3대 난문이 있다.이 작도 3대 난문에 대해 한국에서 자신들이 그 문제를 해결했다고설치는 분들이 적지 않다.이는 방법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때문이다.수학은 바로 방법론이다.작도 3대 난문이 어려운 것은 자와 컴파스만 사용하라는 조건 때문이다.자와 컴파스가 아니면 작도 3대 난문은 난문이 아니다. 바로 해결할 수 있다문제는 자와 컴파스만 플라톤이 고집했다는 거다왜 플라톤은 자와 컴파스만 고집했나?바로 방법론 때문이다.인간이 가장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자와 컴파스다즉 방법을 갖추었다는 의미다.인간이 구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구조론이 방법론이라면 수학적이어야 한다.그래서 구조론이 수학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난 구조론에서 그 어떤 수학적 특징도 찾지 못했다수학은 기본적으로 무정의 용어와 공리와 공준을 출발점으로 해서정리가 나오고 그 정리를 공리와 공준으로 증명하는 과정이 반복된다.이게 수학이란 학문의 조건이다. 이 조건을 갖추지 않는 것은 수학이 아니다.구조론이 수학이라면 방법론이라면 먼저 무정의 용어 나와 주어야 하고공리 공준 나와 주어야 한다.진화론이든 자본론이든 인구론이든 스피노자의 에티카든 뉴턴의 프린키피아든모두 무정의 용어와 공리 공준을 갖추고 있다.그래서 이론이며 수학적이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다.이런게 과학이고 이것이 근대의 열쇠였다.이게 없다면 모두 미신에 불과하다. 전근대다.구조론이 이 조건을 갖추었나?이 조건이 없다면 방법론도 아니며 수학도 아니다.그리고 이론도 아니다 따라서 구조론이란 이름은 잘못된 이름이다. 론은 붙일 수 없다.
소실점을 알려줬는데 김홍도가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그렇다
이론을 세우는 법을 알려줬는데 이론답게 세우지 못했다 누구 잘못인가
여기가 단순히 구조에 대한 김동렬의 생각이라면 몰라도
구조론이라고 이론을 지향한다면 이론다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으며 시비나 당할뿐이다 론을 붙인다는건
사무라이가 칼을 뽑아든 격이고 서부 총잡이가 총을 뽑아든 격이다
시비한번 걸어보라는거다 그런데 그에 대해 강퇴로 대꾸한다
이건 무슨 경우일까
울지 말고 시비를 해보세요.
이런건 인상비평에 불과합니다.
구한말 선비들이 서구문물을 보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네' 하는 수준.
근데 그 선비들에게는 실제로 쓸모가 없었죠.
삼강을 아느냐 오륜을 아느냐 하는 판에 무슨 쓸모가 있겠소?
아쉬운 사람이 상대방 링으로 올라가야 하는 겁니다.
자기 링에서 니가 와라 하는 수준이면 곤란하죠.
구조론을 배워야 시비할 자격이 생깁니다.
울지 않을테니 제발 강퇴나 시키지 마시길 상대방 입은 틀어막아놓고 자기 주장만 고집하는거 청기와 집에 사는 아줌마 수법도 아니고
나아가 수년간 구조론 글을 읽으며 구조론을 배우고자 해도 배울 수가 없었지요 책을 읽어봐도 마찬가지 이유는 이론이 아니라 그냥 김동렬 자신의 생각들이 그럴싸하게 나열되었기 때문 구조론을 배우려면 김동렬의 머리 속으로 들어가 봐야 가능
동양의 수학은 이론적 틀을 갖추지 않아서 동양의 수학자들이 수학을 공부하는 방법은 통체로 암기하는 방법뿐이었다오
반면 서양수학은 이론의 틀을 갖추었기 때문에 지식이 체계화되고 이해만하면 누구나 배우는게 가능 그 힘이 서양 근대화의 원동력 미신을 타파하는 합리주의를 꽃피우게했지요
난 나의 링을 고집하자는게 아니오 공론의 장으로 구조론을 들고와보라는거죠 그럴 자신감이 없다면 나도 할말없고 대신 론자를 떼어야지요
그래야 다른 곳으로 가서 시비붙고 놀거아뇨 론을 고집한다면 계속 시바에 시달릴뿐
시비를 위한 시비에 불과합니다.
진짜로 수년간 읽으신거유?
쫌 의심이 갑니다.
시절이 하수상하거든요.
구조는 깨달음의 세계에 관한 겁니다.
책깨나 읽으신거 같은데 번지수가 다릅니다.
내가 고작 시비나 하자고 강퇴 당하면 다시 회원 가입해서 글을 올리고 그럴까요?
뭐 그대가 시비로나 보겠다면 나도 어찌할 방법은 없소만 암튼 시절이 하수상한 것하고 나하곤 아무 상관도 없소이다.
글고 구조는 깨달음의 세계라고 하지만 도데체 깨달음이 뭔지 정의할 수 있는 분이 있을지도 의문이고요...
전 어리석어서 깨달음 보다는 이해를 추구하니까요...
그 어렵다던 위상수학도 결국 열심히 공부해 이해해 냈고, 아무도 이해할 수 없다던 양자역학도 어찌 어찌 이해해내는 중이고 말이오.
이렇게 이론이라든가 학문은 열심히 노력하면 결국 이해할 수 있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요...
하지만 구조론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더이다. 뭐 그럴싸한 이야기들은 많지요.
문제는 그 그럴싸한 것이 실제로는 실감할 수 없다는 점이오 즉 그 그럴싸함을 어케 실천할 것인가의 문제지요.
거기서 막히는 것이 문제란 것이오
님은 원주율 파이를 실감할 수 있나요 한없이 계속되는 수인데 어떻게 실감할 수 있겠오?
인간은 자신의 감각으로 실감하지 못하는 것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동물인바 나는 수학도 실감하기 위해 이런 저런 노력을 한다오.
그리고 정말 허깨비같은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도 실감하기 위해 노력했다오 더구나 물리적인 세계를 이해하는 이론이니 당근 실감이 가능해야할 것이오.
님이 텐서란 개념을 이해하오? 님이 텐서를 이해하고 나에게 텐서를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설명할 수 있다면 내가 항복하리다. 난 텐서를 초등학생에게도 능히 설명할 자신이 있오만
주장하는 바가 뭔가 말이오. 구조론 존나 어려워 모르겠어 잉잉잉... 뭐 이런 요지인 거 같은데 이건 주장이 아니죠. 님은 어떨지 모르나 여기 독자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구조론을 나름 자신의 영역에서 적용하고 효과를 이끌어내고 있어요.
구조론이 논리적으로 오류가 있다면 그것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증명하던가, 아니면 대안이 되는 다른 어떤 관점이 있다면 그것을 펼쳐보여줘야 뭐 얘기가 좀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식이라면 단순한 하소연으로밖에 안들립니다.
수학의 군론 존나 어려워 모르겠어 잉잉잉 하던 때가 있었오..고작 20살의 갈루아는 어떻게 5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군론으로 증명했단 말인가?
정말 몇년을 머리카락을 쥐어 뜯어가며 5차 방정식론과 군론을 공부했지요 결국 이해하는 데 성공했오이다.
이렇게 논리적으로 세워진 이론은 노력하면 결국 이해할 수 있게 되어있다오..그럼 구조론은 논리적인가? 난 아니라고 보오
구조론의 내용을 보면 말이오 김동렬의 번뜩이는 직관들이 수없이 빛나오 그 직관으로 수없이 비약해 버리오 그래서 어쩜 그렇게 그럴듯한 결론들을 이끌어내는지 감탄이 나지요..
그래서 나도 재미가 붙어 그래 저런 훌륭한 직관을 얻기 위해 구조론 열심히 공부해 보자. 질, 입자, 운동, 힘, 밀도 처음에는 그냥 국어사전의 의미로다가 접근했다가 아하 국어사전적 의미는 아니군. 하면서
다시 공부하고 또 공부해보았지만 도대체 가닥이 잡히질을 않지요...호오 문제가 뭘까? 그렇군 구조론은 론(論)이라 하나 사실 론이 아닌 것이군나 하는 점이오 여기 저기서 필요할때 김동렬의 직관이 빛을 내야만 길이 뚫리는 그런 이야기들이란 것이오
그러니 늘 김동렬선생이 필요하오 혼자서는 결코 구조론의 세계를 여행할 수 없다는 것이오
구조론은 혼자 독립된 독자의 세계가 아니오 김동렬의 직관이란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면 붕괴되는 세계였단 말이오
그래서는 김동렬이후가 걱정스럽지 않냐는 말이오 난 여기 그 누구도 구조론을 김동렬과 비슷한 수준으로 이해한 사람이 있다고 보지 않소 다들 그렇지 않은가? 말이 있지요 청출어람 청어람이라든가
근데 제자들이 결코 스승을 넘어설 수 없는 세계라 그 세계는 전근대의 세계요 근대는 제자가 스승을 넘어서야 하는 세계요 그래서 근대인 거요. 인간이 모두가 왕이 되는 시대 그게 근대요. 인간이 모두 신이 되는 세상 그게 미래의 세계요.
하지만 구조론에서 왕은 김동렬뿐이고 신은 김동렬뿐이오 김동렬의 직관이 없으면 그 왕국은 몰락할 수밖에 없고 그 세계는 붕괴되는 허약하기 그지 없단 말이오
구조론은 논리적 오류가 없오 애당초 논리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오..오로지 김동렬의 직관만의 세계란 거요.
그러니 난 하소연밖에는 할 수가 없소이다. 제발 소실점 하나를 찍어 달란 말이오.
김홍도처럼 소실점을 여기 저기에 남발하지 말고 말이오 소실점이 없는 구조론 그런데 소실점을 찾으라는 구조론 이상하지 않는가 말이오.
깨달음은 과연 있을가여,,? 아니면 그냥 시행착오를 격어가면서 ,,,,그렇구나,,되는건가여,,,/좋은글,,,,에 ,,,요즈음은 역발상적 상상을 갖게도네요,,,,모든분들께,,,,감사,,,정치인들도 구조론 배웠으면,,,
동렬님의 말씀은 싸움을 붙고 싶으면
자신의 무기를 까보이라는 말씀인 것 같은데요.
비열하게 무기 숨기지말고 말이죠.
근데 뭔가 감추는 사람치고 영감 주는 스토리 가진 사람 없는 것 같고..
여튼, 페렐만은 위상기하학 문제인 푸앵카레의 추측을 미분기하학으로 풀었다고 하죠.
그래서 많이 까이기도 한 모양인데..
도구가 어디 호미뿐입니까?
푸앵카레는 자신의 도구를 까보인거죠.
당신들이 날 까고 싶다면 당신들도 도구를 한 번 까보시라.
이런 기분 아니었을까요?
3페이지로 농축된 논문... 그리고 수백 페이지의 해설서
이게 페렐만과 까던 사람들의 차이지 않을까요?
글고 패랠만 자꾸 언급허시는데 그가 증명한 내용을 알면서 언급하눈지 참나 위상수학 미분기하가 뭔줄은 아시나 수학 전공자신가?
동렬님 최근에 심기 불편하십니까?
'철학은 힘이 세다'에서 시작하더니 최근 글들은 자꾸 꼰대같이 본인 이야길 꺼내며 야단치듯 하시네요(우리 부모님 세대가 그러시잖아요 부엌에서 불때며 공부했는데 너희는 좋은 세상에 배불러터졌다고)
구조론사이트가 지향하는 것처럼 건조하게 감정넣지말고 본인 이야기 하지말고...그러면 안될까요
야단 칠 때는 쳐야죠.
구조론적으로 집단은 항상 일정한 정도의 긴장을 필요로 합니다.
미국과 러시아가 깽판치는게 이유가 있어요.
어떻게든 팽팽하게 긴장된 상태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종북놀음을 하든 통일대박놀음을 하든 정치꼼수들은 반드시 긴장을 연출합니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 당선이라든가 하는 좋은 쪽으로 긴장을 연출하는게 좋죠.
근데 지금 보시다시피 시국이 개판이잖아요.
우리쪽에 선수가 없으니 정치칼럼도 쓰지 않게 되었고.
간헐적인 긴장조이기는 구조론연구소에서 늘 있어왔습니다.
당연히 긴장을 주는게 제게도 좋고 집단에도 좋습니다.
저도 독자들에게 시비를 걸어야 아이디어를 얻죠.
다만 긴장을 한 방향으로 유도하는게 고수의 테크닉이죠.
전혀 꼰대같지 않은 얘기였습니다.
구조론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발견지점을 말한거예요
에너지가 시작된 최초지점에대한 말을 하는데 감정이 없으면 그게 이상한 거죠
그 감정과 이 감정이 같은겁니까?
엉뚱한 시비입니다.
님같은 분들은 참...뭐랄까? 제가 가입은 최근에 했지만 눈팅은 몇년됬는데 가끔 님같은 분들이 있었거든요 남의 대화에 끼어들어서 마치 구조론 수호신처럼 짖어대는...그런거 구조론 발전에 도움 안되거든요 그런 사람들 지금 남아있지도 않는 것 같고... 동렬님 옆에서 재롱이나 떨지말고...구조론 공부한다면 과감하게 동렬님한테 돌직구도 날리고 그래야합니다. 동렬씨라고 혼자 다 아는게 아니예요 누가 시비걸고 그래야 생각도 나고 정리도되고..이게 공부의 기본입니다 구조론에 님같은 예스맨만 있으면 되겠습니까 알지도 못하면서 '엉뚱한 시비,? 이딴 글 붙이지 말구요
오늘 폴란드 크라코브 날씨가 좋군요. 반팔차림이 눈에 보이네요. 여기서 이제 국경만 넘으면 우크라이나군요.
진리를 알고 싶으면 진리가 있는 곳으로 몸을 던지세요.
아님 그냥 맘 편하게 사세요. 뭐하러 고민하면서 사나요? 골아프게.
눈으로 보는 것은 쉽다.
그러나 연필 들고, 붓을 들고 그리는 건 또 다른 문제다.
투시도를 그려본 사람만이 투시도를 제대로 그렸는지 못그렸는지 아는 건 아니다.
초보자라도 세한도가 잘못되었다는 건 다 안다.
그렇다고 그것을 보는 눈이 있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잘 못된 것을 고쳐 그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구조론의 매력이 있다.
잘못된 그림을 고쳐 그릴 줄 아는 사람 만이 대화 상대로 쳐주기 때문이다.
책 속에 있는 사진은 구도만 보면 된다.
그리고 구도를 볼 줄 아는 안목을 길러 그냥 찍으면 된다.
그러나 투시도를 그리고,
다빈치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그정도의 안목으로는 안된다.
아무나 다빈치가 될 수는 없다.
적어도 다빈치를 제대로 베낄 줄 아는 사람이라야 다빈치의 그림이 걸작이란 걸 안다.
그런데 구조론이 원하는 건 베끼는 것은 기본으로 하되
창의 하란다.
다비치 없이 다빈치 만한 그림을 그려내라고 요구한다.
아니 다빈치를 넘어서라고 하는거다.
그게 구조론의 매력이다.
동렬님이 구조론이 방법론이라고 했으나,
방법론 아니다.
구조론은 원론으로 원형을 만들어내는 중이고
그 얼개를 엮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중이다.
방법론은 그 원형을 이해한 사람들이 어떻게 적용할까 고민하다보면 자기 영역 속에서 방법을 발견하게 되는 것일게다. 그것을 방법론이라고 하면 방법론이라 이해할 수 밖에 없겠지만, 그냥 일반적인 how-to의 방법론은 아니다.
패러다임 구축이 그냥 쉽게 되는 건 아니다.
발상의 전환, 생각의 변화 말은 쉬우나 그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동렬 총서 8번, 생각연구까지 다 읽어본 결과, 구조론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완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이미 한 사람의 머리 속에서는 완성되었을지 모르나,
여전히 그 한사람의 생각이 충분이 복제되기 까지는 과정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좀 더 가볼 필요 없이 이미 기초는 완성 되었다.
그 위에 무엇을 짓는가는 구조론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당사자에게 달려있다.
또 책이 한권 나왔다니 읽어볼 일이다.